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속이 없는 주말의 일상은 대개 비슷하다.
양재천에서 운동하다 호젓한 오전이나 오후를 보내는 것은 컨디션 좋을때 한두번씩 있는 일이고,
대부분은 이미 끝난 드라마를 정주행한다거나 (대개 16시간, 밤을 새지 않는 경우 이틀이면 가능하다) 영화를 보거나, 책을 본다. 이번주엔 비숲을 다시봤다.
2017년에 방영됐고, 2018년 백상예술대상에서 작품상 및 극본상(이수연 작가)을 받은 작품이다.
소리에 민감하고 감정조절이 안되는 신경학적 질병이 있던 황시목 검사. 과거 뇌수술을 통해 이를 극복했지만, 뇌수술 후 희노애락, 감정을 전혀 느끼지 못하게됐다. 학연지연이 판치는 대한민국 스폰서 검사들을 향한 내부특검의 지휘관으로, 냉철하고 이성적인 황시목이 지목된다. 아이러니하게도 감정이 없기에, 황시목은, 주변의 온갖 외압에도 불구하고 특검을, 거의 최초로, 특검답게 마무리해낸다. 이 모든건 자살로 생을 마감한 청와대 민정수석이자, 전 검사장 이차준의 빅피쳐.
살인사건 하나를 두고 냉철한 황시목 검사와, 따뜻하고 정의로운 한여진 경위가 공조하여, 끝내 범인을 밝혀낸다 게 이 드라마 줄거리. 그 과정에서 고구마줄기처럼 얼키고 설킨 에피소드가 등장하는데, 배우들이 하나같이 다 너무나 좋았다. 16회를 마무리할때, 남해로 좌천된 황시목에게 새로운 미션 (총리 비리특검)이 주어지면서 시즌 2를 예고했더랬다. 그리고 3년 만에, 황시목, 한여진, 서동재가 돌아온다.
드라마에 등장하는 민정수석이자, 전 검사장 '이창준'은 자살로 생을 마감한다. 자신의 죄를 인정하고, 대한민국이 회생불가한 상태로 썩어가는 사태를 개탄하며, 다시 정상 시스템으로 돌아가기 위해 보탬이 될만한 증거자료와 본인의 죽음이 그 시발점이 되길 바란다는 유서를 남기고. 드라마가 아닌 현실에서도 박원순 시장이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인권변호사, 시민운동가, 3번 연임한 서울시장의 업적은 삽시간에 역사의 뒤안길로 잊혀지고, 이제는 그저 자살한 전임 시장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그에게도 드라마 이창준 수석처럼, 시대적 사명감 같은게 있었을까?
부디, 사는 것 보다 더 중요한 명분같은거 만들지마요
더이상 정치적인 이유로 죽지마요
처음엔 오보라는 기사도 있어서, 당연히 가짜 뉴스라고 생각했다. 가짜 뉴스였으면 했다. 지나가는 헤프닝이길 바랐는데 그러한 바람을 비웃기라도 하듯, 진짜 변사체가 발견됐다. 그의 죽음을 두고 많은 억측과, 추측과 평가가 난무하다. 한 사람이 생을 마감하기까지 얼마나 괴로웠을지는 대중의 관심사가 아닌 모양이다. 나부터도 이 믿기지 않는 사건의 원인부터 검색했었으니까.
당사자 사망으로 인해 ‘공소권 없음’ 으로 사건 종료됐지만 끝까지 피해자와 연대하겠다는 부류, 당사자가 사망했음에도 생채기를 내서 기어코 정치적 먹잇감으로 쓰려는 부류, 지도자면 책임을 져야지, 책임감 없이 죽어버리면 다 해결되냐는 부류까지 다양한 평가가 있었다.
그중에서 내 맘을 동하게 한 건 세월호 유가족 유민아빠, 예은아빠의 글이다 (하기 인스타그램 이미지 참고)
2012년 언저리 벙커에서 미저리+수짱과 이분을 뵌적이 있다. 적어도 사람을 사람답게 대해주는구나, 이런 성정이라면 믿을만하다, 고 생각했던 계기가 돼준 만남이었다. 작은 변화라도 체감할 수 있는 시정을 펼쳐줘서,
그가 시장으로 있는 서울에 사는게 좋았다. 광화문에서 끝끝내 유가족 천막을 거둬들이지 않고, 단식투쟁하는 이들을 진심으로 걱정해주는 따뜻한 지도자라서, 약자에게 약했던 사람이라 좋았다. 그의 과오가 미처 드러나기 전에 묻혔고, 피해자 진술서가 온라인에 돌아다니지만(진위여부는 모르겠다), 자신의 과오나 치부를 안은채 도저히 그런 모습으로는 살아갈 수는 없었던 사람. 나는 그를 그렇게 기억하고 싶다.
마침 박원순 시장의 죽음에 대한 뉴스를 성경통독이 있는 금요일에 들었다. 그래서 성경속에서 자살한 인물들을 좀 찾아봤는데 그 대표적인 인물이 예수를 팔아 넘기고 자살한 가룟유다였다. 그외 수많은 인물들 대부분은 살면서 회심하거나 회개했다. 비록 똑같은 죄를 또 짓더라도 자신에게 주어진 인생을 살아내고자 노력했다.
사람은 제각각 다 다르게 태어나고, 선택하고, 살고, 죽는다. 고난이나 감당할 수 없는 죄책감 앞에서 유다처럼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살면서 사는내내 회개하는 다윗, 솔로몬, 바울 같은 사람도 있다.
감히 내 삶의 끝이 어떨지는 알 수 없지만,
잘못에 대해 용서 구하고, 회개하며, 스스로 목숨을 끊을 정도의 치욕스런 잘못은 하지 않으며 내 깜냥대로 살다, 그 끝을 맞이하고 싶다. 사랑하는 이들이 내 부고를 듣고 너무 갑작스럽지도, 너무 놀랍지도 않게, 바람이 불고 비가 오고 해가 빛나는, 일상처럼 자연스럽게 받아들 일 수 있다면, 그렇게 떠날 수 있다면 축복일것이다.
원순씨도 그런, 끝을 생각했겠지만.
인생이 뜻하는대로 펼쳐지는 여행은 또 아니니까...
다음달 북리뷰 쓸 책을 찾아보다가, 이책을 봤다.
지난달엔 헤세 에세이를 소개했으니까, 이번달엔 소설을 소개해볼까, 싶었는데, 막상 요즘 거의 소설을 안 읽는터라, 고민하다가.
안희정 성폭력 고발, 554일간의 기록, 이라는 부제가 달려있는 <김지은입니다>라는 책.
왠지 남의 아픈 내용이 잔뜩 적힌 일기장을 훔쳐보는 것 같아, 아직 주문은 못했다.
글을 쓰면서 저자의 상처가 조금은 치유되었을까? 누군가에겐 한없이 괴로울 기억들이겠지? 인생은 어느모로 보아도 언제나 양면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