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오가 떠났다.

2023년 8월

by 책읽는 헤드헌터
2023년 8월 엄마의 일기




8월 31일

갑자기 레오가 떠났다.

슬픈 일이다.

밥도 잘 먹고 펄펄 뛰던 개가 어쩐 일인지


9월 1일

레오집만 보면 속상하다.




2023년 8월 마지막날, 31일. 레오가 세상을 떠났다.

그날은 목요일이었고, 여느때와 다름없이 회사에 출근해서 엘레나랑 점심을 먹고 좋아하는 아몬드 라떼 한잔을 들고 봉은사를 산책하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사무실에 막 앉아서 업무를 시작하려던 찰나였다.


큰언니의 전화를 받고 알았다.

평상시에도 가끔 업무시간 상관없이 전화를 걸어오는 큰언니이기에 그날도 대수롭지 않게 전화를 받았는데, 언니가 대뜸 " 너 괜찮아?"하고 물어왔다.


"내가 안 괜찮을게 뭘까, 나 방금 부대찌개 맛있게 먹고왔는데 왜?" 라고 되물었더니 언니가 말했다.

"레오가 죽었잖아"


오후 한시 반 이었다.


레오가 죽다니?

그 소식이 너무도 비현실적으로 들렸던 것은 지난주일만해도 맛있는것도 주고, 월1회 먹이는 심장사상충 약도 먹이고 고양이가 지나가면 컹컹 짖어대고 밥 더 달라고 귀를 나풀나풀거리며 껑충껑충 뛰어놀던 건강한 아이였기 때문이었다.


아직 겨우 다섯살인 우리 레오가 이렇게 빨리, 그렇게 갑작스럽게 죽을 이유가 없었다.

레오가 죽다니?


그러나 우리 가족은 그런 일로 한창 업무시간에 일보고 있을 내게 장난을 칠 사람들이 아니다.

그제서야 사태를 파악하고 가족 단체톡을 확인했더니 이미 빳빳하게 굳어있는 레오 사체가 눈에 들어왔다.


그길로 바로 짐을 챙겨서 회사를 나와, 집에 들러 양평으로 향했다.

어떻게 무슨 연유로 그 아까운 생명을 잃었는지 내가 간다해도 알수는 없겠지만 우리 레오 가는 마지막 길에 내가 없다면 너무도 슬플테니까. 삐용형부가 퇴근후, 달려와서 묻어주겠지만 그 옆을 내가 지켜야 하니까. 무작정 짐을 쌌다.


회사 엘베를 타고 내려가는 길에, 전철을 타고 집에 가는길에 43세가 된 여자사람이 엉엉 우는 모습을 사람들이 신기하게 바라봤다. 그러거나 말거나 그들의 시선이 중요한 게 아니니까.

차를 타고 레오가 죽어 있는 집으로 가면서 계속 생각했다. 왜 죽었을까. 언제 죽었을까. 수요일밤이었을까. 목요일 새벽이었을까. 어디가 아팠을까. 많이 아팠을까. 왜죽었을까. 지나가는 나쁜 사람인 나쁜걸 준걸 먹고 죽었을까. 그럼 심바와 탄이는 왜 아무렇지 않을까. 엄마가 줬다는 양념갈비가 문제였을까. 그럼 심바와 탄이는 왜 멀쩡할까. 진드기때문일까? 진드기 약도 먹였는데. 고구마를 먹고 체했을까? 늘 물도 넉넉하게 주었는데. 왜 죽었을까, 대체 왜.

대체 왜.


평소라면 한시간이면 가는 거리를 돌고 돌아, 한시간 반이 걸려 집에 도착했다.

죽어있는 레오의 모습을 조금이라도 늦게, 나중에 확인하고 싶었다.


도착해보니 아주예쁘게, 아주 얌전히 레오가 바닥에 누워있었다.

그걸 슬픈눈으로 지켜봐주고 있는 탄이도 보였다.

심바는 아무것도 모르는지 여느때처럼 포효하며 나를 반겨준다.


우리 레오는 내가 왔을때 절대로 저렇게 등돌리고 누워잠들어있는 아이가 아니다.

