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고 걷고 쉬고 걷고 걷기걷... 아 그만....
@1. 고양이 울음소리가 이렇게 다양하다고?
이튿날 아침 철석같이 맞춰놓은 알람에 일어날 줄 알았다. 하지만 우리는 알람소리가 아닌 이상한 울음소리에 잠에서 깼다. 꽥 같기도 뷁 혹은 웩 같기도 한 이상한 울음소리는 바로 숙소의 고양이들에게서 나는 소리였다. 처음 들었다 이런 울음소리는 뭔가 되게 이질적이었다. 그리고 고양이의 바로 다음행동에서 한 번 더 당황을 했다. 우리 숙소는 바닷바람을 마음껏 쐘 수 있도록 문에 이중 잠금장치 방충망과 하나의 중문이 더 있는 구조였는데 이 고양이 녀석들이 중문을 열고 방충망을 톡토독 하며 건들고 있는 게 아닌가. 꼭 문을 열어달란 의사표시를 하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 느낌은 점점 정답임을 확신했다.
이렇게 사람에게 친근하게 구는 길냥이들은 본 적이 없다. 특히 서울에서는. 아마 내게서는 강아지 냄새가 났을 수 도 있었을테고 서울에서의 길냥이들의 삶은 녹녹지 않기 때문일지도 모르겠으나 강아지만 십수 년 키워오던 내 입장에선 뭔가 말캉하고 보드라운 느낌을 가득 지닌 고양이들이 굉장히 낯설지만 좋았다.
@2. 향일암으로 향하는 그 길
고양이들의 귀여운 알람에 애교에 한참 넋을 놓고 함께 노닥거리다 우린 여수 일정 중 꼭 한 번은 방문하고자 했던 향일암으로 가기 위해 부랴부랴 준비를 했다.
이번 여행은 언니도 그리고 나도 그냥 마음을 좀 내려놓고 쉬러 가는 의미의 여행이었기에 따로 여행 계획을 세우지 않았다. (여담이지만, 내 MBTI는 ISTJ이며, J가 90%이다.) 그렇게 여유롭게 차창밖의 바람을 맞으며 '어 여기 이쁘다 저기 괜찮은데?' 싶은 곳에서 죄다 쉬면서 이동을 했다. 여유 그 자체였다.
퇴사를 앞둔 언니는 사람에 지쳐있던 상태였고, 막댕이를 먼저 강아지별로 여행을 보낸 슬픔과 새로운 사업을 시작하고있던 나는 모든 것에 쉼이 필요한 상태였는데 이 날 하루는 정말 그냥 우리를 위해 시간이 흐르는 것 같았다. 괜찮다고 조금은 쉬어가도 된다고 말이다.
@3. 이윽고 도착
향일암에 도착해 많이 걸을 것을 대비해 신발이며 옷을 재정비하고 길을 나섰다. 주차장에서 한참을 걸었지만 향일암의 입구는 왜 아직 나오지 않는 것이냐며 우리 제대로 가는 거 맞냐며 웃고 떠드는 사이 매표소의 지붕이 언덕 위로 빼꼼하게 보였다. 사실 매표소까지 향하는 언덕을 오르며 조금 지친 상태였지만 기왕 여기까지 왔는데, 목표는 이루어야지 않겠냐며 우리는 호기롭게 입장을 위한 티켓을 구매했다. 향일암으로 가는 길은 결코 편하지만은 않을것을 미리 알려주기라도 하는 듯 매표서 옆쪽으로 꼭 하늘을 향해 쭉 뻗어 있는 듯 한 계단을 보고서 우린 잠시 멈칫했다. 향일암이 절벽에 위치한 절이란 건 알았지만 시작부터 이런다고? 순간 내 동공지진을 느낀 언니가 한 마디 건냈다. 우리 체력에 쉽지 않겠다고 말이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그래도 이왕 올라보기로 했으니 서두르지 않기로 했다. 한 계단 한 계단씩 오르며 더위가 올 때쯤 쉬어가며, 동자승 동상이랑 사진도 찍어가며 숲과 꽃들을 구경하며 그렇게 언니와 함께 이런저런 이야기를 많이 나눌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길은 신비하고도 감탄이 나왔다. 자연적으로 기울어져 있는 돌과 돌 사이의 길을 지나 거대하게 그늘을 만들어 주고 있는 나무를 둘러가야 했고 담장으로 막혀져 있는 미로같은 길을 걸으며 꼭 던전속으로 모험을 떠니는 기분이었다. 구불구불 이어지던 자연의 길을 빠져나오자마자 펼쳐지던 파랗다 못해 푸른 바다와 하늘은 콱 막혀있던 마음까지 뻥 뚫어주는 기분이었다. 힘들긴 했지만 역시나 오길 잘했다 생각들었다.
향일암을 방문하면서도 몰랐던 사실이 하나 있는데 향일암은 지방문화재 제40호로 낙산사의 홍련암, 남해 금산 보리암, 강화도 보문사와 함께 한국의 4대 관음기도처 중 하나라고 한다.
