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이란 무엇일까요, 철학을 배우다 보면 죽음에 관한 수많은 세계관이 있잖아요. 도깨비(드라마)에서는 죽으면 무로 돌아가고, 코코(영화)에서는 죽음 뒤에 또 다른 세계가 펼쳐지고 말이에요. 죽은 사람이 우리를 찾아와 가끔 꿈에 나타난 다는 것은 무로 돌아가진 않았다는 건데, 그렇다면 죽고 난 뒤 그 사람은 도대체 어디서 뭘 먹고 사는지, 뭘 먹긴 하는지, 생각해 보면 죽은 사람에게 사냐는 표현은 모순적이긴 하네요..
산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그냥 숨을 쉬고 하루를 보내는 것이 그에 비하면 삶이라고 할 수 있는 건가요? 죽음과 대비되는 단어를 찾는다면 그것이 숨을 쉬는 것이 삶일 수 있겠지만 그 의미를 확장한다면 삶이란 단순한 숨쉬기는 아니겠죠. 그저 사는 것을 삶이라 하진 않을 것이니,, 물론 아니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요. 늘 반박은 있을 거고 저는 이런 모든 반박에 대처할 수 있는 사람은 아닐 거예요. 동시에 할 수 없는 생각이 있고 그게 바로 가치관일 것이니까요.
요새 전 '그 찬란한 빛들, 모두 사라진다 해도'라는 책을 읽고, 밥 먹으면서는 '서른아홉'이라는 드라마를 보고 있어요. 어쩌다 보니 둘 다 삶과 죽음에 연관된 이야기더라구요. 물론 아직 둘 다 끝까지 보진 않았고 중간쯤 봤어요. 두 주인공 모두 암에 걸렸고 시한부를 선고받았는데, 죽음을 인식한 남은 생을 보낸다는 점에서 두 개의 이야기는 비슷하다고 할 수도 있답니다. 그렇다면 왜 저는 이런 스토리들을 골랐을까요? 그건 그냥 우연이었어요. 서른아홉은 그냥 제목이 끌려서, 책은 삶과 죽음에 대해 읽어보고 싶어서였거든요. 최근 두 작품을 보다 보니 자연스레 죽음에 대해 생각하게 되더라고요. 죽음을 앞둔 사람들의 마음은 어떨까, 죽음을 앞둔 사람들은 어떤 행동을 할까, 어떤 생각을 할까, 죽음을 앞둔 사람들이 돌아보는 후회는 무엇일까. 그 사람들이 하는 후회라면 정말 새겨야 할 것 같아서요. 근데 웃기게도 두 작품 다 후회하지 않더라고요, 짧은 인생이었지만 잘살았다고, 후회하지 않는다고 하는거에요. 저는 왜 무조건 후회할 거라고 생각했는지.. 그건 모르겠어요. 그럼 후회하지 않는 인생을 살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할까요? 어떤 삶이 후회하지 않는 삶일까요? 죽음이란 무엇일까요? 너무 멀리 있는 존재는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래서 더더욱 의미 있는 삶을 살아야겠다고 느끼는 요즘인 것 같아요. 근데 그 의미 있는 삶이란 무엇인지, 그 삶을 알기 위해선 어디서부터 생각해야 하는지, 정말 감이 안 오는 것 같아요.