두 귀를 펄럭펄럭 나부끼며 겅중겅중뛰면서 소리도 지르고 손으로 나를 문지르고 핥고 밥을 주면 허겁지걱 우걱우걱 경쾌하게 먹어치우고 물그릇에 물을 채워주면 손과 발을 담그면서 물장난을 치는,

잠시도 가만히 있지 않는 장난꾸러기다. 한창 먹는게 좋고 노는게 좋은 다섯살 리트리버.


내게서 등을 돌리고 얌전히 누워있는 레오를 보고, 또한번 깨달았다.

우리 레오가 진짜로, 진짜로 죽었구나.

우리 까망이도 저렇게, 저기서, 2012년 더운 여름날 무지개 다리를 건넜었는데.




사랑하는 우리 레오가 차가운 흙바닥에 누워있는게 싫어서

햇살 비치는 잔디밭으로 데리고 나왔다. 파리들이 레오곁에 몰려들었는데 레오는 그들을 쫓아낼 수조차 없었따. 레오의 표정을 보니 무언가 꽤 고통을 참았던 것 처럼 괴로워보였다. 이를 앙다문, 악문 채로 잠든 우리 레오.


우리 강아지들에게 무슨일이 생기면 언제 어디서나 제일먼저 나타나는 삐용형부

오후 다섯시의 햇살이 쏟아지고, 여섯시가 조금 넘자 일을 끝내자마자 부리나케 달려온 형부가 가져온 포대자루에 고이 레오를 담아, 삽 하나를 들고 아빠 산소가 있는 산으로 갔다. 말없이 나도 형부와 레오가 가는 그 길을 따라갔다.

언젠가 까망이를 데리고 갔던 그길. 11년만의 일이로구나.


아빠 산소 가는길에, 까망이 무덤 맞은편에 레오의 자리를 마련해주었다.

감정표현에 서툰 형부는 슬프고 속상할텐데 아무 감정도 없는 사람처럼 기계적으로 무덤을 파고, 레오를 묻고, 우리를 떠나갔다. 형부가 데려온 아이였고, 형부의 애정이 남달랐기에 나도 뭐라 할말이 없었고 괜찮냐고 물을수도 없었다. 다만, 지켜주지 못해 미안했다.


그런데, 왜 하필 그날 그시간이었을까. 내가 있었더라면 내가 먼저 발견했더라면 병원이라도 데려갔을텐데. 한낮의 뜨거운 여름낮도 아니고 하필이면 8월의 마지막 밤...산깊은 땅속은 왠지 우리 레오에게 너무도 추울것만 같은데. 너무 오래 이곳에 있지말고, 빨리 무지개 다리 건너갔으면 좋겠다. 여기 미련두지말고 되도록 빠르게.


나는 형부가 레오를 묻는 동안 그 기도만을 드렸다.



레오와 제일 많은 시간을 보낸 우리 엄마

내 슬픔에 빠져서 미처 보지 못했는데 엄마가 안방에서 고개를 떨구고 내 눈치를 봤다. 내년이면 여든살이 되는 우리 엄마. 막내딸이 매주 내려와서 끔찍히 보살피는 레오가 죽었는데. 그게 왠지 당신탓만 같은지 고개를 푹 숙이고 성질 더러운 막내딸이 대체 뭘 먹인거냐며 추궁할거라 예상하고, 곧이어 쏟아부을 비난의 화살을 맞을 준비를 하고 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나도 까망이가 떠난 후 11년이라는 세월동안 좀 자랐다. 레오가 떠난게 슬프지만 그건 누구의 탓도 아니었고 우리 엄마의 탓은 더더욱 아니기에 엄마를 탓하지 않았다. 그리고, 나는 겨우 주말을 함께할 뿐이지만 매일 물주고 밥주고 똥치우고 레오를 귀여워하기도했다가 말안듣는다고 구박도하면서 이런저런 정이 더 많이 쌓인건 오히려 엄마였던 것 같다. 하루 절반 이상을 거실 의자에 앉아 마당만 바라보는 엄마. 엄마의 소일거리라곤 밖을 내다보는게 전분데 그 밖엔 항상 레오가 있었다. 택배 기사가 와도 짖지 않는다고, 레오가 보이질 않아서 아침이 너무 허전하다고,고양이가 지나가는거 택배가 온거 누군가 집에 오는걸 레오가 짖는걸 통해 알았는데 이제 아무도 짖지 않고 너무도 허전하다고 개를 좋아하지도 않았는데, 엄마는 레오를 그리워하며 슬퍼했다.


