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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읽는 헤드헌터 May 01. 2023

우리 심령의 <법궤>에는
무엇이 들어있습니까?

양평중앙성결교회 4월 설교요약


4월 한달간 이윤영 목사님 설교를 들으면서 성경의 인물과 사물, 나무는 모두 나를 가르킨다는 부분, 

'빛나지 않는 자리에서 묵묵히 내일을 하는 것의 의미'에 대해 생각해보게 됐다. 

열매 맺는 나무가 되어야 한다는 것, 

지성소로 들어갈 수 있게 진심을 다해야 한다는 것, 

심령의 법궤에 돈과 재물이 아니라 십계명을 넣어야한다는 것.

이번달에도 좋은 말씀을 많이 들었다. 

들은대로 행해야할텐데, 하는 걱정하며 지난달 양평 중앙 성결교회 이윤영 목사님 말씀을 요약해본다. 




말라버린 무화과나무 (막 11:20-24)

이스라엘을 대표하는 두가지 과일나무가 있다. 무화과나무 & 포도나무!



무화과나무는 꽃이 없이 열매를 맺는 특징이 있다. 잎이 나오면서 작은 열매를 맺는다.
무화과에 잎사귀는 무성한데 열매가 없다는 뜻은, 말은 앞서는데 결실이 없는 나를 가르쳐주는 거다. 천국 저축 소유자가 되라는 뜻이다. 보화를 만들 시가에 보화를 만들지 못하면 천국에서 누릴게 없다. 어린열매를 맺지 못하면 수확철에 기근을 당한다. 시공간 삶은 짧고 유한하다. 영원한 세계 천국은 한계가 없다. 익은 열매, 상받는 것이 많아지도록 노력해야한다.

세상에는 두 종류의 무화과나무같은 성도가 있다.
첫째, 무화과나무는 영광스러운 나무고 탁월한 나무로 칭찬받는 나무다. 그 자체만으로 하나님의 영광+사랑을 마음껏 받을 수 있는 나무다. 만약에 이 나무가 산속에 있었다면? 예수님이 예루살렘 입성하는 시기에 예수님만나서 열매맺을 시기에 열매 맺지 못해 저주를 받았다. 산속에 있었다면 열매를 맺든 못맺든 예수님과 상관이 없었을텐데. 나무의 가치를 아는 자들은 무화과나무가 되어, 길가에심겨져, 예수를 만난것이 최대의 가치인데 그 가치를 모르고 넘어갈 수 있다.

무화과나무가 된것을 원망하는 신자와 감사하는 신자로 나뉜다. 이런 벚꽃피는날 하필이면 주일에 교회와야하고 원망하는 사람들도 있다. 무화과나무가 되고, 길가에 심겨지고, 칭찬받을 수 있다는 것에 축복으로 여기고 감사하다고 여기는 사람은 예수를 만나 성령충만한 받고, 천국에서 나에게 주실 분깃을 누릴 기쁨으로 귀한 역사가 이루어질 것이다.

열매맺을때 주신 기회를 놓치고, 은혜말씀을 소멸하지말고 시공간 육신의 삶에서 천국열매 맺는자로살아가야한다. 자격이 있어서 무화과나무로 삼아준게 아니다. 하나님이 구원받아야할때 열매맺어 구원받게 하려고 생명선에 태워주셨다. 마지막 추수때 열매 거둬야 할때 빈털털이 되게 하지 않으려고, 하늘나라 분깃을 내리시려고 이 일들을 이루어가신다. 이 확신과 기쁨이 모두에게 있기를!


내가 열매맺는 무화과나무로 살고있습니까?
잎만 무성한 무화과나무로 살고 있는건 아닙니까?
열매를 거두시고, 그 열매가 상이 되는 섭리가 있습니다.
<잎은 무성한되 열매가 없구나 하지 않고 잎도 있는데 열매도 가득 열렸구나>
할 수 이도록, 나중에 결실맺을 수 있는 힘있는 부유한 우리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





엠마오로 내려가는 사람들 (눅24:13-23)

성경에 나오는 모든 사람, 사물, 조건, 환경, 동물 모두 나를 가르킨다. 

엠마오로 내려가는 두사람중 한사람은 글로바고 나머지 한 사람은? 바로 나다.

엠마오로 간다는 것의 의미는 첫째, 예수님을 버리고 간다는 뜻이다.  예수가 이스라엘을 속량할 자라고 바랐는데, 힘 한번 쓰지못하고 로마군대에 잡혀가서 십자가에 목박혀 죽게된 것을 봤다. 그런데 그런 예수가 살아났다? 기쁘기보다 충격을 받았다. 왜냐하면 그럴일이 없기 때문이다. 예루살렘에 남아있다가는 붙잡혀 죽을 것 같으니 예수님을 피해 엠마오로 도망가는 길이다.

글로바와 함께 가는자? 바로내 모습이다.

하나님뜻 구하지 않으면 내뜻과 목적을 이루려고 하는 기대치가 생기는데 그 기대치는 주님마음에 합당하지 않고 내욕심으로 인해 생긴 것이다. 주님과 단일된 신앙을 이루지 않은 체 “기도했는데” “예수믿었는데”하면서 불신의 마음을 갖기도 한다.

중요한 것은 예수님을 떠나지말고. 등지지도 말고, 바라봐야 한다. 예루살람에 안에 거하기를 힘쓰면 평강과 형통의 복, 임마누엘의 복이 임한다.


엠마오로 간다는 것의 두번째 의미는, 여인들의 말을 믿지 않았다는 뜻이다. 갈릴리, 엠마오로 내려가는 자들은 여인들의 말을 천래의 음성으로 듣지않고 하는 행동이다. 엠마오로 내려가는 우리에게 주님이 찾아오신다. 왜? 예수님을 등지고 엠마오로 내려가서는 안되기 때문에 친히 주님이 찾아오신다. 우리는 엠마오로 내려가지말고 예루살렘으로 향하는 사람(신앙의 자리를 지키는 믿음의 사람)이 되어야 한다. 



