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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enny Mar 23. 2020

고생했어, 밤이야

집사의 흑역사와 밤이의 TNR

작년 이맘때쯤 그런 글을 썼다.

밤이랑 토리를 처음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였는데

둘 사이가 모자 관계로 보인다고.


그때는 밤이가 지금처럼 몸집도 크지 않았고

아직 어렸던 토리를 제 자식처럼 끼고 다니며

밥도 늘 먼저 양보하는 모습을 보였기 때문이다.


그러다 어느 날 알게 되었다.

밤이가 암컷이 아니라 수컷이라는 사실을(...-_-)

(물론 최근에 안 건 아니다.)

아니, 그렇게 오랫동안 고양이를 챙겼으면서 암수 구별도 못하냐고 할 사람도 있겠지만

애들을 밤에 보는 경우가 더 많아서 잘 보이지도 않았을뿐더러

낮에 본다한들 제대로 확인할 기회(?)가 없었다.

대략 몸집이나 행동, 성향 등으로 유추할 수 있기도 하지만

당시 밤이는 여러 면에서 암컷일 확률이 높아 보였다는 변명 아닌 변명을 해 본다.


그러다 점점 덩치가 커지고 토리와의 관계도 서먹해 보여서

설마? 했는데 역시나 녀석은 수컷이 맞았다.

사실을 처음 깨달았을 땐 몹시 당혹스러웠지만

한편으로는 밤이가 수컷이라 다행이란 생각도 들었다.

그때는 토리만 수술을 시켜서 밤이가 또 새끼를 배면 어쩌나 하는 걱정 뿐이었으니까.


매번 제 새끼 잘 챙기는 기특한 어미라며 밤이의 모성애(?)를 칭찬한 바보 집사의 흑역사라고나 할까(...)


지난주에 올해 첫 TNR을 진행했고, 드디어 밤이가 수술을 받게 됐다.

하루 동안 밥을 굶어서인지 식탐 많은 녀석이 포획틀을 놓자마자 들어가서 맘이 좀 아프긴 했지만

밤이는 그날 저녁에 바로 수술을 받았고, 다음날 같은 곳에 방사해줬다.


그러나 밤이는 이틀 동안 놓아둔 밥도 먹지 않았고, 흔적도 없이 자취를 감췄다.

나는 속이 바싹 타들어갔다.

마음 아프더라도 공존을 위한 TNR이 필요하다고 보는 입장이라 매년 진행하고 있지만

잡혔던 두려운 기억 때문에 녀석이 원래 있던 곳으로 영영 돌아오지 않으면 어쩌나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그동안 생각했던 것보다 더, 녀석에게 정을 쏟았던 것 같다.

마취하고 누워있던 사진을 보고 새벽에 눈물 콧물 다 쏟으며 울었던 내 맘을 알았을까.

3일이 지나자 밤이가 익숙한 소리와 함께 나타나 주었다.

얼마나 굶었는지 컥컥 대며 사료와 캔을 먹어치우는 모습에 맘이 짠했지만

잘 견뎌주고 이렇게 다시 찾아와 준 녀석이 너무나 고맙다.

많이 놀라고 무서웠을 텐데 고생했다, 밤이야.

앞으로도 건강하게 잘 살자.

그리고 비록 예전 일이지만 암컷으로 오해해서 미안.


이번에 병원에서 밤이가 2살 추정이라고 했는데 그럼 작년에는 밤이도 고작 1살이었다는 얘기가 된다. 자기도 어리면서 더 어린 토리를 잘 돌봐준 밤이는 착한 어른 고양이였구나.

어쩐지 속은(?) 기분이 들지만 -

이제와 생각해 보니 둘은 무슨 관계였을지 새삼 의문이다.

아빠 고양이라고 하기에도 어딘가 좀 납득이 가질 않아서...

(*참고로  녀석은 전처럼 붙어 다니지 않지만 지금도  지내는 편이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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