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오욕망

아빠산소를 납골묘로 옮겼다.

by 책읽는 헤드헌터



2023년 10월 21일


토요일

이날은 정말 큰 행사다.

수진아빠 평생 잠들 곳으로 가는날.

우리딸들이 고생많았다.

우리 큰사위 정말 고맙고 감사하다.



일요일

은숙이 교회가고 이번주 못온다고 한다.

할수없지. 운동하면서 즐겁게 지내야지.

상범아빠는 밭에서 일하고 있다.

다시한번 쳐다보고싶다.

(다시 한번 쳐다보고 싶은 이유가 뭐야 엄마?

고마워서. 아빠 이장 잘 도워줬잖아)


전주이씨 광평대군파 몇대손인지는 모르겠지만 여하튼 그러한 가문의 장손으로 태어난 아빠는 어려서부터 홍동백서를 잘 알아야했다. 장손에게 기대하는 대부분의 덕목을 장착해가며 자랐을 우리 아빠.

얼굴을 아는 조상은 물론, 본적도 없는 조상의 제사까지 일년의 열두번도 넘는 제사를 지내야했던 아빠는 돌아가신 분들은 물론 살아계신 친적들에게도 끔찍했다. 친지들 또한 아빠를 향해 장손대우를 해주었고 우리집안은 남들보기에 그럴듯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아버지가 살아계시기 전까지는 그랬다.


아버지 사후, 친지들의 묘자리도 그렇고 상의하고 정리할 것들이 많았는데 언제부턴가 친지들의 발길이 끊겼다. 우리가 원했던 결과지만 막상 그렇게 되자 엄마는 섭섭함을 토로했다. 동시에 종갓집 큰며느리로서 지고 있던 무거운 마음과 허례허식 모두를 내려놓았기 때문인지 한결 가벼워 보였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엄마는 그 가벼움을 누리지 못하고 아버지가 돌아가신 이듬해 바로 뇌경색으로 쓰러져 오늘날까지 무거운 몸을 이끌며 힘겹게 걸어 다니신다. 뇌경색 이후 재활치료끝에 한발 한발 조금씩 힘겹게 걸을 수는 있게 되었지만 후유증으로 남은 편측마비 증상으로 인해 예전처럼 씩씩하게 걸을 수는 없게 되었다. 삶이 불편해진것은 이루말할수 없지만 뇌우회로 수술덕분에 지금은 스스로 밥도 지을수있고 화장실도 갈수있게 된 지금상황에 우리는 감사하게 생각한다.


2003년 5월 31일 오전 세시, 아빠가 돌아가셨다.

사인은 폐암이었고, 돌아가시기 몇달전부터 섬망 증세로 의식이 명징하지 못했고 모르핀없이는 잠을 잘 수 없을만큼 밤새 고통을 참아야 하는 날들이 반복되었다.

그리고 하늘로 돌아가셨을땐 세상 가벼운 몸으로, 세상 무거운 마음으로 떠나셨다.

어느것하나 안심이 될 수가 없었던 엄마와 오자매를 두고 아빠는 어떻게 눈을 감으셨을까. 아빠 장례식장에서도 우리 자매는 농을 던졌다. 지금 이렇게 문상객을 대하는걸 아빠가 봤다면 몇날며칠 잔소리를 들었을거라거나 예절대로 하지 않고 약식으로 대충대충 하는 것들을 보고 무덤에서 일어나실 판이라거나, 하는.

처음겪는 장례라 황망하고 슬프기도했지만 오자매가 함께라서 슬픔가운데 웃을수도있었다.

그때 내 나이 스물셋.


2023년 10월 21일 오전 7시 30분, 셋째언니 생일날 아빠의 산소를 납골묘로 이장했다.

무려 20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아빠의 이장은 아빠를 묻어주었던 아빠의 친구분이 도와주셨다. 올해 딱 여든.


