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이 체질
소설가 박민규/ 평론가 함돈균, 2015년 4월 23일, 노무현 시민학교
국가가 국민을 구조하지 않은 사건으로부터 1년. 이제 세월호는 시대적 화두이며, 역사적인 사건이 되었다. 우리의 미래를 보려면 일본을 보라는 말이있다. 달관세대? 우리는 세월호로 인해 갈림길에 서 있다. 세월호 세대가 역사를 바꿀 수 있다 (박민규)
함돈균> 많은 것들이 왜곡되고 있다. 착란현상도 심해지고. 이 책을 읽으면서 작가들의 정확한 문장 속에서 기억의 착란이 교정되고, 명확하게 바로잡아주는 것 같아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소설가라기보다는 기자의 글처럼 느껴진다. 세월호 사건에 대해 이렇게 글을 쓴 동기나 이유가 있는가?
박민규> 작가는 이야기에 예민하다. 처음 느낀 건 이야기가 안 된다는 것이었다. 세월호 글을 청탁 받고 이렇게 밖에 쓸 수 없었다. 왜냐면 제 자신이 언론을 믿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하나하나 찾아봐야했다.
함돈균> 문학인의 입장으로 세월호가 차지하는 의미는 무엇인가? 여당은 사고로 둔갑하기 위해 노력했는데 야당은 사건이 사고로 둔갑해도 반응이 없다.
박민규> 진상규명이라는 단어가 화인처럼 찍힌 게 두번째다. 나는 87학번이다. 80년 광주. 봄. 모두에게 낙인이 되었다. 2014년 팽목항. 더 강렬하다. 고등하교 아들이 있기 때문인 것 같다. 5.18발포명령자는 결국 역사적으로 밝히지 못했다. 시간이 지나도 진실은 밝혀지지 않는다. 펜이 칼보다 강하다는 말 믿지 않는다. 다만 펜은 약하지만 펜이 남긴 기록은 그 어떤 칼이 남긴 흔적보다 오래 남는다. 많은 작가들이 이 사건을 기록할거라고 믿는다. 세월호 사건에 대해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교통사고라고 생각하고 있다.
5.18광주와 세월호가 다른 부분이 있다. 5.18을 국가가 국민에게 해서는 안될 짓을 한 것이라면, 세월호는 (지금까지의 발표를 토대로 말하자면) 국가가 반드시 했었어야 할 일을 하지 않은 것이다. 국가가 의무를 다하지 않은 것이 어떠한 결과를 초래할지는 미리 알 수 없다. 예를 들어 2014년, 게임중독된 여인이 신생아를 방치하여 결국 아이를 굶어 죽게한 사건이 있었다. 신생아가 죽지 않았다면 부모가 의무를 다하지 못한 것이 드러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결과가 죽음이었다. 국가가 국민을 구조하지 않은 것, 의무를 다하지 않은 결과가 죽음이라면 그것은 범죄다. 마땅히 해야 할 의무를 방기하는 것은 범죄인 것이다.
보수매체를 통해 정보를 얻는 이들과 더 많이 대화하는 편이다. 국가가 하려고 했는데 못할 수도 있냐고 물어보는 사람이 있다. 선진국을 보라고. 911테러후 다들 국론을 모으고 슬기롭게 극복하지 않았냐고. 독일항공기 알프스 추락으로 전원 사망해도 다들 잘 추스르지 않느냐고. 우리만 왜 유난을 떠느냐고한다. 나는 우리가 모르는 것들이 많다고 생각한다. 911 테러 당시 순직한 소방관수가 344명이다. 독일 항공기 사고 발생 후 독일 수상이 7시간 뒤 회의하면서 ‘알프스에 비행기가 추락했다는데 그렇게 찾기가 힘드나요? 따위의 말을 수상이 했을 리 없다. 교신, 누락기간, 편집이 있을 리 없다. 왜? 사고니까. 거기에 도대체 왜 누락되고 편집된 부분이 있어야 하며, 유가족 시위가 필요하겠나. 내 가족이 어떻게 죽었는지 그들은 진실을 알았다. 비극이지만 애도하고 추모할 수 있게 됐다.
함돈균> 현실이 더 황당할 때 소설은 어떻게 쓰나?
박민규> 소설은 허구다. 일종의 허구. 그러나 애초부터 현실과 허구 내지는 환상이 다르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애가 특목고 가면 행복할 거라는 사람이 있다. 이게 현실일지..(좌중웃음). 자신은 예수를 믿기에 천국간다고 한다. 이게 현실일까? (좌중웃음) 나는 현실과 환상, 비현실이 실은 같은 몸이라 생각한다. 조각에는 양각과 음각이 있다. 덩어리자체가 표현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양각, 사람이 있는 부분을 깎아내고 테두리를 남기는 것이 음각이다. 진상을 규명하지 않은 정부의 태도, 세월호 사건은 음각이다. 비어있다. 그래서 음모론도 많다. 진상규명되면 끝나는 일이다. 애도하고 끝난다. 작가는 음모론을 지지할 수 없다. 그런데 여기까지 1년을 끌고 온 이유?
