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Jennifer Holic

<이선균>이 죽음으로
지켜낸 것들에 대해서

by 책읽는 헤드헌터






한 인기배우가 마약의혹 관련하여 경찰수사를 받으면서 유흥업소 여성과의 관계가 알려져 온갖 모독적인 쓰레기 같은 기사 속에서 괴로워하게 된다. 최대한 담담하게 자신에게 닥친 절망스러운 위기를 극복해나가려고 수사에 협조하며 자신의 의견을 항변하며 필요하다면 거짓말탐지기를 사용하자고 적극적인 제안을 하던 중, 그 인기배우가 유흥업소 여성과 나눈, 날것 그대로의 대화가 공중파 뉴스를 통해 전국적으로 까발려진다. 그것도 프라임 타임에. 마약 의혹 사건이 발생한 최초의 날로부터 두달가까이 괴로운 시간을 잘 극복했지만, 공중파를 통해 녹취록이 공개된 직후 2023년 12월 27일, 그 인기배우는 자살을 결심한다. 그리고 이내 배우의 시신이 인근 공원에서 발견된다.




나는 아직도 믿기지가 않는다. 이선균이 고인이 되었다는 사실이. 평소 이선균이란 배우에 대해 대단할 정도로 팬심이 있었다거나 이선균 빠는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몇몇 죽음은 오랫동안 슬픔으로 남는다. 마왕의 죽음이 그러했고, 노통의 죽음이 그러했듯이.


이선균은 자신의 죽음으로, 이 사회에 가장 강력한 질문 하나를 남겼다. “우리는 한 인간을 어디까지 짓밟을 것인가?” 선정적인 보도, 확인되지 않은 의혹, 클릭 수를 위한 자극적 소비. 우리가 그의 죽음을 마주하며 느끼는 슬픔은, 어쩌면 그를 죽음으로 몰고 간 사회적 시스템에 대한 자각에서 비롯된 것일지도 모른다. 이선균의 죽음은 우리가 외면해왔던 사회적 윤리와 언론의 책임에 대해 다시금 돌아보게 한다.


정치적 선호도를 떠나서 조국과 조국 가족에 가해진 무자비한 언론의 공격과 노통에 대한 언론의 조롱은 어떠했는가. 안타깝고 애석하게도 배우 이선균은 생을 마감했지만, 그의 죽음은 결코 끝이 아니었다.

그는 말없이, 그러나 처절하게 많은 것들을 지켜냈다. 가족, 배우로서의 명예, 인간으로서의 존엄, 그리고 우리가 잃어버린 공동체의 양심. 그의 죽음을 헛되이 하지 않기 위해 우리는 반복적이고 비슷한 사안 앞에서 어떤 태도를 취하는 게 좋을까?




생각해 볼 말들


고인에 대한 내사 단계의 수사 보도가 과연 국민의 알권리를 위한 공익적 목적에서 이루어졌다고 말할 수 있는가. 대중문화예술인이라는 이유로 개인의 사생활을 부각하여 선정적인 보도를 한 것은 아닌가. 대중문화예술인이라는 이유로 고인을 포토라인에 세울 것을 경찰측에 무리하게 요청한 사실은 없었는가.

혐의사실과 동떨어진 사적 대화에 관한 고인의 음성을 보도에 포함한 KBS는 공영방송의 명예를 걸고 오로지 국민의 알권리를 위한 보도였다고 확신할 수 있는가. KBS를 포함한 모든 언론 및 미디어는 보도 목적에 부합하지 않는 기사 내용을 조속히 삭제하기 바란다.

대중문화예술인이 대중의 인기에 기반할 수밖에 없다는 점을 이용하여 악의적으로 검증되지 않은 소스를 흘리거나 충분한 취재나 확인절차 없이 이슈화에만 급급한 일부 유튜버를 포함한 황색언론들, 이른바 ‘사이버 렉카’의 병폐에 대해 우리는 언제까지 침묵해야 하는가.

_가수 윤종신_



나는 알고 싶지 않아요.

이선균이라는 배우가 20대 유흥업소 실장과 어떤 관계였는지. 그건 그사람의 사생활이에요.

그건 그 사람과 그사람의 배우자의 일이지 나랑은 아무 상관이 없고 알고 싶지 않아요.

그런데 공영방송이, 그녹취록을 프라임타임 뉴스에 틀었고요.

저는 이선균씨가 마약을 안했다고 보는데, 마약을 서로 모르고 복용했거나 알고 복용했다 하더라도 그 사람이 나를 헤친건 없어요. 그 사람이 그렇게 열몇시간 조사를 받고 나와서 승용차 문을 잠그고 그 안에서 연탄을 피우기까지 그 과정에서 자기 인생과 가족에 대해서 했을법한 생각이 있잖아요.