"엄마. 엄마덕에 레오가 행복하게 귀여움 받다 간거야. 엄마가 몸도 불편한데 비오면 우산쓰고 눈오면 넘어질세라 조심조심 밥도 주고 물도 채워주고 똥도 치워주고 그게 어디 쉬워? 건강한 사람도 매일하기 어려운데 엄마 대단해. 엄마가 레오 여태까지 길른거야. 지 명이 거기까진걸 어떻게 하겠어. 너무 슬퍼하지말고 자책하지마. 명이, 짧았나봐 레오는.그래도 사는동안 사랑 듬뿍 받으며 잘 살았잖아 엄마. 잘 보내주자"


레오가 떠났다는 소식을 듣고 여기저기 전화가 걸려올때마다 신경을 곤두세우며 행여라도 본인 잘못이라고 하는 사람이 있을까싶어 온신경을 곤두세운 우리 엄마를 이틀동안 자주 안아주었다.

엄마가 레오를 참 잘 보살펴줬다고 위로하면서.


“엄마. 언젠가는 엄마가 돌아가셨다는 소식도 듣게되는 그런날이 오겠지? 그날도 내가 제일 먼저 달려올테니까 너무 무서워하지마. 엄마 오래오래 건강해엄마랑 보내는 매주 즐겁게 지내서 나중에 후회남지 않도록 해야지. 매일매일 소중하게 생각할께. 레오처럼 갑자기 떠니면 절대안돼. 나한테 꼭 꼭 전화해야돼 엄마“



잘가, 레오

귀엽고 사랑스럽고 착하고 순하고 똑똑하고 맘넓었던 우리 레오.

언제나처럼 두귀 펄럭이며 신나게 무지개 다리 잘 건넜기를 그곳에서 아프지말고 평안하기를 기도할께.




2023년 8월 31일.

영문도 모른체 우리 레오가 세상을 떠났다. 지난 주일만해도 서울로 떠나는 나를 섭섭해하며 컹컹짖고 까불던 아이였는데 믿기지가 않는다. 마지막일줄 알았다면 한번 더 쓰다듬어 주며 인사했을텐데. 한번 더 산책시켜줬을텐데….할 수 있었는데 하지 않았던 일들과 돌이킬 수 없는 지난 날들이 모두 후회로 남는다.

언젠가 이런날이 올거라는 걸 미리 알았기때문에
이미 겪어봐서 잘 알았기 때문에
매주 후회없이 잘해주려고 노력했지만, 시골집 마당한켠에서 무료해하고 따분해하고 늘 배고파하는 레오를 충분히 만족시켜주지는 못했다.

우리 가족의 귀여움을 독차지했던, 레오. 점프하며 포효하고 눈뜨지마자 배고프다고 밥달라 컹컹대는우리 레오의 부재가 너무도 어색하고 이상하고 슬프다. 더 잘해주지 못해서, 많이 놀아주지 못해서 너무너무 미안하고, 그러나 함께하는 동안 많이 사랑했고, 맛있는 것 하나라도 더 주고 싶어서 매주 만나러 왔던 나의 마음을 레오가 알았으리라 믿는다. 수영하는거 좋아하는 레오를 위해 작은 물놀이통을 여름마다 만들어주었던 나의 작은 정성도 알았을거라 믿는다.

차가운 흙바닥에 너무 오래있지말고 할머니. 아빠. 까망이. 맥이 너를 기다리는 그곳으로 빨리 가길. 장난꾸러기 우리 강레오. 밥 너무 허겁지겁 빨리먹지말고 좋아하는 수영 많이하고 평안히 잘 지내다 다시 만나자. 꼭.

* 강 레오 (2018-2023)


https://www.youtube.com/watch?v=6VZgWjAsBhA&t=99s



에필로그.

엄마는 심바와 탄이는 짖지 않는 개라고 탓하면서 잘 짖었던 레오를 계속 그리워했다. 그러면서도 레오 닮고 잘 짓는 또다른 개를 데려오는 것에는 극구 반대했다. 이렇게 오래 기르고 정든 애가 떠나는 걸 보는게 본인은 너무도 끔찍한 기억이라면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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