기자가 짚었어야 할 것들에 대해 소설가가 말하다
박민규> 세월호가 여기까지 온 이유는 국정조사 때 조사를 받지 않겠다고 한 두 기관 때문이다. 국정원과 청와대. 최초 보고를 받은 곳이다. 그 두 기관은 자료를 제출했어야 했다. 정치적인 문제가 아니다. 정부가 주장하는 단순 해상교통사고라도 해도 행정관련 문제다. 그때 대통령에게 책임을 물은 것은 정치적 수반으로서가 아닌 행정 수반으로서다. 청와대, 국정원, 국방부는 행정기관으로 마땅히 조사를 받아야 한다. 가장 화가 났던 것은 청와대가 재난 컨트롤 타워가 아니라는 말이었다. 청와대가 재난 컨트롤 타워가 아니라는 말을 해서는 안 된다. 아니, 청와대가 재난 컨트롤타워가 아니어도 좋다. 그렇다면 재난컨트롤타워는 어디다, 라고 그 어디가 어디인지를 밝혀야 한다. 유가족이 서울로 온 이유다. 행정직책이 책임지지 않고 정치적으로만 대하고 있지 않은가. 하다못해 동사무소 행정에도 공터가 없다. 서류 하나하나 다 갖춰야 한다. 행정책임, 절차라는 것은 어디로 사라졌나? 왜 언론은 이런 걸 지적 안 하나? 행정적 재난 컨트롤 타워가 있을 것 아닌가? 많은 수 국민이 수장된 이 책임을 아무도 안 진다. 그럼 재난 컨트롤 타워는 어디냐고 묻고 싶다. 그곳이 안전행정부조직이 아니더라도, 청와대가 아니더라도, 책임지는 부서가 있어야 한다. 심지어 그 부서의 수장은 영전했다. 안전행정부 장관, 중대본 실장은 청와대 직속 안전으로 영전했다. 이런일 모두 우리가 처음 겪은 일 아니다. 천안함. 정부 발표대로 북한소행이라고 하자. 우리 장병들 목숨을 잃었다. 그렇다면 책임지는 사람이 있었나? 그들 모두 영전했다. 사고가 나면 전문가들이 머리를 맞대고 원인을 살핀다. 교통사고도 그런데, 세월호 사건은 그렇게 다루어지지 않는다. 청와대, 국정원, 국방부, 행정기관으로 마땅히 조사를 받아야 한다. 행정의 공터 공백에 책임을 져야 한다.
함돈균> 기억하라는 말이 많이 나온다. 기억을 어떻게 해야 하나? 너무 많이 하다 보니 이 말이 상투화 되어간다. 무감각해지고 있다.
박민규> 국가가 행한 일에 대한 보상과 배상에 대해 공부를 했다. 그리고 알게 됐다. 늘 있어 왔던 일. 특별히 정부가 세월호 유가족이 미워서가 아니라 일일이 열거할 수 없는 많은 일들이 있었다. 50년대 켈로부대. 다녀오면 굉장한 보상을 약속했지만 그분들 보상은커녕 유가족들에 대한 배상도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제는 말할 수 있다는 다큐를 보고 충격을 많이 받았다. 프란체스카 여사가 여자도 모집했더라. 국가가 공공연히. 세상에 이런 국가가 있나? 칼기 폭파사건 정부의 발표를 믿어보자. 그럼 이들에 대한 배상은? 보상은? 각자 찾아보시기 바란다. 천안함 선미 선수부분 금양호가 찾다가 침몰했다. 유가족에게 어떠한 배상을 했나? 현재 진행형이다. 한번 꼭 찾아보시기 바란다. 유튜브에 다 나온다. 씨랜드 사건도 마찬가지다. 한국현대사에 험난한 일들이 참 많았다. 진보도 간과한 사실이 있다. 경험이 전무하다는 것.
할 수 있는 일이 없다고 생각될 때 무력감을 느낀다. 무력하다고 느끼는 순간, 망각이 찾아온다. 나서서 싸우는 분들도 있지만 정말 중요한 것은 한사람 한사람 개인이 여론으로서 이 것을 기억해야 한다는 것. 느닷없는 세월호 인양은 정치적 대응이다. 여론에 반응한 것이다. 시민들이 결집하여 여론을 형성해야 한다.
제니퍼> 일단 꿈에도 그리던 작가를 직접 만나게 되어 영광이다. 전작을 다 읽었다. 집회에 관해 질문하고 싶었지만, 결국 중요한 것은 여론형성이다라고 하신 결론을 듣고 평소 궁금했던 사항을 여쭈어보고자 한다. 보수매체 글을 보고 그것이 사실인 양, 자기가 마치 다 아는양 취재기자보다 더 자세히 아는척하며 세월호 추모자들을 비난하거나, 폭도라는 말들로 유가족을 상처주는 젊은이들과는 어떻게 여론을 형성하면 좋을까? 입닫고 싶을때가 많은데. 전도만큼 여론형성은 어렵다. 방법이 있을까?
