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나 갑작스러운 '죽음'앞에서
인천 모처의 장례식장. 식사를 나누며 담소를 나누는 테이블이 시끌벅적하다.
업무 중간에 팀원에게서 전화 한통을 받았다. 갑작스럽게 아버지를 모시고 중환자실에 왔다고. 서럽게 우는 팀원이 목소리에 나도 같이 울었다. 그리고 두시간뒤, 믿을 수 없는 소식.
"팀장님 아버지가....방금 돌아가셨어요"
그렇게 장례식장이 정해지고, 모든일들이 순차적으로 진행되어 벌써 다음날이면 발인.
다녀가야할 회사식구들이 아침부터 저녁까지 삼삼오오 모여 방문하고 와주실법한 인원들이 대부분 다녀간 뒤, 반가운 전화와 안 반가운 전화를 한통씩 받았다.
반가운 전화는 상중인 팀원이 핸들링했던 프로젝트가 성공적으로 마무리되었다는 소식이었고, 반갑지 않은 전화는 곧 입사하기로 한 새로운 팀원의 입사번복 전화였다. 우리 회사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할 것 같아서 지금 회사에서 조금 더 성장하고싶다며, 새로운 팀원은 조심스럽게 입사철회의사를 밝혔다.
새로운 팀원을 소개해준 대학원 동기는 전화로 연신 미안함을 표했지만, 정말로 괜찮았다. 함께하면 더 좋았겠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언제 어디서든 또다른 곳에서 다른 기회들이 있을테니까. 다만 지금 이시기 서로의 인연이 닿지 않았을 뿐 그 친구에게나 나에게나 이 일의 불발로 인해 새로운 다른 인연의 뉴런들이 이순간에도 각자의 주변에서 에너지를 펼치고 있다고 믿는다.
될놈될. 될 인연은 되고 안될인연은 어긋나는 법. 다시 처음 스텝으로 돌아가서,
새로운 팀원 후보자군들의 이력서를 받고, 검증인터뷰를 거치고 빅5 테스트를 하고, 기존 멤버들과 가벼운 커피챗을 하는 과정들을 거쳐야하지만 어쩌겠는가. 사람이 온다는 건 정현종 시인의 말마따나 어마어마한 일이니까. 그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와 일생이 오는데, 부서지기 쉬운, 그래서 부서지기도 했을 마음이 오는 것인데 그게 번갯불에 콩 볶듯 되겠는가.
혹자는 무슨 베프의 시아버님 장례에서 밤을 새냐 싶겠지만, 베프의 남편과도 어느덧 26년 친구가 됐고, 그의 아버지를 생전에 여러번 뵈었으니, 시아버님이라기보다는 아버님 같은 느낌이었달까.
우리 아버지는 향년 59세로 세상을 떠나셨다.
내 나이 스물셋 무렵. 2002년 월드컵이 지난 다음해의 일이었다.
그때 언니들과 어설픈 장례를 치르면서 많은 것들을 배웠다.
생전에 매사 군더더기 없이 착착착 완벽하게 일처리를 했던 아빠가 보시기에 너무도 한심하게 생각할 것 같은 얼렁뚱땅 장례식이었지만, 그때 찾아와준 문상객들에 대한 고마움과 어떻게 죽음을 대해야하는지, 어떻게 살아야하는지를 배웠던 소중한 시간들이었다.
사랑하는 이를 떠나보내는 것이 분명 쉬운 일은 아니나 죽음을 통해서야만 배울 수 있는 것들이 있기에 죽음도 값지다, 라는 문장을 쓰려다가 잠시 멈춰졌다. 싸늘한 주검이 된 어떤 소녀의 이미지가 떠올라서. 그런 소녀의 주검을 부모가 본다는 것의 상처를 모르기에 쓸수있는 문장이 아닐까 싶어서. 자연스러운 죽음이라는 건 윗사람이 먼저 떠나는 수순일진대 그렇지 않은 죽음은 너무도 많은 고통을 준다. 때로는 삶을 연명할 수 없을 정도의.
작년에 동료의 부모님 장례식장에 뵈러 가느라 광주, 안동, 대구까지 다녀왔었다.
