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최애 음식 (족발과 쫄면)

by 책읽는 헤드헌터
2022년 4월 17일


지난주 일이다. 여느때와 같이 느즈막이 토요일 아침을 시작하려는데 큰언니로부터 전화가 왔다.

"엄마가 꿈도 꿨고 아침엔 까치를 봤다고 오늘 니가 올거라는데?"


보통의 금요일밤 나는 양평엘 간다.

엄마와 엄마보다 더 나를 기다리는 개 세마리와 언니들 조카를 보러.

(2023년 8월, 레오가 세상을 떠났다. 이제 개 두마리가 나를 기다린다)


그런데 이번주는 양평 갈 계획이 없다, 고 어젯밤 이미 설명하지 않았느냐고 큰언니에게 말했다.

"엄마가 주술적인것까지 운운하면서 니가 온다고 믿고 싶은 것 같은데, 알아서해, 언닌 출근한다."


알아서하기는. 그렇게 말한 이상 이제 나는 알아서 쉴 수가 없잖은가.

친구랑 약속있다고 우리집에 찾아와서 이틀째 내침대를 점령하고 있는-자고있는-큰조카에게 상황을 이야기하고 부랴부랴 짐을싸서 양평으로 출발했다. 가는 도중에 문득, 엄마가 좀 변한거 같다, 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는, 시골집에 혼자서도 외롭지 않다고 했던 철의 여인이요

오히려 사위, 손주들이 와서 비축해둔 음식을 축내는 것을 아까워하며 (본인 딸과 애정하는 조카 제외) 혼자있는 시간을 즐기는 사람이었는데 언젠가부터 누군가를 기다리는 거다.


작년 어느 주말밤인가, 큰언니가 가슴철렁하다며 내게 전화를 했다. 양평 장날 선물받은 떡이 있어서 떡 좋아하는 엄마 주려고 엄마, 하고 엄말 부르며 불꺼진 엄마집에 들어갔는데 엄마가 대답이 없었다는 것. 싸한 기운이 감돌았고 혹시 무슨일이 생겼나 너무 놀랐는데 다행히도 엄마가 <자연인이다>프로를 켜둔채로 자고있었다고 했다.


그때 이후로, 큰언니와 나는 대부분 주말을 엄마집에서 지냈다.

가능하면 커피와 빵과 먹을것들을 포장해서 엄마랑 놀았다. 아마도 그때부터 주말을 붙어지내서일까 아니면 엄마가 조금 더 나이들면서 심경의 변화가 온걸까. 치매가 조금 더 진행된걸까.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다. 엄마가 외로운가? 혼자서 슬픈가?


경의중앙선은 2호선보다 역 사이 간격이 길다. 전철에서 보내는 시간이 특히 더 지루하게 느껴지는 마의 구간이기도 한데 잠실집에서 양평역까지 보통 2시간 정도 소요된다, 맘 잡고 영화한편 볼 수 있는 거리다. 그런데 오늘은 이런 저런 생각이 많아서인지 평소보다 짧게 느껴졌다.


운길산역부터, 내릴 준비 미리 시작하는 조바심쟁이 나.

큰언니에게 텔레그램을 보냈다. 20여년간 한결같은 나의 드라이버.

(이글을 쓴 당시 2020년에는 내차가 없어서 진상형부 차나 전철로 양평-서울을 오고갔다)

고등학교때 야자가 끝나면 나를 데리러 와야하는 건 물론(아빠가 아니라 늘 언니몫이었다), 언니는 내 친구들 집까지도 데려다주곤했다. 서른살 중반이었나. 명절전후에 소개팅을 했는데, 남자분도 나도 차가 없었고, 나는 그사람이 마음에 들지 않았는데, 우리는 양평시내로부터 좀 먼 거리의 까페에서 차를 마시고 있었다. 수짱에게 메세지를 넣었다. '강하 ** 커피숍인데 나좀 데리러와 언니. 집에 가고싶어'

언니에게 바로 답이 왔다. 그 남자분 집까지도 태워다주겠다고. 음.. 언니의 답장을 보며 우리 자매의 과한 선의가 타인을 불편하게 하리란 걸 직감했다(그날 결국 남자분이 택시로 우리집까지 데려다주고 헤어졌다;;;;). 무튼. 언니는 내가 어디에 있든, 술마시고 양평에 오다 토할 것 같아 중간에 내리더라도 그 중간역까지 나를 기꺼이 태우러 와주는 사람이다.


운길산역. 이라고만 보내놓으면 시간 계산 알아서 하고 양평역에서 나를 기다려주는 사람.

근데 답이 없다. 양수역. 이라고 보냈는데 또 답이 안온다.