박민규> 모든 게 언론 탓이다. 원인은 언론이다. 나도 보수매체 통해 의견이 다른 분들을 만나 대화한다. 진보와 보수의 문제가 아니다. 종교의 문제다. 할아버지 아버지가 장로다, 괜히 기독교인들 오해하지 말고 들으시기 바란다. 누군가에게 반공은 종교다. 개인사도 얽혀 있고. 또 누군가에게 군부 독재를 이겨낸 민주화 과정도 종교였을 것이다. 어느 순간 모든 게 종교화된다. 보수의 끝도. 진보의 끝도. 종교에는 타협이 없다. 이것이 가장 큰 문제다. 토론이 불가능하다. 예수 믿어야 천당간다. 보수 찍어야 경제산다. 같은 말 같지 않나(좌중웃음) 지도자를 뽑을 때 메시아를 기다린다. 분명히 기적도 경험했다. 시간은 우리 편이다. 전도하는 심정으로 그들을 만나라(좌중웃음). 교리 질문도 하고. 일본을 따라 간다 우리나라는. 일본에 달관세대가 있다. 앞서 세월호를 역사적 사건이라고 한 이유는 우리가 달관세대로 가기 전 갈림길에 서게 해준 계기가 되어주었기 때문이다. 세월호세대가 이 사람들이 역사를 바꾸어 줄 것이다.
꿈에도 그리던 작가 박민규를 만났다. 그를 처음 만났던 기념비적인 책 <삼미슈퍼스타즈의 마지막팬클럽> 앞장에 사인도 받았다(사인 할 때 쓰시라고 펜도 빌려드렸다. 결국 돌려받지 못했지만 그 핑계로 소주 한 잔 사달라고 조르고싶다). 악수를 못하고 온 것이 영 아쉽지만 멋진 평론가 함돈균 님도 만나뵙고, "질문 주신 선생님 저도 예수믿습니다" 며 수줍게 명함을 내밀어 준 예장교회 목사님과도 기분좋게 인사를 나누었다. 박민규 작가의 글이 앞으로 더 재미있게 읽힐 것 같다. 촌철살인의 대가. 문장력뿐만 아니라 비록 말은 느릿느릿했지만 핵심하나하나를 꿰뚫는 내공과 식견에 감탄에 감탄을 거듭했다. 괴짜일거라고 생각했는데 두시간 반 짧게 뵌 분은, 다정했고, 따뜻했고, 꽤 명징했다. 다음에 또 뵐 수 있기를.
타서는 안 될 배였다.
일본에서 십팔 년이나 운항된 낡은 배였고 무분별한 규제 완화를 통해 수입된 선박이었다. 수리는 늘 땜빵으로 이뤄졌고 무리한 개조와 증축이 배의 무게중심을 높여놓았다. 더 많은 화물을 싣기 위해 배의 균형에 절대적 영향을 미치는 평형수가 상당량 빠져 있었다. 선장은 비정규직이었고 일등 항해사와 조기장은 출항 전날 채용된직원이었다. 선사 직원의 증언에 따르면 출항 직전 선박직 선원들이 출항을 거부하며 애걸복걸했다고 한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선장의 상태도 평소와 달리 불안해 보였다. 세월호는 국가보호장비로 지정된 배였고 국내 이천 톤급 이상 여객선을 통틀어 유일하게 유사시 국정원에 우선 보고를 해야하는 배였다. 안개가 많이 낀 밤이었다. 다른 여객선의 출항이 모두 취소된 상황에서 그날 밤 인천항을 출발한 배도 세월호가 유일했다. 다음날 배는 침몰했다. 예견된 사고였다고, 가라앉을 수밖에 없는 배였다고 모두가 말했지만
그런 배를 탔다는 이유로
죽어야 할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침몰해가는 배에서 제일 먼저 빠져나온 것은 선장과 선원들이었다. 해경 123정은 기울어가는 배 주위를 돌기만 하다가 딱 한 번 접안을 하고 그들을 옮겨태웠다. 승객들의 출입구가 있는 선미로는 가지 않았다. 옷을 갈아입어 몰랐다고는 했지만, 일반인의 출입이 원천적으로 통제된 선수 쪽 조타실이었다. 아니 그마저도 나중에 거짓임이 드러났다. 선원임을 알았고, 그들은 족집게처럼 476명이 타고 있는 배에서 선원들만 빼내왔다. 그리고 두 번 다시 접안하지 않았다. 승객들은, 또 아이들은 배 안에 갇혀 있었다. 가만히 있으라는 선장의 명령을 따랐기 때문이다. 승객들이 있다는 걸 뻔히 알면서도 선장과 선원들, 또 해경은 탈출하라는 말 한마디를 하지 않았다. 오로지 스스로의 힘으로 배를 빠져나온 승개들만이 가까스로 헬기와 보트에 오를 수 있었다. 엄밀히 말해 구조가 아닌 탈출이었다. 해경은 끝내 선내에 진입하지 않았다. 의자로 창문을 두드리는 아이들의 외침도 외면했다. 그리고 배는 물속으로 가라앉았다.
바다는 잔잔했다.
그래서 더, 잔혹했다.
