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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읽는 헤드헌터 Jun 06. 2020

교회

제니퍼 북리뷰 (하나님의 계획)


  

남포교회 박영선 목사의 믿음, 성화, 교회 3편을 읽고 정리한 기록입니다.



제 3권, 교회 


나를 깨우치시는 부르심


내가 정당한 십일조를 내고 하나님 앞에 시간을 바칠 수 있는 사람이며 그렇게 살고 있는가를 확인해 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교회 안에 여러가지 문제가 있게 하시고 일거리를 주시는 것입니다. 이런 것은 여러분이 잘하려는 것 이상으로 여러분 자신이 누구인가를 알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교회로 부르심

우리는 자꾸 큰 일을 하려고 합니다. 위대한 일을 하려고 하고 남이 못하는 일을 해야 한다고 하는데, 성경은 그런 것을 요구하지 않습니다. 이 부분에 대한 우리의 이해가 필요합니다. 함께 자라나는 일을 위하여 성경은 교회 안에 두가지 특별한 선물을 주셨다고 말합니다. 직분과 은사입니다.


교회론을 설명하기에 제일 좋은 것은 부부 관계입니다. 

부부는 사랑해서 만나고 정말 감격적으로 서로 결합합니다. 


그리고 곧 속았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왜 그렇습니까? 서로 이 사람하고 살면 행복하리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살아보니까 상대방이 내 짐을 들어주는 것이 아니라 짐을 지라고 가져옵니다. 그 여러가지 짐 중에 가장 큰 짐은 고집과 고집의 충돌입니다. (중략) 결혼은 성경적으로 볼때 하나님이 묶어주시는 것입니다. 부부는 아무나 되는 것이 아닙니다. 부부란 사랑이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허락해야 되는 것입니다. 부부는 내가 사랑한 것 이상으로 하나님이 허락한 짝입니다. 부부된 관계의 본질은 신앙적 책임입니다. 싫다고 해서 놓아버릴 수 없습니다. (중략) 난 속았어, 안살아. 이런 말을 하면 안됩니다. 대신에 "난 섭섭해, 난 슬퍼, 그러면 난 어떻게 해"라고 말해야 합니다. (중략) 그리스도의 몸으로 지체로 부속으로 존재합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만나는 자는 또 다른 부속이고 또 다른 작은 자인 것입니다. 여러분이 만나는 일들은 언제나 작은 일들입니다. 여러분이 전 우주와 전 역사를 흔드는 것이 아니라 그분의 소길 아래 사용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작은 자요, 여러분이 하는 일은 작은 일입니다. (중략) 우리가 하는 일은 세상의 눈으로 볼 때는 언제나 작은 일입니다. 하지만 그것이 얼마나 큰 일인지 아셔야 합니다.




하나님의 전

여러분! 절대 기독교 진리를 설명해서 믿게 하려고 하지 마십시오.


저는 기독교가 정치적 사회적 세력이 되는 것을 원치 않습니다. 기독교는 세상의 소금이 되고 빛이 되어야 하지 세상에서 총이 되고 칼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중략) 우리는 힘으로 기독교를 전하지 않습니다.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열심히 사는 것은 우리의 책임입니다. 욕심이 아닙니다. (중략) 세상에서 남보다 우월하다는 것을 증명하고 세상에 있는 것으로 자기만족을 채우기 위하여 욕심내고 있습니까? 그런 것과 세상에서 성실하고 책임 있게 사는 것과는 이야기가 다릅니다, 기독교는 책임있는 삶을 요구합니다.



하나님 앞에 헌신하고 봉사하는 것이 그가 가는 길이나 주변 상황이 만사형통하는 축복으로 나타나지 않을 수도 있다는 말입니다. 예수 잘 믿으면 건강하고, 예수 잘 믿으며 복을 받으며, 예수 잘 믿으면 뭐든지 잘 된다는 식의 생각은 사실 기독교적이 아닙니다.



우리는 가난한 자를 돌아보아야 합니다 억눌린 자를 돌아보아야 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우리가 의롭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그를 억누르고 고통스럽게 한 자를 심판하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불쌍한 자를 불쌍히 여길뿐입니다. (중략) 성전을 지어서 하나님을 섬겼더니, 뜨거운 햇볕이 쪼이는 날 성전 옆 그늘에 거지들이 앉아서 피서를 하더라, 그런 부수적인 열매가 구제요 전도인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몸으로 연합

부부는 하나입니다. 적극적으로 남편은 아내가 좋아하는 것을 해야하고 아내는 남편이 좋아하는 것을 따라야 합니다. 이것이 부부입니다. 왜냐하면 한몸이기 때문입니다. 자기 눈에 고춧가루를 넣을 사람은 없습니다. 눈이 싫어할  뿐 아니라 결국은 손해이기 때문입니다.


