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여행 1일차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곳은 제주 한림읍 옹포2길 어딘가.
서울에서라면 초저녁 시간인데 운전이 피곤했는지 나의 오래된 친구는 코를 골며 쌔근쌔근 잠이 들었다.
아직 23시 반.
아침에 서울엔 눈이 내렸다. 덕분에 김포공항은 비상이었다. 비행기 날개에 수북히 쌓인 눈을 제거하느라 각각의 비행기가 삼사십분 이륙이 지연됐다.
다행히 제주까지 오는 하늘길은 이상이 없었다.
1. 렌터카 찾기
처음으로 내 운전면허증이 제주바람을 맞아본다. 감개무량하다.
다음주 화요일 저녁에 친구가 서울로 떠나고 나면 이후부터는 내가 직접 운전해서 <한라산 등반>을 위해 후발주자로 조인하는 캐롤과 엘레나를 픽업해서 숙소로 데려와야한다. 과연 내가 내차가 아닌 아반떼로, 한번도 운전해보지 않은 제주도 도로에서 운전이란 걸 할 수 있을까…
아마도 있을거다. 혹시몰라 엘레나의 운전면허증도 받아두었다. 운전하는걸 좋아하는 친구니까 여차하면 운전대를 맡길 요량으로. 부지런히 기본 기능을 배워둬야겠다.
남들에겐 세상 쉬운 일이겠지만 내겐 난이도 중상수준의 미션 두가지가 남았다. 혼자서 숙소까지 자차로 이동하기. 렌터카 반납하기. 할슈있다. 할슈있다.
2. 안봐도 비됴의 요즘버전은 안봐도 유튜브라는데, ‘금강산도 식후경’의 요즘표현은 다른게 없을까?
렌터카에 타자마자 자매국수로 향했다.
일단 배가고파지자 급격히 말수가 줄어든 나를 위한 친구의 배려였는데 애석하게도 브레이크 타임이라 자매국수에서 고기국수를 먹을수가 없었다. “고사리 해장국먹을래?” 친구가 대안을 제시했지만 쉽게 대답할 수가 없었다. 왜냐하면, 지금내가 먹고싶은건 고사리 해장국이 아니라 <고기국수>니까!!
검색해서 자매국수 근처(그러니까 공항에서 그리 멀리 벗어나지 않은 곳에서) <늘소담>이란 국수집을 찾았는데 사장님이 엄청 친절하고, 적극적이고, 밝게 응대해주셔 기분좋게 제주에서의 첫끼를 시작했다. 친구는 고기국수 나는 비빔국수로. 우리는 각자의 own 메뉴외 함께 먹을 수 있는 사이드메뉴 시키는 것도 좋아한다. 오늘의 사이드메뉴는 돔베고기. 고기국수와 돔베고기까지 배불리 먹고 안정을 찾은 뒤 우리는 <까메까메 까망이김밥>으로 이동했다. 애석하게도 개인사정상 12월 내내 쉰다고해서 포장은 못하고 돌아왔다. 포장해서 숙소가려던 빅피쳐를 그려놨지만 까망이김밥은 다음번 제주여행에서 도전하기로 하고 깨끗히 맘을 접었다. 아직 우리에겐 일요일에 갈 <오는정 김밥>이 있으니까, 괜찮다.
(이때는 아직 일요일에 오는정김밥이 휴무라는걸 알지못해 희망에 차 있었더랬다..절망은 곧, 네이버 검색창을 타고 토요일 새벽 1시에 우리곁을 찾아왔다)
**공항근처에서 고기국수집 찾는데 자매국수는 브레이크 타임이라거나, 줄서서 기다리고 싶지 않은분들께는 늘소담 국수 추천합니다 (제주시 탑동로 31-3)
3. 오늘 가장 감동받은 순간은?
남자친구보다 더 좋은 내 여사친이 집앞으로 데리러 와서 제주공항까지 편히올 수 있었다. 2년전에도 제주 출발시간을 염두에 두지않고 자고 있던 나를 깨우기 위해 새벽부터 달려와서 비몽사몽한 나를 공항으로 무사히 데려가준 바로 그 친구. 스물한살에 만나서 마흔두살이 된 지금도 우정을 쌓고있는 대학동기이자 절친. 몇년전엔가 내가 차가 없던 시절에 친구는 양평의 햇살로 잘 말린 내 이불빨래를 픽업해서 서울집까지 배달해다준적이 있다. “서울까지 이불 갖다준 고마운 친구” 로 엄마의 뇌리에 친구가 깊게 박힌 사건이기도 했다. 해마다 곶감이며, 쿠키며, 용돈이며, 꽃까지 엄마에게 보내주었는데도 엄마는 이불장면이 각인됐는지 매양 이불관련된 에피소드만 언급하곤했다.