보다 잔혹한 일은 그뒤에 일어났다. 배가 침몰한 상황에서, 일 분 일 초가 아쉬운 그 상황에서도 구조는 이뤄지지 않았다. 현장에 집결한 수백 명의 실종자 가족들이 애원하고 오열해도 해경은 구조를 하지 않았다. 아니, 하는 척만 했다. 항의하는 유가족들에게는 거짓말을 둘러댔다. 결코 사실이어선 안 될, 괴담이라 치부되던 소문들이 대부분 나중에 사실로 드러났다. 언론은 종일 가능성과 희망을 떠들었다. 에어포켓이며 골든타임, 정부가 구조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속보들이 매체를 장악했다. 전부 거짓말이었다. 구조대원 726명과 함정 261척, 항공기 35대가 집중 투입된 사상 최대 규모의 수색작전을 벌인다는 기사도 있었다. 사상 최대 규모의 거짓말이었다. 구조는 없었다. 아니, 한 걸음 더 나아가 현장을 통제한 해경은 적극적으로 골든타임의 구조를 가로막았다. 해군과 119구조단, 각지에서 모여든 민간잠수사들.... 어느 누구도 아이들을 살리기 위해 바다에 뛰어들 수 없었다. 심지어 해군참모총장이 두 번이나 명령을 내린 통영함도 현장에 투입되지 못했다. 이는 감히 해경이 저지할 사안이 아니었다. 구조을 전담한 것은 한 민간업체였다. 선사와 계약을 맺었으며 이런 일은 민간업체가 더 전문적이란 설명이 뒤따랐다. 그렇게 골든타임이 지나갔다. 그리고 더는, 누구도 구조될 가능성이 사라진 어느 날 (한 달 후) 논란이 불거지자 그 민간업체의 이사가 TV에 나와 말했다. 우리는 사실 구조업체가 아니라고, 우리는 인양을 하러 온 업체라고, 그가 말했다. 그럼 구조는 누가 맡은 거냐는 질문에
구조는 국가의 업무죠.
라는, 너무나 당연한 답을 우리에게 들려주었다. 그럼 여태 국가는 무얼 했단 말인가? 가라앉은 배보다 더 무거운 의혹이 우리를 짓눌렀다. 무엇 하나 이상하지 않은 게 없었다. AIS 항적이며, 교신 기록이며, CCTV며.... 아무튼 침몰한 배에 관련된 기록들은 없거나, 불분명하거나, 조작되거나, 공개되지 않았다. 도대체, 왜? 아무도 그 의문에 답하지 않았고 누구도 이 일을 이해할 수 없었다. 당연히 구조는 국가의 의무였으므로 국가에 대한 의혹의 꼬리에 꼬리를 물기 시작했다. 잔혹보다 끔찍한 의혹이었다. 악마를 보았다고 우리는 외쳤고 미안하다고, 잊지 않겠다고 울며 조문했다. 이것이 과연 나라인가? 기울어가는 배의 갑판에 모두가 서 있는 기분이었다. 일찌감치 제일 먼저 배를 빠져나간 것은 대통령과 청와대였다. 청와대는 재난 컨트롤타워가 아니다, 라는 말로 일찍 못을 박았고 이 말은 감사원의 입을 통해 또 국정조사에 임한 대통형 비서실장의 입을 통해 수차례 언급되었다. 아니, 그보다 청와대는 TV뉴스를 보고 사고소식을 처음 접했다고 했다. 안전행정부 상황실도 국정원도 YTN뉴스를 보고 사고를 알았다고 했다. 같은 시각 나는 세탁소에 맡긴 옷을 찾으러 갔다가 뉴스를 보았는데, 말인 즉슨 나와, 세탁소 김씨와, 김씨의 부인인 안씨와, 정부가 동급이라는 얘기였다. 국정원의 말은 거짓으로 드러났다.그리고 이것은 실은 매우 이상한 거짓말이다.
여론이 악화되자 대통령이 대국민 사과를 했다. 대통형은 모든 걸 바꾸겠다고 했고 이번 사고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 최종 책임은 대통령인 자신에게 있다고 했다. 그리고 마치 결백(청와대가 컨트롤타워가 아니었다는)이라도 증명하듯 최동 책임이 아닌 최우선 책임을 져야 할 해경을 해체했다.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의 독단적이고 강렬한 처벌이었다. 그리고 울었다. 막 울었다. 쉬운 일이 아니었을 테지만 6.4 지방선거를 앞둔 시점이었다. 어쨌거나 대통령이 사과를 한 이상 이 참혹한 사고의 진상이 곧 규명될 거라 막연히 생각했다. 선거에 출마한 여당 후보들의 외침도 한결같았다.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바꾸겠습니다. 한 번만 살려주십시오. 울먹이며 절을 했다.
전부 거짓말이었다.
참패를 예상했던 여당이 선거에서 기대 이상의 성적을 거두자 상황이 급변했다. '세월호 침몰사고 진상 규명을 위한' 국정조사가 시작되자 이를 가로막은 것은 정부였다. 국회의 거듭된 요구에도 청와대는 자료 제출을 거부했다. 청와대 담당자는 "자료 제출을 하지 말라는 지침을 받았다"고 했고, 지침을 내린 자가 누구인지도 끝내 밝히지 않았다. 조사를 하지 말라는 얘기였다. 청와대가 그러하니 다른 기관들의 자세도 성실할 리 없었다. 당신 누구야?, 여당 의원은 유가족에게 호통을 쳤고 조사는 무엇 하나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새로운 도대체, 왜? 가 성립되는 순간이었다. 구조에 최선을 타하겠다 해놓고 왜 구조를 하지 않았나? 란 질문에 진상규명에 최선을 다하겠다 해놓고 왜 이를 가로막나? 란 질문이 추가된 것이다. 몇 가지 성과가 있긴 했다. 이미 버린 몸(해체) 해경이 제출한 사고 당시 청와대와의 통화내역을 통해 당시의 정황을 알 수 있었고 어렵게 모셔온 비서실장의 입을 통해 사고가 있은 당일 대통령의 행적에 문제가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무엇보다 476명이 탄 선박이 침몰한 참사가 일어났는데 아무런 대책회의가 없었으며, 그 위중한 일곱 시간 동안 비서실장은 대통령이 어디 있었는지 "모른다"는 답변을 했다. 그날 국가는 없었다는 가설이 사실이 되는 순간이었다.
