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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구별여행자 Dec 09. 2022

위험을 감내하라!

호주의 놀이터 문화


“엄마, 조금만 더 놀다가요” 호주 여행을 하며 아이들이 가장 오랫동안 머문 곳은 그 유명하다는 오페라하우스, 블루마운틴 등의 관광지가 아닌 바로 동네 놀. 이. 터였다. 그렇게 2주 동안 놀이터 원정대가 된 우리는 매일 잠자리에 들기 전 다음날 가볼 놀이터를 검색하는 것이 큰 일과였다. 10시간을 날라 여기까지 왔는데 고작 놀이터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이곳의 놀이터를 경험해본 육아맘들은 알 것이다. 한국의 놀이터에서는 볼 수 없는 스펙터클한 놀이기구들과 그 옆으로 펼쳐지는 드넓은 공원, 거기다 비치까지 조성되어 있는 곳. 뛰어노느라 여념이 없는 아이들과 커피 한잔 들고 자연을 만끽하는 엄마들. 상상만으로도 행복한 장면은 실제 호주에서 펼쳐지는 일상이다. 내면의 깊은 곳에서 엄마미소가 절로 나온다.




한국에서라고 일상은 다르지 않다. 아이들은 하원 후 바로 집으로 들어가는 법이 없다. 매일같이 집 앞 놀이터에서 한두 시간은 더 뛰어놀아야 직성이 풀린다. 그러고도 더 놀지 못한 아쉬움에 발이 떨어지지 않는다. 사실 더 놀릴 수도 있으나 문제는 우리 집 첫째 열 살 언니의 견딜 수 없는 지루함이다. 또래 친구는 찾아볼 수도 없고 이제 단순한 그네, 미끄럼틀, 시소 3종 세트는 시시하기 그지없다. 결국 첫째 눈치를 살피고 살피다 어쩔 수 없이 나머지 아이들을 놀이 중간에 집으로 데리고 가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그녀는 호주의 놀이터에서 완전히 물 만난 물고기다. 어느 놀이터를 가든지 수준별 놀이기구가 구비되어 있어 우리 집 삼 남매 모두에게 안성맞춤이다. 사실 처음 놀이터를 보며 들었던 생각은 “위험하겠는데..”였다. 그도 그럴 것이 아이들 곁을 맴돌며 지켜보는 동양인들은 누가 봐도 한국인이다. 어쩔 수 없는 K-아줌마다.

긴 줄이 거미줄처럼 어지럽게 연결되어 있는 놀이기구는 마치 그물로 만든 성 같았다. 위로 갈수록 점점 좁아지는 형태의 거미줄에 아이들은 꼭대기까지 겁 없이 오른다. 나는 발이 빠질까 봐 조마조마한데 아이들은 균형을 잡고 오르내리며 거꾸로 매달리기도 척척 잘한다. 그 옆에 있는 미끄럼틀은 하늘에 닿을 듯한데 계단이 없다. 밧줄을 타거나 암벽을 타고 올라가 거의 수직으로 꺾여있는 미끄럼틀을 단숨에 타고 내려온다. 신기한 것은 다치는 아이들이 없다는 것이다. 오히려 끊이지 않는 아이들의 웃음소리만 있을 뿐이다.

브리즈번 사우스뱅크 놀이터


계속 지켜보니 아이들은 어느 정도의 위험을 스스로 감내하며 그 상황에서 자기 자신을 지킨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스스로 해냈다는 성취감이 아이들을 다시 도전하게 만든다.

한국의 놀이터는 어떠한가? 그네, 미끄럼틀, 시소, 간혹 징검다리나 철봉이 있는 놀이터가 있으나 정형화되어 있는 곳이 대부분이다. 어린아이들에게는 그마저도 천국이지만 초등학생 이상만 되어도 놀이터는 점점 시시한 곳이 되어버린다. 초등학생이 되면 학원 가느라 놀이터에서 놀 수 있는 시간이 없다고 하지만 실은 시간이 있어도 “재미”가 없어서 더 이상 놀이터에서는 놀지 않게 된다. 집 앞 놀이터에서는 한 번도 친구를 사귈 기회가 없던 첫째 아이는 이곳에서 여러 명의 또래들과 친구가 되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놀기도 했다. 이렇게 땀 흘리며 재미나게 놀 수 있는데 친구 한 명 찾기 힘든 놀이터에서 동생들 기다리며 심심한 시간을 보냈을 딸아이에게 괜스레 미안해지는 마음이 든다.




호주의 놀이터에서 아이들을 지켜보며 감히 이 아이들의 미래를 가늠해본다. 삶은 경험의 축적이라 하지 않았나. 위험을 감내하고 도전의 경험을 몸으로 맛본 아이들은 성인이 되어 삶의 고비가 찾아온다 해도 자신만의 노하우로 그 상황을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으리라. 또한 놀이를 통해 박진감과 긴장을 겪으며 동시에 무한한 상상력과 창의성을 아낌없이 발휘하며 놀아본 아이들의 미래는 밝을 수밖에 없다. 실제 영국의 놀이시설 안전기준(BSI)에는 '어린이는 놀이를 통해 위험에 대응하는 방법을 배울 필요가 있다'라고 강조한다.

실제 안전사고는 놀이기구 자체가 위험해서가 아니라 안전한 놀이기구를 바람직하지 않게 이용했을 때 일어나기 마련이다. 우리 아이들이 호주 놀이터에서 느꼈던 그 짜릿함과 도전의 성취감을 내 집 앞 놀이터에서도 경험할 수 있게 되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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