지금의 이 고요하고 평화로운 순간이 참 좋다.
먼저 잠든 친구의 코고는 소리를 듣노라니, 다시금 잊고있던 평안함이 찾아온다.
뇌경색으로 병원생활을 했던 엄마와 함께 병원에 있을때, 엄마의 코고는 소리를 들을때며 그렇게 마음이 편안할 수가 없었다. 엄마가 오늘밤 당장 어떻게 되지는 않겠다 싶은 마음이 들었기 때문이다. 드르릉킁킁 드르렁 컹컹 힘차게 코를 골 수 있는 것도 엄마가 건강해졌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2년전 어느 겨울, 고객사와의 문제가 생겨서 세상 괴로워할때 군산이 고향인 친구네 본가에 내려갔을때도 마음이 무진장 편안했다. 갈때마다 반갑게 나를 맞아주는 친구 부모님과, 그르릉 킁킁 그르릉 킁킁 세상 아무걱정없이 편안하게 잠든 모습을 보면서 피식 웃었던 기억이 난다.
4. 신창풍차해안도로에서는 왜 울었나요?
함께 여행을 하는 친구와는 협재에 자주 왔었다. 그래서인지 제주에 오면 협재는 지나가더라도 들려야했고, 짧게 머물더라도 동네처럼 친근한 느낌을 주었다. 대평리도 그렇고, 산방산 근처도 그렇다. 에머랄드 빛이 반짝이는 협재바다를 보며 노을이 내려앉은 바닷가를 걷다가 친구가 문득 “신창풍차해안도로 갈래?”하고 물었다. pms 시기가 아니면 웬만한 것에 토를 달지 않는 성격이라, 단박에 “좋아요”하고 다시 차로 10분 거리인 신창풍차해안도로에 도착했다. 이미 노을은 졌지만, 이 아름다운 노을을 끼고 바닷바람을 맞으며 예쁜 해안도로를 걷게 해주려는친구 마음과, 오랜만에 마주하는 제주바람과, 한결같은 제주 바다때문에 울컥해서 눈물이 났다.
발랄하고 긍정적인 기운 뿜뿜하며 해안도로 여기저기 뷰스팟을 따라 뛰어다니는 싱가포리안 여인을 만나서, 인생사진 몇장을 찍어주는 오지랖을 발휘했다. 부디 남은 여행 즐겁게 하시기를, 한국에서의 좋은 기억 가지고 돌아가시기를!
5. 마제스티 숙소는 어땠어요?
숙소의 외관이 너무 낡아서 놀랐고, 엘베가 없어서 무거운 짐을 들고 올라가는게 힘들었지만 한면이 통창인 내부는 그리 나쁘지 않았다.
심지어 비양도가 바라다보이는 뷰에, 낮에도 밤에도 멋지고도 멋진 제주바다를 볼 수 있어서 나쁘지 않았다.
호텔급 숙소를 원하는 분들에게는 추천할 수 없지만, 비양도와 바다뷰+통창을 원하는 분들에겐 가격대비 합리적인 숙소가 될 수 있을거라 생각한다.
1박에 9만원~10만원 내외.
6. 하루마무리는 산토리 하이볼이죠! <제주술집밥집홍대부부> 해물라면과 해물 국물떡볶이와 함께!
친구는 주 5회 라면을 먹을정도로 라면을 사랑한다. 요즘 엄청나게 노력해서 주2회로 줄였다고는 하는데 모든 음식에 끝을 컵라면으로 할만큼 라면을 사랑하는 아이다. 협재를 걷다가 라면냄새를 맡았다. 생라면파인 나는 라면을 사먹는 일은 거의없다. 끓여먹는일도 거의없다. 부찌에 들어가는 라면은 한두젓가락 먹지만.
anyway 첫날저녁은 면 lover 친구를 위해 라면을 먹자고 제안했고, 친구는 본인동생이 협재에서 한달살이할때 자주갔다던 라면집을 기억해냈고 그렇게 홍대부부에 가게됐다. 하이볼에 떡볶이! 제주에서의 첫날 저녁치고 다소 소박한 경향이 없진 않지만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뜰테니까 눈뜨자마자 먹을 준비가 되어 있으니 이정도로 마무리를 했다. 아! 이곳에는 남자두분만 계셨는데 가게 이름이 왜 #홍대부부 인가 생각했다. 두분이 부부일수도 있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