말 그대로 국정'조사'였으므로 국정조사는 그걸로 끝이 났다. 수사관과 기소권이 포함된 특별법이 그래서 화두가 되었다. 당신 누구야 소릴 들어가며 퇴장을 당해가며 유가족들이 알아낸 것은 구조를 하지 않은 정부가 그에 대한 진실을 밝힐 의지도 전혀 없다는 사실이었다. 무엇보다 이제 누구도 정부를 믿을 수 없었다. 수사권과 기소권에 대해 여당은 사법 체계의 근간을 흔드는 것이라며 예민하게 반응했다. 대한 변호사협회가 이는 사실이 아닌 근거없는 주장이며, 진실규명 및 재발방지를 위한 4.16 특별법을 제정하라고 촉구해도 꿈쩍하지 않았다. 한 여당 의원은 말했다. 유가족에게 수사권과 기소권을 준다는 것은 피해자에게 칼자루를 쥐어주는 것과 같다고, 나는 그에게 묻고 싶다. 그럼 가해자에게 칼자루를 쥐어줘야 하냐고.
공공의 적이 공공일 때
공공의 적인 공공에게 어떤 혐의가 있을 때
그 공공을 심판할 수 있는 건
누구냐고 묻고 싶다.
의혹을 만들고 키운 것은 정부였다. 그리고 갑자기 프레임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3족을 멸한다는 느낌으로 유병언 일가가 부각되었고 결국 유병언의 시신이 발견되었다. 유병언의 시신에 관해서는... 성인의 입장에서 달리 할 말이 없다. 아니, 애썼다는 말을 해주고 싶다 다만 나는 눈이 좀 쓰렸다. 눈이 부실 정도로 과도한 보도였기 때문이다. 제사상에 오른 되지머리를 보는 듯도 했고, 굿판이란 게 이런 건가 생각도 들었다. 실은 그럴 사안이 전혀 아니었다. 과도하고 불필요한 흐름은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농성중인 유가족들을 향한 공격이 여당 의원들의 입을 통해, 언론과 인터넷과 sns를 통해, 애국보수단체의 행동을 통해 쏟아지기 시작했다. 도대체, 왜? 이럴 사안도 전혀 아니었지만, 아무튼 이 불필요한 동작의 흐름을 모아보면 정부가 지향하는 바를 알 수 있었다.
세월호는 사고다.
즉 사고-보상 프레임이다. 이미 여러 의원들이 같은 맥락의 말을 이어왔고, 이 말은 또 여러 갈래의 뿌리를 내리고 또 내렸다. 누가 놀러가서 죽으라 했어요? 그만큼 했음 됐지. 왜 사고로 죽은 걸 가지고 정부를 물고 늘어지냐. 유가족이 벼슬이냐? 사고 원인은 죽은 유병언한테 물어봐라. 차 타고 가다 죽으면 대통령한테 가서 항의하냐? 세월호는 기본적으로 교통사고다. 아무튼 또... 기타 등등. 나는 문득 김보성을 떠올렸는데 이것이 논리라기보다는 의리라는 느낌이 들어서였다. 그렇다.
지금 누군가가
세월호가 으리으리한 사고로 정리되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
만약 이 나라가 침몰한다면
그 원인은 의리일 거라 나는 믿는다.