뭐 이제라도 알았으니 다음에 방문할 땐 더 차분한 마음으로 방문할 수 있지 않으리-
@4. 경후식도 가끔은 괜찮다
향일암 구경을 끝내고 우린 슬슬 배가 고팠다. 그도 그렇지 아침조차 먹지 않은 공복에 때아닌 유산소운동을 한 꼴이었다. 향일암 안에는 간단하게 매점과 허기를 때울 수 있는 가게들이 있었지만 우린 참았다. 마침 향일암으로 향하던 중 우연하게 발견한 갈치조림집을 가기 위해 서였다. 은은하게 풍기는 간식거리의 냄새를 뿌리치기 힘들었지만 꾹 참고 갈치조림을 생각하며 하산하던 우리의 눈앞에 도저히 피하지 못할 냄새가 코를 자극했다. 바로 여수 돌 갓김치 냄새!! 밥 한공기만 있으면 진짜 그 자리에서 서서 밥 한 공기를 뚝딱 할 정도로 아찔 한 냄새였다. 게다가 우린 그 맛을 알고 있었다. 아니 알아버렸다가 맞는 말 일 것 같다. 바로 어제 먹었던 돌문어와 갓김치의 삼합의 맛을 잊지 못했기 때문이다. 아는 맛이 무섭다는걸 실감할 수 있었다.
그 맛을 잊지 못한 우리는 고민을 할 것도 없이 구매를 결정했고 여러 가게들 중 가장 적극적으로 판촉을 하시던 아주머니가 계신 가게로 향했다.
우리는 시식을 해보고싶었다. 불안스러웠기 때문이다. 어제 먹었던 그 맛이 아니면 어쩔까, 입맛에 맞지 않거나 맛이 없으면 어쩔까 싶어서.. 우리의 우물쭈물함을 느꼈던 아주머니께서 먼저 시식을 해보라고 하시며 적극적으로 나서주셨다. 그게 그렇게 고마울 수 없었다. 맛 하나는 자신 있다고 하시며 갓김치 한 줄씩을 둘둘말아 입속에 넣아주셨다. 그리고는 막걸리까지 한 잔 가득 나눠 주셨다. 참.. 맛있더라 아니지 맛있겠더라... 갓김치도 갓김치지만 그 한 잔의 막걸리가 어찌나 맛있어보이던지.. 하지만 운전병인 내겐 그림의 떡이었다. (또르르..ㅜ)
아주머니가 큼지막하게 말아준 갓김치는 정말 맛있었다. 더 이상의 말이 필요 없었고 우린 바로 결제를 했다. 나는 10kg를 언니는 본집과 올케네로 나눠 각 5kg를 그렇게 알찬 쇼핑을 했다며 언니와 나는 서로를 칭찬하기 바빳다. 후에 들은 이야기인데 언니네 올케가 갓김치가 너무 맛있다며 따로 주문배달해 먹는다고 한다.(여러분 여기 맛있어요 찐이예요.)
@5. 무작정 찾아간 그곳
갓김치를 뿌듯하게 구매하고 찜해 둔 갈치조림집에 도착했다. 늦은 점심시간이라 사람이 많지 않은 조용함이 딱 좋았고 깔끔하게 차려진 음식은 담백하니 맛있었다.
이번 여행은 뭔가 운이 좋았다. 무작정 차를 세워 방문한 해변은 너무 깨끗하고 조용한 해변이었고, 아주머니의 적극적임에 이끌려 구매를 결정했던 갓김치는 참 맛있었으며, 우연찮게 찜 해둔 갈치조림집은 나중에 알고 보니 동네 맛집이었다. 정말 무언가로부터 토닥토닥 위로받는 기분이었다.
@6. 인생샷 빠트릴 수 없지
이번 카페는 핫하다는 카페를 찾고 찾아 방문한 여수의 '모이핀'이란 곳 이었다. 언니와 나는 사진 찍는 걸 좋아한다. 그래서 여행온김에 인생샷 한 장 건져보자는 일념으로 방문했다. 물론 여수에는 많고 다양한 분위기를 가진 카페가 많지만, 우리의 목표는 모이핀에서만 찍을 수 있는 사진이었다. 모이핀은 바다쪽으로 통창과 유리 테라스를 품고 있는 카페라 대충찍어도 사진이 참 잘 나온다는 인생샷 맛집으로 알려져 있었다.
하지만 다양한 리뷰 속 우리가 매료되었던 장소에서 사진을 찍기란 참 쉽지 않았다. 이미 인생샷 명소로 소문이 나있는 곳이었기에 사진을 찍기 위해 30분 이상 줄을 서야 했고, 또 우린 사람들의 그 많은 눈들을 감당할 자신이 없었다. 극 I가 이럴때 힘을낸다.. 좀 들 힘내도 될텐데 말이다.
무튼, 그렇게 우리는 우리만의 분위기를 사진에 담고 소소하게 만족했다.
@7. 올 것이 왔다. 그녀의 도전!!
