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한 어머니
내 영혼의 수프를 끓였다.
레시피는 참으로 간단하다. 김치 넣고 물 넣고, 떡국떡 넣으면 끝!
떡은 인덕션을 끄고 냄비에 남은 열기로만 익히는 게 포인트다.
퍼진 떡보다는 쫄깃쫄깃한 상태의 떡을 좋아하니까.
내 영혼의 수프는 엄마 김치가 없으면 절대 안되지만 지난 22년 서울에서 자취하는 동안, 내 냉장고에 엄마 김치가 없던 적은 단 하루도 없었다. 떨어지기 전에 엄마가 언니들을 성화해서 항상 냉장고에 채워줬기 때문이다.
"서울 갈 때 김치 싣고 가라"
"김치 대장인데 집에 김치 떨어지지 않았나 들여다봐라"
"가까이 사는 네가 김치 좀 나눠 줘라" 이런 식으로.
뇌경색으로 쓰러진 후 몸이 불편해져서 더 이상 김치를 담글 수 없는 상황 속에서도 엄마는, "죽을 때까지 니 김치는 엄마가 만들어줄게"라고 말하곤 했다.
다행히 언니들도 김치를 담글 수 있을만큼 자랐지만(ㅋㅋㅋ) 엄마가 옆에 있느냐 아니냐에 따라 해마다 김치 맛이 조금은 다르다. 그걸 우리는 엄마의 입김장이라고 부르는데, 언니들 옆에서 엄마가 고추가루 더 넣어라, 젓갈은 고만큼만 넣으면됐다, 하면서 부지런히 참견을 해줘야 언니들이 담근 김치에서도 엄마 맛이 난다.
엄마는 내가 제일 좋아하는 총각무는 김치냉장고 한쪽에 넣어두고 주말에 내려가면 꺼내 주곤 하는데 올해도 세상 맛있는 총각무를 위해, 무를 심는 작업부터 심혈을 기울여보겠다고 했다.
#참 기특한(;) 우리 엄마
오늘 김치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던 건 아니었는데, 어쩌다 점심에 먹은 영혼의 수프 때문에 자연스레 이야기가 김치로 흘렀다. 내가 오늘 기록하려던 이야기는 엄마의 일기장에 대한 거였다.
2월부터 매주 엄마에게 미션을 줬다.
다이어리에 일주일에 한두 번 기억나는 날을 메모해 두라는 것.
시작은 설날 가족들이 모였다가 각자 흩어진 후 엄마 혼자 심하게 감기를 앓은 어느 주말로부터였다.
혼자서 얼마나 된통 감기를 앓은건지 엄마 코밑이 너무 심하게 헐어서 주말내내 면봉으로 콕콕
코밑에 약을 발라드렸다. 내친 김에 발도 닦아주고, 비록 맛은 1도 없었지만 정성껏 전복죽도 끓여다 주었다.
"이제 안심이다"
엄마는 그렇게 말했다. 내가 와서, 이제 안심이라고.
그러나 내가 엄마 곁에 있어주는 것도 겨우 주말 이틀이다. 내일이면 다시 서울로 떠나야 하는데 하필 그주말에 아픈것도 아픈건데 엄마의 유일한 친구 텔레비전까지 고장나서 발길이 차마 떨어지지가 않았다.
티비도 없이 혼자 멍하게 보낼 며칠이 너무 길게 느껴져서 망연자실했지만 우리에게는 유튜브가 있으니까!!
안 쓰는 아이폰에 JBL 스피커를 연결해서 트로트 7곡을 무한반복으로 설정했다.
나는 차시간이 다 되어서 떠났지만 그 밤 엄마가 좋아하는 나훈아, 임영웅, 최유나, 진성, 남진, 이미자 등은 쉬지 않고 티브이가 망가져서 망연자실한 엄마를 위해 노래를 불러줬을 거다.