의리 아닌 의리로 유지되는 집단 두 개를 나는 알고 있다. 군대와 마피아다. 윤일병 사건과 세월호는 여러 가지 공통점이 있다. 우선 지도자(국방부장관)가 뉴스를 보고 사건을 알았다는 점, 유가족의 손으로 진실을 밝히지 않으면 그대로 묻혀 넘어간다는 점, 수십 년간 이런 일이 있어왔으나 어떤 적패도 실은 해소되지 않았다는 점, 관피아며 해피아, 이런 단어들이 비로소 수면에 떠올랐지만 나는 그 정점에 정권이 있다고 생각한다. 보수는 부패로 망하고 진보는 분열로 망한다는 말이 있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진보는 분열로 망해도 보수는 부패로 망하지 않는다. 분열엔 의리가 없지만 부패엔 의리가 있기 때문이다. 세월호는 사실 삼십 년 전 한 여가수의 노래 속에 처음으로 떠 있었다. <아, 대한민국>이란 노래였다. 하늘엔 조각구름 떠 있고, 강물에 떠 있던 그 유람선... 바로 유병언과 세모해운의 출발이었다. 그는 바로 정권과의 의리를 쌓아나갔다. 그 의리 때문에 오대양 사건의 진실은 밝혀지지 않았고 <아, 대한민국> 속에 떠 있던 그 유람선은 삼십 년 뒤 세월호가 되어 우리 앞에 나타났다. 여기서 아무도 지적 하지 않는 세월호의 키워드를 말해야겠다. 그것은 '민영화'다. 세월호에 조금 이라도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한국선급이며 이런저런 각종 조합들의 이름을 기사에서 본 기억이 있을 것이다. 이제 이것을 단순한 비리, 유착으로 보아서는 곤란하다. 예컨데 삼십 년 전 세모의 뒤를 봐주던 공무원이 진급을 하고 퇴직을 했다면 그는 순순히 그 권익을 손에서 놓고 싶었을까? 아니면 어떤 단체를 만들어 자신이 해왔던 정부의 역할을 민간이 대행하는, 그런 길을 걸었을까? 그럼 이런 예는 또 어떨까? 세월호를 검사했던 한국선급은 주로 퇴임한 해수부 관리들이 요직에 앉는 비영리단체인데, 경제활성화와는 매우 동떨어진 '비영리'라는 한계를 극복하고 지난해 박근혜 정부로부터 '대한민국 창조경제 대상'을 수상했다면... 어떨까? 실제로 한국선급은 대한민국 창조경제 대상을 수상했고, 이는 비단 해운업계의 일만은 아닐 것이다. 끊임없이 정부의 업무는 민영화되어가고 있다. 때로 정부의 형태를 빌려 민영화가 진행될 수도 있다. 예컨대 정권의 핵심이 어떤 정책을 세워 특정 기업이나 업종에 정부의 업무를 맡긴다면, 혹은 판다면... 또 예컨데 국정원과 같은 국가 주요기관이 어떤 특정 세력에 의해 실은 민영화된다면... 생각만 해도 끔찍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이제 다시 세월호는 사고다. 라는 명제로 돌아가보다. 자꾸 사고, 사고, 해서 하는 말인데 그렇다. 이제 겹쳐진 두 장의 필름을 분리할 때가 되었다. 세월호는 애초부터 사고와 사건이라는 두 개의 프레임이 겹쳐진 참사였다. 말인즉슨 세월호는 선박이 침몰한 '사고'이자 국가가 국민을 구조하지 않은 '사건'이다. 이제 이 두 장의 필름을 분리해야 한다. 겹쳐진 필름이 이대로 떡이 질 경우 우리는 이것을 하나의 프레임, 즉 '세월호 침몰 사고'로 기억할 위험이 크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언론이 아직도 이 타이틀을 쓰고 있다. 별다른 오류가 없어 보이지만 여기엔 누구도 의도하지 않은 함정이 있다. 명사는 모든 것을 아우른다. 그리고 인간의 무의식은 시간이 흐를수록 이를 '사고'로 인지하기 마련이다. 사소한 문제인 듯하나 이는 매우 중요한 사안이다.
사고와 사건은 다르다. 사전적 해석을 빌리자면 '사고'는 뜻밖에 일어난 불행한 일을 의미한다. 반면 '사건'은 사회적으로 문제를 일으키거나 주목받을 만한 뜻밖의 일을 의미하는데 거기엔 또 다음과 같은 해석이 뒤따른다. 주로 개인, 또는 단체의 의도하에 발생하는 일이며 범죄라든지 역사적인 일 등이 이에 속한다. 그렇다 그런 이유로 우리는 교통사고를 교통사건이라 부르지 않으며, 살인 사건을 살인사고라 부르지 않는 것이다. 그러므로 세월호 사고와 세월호 사건은 실은 전혀 별개의 사안이다. 나는 후자의 비중이 이루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훨씬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다시 한번 분명히 말한다 이것은
이것은
국가가
국민을
구조하지 않은
'사건'이다.
야당이 왜 '사건'이란 타이틀을 확보하지 않는지 나는 모르겠다. 거기에 비해 여당은 노력하고 있다. 필사적이다. AI가 퍼지는데 대통령이 모든 사람 동원해서 막아라 그럼 컨트롤타웝니까?(조원진) 세월호는 기본적으로 교통사고다(주호영)... 나는 이들이 학식이나 판단력이 모자라 저런 말을 한다고 생각지 않는다. 어떤 반응이 돌아올지 모르고 뱉는 말은 더더욱 아니다. 지금 저들은 '사고'란 타이틀을 확보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하고 있다. 사고, 사고, 사고란 단어가 거론될 때마다 겹쳐진 필름이 떡이 진다는 사실을 저들은 잘 알고 있다. 3족을 멸하듯이 유병언을 부각시킨 이유도 그 것이다. 부각이란 말에 거부감을 느낄 사람도 있겠으나 나는 '호위무사라'란 단어를 고딩 때 겨울날 무협지에서 읽은 후 이십칠 년 만에 조우했다. 경호원이나 보디가드란 단어를 기자들이 몰랐을 거라고는 더더욱 생각지 않는다. 유병언이 사고의 책임자지 국가가 국민을 구조하지 않은 사건의 책임자는 아니다. 사건의 책임자는 따로 있다. 유가족들이, 또 많은 국민이 진실을 밝히고자 하는 이유는 그 때문이다. 지금 그것을 정부가 가로막고 있다. 도대체, 왜? 나는 그 이유를 모르겠다.