여수에 왔으니 케이블카는 한 번 타줘야 하는 거 아닌가. 하지만 진아언니는 높은 곳을 무서워한다.. 그것도 아주 많이.... 아마 크나큰 도전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언니도 후회는 하기 싫다며 과감히 도전을 외쳤다. 여수의 케이블카는 아래가 강화유리로 되어있는 케이블카와, 그렇지 않은 일반 케이블카가 있는데 용기를 낸 언니가 아래가 훤히 보이는 케이블카를 선택했다. 괜찮겠냐는 말을 두어번 건냈지만 언니는 괜찮다며 단호했다.
하지만, 예상대로 였다. 케이블카에 탑승 할 때 까지만 좋았다. 왜냐면, 이 언니가.. 케이블카가 출발을 하자마자 내가 딱 달라붙어서는 떨어지질 않았다. 케이블카가 흔들리지 않게 가만 있어달라고 요구하는 언니를 오른쪽에 끼고 나는 그저 동상처럼 앉아만 있었다. 언니의 애틋한 부탁이 조금 애초롭기 까지 했지만 한 편으론 놀리고 싶은 마음 가득이었다. 그래도 이렇게 도전을 한다는데 응원을 해줘야 하지 않겠는가- 나는 애써 웃음기 가득한 얼굴을 숨기고는 이내 언니를 다독여주었다. 하지만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산과 숲위를 지나던 케이블카가 바다위를 향하는 순간 무서워하던 언니가 조금씩 안정을 찾는 과정을 실시간으로 보았고 나는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 웃으면 안 되는걸 알지만 뭔가 귀엽기도 안쓰럽기도 한 편으론 대견하기도 했기 때문이다.
케이블카 안에서 시원한 바람과 함께 내려다본 여수의 밤 풍경은 알록달록 예쁘기도 했다. 꼭 크리스마스 트리를 보는 느낌이었다. 반환지점에서 간단한 산책정도만 하고 우린 이내 돌아왔다. 그도 그럴 것이 늦은 시각의 운행 마지막 케이블카 였기 때문이다.
다시 돌아온 우리는 케이블카에서도 유독 훤하게 밝고 굉장히 화려하던 곳이 궁금했다. 대략적인 위치를 짐작하며 지도 검색을 해보니 '낭만포차' 거리였고 하멜등대가 있는 곳이기도 했기에 숙소로 돌아가기 전 구경만 해보기로 했다. 왜냐 우리에겐 다른 계획이 있었으니 말이다. 거창하진 않은 계획이나 숙소에서의 막걸리 파티였다. 향일암에서 막걸리를 한 잔 맛본 언니의 적극적인 추천으로 계획 된 파티였다. 언니말로는 개도막걸리는 부드럽게 스르륵 마셔지고 맛도 고소하니 달큰하게 맛나다고 했다. 언니는 나보다도 더 강력한 알쓰다. 근데 이 언니가 맛있다고 극찬하는 막걸리라고? 그렇담 못 참지!!
@8. 현실은 소식좌 둘
개도막걸리를 끝내주게 마시기 위해 우린 안주를 사들였다. 마치 맥시멀리스트가 쇼핑하듯 넘치도록 많이.. 소식좌 둘이서 이래도 되나 싶었지만 막걸리 파티에 이성을 잃었던 것 같다. 둘이서 라면 한 개면 배부르다며 배를 통통 두들기며 널브러지는 우리는 여행만 오면 그렇게 먹을 거에 욕심을 부린다. 그렇게 고르고 고른 안주는 장군도만두와 바다김밥 한 박스 없으면 서운한 뜨끈한 국물을 우리에게 제공 해 줄 컵라면과 빠질 수 없는 딸기모찌 그리고 과자와 과자와 과자에... 파파버터빵 마지막 여수당의 아이스크림까지..(아니 이렇게 나열해서 적고 보니 정망 많기도 하네..) 그리고 대망의 개도막걸리를 구하기 위해 인터넷과 인스타그램을 엄청 서칭 했고 시장 안 마트에서 구할 수 있다는 정보를 토대로 개도막걸리까지 득템 한 우리는 그렇게 신나할 수 없었다. 이 짧은 시간에 턱과 광대가 아푸도록 웃었다.
숙소에 도착한 우리는 빠르게 환복을 하고 테이블 세팅을 마쳤다. 땀흘리며 종일 걸었던 하루였지만 씻는것도 미룰만큼 마음이 급했다. 막걸리를 마시고 싶은마음에 일사천리로 움직였다. 드디어 그렇게 맛있다고 찬양하던 막걸리를 잔을 부딪히고 한 모금 마신 순간 언니의 표현들을 백분 이해 할 수 있었고 우린 또 후회를 했다. 왜 두 병만 사 왔을까를...
어느덧 막걸리 두 병을 야무지게 비우고 함꼐 사온 맥주까지 비워낸 우리는 기분 좋게 올라오는 취기를 즐기며 상할 것 같은 음식들만 냉장고에 고이 넣어 정리해두고 기분좋게 하루를 마무리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