그러니까 그다음 주 금요일에 평소처럼 집엘 갔는데
일 때문에 한껏 예민해진 내게 엄마가 쓱 다가와 저 편지를 들이밀었다.
"엄마가 편지 썼어" 라면서.
엄마가 편지를?
엄마의 첫번째 편지는 초4때였다.
당시 나의 일상은 다른 집 아이들과는 조금 달랐다.
일나 간 아빠나 장사를 나간 엄마보다 먼저 집에 도착했기 때문에 밥도 하고, 불도 펴놓고, 제비가 똥 싼 마루도 걸레질하고 틈틈이 봉당도 쓸면서 집안일을 도맡아 했었더랬다. 방과후 집안일이 고됐지만 기꺼이 내가 해야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던 어느날
피아노가 너무 배우고 싶은거다. 군인가족 여자친구들은 열이면 열 다 다니는 피. 아. 노. 학. 원. 남들 다 다녀도 그나마 베프 조씨도 피아노 학원엘 안 다니니까 나름 위안이 되었는데 그 아이마저 피아노 학원을 등록했다는 걸 안 직후, 나도 엄마를 졸랐다. 형편 같은 거 눈 딱 감고 <나도 피아노 배우고 싶다>고 난리난리 생떼를 부렸다. 웬일인지 엄마는 별다른 반대없이 학원비를 줬다.
신나는 마음으로 친구들이 다니는 피아노 학원을 등록하고 바이엘 상권이란 책을 사서 드디어 피아노를 배우게 됐다. 다른 애들에 비해 진도가 굉장히 빨랐다. 진도를 빨리 빼서 남들 1년 코스를 반으로 줄이는게 엄마를 위한 길인 것 같았다. 그런데 바이엘 하권을 끝내고 체르니 30번을 들어가기 직전 어느 날, 평소처럼 학원을 마치고 집에 와보니 부뚜막에 엄마가 삐뚤빼뚤한 글씨로 남겨준
"오늘은 밥하지 마", 라는 메시지를 보게됐다.
이유없이 눈물이 왈칵쏟아졌다.
내게 쓴 첫 번째 엄마 편지는 그거였다.
그리고?
그리고는 뭐. 바로 피아노 학원은 포기했다.
학원은 무슨. 그 시간에 집에 일찍 와서 가족들을 위해 저녁밥을 지어놓는 게 내 마음이 더 편하다 생각했다.
그리고 몇십년만에 첨으로 엄마의 두번째 편지를 받았다.
엄마는 받는 것에 익숙한 사람이 아니라 딸이 지극정성 간호해주는걸 고마워하기도 하지만 동시에 꽤 미안해했다. 그래서 엄마 발을 닦아주면서, 말했다.
엄마가 악착같이,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장사해서 딸 다섯 모두의 대학 등록금을 대줘서 우리가 각자 이렇게 밥 잘 벌어먹고 산다고. 다 엄마 덕분이니까 지금 받는 효도에 대해 미안해하지 말라고, 남은 인생 내내 효도받아 마땅하다고. 아마도 그 이야기가 엄마 마음에 위로가 됐던 모양이다. 눈보라 속에 하루도 빠지지 않고 동상에 걸리면서까지 길거리 인생을 산 게 헛되지 않았음을 확실히 느꼈다고 엄마가 편지에 썼다.
(엄마는 장한 어머니상을 무려 네 번이나 받았다!)
#참 강인한 우리 엄마.
오늘은 처음으로 운동을 했다.
그런데 은숙이는 자꾸 거짓말이라고 한다, 정말 기분 나쁘다.
내가 개인적으로 제일 좋아하는 엄마일기다.
뇌경색으로 왼쪽이 마비된 후 엄마는 걷거나 운동하는 걸 싫어했다. 매일매일 운동을 안하면 큰일날 것처럼 뒷산도 타고 훌라후프도 열심히하던 엄마였는데, 운동을 멀리했다. 엄마맘을 모르는 건 아니지만 나는 또 굳이 굳이 운동을 하라고 잔소리를 한다. 안하려는 자와. 시키려는 자. 그 사이에서 서로 마음이 상할때가 많다. 날씨가 좋은 날은 산책 겸 걸으라고 잔소리를 해도 엄마는 집에서 텔레비전만 봤을게 뻔한데 자꾸 운동했다고 거짓말을 한다.