그러나 또, 인생이 마냥 그렇게 '응당한 일'을 '응당하게' 치루고 살 수 없도록 만만치 않은것이,
잠시의 망설임 끝에, 가지 않기로 결정했더랬다. 업무상 정신없이 바빴지만 보다 솔직히 말하자면 그것은 핑계였고 망자가 동기와 다소 먼 관계라 슬픔의 깊이가 다를거라는 나만의 추측이 내 결정을 그렇게 이끌었던 것 같다. 죽음을 두고, 조문을 하러 가는 선을 스스로 정해둔것 같아 내 자신이 싫어지는 순간이었다. 부모님의 장례식은 가고, 시댁의 장례는 그보다 경히 생각하는 마음이 저 밑바닥 어딘가에 있었기에 나온 선택이었텐데 시댁이 없는 내가, 공감할 수 없는 감정이었을거라는 것으로 그때의 나의 행동을 감싸주고 싶다.
두해 전, 한창 수업을 해주셨던 ** 교수님도 갑작스런 배우자상이 있었다. 근래들어 그렇게 무거운 장례식장은 처음이라 장례식장에 다녀온 뒤로도 한 1년간 교수님의 마음이 걱정될 정도였다. 그래도 그 힘든 자리에 함께 있어드렸다는 것이 조금이나마 위안이 되었다.
대학원을 졸업하고, 또다른 교수님의 배우자가 소천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하루동안의 고민끝에 결국 가지 않았다. 졸업을 해서가 아니라, 그 교수님의 수업을 들어본적이 없기에 내가 조문을 가도 <누구인지> 알아보시리란 확신이 없었다. 나를 못알아볼꺼야, 라며 내가 핑계를 생각해냈을 수도 있다. 학교행사에서 두세번은 마주쳤고, 내가 먼저 1기 ***입니다, 인사하면 될일이니까. 당시엔 내가 조문하러 가는것이 '애매할 수 있다'라고 판단했던 일이, 시간이 지나도 마음에 남게 된것을 보면 잘못된 선택이지 않았을까, 싶다.
정신없이 바쁜 업무가 몰아치는 가운데 오늘 하루는 <생각하는 시간>을 가져야겠다고 생각하면서.
사실은 좋은 드라마 한편 <모자무싸>와 좋은 음악 <라흐마니노프>를 들으면서 또 좋은 책한권 <거인의 공부>를 읽으면서 내가 가지 않았던 두번의 최근 장례식이 이렇게 마음에 무겁게 남는 것을 보면,
장례식의 참석은 망자와 나의 관계가 아니라 망자를 보내며 슬픔에 빠진 상주와 나, 나에게 기꺼이 부고를 보내준 그들의 마음에 응해야 하는것이 아닐까 생각해보게되었다. 부고를 보내준 이가 망자와 혈연관계이냐, 인촌관계이냐 따질것이 아니라 부고를 보내준 이의 마음에 답을 하는게 맞지 않을까.
한편, 내게 직접 부고를 보낸것은 아니나 소식을 알았다면 그또한 가지않는것보다는 가는것이 언젠가 어느순간 그 기억을 떠올려도 마음이 편한 것 같다.
부고를 듣게 되면 슬픔의 감정이 들면서 가슴이 쿵하고 내려앉을 때와 슬픔도 있지만 그보다는 '도리'와 '체면', 그리고 '거리(바쁨)'가 먼저 계산되는 곳이 구분되는게 솔직한 심정이다. 그럼에도 안 가서 후회하는 것보다 가서 마음이 편한 쪽을 택하고, 물리적으로 도저히 갈 수 없거나 애매할 때는, 충분히 위로와 마음을 전하는 것이 좋겠다, 라고 결론을 지으려는데
조문을 가지 않고 위로의 마음을 전하는 방법이 쉽사리 떠오르지 않는 것을 보면 (대개 그런것들은 말뿐이라 진심이 있다면 가지않았을리가 없다고 생각하기에) 이 글을 정리하면서 <제니퍼씨에게 가장 맞는 장례식 예의>를 결정할수 있게 되었다.
어떤 방식으로든 소식을 들었다면 직접 찾아가서 위로를 전하는 것.
역시나 그게 제니퍼다운 선택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