불신자의 삶을 자세히 보면 일관성이 없습니다. 어두움 속에서는 일관된 길을 걸을 수 없고 목표를 설정할 수 없습니다. 그것이 불신자의 삶입니다.



교회의 본질과 말씀

목사에게 좋은 말을 하거나 선물하고 교회에서 하는일에 헌금을 잘 내는 것으로 점수를 받는 것이 아닙니다. 거룩해지셔야 합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의 마음에 동참해서 나오는 결과가 전도가 되어야 하지 전도가 유일한 신앙행위여서는 안됩니다.



함께하는 교회


인간이 갖는 죄성의 보편성, 공통되는 본능은 인간끼리 자꾸 경쟁하고 분리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신자는 함께 지어져 간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장로교는 일반 성도들이 대표자를 뽑아서 당회를 구성해 교회에 온 성도들의 뜻과 의견이 반영되도록 하는 정치제제를 가집니다. 침례교는 대표자를 뽑지 않고 모든 성도들이 다 함께 참여하는 시민 정치 바로 옛날 그리스도에 있었던 폴리스 정치 같은 것을 하는 곳입니다. 어느 것이 더 낫다고 이야기할 수가 없습니다 운영을 잘 하느냐 못하느냐 문제일뿐입니다.




신자의 정체성

신자가 가져야 하는 정체성, 교회가 가져야 하는 참다운 정체성을 추구하는 것보다는 자기 실현에 이기적인 욕심을 채우는 것에 신자들의 요구에 교회가 온통 굴복해 버린 것 같습니다. 악순환입니다. (중략)우리의 욕심이 개인적인 것이 아니라 신앙적인 열심인 것처럼 치장해서는 안됩니다.


신자에게는 근본적인 비극이나 절망이 업습니다. 신자에게 일어난 모든 일은 자신에게 유익하며, 결과적으로는 감사와 찬송으로 끝나는 영광만이 있을 뿐입니다.


우리는 하나입니다. 이것이 신자와 교회의 정체성입니다. 모든 훈련과 열심을 성경 쪽으로 방향 전환하셔야 합니다.


베푸신 능력: 교회

저는 저희 성가대에 머리 하얀 분들이 많이 앉기를 소원합니다. 음악성보다 영성이 더 있기를 강조합니다.


예수님을 능력의 창고로 생각하지 마십시오.



우리가 해야 하는 것은 나는 실패자지만 주님은 실패하지 않으신다 나는 못나고 연약하지만 주님은 그렇지 않으시다. 내가 하는 것이 아니라 주께서 하신다는 이것을 알고 행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나의 연약함과 미련함이 나를 좌우할 수 없는 운명과 생명이 보장된 상황 속에 있다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누리고 확인하면서 배짱을 부리는 것이 신앙입니다.



훈련: 하나님

가장 수치스럽고 가장 처절한 자리에 있다 해도 우리에게는 아직도 소망이 있고 찬송이 남아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시편 기자는 의인은 엎드러져도 아주 넘어지지 않는다는 고백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중략) 우리는 부족하기 때문에 모이다 보면 본의 아니게 서로에게 상처를 줄 수 있습니다. (중략) 하나님의 깊은 간섭 속에서 더 깊은 것 더 놀라운 것 더 비밀스러운 것으로 인도함을 받게 됩니다, 이것이 우리의 자랑이며 믿음이 되는 것입니다.



훈련의 방향

하나님은 우리 중에 실력 있는 자를 동원하지 않으시고, 훈련시켜야겠다고 생각하신 사람을 그 자리에 앉히십니다. (중략) "면도날로는 통나부를 베지 못한다" 예리하고 철저하게 하려 들면 큰일을 못해낸다는 충고였습니다. (중략) 하나님은 답답한 사람을 사용하셔서 남은 사람들에게 관용과 자비 인내로 훈련하고 계신다는 사실을 잊지 마셔야 합니다.


미국에 제리 포웰이라는 유명한 목사가 있습니다 낙태금지운동같은 도덕운동을 일으키고 있는 사람입니다 가두 시위도 하고 그럽니다 그러나 이 일은 사회운동가들이 할 일이고 윤리와 도덕적 차원에서 할일이빈다. 교회는 그런 데에 동원되어서는 안됩니다.