이건 온전한 제 숙제인데, 숙제가 너무 많은 것 같아요. 확실한 건 미룰수록 힘들다는 것.. 이런 생각을 미루면 미룰수록 정말 힘들거든요. 진짜 인생의 숙제예요. 1장도 안 끝났는데, 그다음 날 또 숙제를 주고, 그다음 날 또 다른 숙제를 주고, 근데 끝낸 건 하나도 없는 , 아니면 끝냈는데도 계속 물밀듯 들어오는 끝없는 숙제 같아요. 학원숙제 같은 거 할 때 말이에요. 가장 많이 들은 게 그냥 빨리 답만 내리지 말고 과정을 다 쓰라고, 과정을 써야 틀려도 어디서 틀렸는지 알지 않냐고, 물론 그 말을 저도 아는데 너무 귀찮아서 암산으로 답을 내릴 때가 많았어요. 삶은 어떻게 살아야 할지, 빠르게 답을 내린다고 풀리는 숙제는 아닐 거예요. 귀찮더라도 과정을 써야겠죠. 그리고 힘들더라도 생각해야겠죠. 돌고 돌아 제가 처음에 했던 생각으로 돌아온다해도, 생각을 함으로써 제 생각은 더 단단해지고 힘이 생긴다고 믿거든요.
1. 의미 있는 삶의 정의 내리기
2. 내가 정의 내린 삶을 살기 위한 방안 마련하기
3. 이 과정을 게을리하지 않기..
제가 무서운 것은 어느새 제가 계속 조급해하고, 제 숙제를 풀지 못한 채, 보이지 않는 무언가에 끌려다니는 인생을 살까 봐 그게 조금 두려운 것 같아요. 저는 제가 원하는 삶을 살고 싶은데, 제가 원하는 삶이 무엇인지도 알지 못한 채 삶을 살고 있으면 어떡하지 하는 두려움 말이에요. 돌고 돌아 제가 살고 있던 삶이 제가 원했던 삶이었다 하더라도, 제가 그것을 알지 못한 채 살고 있었다면 그때 온전한 행복과 감사함을 느끼기는 어렵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거든요. 또한 만약 제가 원하지 않는 삶을 살고 있었다면 그 나름대로에서 오는 헛헛함도 있을 테니.. 그런데 아직도 답을 찾지 못했답니다. 어쩌면 저는 없는 답을 찾고 있는 건지, 잘못된 우물을 파고 있는 건지, 누가 알려줬으면 좋겠는데, 이럴 때면 인생의 어른을 만나고 싶다는 생각이 강하게 드는 것 같아요. 그런 분들의 생각을 듣는 건 저보다 앞서 간 한 사람의 인생을 더 듣는 거니까요. 예전에는 그게 도움이 된다고는 생각 못했는데 요즘엔 이런 고민을 할 때면 누군가의 인생을 엿보고 싶을 때가 많은 것 같아요.
제가 살고 있는 주변이 이런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대한민국의 템포가 너무 빨라진 것 같아요. 느린 사람은 살아남기 힘든 대한민국이랄까요? 제가 도태되거나 세상을 포기하지 않는 이상 빨라져야 하는 것 같아요. 항상 저도 그들과 합류하고 싶어 걷지만 가끔은 이 걸음과 생각조차 숨이 차고 답답하다고 느낄 때도 있거든요. 육각형인간,, 좋은 단어는 아닌 것 같아요. 모순적이게도 저 또한 육각형인간이 되고 싶지만 말이죠. 육각형인간이 되지 못할 바에야 아예 다 그만둬버리고 싶을 때도 있어요. 완벽하고 싶은 저와 모든 걸 다 내려놓고 싶은 욕구가 항상 존재해요. 하긴, 이건 모두가 똑같겠죠? :)
이 복잡하고 빠른 대한민국에서 사는 것은 정말 쉽지 않은 것 같아요. 대한민국의 템포를 음악 볼륨소리 줄이듯 줄일 수 있는 거였다면 참 좋았겠지만 그럴 수 없으니깐요. 다 같이 빨라질 수는 있어도 다 같이 느려질 수는 없나 봐요. 지금 생각해 보면 고장 난 그 템포버튼에 등장한 느린 템포가 코로나였던 것 같기도 해요. 근데 그렇다고 코로나가 있어 좋았나 싶으면 그것은 또 아니었으니, 코로나와 같은 템포버튼이 아닌 서서히 다 같이 느려지는 템포버튼이 있었으면... 좋겠네요. 가끔은 필요하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