아무 것도 밝혀지지 않았으므로 보편적이고 일반적인 얘기만 하려 한다. 사고와 사건의 관계에 관한 얘기이다. 우선 사고에는의도가 없다. 자연재해가 그러하며 인재의 경우에도 실수, 태만, 방심에 의해 비롯되는 것이지 의도한 바가 아니기 때문이다. 의도가 개입되는 순간 사고는 사건이 된다. 쉬운 예를 들어보자. 교통사고가 사건으로 발전하는 가장 흔한 예가 뺑소니다. 신고와 구호-수습의 '의무'를 져버린 데에는 분명한 '의도'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안보를 중시하고 애국의 길을 걷는 사람들은 알 것이다. 군대에서 탈영이 얼마나 중차대한 범죄임을. 특히 전쟁과 같은 유사시 탈영이 어떤 처벌을 받는가를.
왜?
국민이 국가를 지켜야 하는 의무를 져버렸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다.
국가가 국민을 지켜야 하는 의무를 져버렸을 때
국가는 어떤 처벌을 받아야 하는 걸까?
당신은 의무를 다해왔고
한 푼 빠짐없이 세금을 납부했다.
국가의 안녕을 위해 언제나 여당을 지지해왔다.
그런 당신이라면
한번쯤 깊이 생각해볼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안다. 대통령이 직접 TV에 나와 눈물을 흘렸다는 걸 안다.
탈영병들도 모두 눈물을 흘린다.
앞서 말한 '의도'라는 이 중요한 단어를 기억하자. 역시나 보편적이고 일반적인 얘기를 이어가기 위해서다. 이 의도가 있으므로 해서 사건에는 위장과 은폐, 의혹이 뒤따르기 마련이다. 『사건과 실화』라는 잡지는 창간될 수 있어도 『사고와 실화』라는 잡지는 창간될 수 없는 이유가 그 때문이다. 여기서 한 가지 짚고 넘어가자. 대상이 해경이든, 언론이건, 국정원이건, 청와대건... 어쨌거나 공공의 주체인 당신들에 하고 싶은 말이 있다. 당신들은 너무 많은 거짓말을 했다.
선박이 침몰한 그 순간부터 지금까지 정말 너무 많은 거짓말을 했다. 서슴없이 했다. 유가족들이 오열하는 앞에서도, 야 거짓말하지 말라고 씨발 년아 소릴 들어가면서도 (KBS <굿모닝 대한민국>),전 국민이 지켜보는 앞에서 국민을 상대로 거짓말을 했다. 다 바꾸겠다고 거짓말을 했고, 성역 없는 수사를 하겠다고 거짓말을 했다. 구조에 최선을 다한다는 거짓말을 했고 구조대원 726명과 함정 261척, 항공기 35대가 집중 투입된 사상 최대 규모의 수색전을 벌인다는(연합뉴스) 사상 최대 규모의 거짓말을 했다. 304명의 무고한 죽음 앞에서 그러니까 당신들은 이루 열가하기 힘든 많은 거짓말을 했다. 왜냐고는 묻지 않겠다. 더는 거짓말을 듣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거짓말은 의도에서 비롯된다. 아니, 거짓말은 그 자체가 의도이고 사건이다. 인류, 역사를 통틀어 이토록 많은 거짓말이 필요했던 사고 수습은 없었다. 당신들은 어떤 의혹을 받아도 싸다. 역사나 보편적이고 일반적인 얘기로 못을 박자면 사고로 위장된 사건은 있어도 사건으로 위장된 사고는 존재하지 않는다.
물론 예외는 있다. 예컨데 그런 일이 없었는데, 정부가 전 언론을 동원, 자국의 군함이 적국의 어뢰를 맞았다고 주장하는 경우가 그런 경우이다. 아, 뜨끔하거나 오해하지 말기 바란다. 1964년에 있었던 미국의 통킹만 사건을 말하는 것이니까(훗날 베트남전의 빌미를 얻기 위한 자작극으로 밝혀졌다). 이런 개쓰레기 같은 조작은 인류사를 통틀어 극히 드문 일이고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일반적인 범주에서 사고와 사건의 관계이다. 실은 정부를 위해서 하는 말이다. 내가 볼 때 진실을 밝혀야 할 입장에 선 것은 유가족들이 아니라 당신들이다. 이 참사가 사고로 위장된 사건이 아니라면 말이다.
가라앉은 세월호 속에서 한 대의 노트북이 건져졌고, 거기서 또 국정원의 이름이 적힌 파일이 나왔다. 세월호의 실소유주가 국정원이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고 곧바로 국정원이 이에 답했다. 아니었다. 이미 사망했다는 국정원이 말한 파일의 작성자는 문서가 작성된 이후 입사한 선원이었다. 당신들은 이미 지난 대선 때 댓글 공작을 통해 선거에 개입했으며 이 와중에 군 사이버 사령부의 선거 개입 역시 사실로 밝혀졌다. 서울시 공무원 간첩조작 사건으로 국정원장이 사과를 한 것은 세월호 참사가 나기 불과 하루 전이었다. 사건 초기 참사가 난 사실을 뉴스를 보고 알았다고 또 거짓말을 했다. 정말 진실을 밝혀야 할 사람들은 당신들이다. 적과 대치한 상황에서 언제나 위중한 업무를 도맡아야 할 국가의 주요기관이기 때문이다.
나는 두렵다.