그런데 엄마가 정말 기분나빴다니 앞으로는 덜 놀려야겠다. 이제 엄마에게 <거짓말하지 마!>하면서 놀리는 일은 자중해야겠다 ㅎㅎ
#참 웃긴 우리 엄마 ㅋㅋ
4월 2일 엄마 일기장에 요즘 화장실을 잘 못간다는 내용이 있길래 바로 유사나 프로바이오틱을 주문해줬다. 그랬더니 요즘엔 매일매일 화장실에 가게 됐다며 세상 밝게 함박웃음이 폈다.
“엄마 거봐, 일기 쓰니까 좋지?
내가 엄마 일기 아니었으면 엄마가 요즘 화장실 잘 가는지 못 가는지 알턱이 없잖아. 일기 덕에 비타민도 끊기지 않고 화장실도 매일 가니까 좋은 거 아니야? 이게 다 엄마가 쓴 일기 덕분인거잖아”
엄마는 가타부타 크게 반응하지는 않았다 ㅋㅋ
4월 3일엔 둘째 언니랑 싸웠는데, 엄마 일기장에 속상하다고 쓰여있어서 언니랑 반성을 많이 했다. 엄마를 기쁘게 하지는 못할망정 속상하게 하지는 말아야지, 싸우더라도 이제 엄마 있을 때라도 좀 덜 싸워야지, 뭐 그런 반성. 나이도 쉰, 마흔둘인데. 허구한 날 싸운다. 자매는 그런 건가 우리가 그런 건가. 참.
#5042
4월 4일엔 진상이 코로나에 걸렸다. 진상은 셋째언니 남편의 별명이다. 일본에서 10년 사는 동안 진상이라 불려서 진상이라고 부르는데 다른 의미가 아니라 그냥 진 씨 성을 가진 사람이란 뜻이다.
어쨌거나 그 진상이 꼬래나(코로나) 학진(확진)이라고 해서 주중에 엄마에게 꽤 자주 들르는 셋째 언니가 엄마 집에 통 못 왔다.
아무도 올 사람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행여나 누가 올까 기다린다는 엄마 일기를 보고 마음이 짠했다. 분명 아무도 올 사람이 없으니, 심심하다면서, 개 밥도 주고 똥도 치우면서 하루를 보냈다는 우리 엄마. 매주 양평에 가지만, 앞으로도 매주 양평에 가야겠다는 생각이 더 확고해졌다.
때로는 종종 서울에서 쉬고 싶을 때도 있고 약속을 잡을 일도 있고 결혼식에 참석해야 할 때도 있는데 그냥 가기 싫은 날도 있는데 이제 이 일기를 봤으니 웬만하면 모든 걸 주중에 해결하고 주말 약속은 아예 잡지도 말아야겠다. 부득이한 경우 사람들은 엄마 집으로 초대하는 걸로 방법을 바꿔야겠다.
그나저나
누군가 엄마의 일기장에 흥미를 느낀 꽤 괜찮은 편집자가 짠하고 나타나서 우리 엄마 일기를 책으로 엮어보자고 나서 준다면 내가 진짜 더 바랄 게 없겠다. 더 나아가, 엄마를 위한 다큐를 만들고 싶은데
우리 엄마와 도곡리 오자매 다큐를 찍고 싶다고 나서 주는 다큐멘터리 감독도 연락을 준다면 참 좋겠고!
엄마가 하늘로 돌아가기 전에
엄마의 일기장이 책으로
엄마의 생전모습이 다큐로 만들어지는 것.
이게 내가 엄마와 하고 싶은 두가지 프로젝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