한국 토종女 의 시드니 이야기
2014년 그 해 겨울은 매우 추웠다. 하지만 그 추위도 본인이 다녔던 - (지금은 꽤나 유명해진) 강동구의 외국어 고등학교 입시 만큼 춥지는 않았을 것이다. 수능을 치룬 2014년 겨울, 수능은 생각보다 허탈 했고, 빨랐고 생각 만큼 나와주지 않았다. 나에게는 두가지 선택이 남아있었다. 재수를 할 것인지 - 아니면 점수에 맞추어서 "인서울"에 만족할 것인지. 가뜩이나 고등학교 3년을 매우 답답하게 생각했던 나였기에 재수는 생각을 할 수 조차 없었다.
어머니 아버지의 실망을 뒤로 하고 난 점수에 맞추어 서울 용산구 효창동의 모 여자대학교에 진학을 했다. 대학교 일학년은 나는 - 답답했던 고등학교 생활을 벗어던진 한 마리의 날라리 처럼 놀러 다녔다. 미팅은 물론이요 홍대, 신촌. 용산 그리고 강남의 밤거리를 친구들과 배회하며 술을 마시고 미래에 대해 이야기하던 그 시기. 하지만 무엇인가 나의 성이 차지는 않았다. 하루하루가 우울 했고 대학의 낭만은 커녕 , 더 큰 입시 - 대기업 입사를 준비해야 하는 현실이 무엇인가 나를 분노 하게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열심히 공부한 대가가 한 방의 시험에 무너져 내린다는 입시에 분노 했고, 대학에서도 다시 스펙관리와 학점관리에 열중해야 하는 현실에 분노했고, 또한 꿈이 없다는 현실에 분노 했다. 마치 타오르는 용광로 처럼. 그랬다 나에게는 돌파구가 필요했다.
"호주 단기 교환학생 모집" - 대학 국제처에 붇여있던 간판. "호주? 호주가 어떤 나라지?" 그 때 나의 호주에 대한 지식은 캥거루와 코알라 정도의 기본 지식에 지나지 않았다. 그래도 영어권 국가라는 점, 단기 교환 학생 이라는 점은 충분했다. 나는 당장 팜플렛을 받아들고 아빠에게 달려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