신원, 국수, 오빈을 지나면 곧 양평인데.


아. 오늘 출근한다고 했지. 뭔가 급한일이 있나보다, 싶어 포기하고 양평역으로 나왔다. 드라이버가 없었던 적은 없는데! 어디로 먼저 가야하지? 일단 당황하지 않고 언니 차를 타고 갔던 만두집으로 향했다. 언니가 강추했던 김치만두 두팩을 사고, 엄마가 좋아하는 족발을 사러갔다. 근데 바쁜 족발님이....두시간뒤에나 나올수있다고했다. 매일 바게트 나오는 시간, 같은건 익숙한데 족발 나오는 시간이라니! 이집은 그게 오후 두시라고했다. 성격급한나는 족발대신 미니족발을 포장하면서 심바 탄이 레오에게 줄 뼈도 두둑히 챙겼다. 애견인인척 장화신은 고양이 같은 표정을 지어 족발집 주인아주머니께 더 많은 족발뼈를 얻어낼 수 있었다. 야호!!! 엄마줄 미니족발보다 세마리에게 줄 뼈때매 더 기뻤다. 잠시!

그리고 양평인들의 쏘울푸드 대문집떡볶이집 들러 엄마 좋아하는 쫄면도 포장해서. 바리바리 싸들고 택시를 탔다. 택시 안에는 족발과 만두냄새가 섞여 기괴한 향이 나기 시작했다. 시간은 정오가 조금 지나고 있었고 기사님은 다른 동료에게 전화를 걸어서 점심약속을 정하기 시작했다. 5분안에 **마을회관 들렀다 나올건데 같이 순대국 먹자고. 배가 고플시간에 택시안에 요상한 음식냄새 진동하게 한게 죄송해지는 찰나, 가방안에 엄마 주려고 갖고온 바나나가 세개 있다는걸 인지했다. 근데 색이 좀 많이 까맣게 변하긴했는데, 이런게 물론 더 맛은 깊은데..이래저래 주저하다가 기사님께 식사 잘하시고 그전에 간단히 드시라며 바나나를 두고 내렸다.


엄마는 마당에 나와서 벌써부터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엄마!!!!


"새벽에 엄마~ 하고 니가 불러서 나와봤는데 꿈이 더라고.

근데 아침에 까치가 울어서 반가운 손님오겠거니했지.

어떻게 왔니 그래?"


"엄마랑 같이 먹을라고 쫄면이랑 족발이랑 만두사왔지

미저리가 준 곰탕녹여서 낼 아침엔 만두국 끓여줄께

족발살때 개세마리 줄거 싸달랬더니 이렇게 잔뜩줘서 나 너무 신나!!!"


쉴새없이 떠들면서 쫄면을 비벼서 엄마 반 나 반 나눠 먹었다.

다른손에 족발도 뜯어가면서, 싸주신 오뎅국물도 마셔가면서.


집은 추우니까 (보일러 시스템때매 겨울에 난방비가 백만원 가까이 들어가는 시골집이라 엄마는 돈 아낀다고 내가 안가면 보일러를 거의 틀지 않는다) 햇살비치는 마당 아래서 엄마랑 허겁지겁

(나는 왜 때문에 늘 그렇게 허기가 진걸까 밥을 엄청 허겁지겁 빨리먹는다. 엄마는? 우리 엄마도 그런 편이다 ㅋㅋ) 쫄면과 족발을 먹고있노라니 행복했다. 역시 오길 잘했지.


엄마. 행복해?

응. 행복해.


엄마의 정신은 아직 명료하다. 미저리가 준 용돈을 잘 꿍쳐놓았다가 미저리몰래 나에게 쥐어주기도 하고, 내가 좋아하는 김치를 어떻게든 서울가는 차편이 생기면 꼭 들려보내려는 안달복달함도 여전하고, 게으른 수짱을 위해 밥을 해다 갖다 바치거나 양말을 찾아주거나, 밭에서 상추를 따다 필요하다는 언니들에게 나눠준다거나, 예전 그대로다.


다만, 나는 엄마와 언니랑 보내는 지금 이 행복한 시간이 길지 않을 것 같은 슬픈 예감이 드는거다.

신체 모든 부위 기능이 느슨해지고 헐거워지고 연약해지고 띠미띠미해지는 할머니니까.


그날이 오면 얼마나 슬플지

생각만으로도 눈물이 난다.


엄마 동영상을 매주 찍어두기.

엄마 관련한 에피소드 기록하기.

엄마 이야기 책 내주기.

엄마 장례식장에서 엄마 다큐 틀어주기.

하나하나 이제 더 미루지 말고 시작해야겠다, 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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