다른싸움

우리는 열심히 일해야 합니다. 그러나 열심과 헌신으로 자기를 증명하려고 하거나 게으른 사람을 정죄하려 한다면, 하지 마십시오. (중략) "형제와 싸우면서 40일 금식기도하는 것보다는 금식기도하지말고 형제와 화목하라"



여러분이 보이는 태도나 일이 누군가를 정죄하기 위해서 하는 것이냐 아니냐를 늘 점검하십시오. 내가 한 일로 인해 용서받고 누군가의 허물이 덮어지고 남이 드러나는지를 보십시오.




직분

성직권을 강조하는데가 천주교, 감리교, 성공회, 장로교 순입니다. 그리고 조직을 조금 반대하는 쪽이 침례교입니다. 침례교는 원칙적으로 목사 하나밖에 인정하지 않는 편입니다.


보통 신앙 면에서 문제가 생긴 사람들 중에 게을러서 문제 생긴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꼭 열심을 내서 탈이 납니다. 물론 열심을 내지 말라는 것은 아닙니다. 열심을 낼 때 조심해야 된다는 말입니다. (아멘)(중략) "나는 구역장을 오래했다" 그것은 큰 경력이 됩니다. 그런 면에서 볼때에는 어려서부터 교회에서 자란 사람이 아무래도 앞섭니다. 그것을 절대로 과소평가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사람에게 보이려고 그들 앞에서 너희 의를 행하지 않도록 주의하라. 그러하지 아니하면 하늘에 꼐신 너희 아버지께 상을 받지 못하느니라 마6:1



말씀을 맡은 자


사도바울은 말재주로 설득하지 않으며 그 내용의 합리성이나 논리성 같은 것으로 상대방을 납득시키지 않습니다 성령이 저들의 마음을 움직여야 한다는 것을 압니다.



목자와 양

부모를 결정하거나 시대를 결정한 적이 있습니까? 참 뜻밖입니다, 친구를 결정한 것 같죠? 여러분들에게 보내 주신 사람 중에 여러분이 고른 것 뿐입니다. 부부는 안 그런 것 같습니까? 부부도 하나님이 제시해 준 사람들 중에서 여러분이 골랐다고 생각하지만, 하나님이 그 사람과 결혼시키기 위해서 나머지는 들러리로 세운 것입니다. 자기가 만나는 사람 주에 제일 괜찮은 사람을 고른것 같아도 하나님은 처음부터 그 사람을 보내려고 나머지를 들러리로 세우고 그 사람을 두드러지게 했을 뿐입니다.



한 사람을 사귀더라도 그의 한가지 약점을 보지말고 장점을 보아야 합니다.


열가지 약점은 당연한 겁니다. (중략) 누가 그것을 들추라고 했습니까? 


감추어진 것을 일부러 들추지 마세요. 할줄 아는 것을 격려해서 모든 열심과 시간을 내게 하며 하나 되게 해야 하니다. 우리에게는 병이 있습니다. 완벽하려는 병 비평하려는 병 잘못한 것 하나를 끄집어내여 쾌감에 사로잡히는 병 등입니다. 이런 병 때문에 사람이 얼마나 악하고 약한지 모릅니다. 잘한 것에 대해서 대단하다고 여기며 격려해주지 못하고 있습니다. 또 자기 자신도 그런 격려를 받을 때 제대로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우리는 위로해야 하며 위로 받을 줄도 알아야겠습니다.



성찬

한국 교회의 문제는 열심과 감동은 있는데 내용이 없다는 것입니다. (중략) 나설때가 아니면 가만히 있어야 합니다. 가장 중요한 역할은 나서지 않는 역할인 것입니다. (중략) 우리는 얼마나 경쟁적입니까? 하나님이 나만은 특별 대접해 주실 것 같은 욕심을 냅니다. 그런 이유로 우리는 숨어 있지 못합니다. 당신보다는 내가 낫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하여 발버둥치고 그러기 위해 너무나 많은 사람을 해칩니다. 성경은 언제나 우리에게 짓밟히라, 양보하라. 져주어라 그리고 묻혀 있으라고 합니다. 그렇게 살아갑시다. 왜냐하면 그것이 성경이 가르치고 하나님이 기뻐하는 신자이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중략) 헌금하는 신자도 있고 봉사하는 신자도 있지만 성품이 주를 닮은 신자는 없습니다. 그 사람을 만나면 마음이 편안한 그 사람을 만나면 짐이 가벼워지는 신자가 귀합니다. 자기의 짐을 묵묵히 지고 옆사람이 짐 때문에 끙끙거릴 때 짐 한 귀퉁이를 슬쩍 들어주는 사람이 너무나 없습니다. (중략) 다른 일을 한 것으로 핑계 대지 마십시오. 다 소용없습니다. 내가 무엇을 했고 얼마를 바쳤을지라도 신자다운 성품과 인내 겸손 충성이 없다면 헛된 것입니다.