시공간이 전부가 아니다.
영의 눈이 열린자가 되고, 진리의 말씀을 듣고 심령이 뜨거운 자가 되어
생명의 길 가는 자 되게 하시려고 오늘도 찾아오시어
우리를 간섭하고 은혜를 베풀어주는 그의 은혜를 충만하게 덧입는
하나님 친권자 되기를 바란다.








지성소로 들어가는 사람

성전은 성소와 지성소로 나뉘는데 지성소는 속죄일에 한번 제사장만 지성소에 들어갈 수 있다. 

성전구조는 상기 그림처럼 성전밖에 이방인의 뜰+ 성소마당으로 되어있다. 


[시131:1] 여호와여 내 마음이 교만하지 아니하고 내 눈이 오만하지 아니하오며 내가 큰 일과 감당하지 못할 놀라운 일을 하려고 힘쓰지 아니하나이다

[시편 120-130편] 성소에 올라가며 드리는 노래, 기도다.

이방인의 뜰에 머무는 사람들
예수/구원을 믿지 못하고 허송세월을 보내는 사람들을 의미한다
성소마당 (이스라엘 뜰에 머무는 사람들)
성전뜰만 드나드는 외식/형식적인 사람들이 많다. 모이기를 폐하는 것은 말세의 분위기다. 내 심령속에 가식/형식적인 요소를 가지고 살때가 많다. 몸은 나오는데, 마음은 다른데 있는 모습들이 성전뜰을 밟는 사람들이다. 성전뜰만 밟는 사람이 되지말고, 왜 예수님을 믿게 해주었는가, 왜 하나님의 자녀로 삼아주셨는가. 하나님 섭리를 따라 바른신앙을 이루어 가는 사람이 되어 성전뜰만 오는 사람이 아니라 성소 안에 들어와, 지성소까지 파고 드는 믿음의 사람이 되기 바란다.
성소에 출입하는 사람들
예배/기도/헌금/봉사도 하는데 진리에 피동되지 않고 사람의 생각/주장대로 하는 사람들. 성전의 주인 예수님의 뜻이 아닌 자기뜻대로 자기 일을 이루어가는 사람들. 한 달란트를 받은 사람처럼 행동하는사람들. 하나로 둘을 만들고,다섯을 가지고 열을만들지 못하고. 더 많은 하늘나라 상급쌓을 수 있는 기회와 책임이 있는데그것을 놓치는 사람들이다. 천국은 내가 상상할수없는, 내가 이룬만큼 얼마든지 누릴 수 있는 곳이다.
지성소를 출입하는 사람들
안식을 지키는 사람들이 지성소에 출입한다. 안식일은 쉬는날이 아니라 생명 살리는 날이다. 주 하나님의 의중을 정확히 알고 시중드는 사람들. 나를 구원하신 하나님의 뜻을 묻고, 뜻대로 살아가려는 사람들. 우리 주인되신 하나님은 나를 시공간에 보내면서 어떤 마음으로, 어떤 일을 하기를 원하실까? 하나님의 말씀이 목사님앞에시중들어질때 바른말씀 시중들면 거기에 순종하는 사람들이다. 들려오는 말씀 흩뜨리지 않고 새김질한다. 지성소는 하나님 임재하는 곳. 성도들이 하나님 임재하는 지성소에서 흘러나오는 말씀에 흠뻑젖어야 한다. 이게 바로 지성소에 출입하는 성도들이다. 남을 고치거나, 자기 자랑을 하지 않는다. 남을 보는것이 아니라 나를 봅니다. 내속에 잘못된 것을 보고 내가 곁길로 간것을 보고 회개에인색하지 않게 사는 사람들이다. 매일의 삶이 감사다!


교회,직장,가정 등 모든일을 하나님의 일을 하듯이 하십시오.
하나님의 뜻 가운데 거하고, 하나님의 인도하에 하는 일이 되게 해달라고
기도하면 그 일은 하나님의 일이 됩니다.
직분은 하늘의 상 쌓으라고 주신 것이지 자랑하거나 자만하게 만드는 계급이 아닙니다. 다윗은 교만하지 않고 높은 곳을 바라보지 않았습니다.
내마음대로 일하지 않고 하나님의 일을 하며,
자기가 감당할수없는 일을 하는게 아니라 하나님께 기도하여
하나님이 일할수있는 방편을 만드는 여러분들 되시기를 기도합니다.





법궤안에 들어있는 것 (출 37:1-9)

법궤안에는 3가지가 들어있다. 십계명, 아론의 싹난 지팡이, 만나 항아리.

십계명은 1계명을 잘 지키는 사람이 나중것 지키기 더 쉽다. 

1계명은,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두지말라는 것. 

성경말씀은 법궤에 담아야 하는데 이 시대에는 법궤가 없다. 

내 심령의 법궤에 하나님 말씀을 넣어두어야 한다. 

내 심령의 법궤에는 뭐가 들어있는가? 

재물, 근심이 있지 않나? 

내 심령의 법궤에도 십계명을 넣어야 한다. 새김질을 해야한다. 

아있는 하나님 말씀이 내 심장속에서 살아서 쿵쿵 뛰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 말씀을 영접하는게 아니다.



하나님 말씀 십계명이 우리의 심령의 법궤에 온저히 새겨져셔,
내영혼이 날마다 소생하는,
하나님 말씀이 우리에게 열매맺는 귀한 삶되기를
기도합니다.






..

.

.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고 

아무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로다 

(고후 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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