우리 아빠도 살아계셨더라면 아부지 친구분처럼 머리가 희끗희끗한 할아버지가 됐을텐데 아빠는 너무도 젊었을때 59세 신청년의 나이로 하늘로 돌아가셨다.

누군들 아깝지 않은 죽음이 있겠냐마는 장례식을 찾아준 이들 모두가 입을 모아 그렇게 말했다.


참 아까운 사람이 떠났다고.

좋은 사람들이 일찍 하나님 곁으로 간다고.

위로가 되는 말들이었다.

1. 아빠친구 2. 산소 3. 산소 해체작업


아빠의 묘를 옮기기로 한 날 하필, 비가 왔다.


산소해체 막바지 작업을 하고 나니 거짓말처럼 비가 개고 날씨가 맑아졌다


그래도 9시부터는 비가 그쳤다.

비가 그치자 조금 쌀쌀했하지만 맑은 날씨가 느껴졌다.

산소 이장을 생각하는 분들이 있다면 너무 덥거나 추운 계절은 피해면좋겠다.

(우리 경우엔 그랬다.)



아빠 산소 잘 마무리후 납골묘에서 불교 형식으로 제를 드렸다.


아빠가 있던 산소를 돋우고 미리 계약해둔 납골묘로 이동해서 스님의 도움을 받아 불교형식으로 제를 올렸다.하나님의 자녀지만 나름 종교에 개방적이긴 한데 오늘은 조금 편치는 않았다. 앞으로 찾아오게 되면 조용히 기도올리고 가야지, 생각했다. 양지바른 명당 자리를 찾아왔지만 이미 잿가루가 된 아버지이에게 정말로 그런게 필요할까, 의문이 들었다.


큰언니 오랜 지인이자 선배님이 우리 가족 모두를 초대해주셔서 선배님네서 점심을 먹었다. 큰언니는 모두 함께가길 희망했지만 4번 언니와 엄마와 나는 혼자 있고 싶어서 가지 않았다. 감사한 마음은 표현했다.


우리 엄마와 오자매의 오랜 숙원사업이던 일을 처리하고 나니 다들 마음이 가벼웠던지 각자 편한 공간으로 돌아가서 약속한듯 낮잠을 잤다.


그렇게 어영부영 밤이 되었고 엄마와 나만 남겨지자 넘마에게 오늘 낮에 아빠 산소를 이장하면서 겪은 일들을 이야기해드렸다. 산소를 파서 아빠 유골을 모은것부터 전부. 이야기를 전하던 도중 갑자기 화장실이 가고싶어져서 (늘 그렇듯이) 엄마 볼에 뽀뽀하면서 “화장실에 다녀올께, 금방옵니다”하고 인사를 했는데 입술이 축축했다. 엄마 볼이 젖어있었다.


엄마 울었어?


엄마는 하품을 했다고 말했지만 울고있던게 틀림없다.


엄마를 다그쳤다.


슬픈게 당연하지. 우리도 울었는데. 근데 엄마는 왜 안운척 하는거야? 슬프면 슬프다고해.


기분이 찝찝하기도 하고 홀가분하기도 하고 그러네.

(나도) 죽으면 그렇게 되는건가 싶고.

여름이 되면 아부지 산소 풀때매 걱정인데 이제 한가지 걱정은 덜었어.

근데 할머니 할아버지 묘가 걱정이야. 그건 그대로 두나?


엄마는 언젠가 올 <그날>이 두려웠을까.

남겨진 사람들은 종종 돌아가신 분들께 자신들이 바라는걸 부탁한다. 나는 아빠에게 엄마의 건강과 조카들 가족 모두 무탈하기를 빌었다. 아빠가 들으셨을지는 모르겠지만.


작은아빠들 반대로 이번에 아빠랑 같이 모시진 못했지만 2번 언니가 모든 비용을 댈테니 1-2년 후 할머니 할아버지도 이곳으로 모셔오자는 계획을 세웠다.


아빠는 새로운 곳이 마음에 들까. 부디 마음에 드시길.

아빠 오늘밤도 굿나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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