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자무싸

모두가 자신의 무가치함과 싸우고 있다

by 책읽는 헤드헌터


박해영 작가, 는 진짜 너무하다. 너무도 대단하다.

<나의 아저씨>, <나의 해방일지>에 이어 전작에 상응하는 걸작을 4년만에 또 들고왔다. 와, 진짜!

진짜 남달라도 한참이나 남다르다. 즈음에 대세랄 수 있는 웹툰 원작도 아니고, 자극적인 소재도 아닌, 박해영 작가의 따뜻한 시선이 아름다운 대사로 한올한올 담긴 '정말 소중한 드라마'가 시작했다.


1회를 보면서 알수없는 감정이 몰아치다가, 2회차 40여분만에 화면을 잠시 스탑했다. 기어코 이 노트북을 켤 수 밖에 없었다. 오늘 이 감정을, 이 드라마에 대한 기록을 남기지 않고 잠 들수가 없었다.


친숙하지 않은 '고윤정'이라는 배우의 얼굴에 낯설었던 1회를 지나 겨우 2회차만에 고윤정 배우의 매력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얼굴이 어쩜 그렇게 '인간적'이지 않은지!)


배우 라인업은 말할 것도 없다.

이 드라마의 핵심이랄 수 있는 '영화인들의 모임인 8인회' 배역을 맡은 배우들 면면을 보자하면,


황동만 역의 구교환, 박영수 역의 전배수, 박경세 역의 오경세, 이준환 역의 심희섭, 고혜진 역의 강말금, 8인회는 아니지만 황동만 형으로 나오는 박해준 배우까지,


모두다 나무랄데 없는-사랑스럽기 그지얺는 제니퍼씨 최애 배우들로 이루어졌다.

(박경세의 모습에서 왜 자꾸 동백꽃 필무렵의 노규태씨가 보이는건지, 싸이코지만 괜찮아의 문상태가 보이기도 하고 ㅎㅎ 어쨌거나 반가워요. 오정세님. 남자사용설명서, 영화도 제가 얼마나 재미있게 봤다구요!)


그중에서도 1회에서 나의 마음 저 깊숙한 곳을 움직이게 한 장면은 황동만과 이준환이 투샷이었다.

구교환 배우와 심희섭 배우, 둘다에 대한 애정이 넘쳐나는 것은 차치하고서, 모두에게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는 황동만에게 그래도 준환이만은 친구로서, 대해주는 모습에 괜히 안심이 되고 마음한구석이 저며왔다. 그래, 모두가 손가락질하고 외면해도 한사람만 있으면 돼, 한사람만. 하면서 두사람이 등장하는 장면을 응원했다. 혹시라도 준환이가 변하지 않을까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어줍잖지만 심희섭 배우가 좋은 배우로 좋은 사람으로 잘 성장해주었으면 좋겠다. 이선균의 빈자리가 채워질 수 없겠지만 그래도 그런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배우가 되어주면 좋겠다. 저 배우를 어디서 보고 좋아하게 됐는지 기억은 가물가물하지만, 그를 응원하는 내 마음은 변함이 없다~)


동만이와 준환이


그렇게 잠시 드라마를 두고, 아직 해가 있을때 뚝방길을 걸었다.

1회에 나왔던 대사들을 들으면서.


집으로 돌아와 2회차를 보면서 이번에는 노트북을 켰다.

여주 은아의 대사를 기록하기 위해서.


영화사 <최필름> 소속 직원들 몇몇이 20년간 입봉못한 '황동만'의 뒷담화를 나누면서 '무능'하다고 말하는 가운데,


기획 PD 변은아가 그들을 향해 묻는다.

"무능이 뭔데요?"


효진이 답한다.

"요리사래, 그런데 요리 못해 교사래, 그런데 못 가르쳐 더 해야 돼?"


은아가 다시 답한다.


인간이래, 그런데 인간적이지 않아. 이게 최고 무능 아닌가?"




인간의 가치가 꼭 유능해야 함은 아니라는 걸 말해주는 질문이었고, 동시에 무능하다며 20년 지기 친구를 뒷담화하는 사람들의 인간적이지 않은 모습을 짚어주는 의도가 담긴 질문이었다.


2회가 21분 39초 남았다.

대사 하나하나 마음에 새기면서 아끼면서 보고 싶은 드라마를 오랜만에 발견해서 너무도 설레는 맘이다.

이제 겨우 2회인데, 이 드라마 대체 얼마나 더 많은것들을 보여줄건지!!


3회차도 기대해보겠습니다.




모자무싸 대사들

잘 나서 나를 증명할 수 없을 땐 망가져 나를 증명한다.

(좌절한 황동만이 자신의 상황을 자조하며 뱉는, 캐릭터를 관통하는 대사)


"내 인생이 왜 니 맘에 들어야 되는데요?"

(자신의 글을 무자비하게 까는 최대표를 향해 동만이 날린 대사)


"불안하지 않은 거. 그냥 불안하지만 않으면 돼, 난."