공정성과 투명성


우리는 가끔속아서 어떤 기부금이나 헌금을 낼 수도 있습니다. 그때 절대로 억울해하지 마십시오 우리는 그것을 하나님 앞에 낸 것입니다. 그것으로 사기를 친 사람이 손해본 것이지 하나님이 손해를 보거나 우리가 낸 헌금이 헛되게 쓰인 것은 아닙니다.



민주주의는 발전할 수 없는 근본적인 약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은 다수의 의견으로 결론을 낸다는 점입니다. 모두가 합의한 것은 언제나 질이 낮습니다.



우리가 어떤 일을 맡아 관리하는 책임을 맡았다는 것은 우리들이 책임있는 신분이면서도 모든 성도들이 아무때나 와서 나에게 묻고 시비 걸 수 있도록 문을 열어 놓는 그러한 마음자세를 가지고 일하는 것을 말합니다.



권징

너희가 제단의 제물을 두고라도 형제에게 원망받을 만한 일이 생각나거든 제단에 제물을 놔둔채로 가서 먼저 사과하고 화해하고 와서 제사를 지내라.


만일 여러분이 말할 때 상대방이 형제같이 느낄지, 원수같이 느낄지 자신없다면 하지 마십시오 그게 최선의 방법입니다. 보통은 상대방을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참다 못해서 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중략) 침묵은 금입니다. 그러나 헌신과 사랑은 다이아몬드입니다. (중략)베드로는 닭이 세번 울기 전에 부인한 사람이지만 제자 중제일 나은 사람입니다. 그는 거기까지라도 쫓아간 사람입니다. 나머지는 그 전에 도망갔기 때문에 베드로만 지목 받은 것입니다. 왜 베드로가 욕을 먹어야 합니까? 남은 열명이 욕을 먹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현재의 실수를 밑거름으로 삼아서 언젠가 회개의 기회를 주시고 그 회개 과정을 통해 더 멋진 자리로 인도해 주실 것임을 믿으십시오. 그 일을 위해 나에게 직분을 맡기셨고 오해를 뒤집어썼고 이런일을 통해서 나도 성장할 것을 믿으십시오. 이것이 성경이 말하는 우리 안에 일어나는 문제를 푸는 두가지 시각의 가장 중요한 공통 원리 입니다. (중략) 교회를 키우는 것이 아니라 교회 안에 있는 사람을 키워야 합니다.



사랑은 오래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시기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무례히 행하지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며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니리 고전 13:1-7



조급하게 생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또한 상대방의 잘못을 지적하고 심판하는 일에 앞장서지 마십시오. 사랑으로 대하고 그들이 완성될 것을 믿으라는 것입니다. (중략) 짐을 없애고 고통을 없애 달라는 기도가 아니라 우리가 거룩해지도록 하나님께서 준비하신 그 짐을 달게 받겠다는 기도를 해야 됩니다.



교회의 싸움

틀린 사람들이 큰소리는 곳이 교회고 옳은 사람이 묵묵히 돌을 맞고 돌아가는데가 아름다운 교회요 성경이 요구하는 교회의 모델입니다 (중략) 신앙의 핵심은 같이 가는 것입니다. 


여러분을 괴롭히고 여러분을 붙잡고 늘어지는 사람들과 함께 하나님 앞, 그 은혜의 자리. 그 영광의 자리에 같이 가기 위하여 여러분은 애끓는마음으로 가장 사랑하는 사람을 위하여 기도하듯이 해야 되는 것입니다. (중략) 싸움의 이유는 네가 틀리고 내가 옳았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내가 옳았다고 하는 것은 틀린 것이니다. 차원높은 신앙은 어떤 것이니까? 


그를 위하여 기도하는 것입니다. 져 주는 것입니다. (중략) 자기가 아무이야기도 할 자격이 없는 때가 있습니다, 그때는 완전히 지나가는 사람처럼 계시는 것입니다,. 왜 항상 발언을 해야되며 언제나 나서야 합니까? (중략) 누군가를 민망하게 하지 마십시오. 집에 가서 열심히 기도하는 것입니다. 주여, 저도 옛날에 그랬습니다 주의 뜻을 모를때 저도 그랬습니다. 다른 방법으로 고칠 수 가 없습니다. 


주께서 은혜를 베푸셔야 되고 주께서 저를 이자리에 오게 한 것 같이 잘 넘어오게 해주시옵소서. 


제가 앞선 사람에게 은혜를 입어 믿음의 선배들이 저를 용납했듯이 이제 제가 이 일을 갚게 해주십시오. 


그렇게 기도하십시오. (중략) 주변을 둘러보십시오, 기도해 주어야 할 사람이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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