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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니 Feb 05. 2024

콩나물 머리를 떼면 300만 원을 드립니다.

저는 무작정 길을 걷는 것을 좋아해요.

한 번은 친구와 길을 걸으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만약에'라는 게임이 나왔어요. 그런 거 있잖아요, "만약에~" 이러면서 상상하는 게임이요. 제가 친구한테 물었어요.

" 사랑아, 만약에 너는 부잣집에서 콩나물 머리만 떼면서 한 달에 300만 원을 준다고 하면 할 거야? "

" 훔 글쎄? 안 할 거 같은데, 너는? "

" 나도 안 할 거야. 뭔가 그건 너무 재미가 없잖아. "


저때는 제 스스로가 만족할 수 있는 월급이 300만 원이어서 300만 원을 예시로 든 것 같아요.

사실 은연중 답이 정해진 질문이었던 건지, 아니면 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었던 건지,

그건 잘 모르겠지만 저랑 친구 둘 다, 부잣집에서 콩나물 머리만 떼는 일은 하지 않기로 했어요.


그것은 바로 둘 다 인생에서 콩나물을 떼는 일에서 의미를 찾지 못했기 때문이었죠.

 아무런 목적도, 의미도 없는 일이니 하지 않겠다는 거였어요.


그런데 있잖아요, 만일 관점을 다르게 본다면 이야기는 달라질 수 있다고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만일 '콩나물 머리 떼는 일'을 그저 하나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으로 본다면? 인생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즉 콩나물을 떼며 300만 원을 받고, 그 300만 원이란 돈으로 인생의 목적을 달성한다면, 그렇다면 콩나물 머리를 떼는 일이 누군가에겐 의미가 있는 일이 될 수도 있을까?

콩나물 머리를 떼는 행위 자체에서 삶의 의미를 찾지는 못하지만 콩나물을 떼는 일을 함으로써 받는 300만 원으로 삶의 목적을 달성하고 의미를 찾을 수 있을까?라는 것이었죠.




인생에서 목적은 정말 여러 갈래인 것 같아요. 직업적으로 성공하고 싶은 사람, 행복한 가정을 꾸리고 싶은 사람, 다양한 경험을 하면서 시간을 보내고 싶은 사람,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사람을 웃게 하기 위해 자신의 여생을 보내고 싶은 사람 등 말이에요. 누구나 목적이 있고 꿈이 있잖아요. 그리고 그 꿈이란 거창한 게 아니에요. 자신이 바라는 삶 모든 것이 자신의 목적, 꿈이 되는 것이죠. 물론 그 꿈이라는 게 직업적인 것에만 해당되는 것도 아니구요. 언젠가 필리핀 세부에서 고래를 보는 것, 언젠가 유명한 가수가 되는 것, 좋은 배우자를 만나 아침에 같이 커피를 마시며 잠을 깨는 것, 자신의 반려견에게 최고급 사료를 먹여주는 것. 모두 각자의 인생의 목적이 있어요. 단기적일 수도, 장기적일 수도, 엄청나게 어마어마한 것일 수도, 엄청나게 소소한 것일 수도 있구요. 이렇게 자신이 갖고 있는 인생의 목적을 다른 사람이 무어라 할 수 있을까요? 만약 직업적 성공이 인생의 목적인 사람이 좋은 배우자를 만나는 것이 인생의 목적인 사람에게 너는 왜 그렇게 일에 열정이 없냐고 한다면, 그것은 너도 자신과 똑같은 직업적 성공을 인생의 목적으로 가지고 살라고, 그게 맞다고 말하는 것과 같아요. 자신에게는 직업적 성공이 정답이지만 , 그것이 상대방에게 똑같이 적용되지는 않으니까요. 맞아요. 그래서 다른 사람에게 자신의 인생의 목적을 정답이라고 말하면 안 돼요. 그것은 상대방에게는 정답이 아니니까요.




그런데 인생의 꿈이, 목적이 콩나물을 떼는 행위, 그 자체인 사람이 있을까요? 이해가 안 될 수도 있어요. 분명 타인의 인생의 목적에 대해 무엇이 정답이라고 단언하면 안 된다며? 라고 생각할 수도 있어요. 제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각각의 인생의 목적은 존중하지만 과연 콩나물을 떼는 행위를 인생의 목적으로 두는 사람이 있을까? 하는 의구심인 거예요. 만일 그렇다는 사람이 있다면 그 또한 존중해야겠지만요. 돈 걱정 없이 사는 것이 인생의 목적인 사람이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콩나물 머리를 뗀다면, 그 사람의 삶의 목적은 콩나물 머리를 떼는 것이 아닌 '돈 걱정 없이 사는 것'인 거죠.


그렇다면 콩나물 머리를 떼는 사람들은 어떤 삶의 목적을 가지고 있을까요?

그건 바로 나라는 사람보다 중요한 가치가 있을 때가 아닐까요? 인생의 목적이 '나'라는 사람보다 더 중요해서 비록 나의 행위가 의미 있지 않더라도 괜찮을 때 말이에요.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들더라구요. 현재 저의 목적은 다양하고 새로운 경험을 하며 많이 부딪치는 것인데 , 제가 아는 그 사람의 인생의 목적은 지금 제 인생의 목적과 다를 것 같다는 생각이요. 만약 그 사람에게 300만 원을 줄 테니 부잣집에서 콩나물을 떼라고 하면 그 사람은 어떤 선택을 할까요? 물론 그 사람의 생각을 들어본 적은 없기에 확신할 수는 없지만요, 하지만 듣자마자 싫다고 할 저와는 달리 그 사람은 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만약에 말이에요. 만약에 그 사람이 콩나물 머리를 뗀다 하더라도 말이에요. 저는 그 사람이, 그리고 다른 모든 사람들이 인생의 목적을 위해 너무 오랜 기간 콩나물 머리를 떼지 않았으면 해요. 목적을 달성함에 있어서 잠깐은 괜찮을 수 있지만 오랫동안 '나'라는 사람이 제외된다면 그 상황에 무뎌지고 익숙해져 어느새 '나'를 찾기란 쉽지 않을 수도 있잖아요. 그러면 너무 슬프잖아요.

만약에 말이에요. 지금껏 계속 콩나물을 떼고 있었더라면 말이에요. 이제부터라도 의미 있는 행위들이 그 사람의 목적보다 우선시되면 좋겠어요. '나'라는 사람이 하는 행위를 인생의 목적보다 우선시하면 좋겠어요. '그 사람' 자신이 인생의 목적보다 우선시 되면 좋겠어요.

제가 아는 그 사람말이에요. 짐작을 해보자면 그 사람 인생의 목적은 가족이 먹고 싶은 것을 먹고, 하고 싶은 것을 하도록 하는 것이 아닐까 싶어요. '가족의 누리는 경제적 자유'가 그 사람의 목적인 것이죠. 하지만 저는 그 사람이 그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더라도 괜찮다고 생각해요. 물론 그 사람은 아니겠지만요.


만약에 말이에요. 여러분들은 콩나물 머리를 떼는 일을 300만 원을 준다면 할 것인가요?  


(댓글을 환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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