그것때문에 저는 좀 고통스러웠어요. 그런 모독적인 쓰레기같은 기사를 썼던 기자들도 죽으라고 그러진 않았을거에요. 그러나 그들이 죽인거거든요. 돈벌려고 기사 쓴거잖아요. 분노의 감정이 올라오는데 여기에 사로잡히면 내가 불행해지는거죠. 조용히 그가 떠난길이 그래도 덜 고통스러웠기를 인간대 인간으로 바래보는거고요 그렇게 살아가는 거죠. 세상은 우리가 알필요도 없고 알권리도 없는 것들을 언론의 자유라는 명목으로 우리에게 갖다 먹여요. 아무 근거없는 온갖 흉악한것들, 가치가 없는 것들은 쓰지말아야죠. 근데 기자들이 그걸 다 실어나르잖아요.

_어느 라디오 진행자의 의견이다. 그에 대한 호불호+편견이 있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아 편견없이 봐주었으면해서 이름은 생략하기로 한다_



조국과 그 가족을 둘러싼 보도는 세월호 보도만큼 심각했다.

일방적으로 검찰에 의존했다는 측면에서 그렇다. 발품을 팔아서 사실 검증을 하는 취재보다는 단독 빨리 달기 위해 노력했다. 검찰의 이데올로기를 확증 편향하는 데 언론이 한몫했다.

조국 전 장관 자녀에 대한 의혹제기 보도는 많았지만 해명 보도는 거의 없었다. 반면 검찰 측 해명 보도는 총알 같았다. 11시간 압수수색이 아니다, 짜장면이 아닌 백반을 먹었다 등이다.

결론적으로 의미 있는 분수령이 될 것이다. 기존 언론의 몰락이다. 신뢰도를 잃었다. 무게 중심은 SNS로 가는 한 계기가 될 듯하다. 한 사례가 김경록 PB가 인터뷰 요청을 기성 언론이 아닌 유튜브에 했다는 것이다. 미투 보도 당시에 피해자들은 JTBC로 갔는데 이번엔 달랐다. (중략)

검찰이 '여론 재판'을 한다는 게 문제다. 검찰이 수사를 발표할 때도 언론은 검찰의 발표 내용만 받아쓰지, 상대측의 반론은 거의 반영하지 않는다. 검찰의 기소 행위가 사실을 확증하는 게 아니다. 하나의 주장일 뿐이다. 특히, 특수부의 수사는 고소고발보다는 인지사건에서 출발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오판의 위험성도 그만큼 크다. 2012년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대검 중수부가 기소한 사건의 대법원 무죄율은 무려 24.1%였다. 대검 중수부가 반부패수사부로 바뀌고, 특수부로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기자, 검사 누구도 이에 대해 반성하지 않았다. 여론 재판으로 인권을 침해해 놓고 인사상 불이익도 받지 않는다. 2008년 PD수첩을 수사했던 검사, 정연주 전 KBS사장을 수사했던 검사는 모두 승진했다. 검사들은 사건의 유·무죄가 중요한 게 아니라 ‘기소’하는 행위가 중요하다고 하더라. 검찰은 기소로 KBS 사장을 끌어내렸고 PD수첩 제작진을 기소해 당시 촛불집회를 진정시켰다"

_박건식 MBC PD_



600년 동안 한국에서 부귀영화를 누리고자 하는 사람은 모두 권력에 줄을 서서 손바닥을 비비고 머리를 조아려야 했습니다. 그저 밥이나 먹고 살고 싶으면 세상에서 어떤 부정이 저질러져도 어떤 불의가 눈 앞에서 벌어지고 있어도 강자가 부당하게 약자를 짓밟고 있어도 모른척하고 고개숙이고 외면했습니다.

눈 감고 귀를 막고 비굴한 삶을 사는 사람만이 목숨을 부지하면서 밥이라도 먹고 살 수 있었던 우리 600년의 역사!! 제 어머니가 제게 남겨 주었던 제 가훈은 "야 이놈아. 모난 돌이 정 맞는다. 계란으로 바위치기다. 바람부는 대로 물결치는 대로 눈치보며 살아라." 80년대, 시위하다가 감옥 간 우리의... 정의롭고 혈기 넘치는 우리 젊은 아이들에게 그 어머니들이 간곡히 간곡히 타일렀던 그들의 가훈 역시 "야 이놈아. 계란으로 바위치기다. 고만 둬라. 너는 뒤로 빠져라." 이 비겁한 교훈을 가르쳐야했던 우리 600년의 역사, 이 역사를 청산해야 합니다. 권력에 맞서서 당당하게 권력을 한 번 쟁취하는 우리의 역사가 이루어져야만이 이제 비로소 우리의 젊은이들이 떳떳하게 정의를 얘기할 수 있고 떳떳하게 불의에 맞설 수 있는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 낼 수 있습니다.

_대한민국 16대 대통령 노무현_




에필로그

'언젠가는 그의 죽음에 대해 글을 남겨놓아야지' 하다가 1년이라는 시간이 훌쩍 지났다.

38도까지 온도가 올라간 어느 여름, 그 글을 발행해본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조승우>와 함께한 21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