(진만(박해준)이 무엇을 원하냐고 물었을 때 동만(구교환)의 대답)


어려선 막막했는데

숨이 쉬어지지 않았는데 지금도 똑같이 그런데

그때랑 다른 감정이 하나 더있어요

그들의 나약함을 목도한 느낌. 그래서 싸워볼만 하다는 느낌.

(출근하는 은아의 독백)



저 용접 일 없을때 대관령에 배추 뽑으러 가고, 한 달에 삼사일 쉬면서 열심히 살고 있습니다.

고모부님이 부지런해서 부자 된 거 아니듯이, 저희 형제가 게을러서 가난한 거 아니란 말씀입니다. 그냥 운이 좋았다고 인정하십시오.

저희 아버지처럼 욕심 없는 남자를 매형으로 둬서 황씨 집안 돈 아도칠수 있었다는 걸 천운으로 아시고, 저 역시 아버님 뜻을 받들어 유류분을 주장하는 진흙탕 싸움을 하지 않았다는, 그래서 항상 고모부님보다 도덕적 우위에 있다는 자부심으로 살고 있다는 것만 알아두십시오.

난 도덕적 우위에 있다는 자부심이라도 있지, 동만이는 쟤는 그냥 착해서 형이 하자는 대로 했던 놈입니다. 자존심 센 조카와 착한 조카 덕분에 지금 그 재산 챙겼다는 말씀입니다. 당신이 부지런하고 성실해서가 아니고. 앞으로 할아버지 할머니 제사에 오지 마세요.

(할아버지 할머니 제사를 위해 절에서 만난 고모부의 불순한 태도에 빡친 황진만이 고모부에 일갈했던 대사. 어찌나 통괘했던지! 욕설하지 않고 소주병을 깨지않으면서도 고모부라는 작자를 부끄럽게 만들었던 황진만 대사가 너무 좋아서 받아적어두었다 언젠가 이 구조로 써먹어야지 하면서)


인간을 귀천으로 나눠서 잘 나가고 빛난 것들만 옆에 두고 나같이 못난 것들은 무슨 전염병 환자보듯이 깨름칙해하면서 치워두고 싶어 하시는거 같은데

빛나는 것들끼리 빛나는 세상 만들어봐라, 하나도 안 빛나.


수많은 살인사건이 왜 일어나는지 아나? 무시, 개무시.

그날 너는 내가 성인군자라 안 죽은거야.

내가 뒷담화 졸라 잘 까거든?근데 절대로 사람 면전에 대놓고는 안해. 왜? 그게 예의니까.

근데 너보고 알았다. 아 이바닥은 면전에 대놓고 얘기하는 게 무슨 파워인줄 아는구나. 쓰레기한테 쓰레기라고 이야기하는게 무슨 지만 아는 대단한 혜안인 줄 아는구나. 싸가지 없는게 파워인줄 아는구나.

최동현 면전에 날리는 오늘의 말씀. 이 바닥에 어른인 척 굴지마,

아무도 너를 어른으로 안세웠어.

그리고 기대해라. 내가 이제 어마어마해질 거거든.

어마어마하게 더더더 무가치해질거고 더더더더 쓰잘데기 없어질거고 그래서 니들 더더더더 빡치게 할 거거든? 기대해라, 아마 백기 들거다. 그리고 난! 내 무가치함의 끝에서 빛나는 진실을 건져올릴꺼야. 나의 빛나는 스토리를 기대해라, 어디한번 막아봐라 막아지나!


"내말도 들어야지" 하고 최대표가 말하자

"됐어 나 바빠!" 하고 나가는 동만!!!

(자신의 시나리오를 무자비하게 깐 최대표에게 찾아가서 동만이 한 대사)


당신은 몇개 찍었고 황동만은 못찍었고 그차이 밖에는 없어.

황동민이 영원히 못찍으라 법이 있냐? 내가 데뷔시키면 어쩔래?

심보를 좀 곱게 쓰세요 박경세 감독님. 지금까지 데뷔못했으면 당신이라고 뭐 달랐을거 같애?

점잖게 실패 떠안고 조용히 살았을거 같애? 천만에. 황동만보다 더 지랄발광했지

그런인간이라는걸 알았기 때문에 내가 죽기 살기로 당신 데뷔시킨거야 당신 밑바닥 안볼라고.

황동만하고 다른 인간이고 싶으면 다른 인간이라는 걸 좀 보여줘

똑같은 인간이니까 길길이 날뛰는거 아니야? 황동만이 봉준호 감독한테 그런다고 당신처럼 그렇게 길길이 날뛰었을거 같애? 그냥 웃고 넘어가지. 차원이 다른 인간이라는 건 본인스스로 보여주는 수밖에 없어. 다르다로 다르다고 징징거리면서 지랄발광할게 아니고.

(박경세 감독의 아내이자 고박필름 대표 고혜진이, 황동만이 어찌감히 자기랑 같은급처럼 구냐며 씩씩거리는 남편 박경세감독에게 한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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