유가족들의 단식이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여당이 보이는 사고-보상의 프레임으로는 이 문제를 절대 해결할 수 없다. 아마도 다음 프레임은 세월호가 경제의 발목을 잡는다. 또 이어질 프레임은 세월호 유가족 속에 불순 선동세력이 있다. 그리고 당신들의 비장의 무기 당신들의 오류~겐 종북으로 몰아갈까 나는 두렵다. 그럴 사안의 일이 아니다. 선거에서 이겼으니 이는 국민이 면죄부를 준 것이라는 식으로 뭉개고 갈 일이 아니란 말이다. 진심으로 대통령께 고하건데 아직 당신이 모르는 사실이 있다. 당신도 분명 그 꽃다운 아이들을 구하고 싶었을 것이다. 선실 구석구석 수색해 단 한 사람도 빠뜨리지 말고 구하라는 명령을 내린 것도 그런 이유였을 것이다. 하지만 그럴 기회가 당신에게 주어지지 않았다. 비서실장의 말 그대로, 누가 보기에도 생각보다 배는 너무 일찍 넘어갔다. 그러나 아직 기회가 사라진 것은 아니다. 진심으로 진심으로 바라건데 각하, 지금 당신에겐 저 불쌍한 유가족들을 구조할 기회가 아직은 아직은 남아 있다는 말을 진심으로 하고 싶다. 그리고 이것은 마지막 기회이다. 역사가 당신에게 주는 마지막 기회인 것이다. 단 한 번도 진실이 밝혀진 적 없는 나라에서 이 글을 쓴다. 아프다. 너무 아프다. 한 아이의 아버지이기 때문이고 이곳에 발붙인 인간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가 모두 한 배를 탔기 때문이다.
내릴 수 없는 배다.
일본이 삼십 육 년간 운항하던 배였고 우리가 자력으로 구입한 선박이 아니었다. 일종의 전리품이었다. 승전국어었던 미국은 군정을 통해 배의 평행수를 조절했고 배의 관리를 맡은 것은 예전부터 조타실과 기관실에서 일해온 선원들이었다. 그들은 자발적으로 벨로스터 벨브의 한쪽을 아예 비웠다. 평형수를 비우면 비우는 만큼, 배에 실을 수 있는 화물의 양은 증가했다. 적재와 적재와 적재와 적재... 우리는 그것을 기적이라 생각했다. 배는 늘 통제되고 관리되어 왔다. 2층 객실에서 3층 객실로, 이어 4층 객실로 올라가는 계단은 언제나 좁고 미어터졌다. 붐비는 통로에서 또 복도에서 우리는 늘 방송을 들었다. 잘살아보자는 방송, 하면 된다는 방송이었다. 올라가기 위해, 한 층이라도 더 올라가기 위해 우리는 노력했다. 발전과 번영은 종교가 되었고 배가 왜 이렇게 기울었지? 의혹을 제기하면 종북이란 이름의 이단으로 몰려야 했다. 우리는 태생적으로 기울어야 했던 국민이다. 기울어진 배에서 평생을 살아온 인간들에게 이 기울기는 안정적인 것이었다. 제대로 포박되지 않은 컨테이너처럼 쌓아올린 기득권과 기득권과 기득권과 기득권의 각도 역시 이 기울기와 각을 같이 한 것이었다. 배는 계속 운항을 해야 했다. 평형수를 뺐음에도 배의 무게중심은 생각보다 낮고 안정적이었다. 왕정에서 식민지를 거쳐 영문도 모르고 배의 아래칸에 선적된 '국민'이라는 화물이 있어서였다. 항해가 계속되고 사정은 달라졌다. 무분별한 개축과 증축이 이어지며 무게중심은 올라갔다. 84퍼센트가 대학에 진입하는 초유의 고학력사회가 되었다. 정권에 눈먼 선원들은 여전히 기울기를 유지하려 애를 쓰고, 탐욕에 눈먼 국민들은 층수를 유지하려 애를 쓴다. 당연히 문제가 많았으나 근본적인 수리를 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땜빵과 땜빵과 땜빵과 땜빵... 그리고 어느 날 마치 이 배를 닮은 한 척의 배가 침몰했다. 기울어가는 그 배에서 심지어 아이들은 이런 말을 했다. 내 구명조끼 입어... 누구도 기득권을 포기하지 않는, 누구도 기득권을 포기할 수 없는 기울어진 배에서... 그랬다. 나는 그 말이 숨져간 아이들이 우리에게 건네준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한다. 이는 정치의 문제도 아니고 경제의 문제도 아니다. 한 배에 오른 우리 모두의 역사적 문제이자 진실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나는 어렸을 때 에밀레종의 실제 타종 소리를 들은 경험이 있다. 그 소리는 매우 슬펐으나 어떤 슬픔도 극복 할 수 있는 아름다움과 기나긴 여운을 간직한 것이었다. 우리가 탄 배의 미래를 위해서라도, 세월호라는 배를 망각의 고철덩이로 만들어서는 안 된다. 밝혀낸 진실을 통해 커다란 종으로 만들고 내가 들었던 소리보다 적어도 삼백 배는 더 큰, 기나긴 여운의 종소리를 우리의 후손에게 물려줘야 한다. 이 것은 마지막 기회다. 아무리 힘들고 고통스러워도 우리는 눈을 떠야 한다.
우리가 눈을 뜨지 않으면 끝내 눈을 감지 못할 아이들이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