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제니 Jan 17. 2024

메이크업으로 맨땅에 헤딩한
프로덕트 디자이너

프로덕트 디자이너로서 새로운 비즈니스의 PMF를 찾아 나선 연대기

화해 재직 당시 작성했던 테크블로그 글을 가공해 재업로드한 글입니다.


입사 전 화해에 대해 알지 못했던 나에게도, 그리고 많은 사람들에게 화해는 스킨케어 제품 정보와 화장품 전 성분을 알려주는 서비스로 익숙해져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함께 일하는 PO와 나에게 메이크업 카테고리의 가치와 확장 가능성이 있는 아이템을 찾아 화해에서 론칭해야 하는 미션이 생겼다. 

밴드 결성 후 첫 회의록 캡처본

처음에 밴드*가 만들어졌을 때는 개발자 하나 없이 PO, UX 리서처, 그리고 프로덕트 디자이너인 나, 이렇게 3명뿐이었다.

*밴드 - 화해 내에서 목적 중심으로 PO, 제품디자이너, 개발자, 그리고 관련 부서 팀원들이 모여 만들어진 팀


가장 적은 수의 팀원들과 함께 제로베이스에서 해야 하는 상황이 막막했지만 그게 변명이 될 수 없기에 뭐라도 해보자는 마인드로 달리기 시작했다. 황무지에서 ‘맨땅에 헤딩하듯’ 시작한 과제가 2023년 전사 주요 계획이 되는 과정에서 프로덕트 디자이너가 어떤 기조로 일했는지 지금부터 소개하고자 한다.




아쉬워하지 말고 빠르게 목표를 향해


화해 팀은 노션을 팀/밴드마다 중요한 내용을 정리하는 목적으로 사용한다. 내가 속한 메이크업 밴드도 노션을 동일한 목적으로 사용했는데 우리 밴의 노션 페이지에는 업무 원칙이 가장 먼저 위치해 있었다. 여기에 기록된 모든 원칙이 중요했지만 밴드원들이 항상 마음에 새기고 가는 원칙이 있었다.


아쉬우니까, 내 자식 같으니까 하지 말고 안된다는 걸 빨리 인정하자


MVP*와 끊임없는 실험에 익숙해져야 하는 팀이 당연히 가져야 하는 마음가짐이지만, 개인적으로는 큰 도전이 되는 원칙이다. 시간을 들여서 디자인했는데 그걸 스스로 쓰레기통에 버려야 하는 순간을, 프로덕트 디자이너는 가능하다면 피하고 싶기 때문이다.

*MVP(Minimum Viable Product): 최소한의 기능을 구현한 제품


원칙이 말하고 있는 것처럼 나도 내 디자인이 일주일도 안 돼서 사라지는 경험을 했다. 이미지가 많이 포함된 로티(Lottie) 파일을 최적화하기 위해 며칠 동안 개발자들과 아웅다웅하며 출시했지만, 일주일이 지나도 기대했던 목표 지표가 나오지 않아 로티 파일이 포함된 실험 기능 자체를 오프 해버렸다. 노력이 담긴 디자인 결과물이 순식간에 사라지는 것을 보며, 자식을 보내는 것과 같은 마음이 처음 들었다.


신청하기 버튼을 누르는 비율이 2%도 채 되지 않아 오프 된 비운의 기능


하지만 이 과정을 통해 밴드의 목표를 무엇보다 중요하게 여기는 법을 배웠고, 실전에서 디자인을 진행하며 생각하는 시간을 간결하게 줄일 수 있게 됐다. 생각하는 시간이 길어지면 디자인에 애착이 생기고, 그 디자인을 버려야 하는 순간에도 마음속에 망설임과 다음 디자인을 잘 해낼 수 있느냐는 두려움에 빠지게 된다. 두려움을 느끼면 빠르게 달려 나가야 하는 팀에서 아이디어를 내는 데에 머뭇거리게 되고, 작업 속도가 더뎌지면서 동시에 나를 기다리고 있는 다른 팀원들의 속도에도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그런 마음을 과감히 버렸다.


새로운 사업에 집중하는 팀에서는 모두가 같은 목표에 공감하면서 함께 달려 나가는 속도가 매우 중요하다. 내가 만든 디자인이 버려지면 어떡하지 라는 고민 대신 어떤 아이디어를 시도했을 때 빠르게 검증해 볼 수 있을지, 또는 이런 아이디어를 같이 만들어보면 좋겠다는 고민을 할 때 더 즐겁게 일할 수 있다. 이렇게 속도에 적응하면서 자연스럽게 내가 목소리를 내야 하는 사용성에 대해서도 더 깊이 있는 목소리를 낼 수 있었다.




프로덕트 디자이너의 목소리를 내려면


메이크업 밴드는 새로운 비즈니스를 발굴하면서도 제품 개발 비용을 줄이기 위해 빠르게 실험하고 검증해 나가는 방법을 선택했다. 초기에는 화해에 이미 올라온 색조 제품 리뷰 중 퍼스널 컬러를 기재한 리뷰의 발색 사진을 모아 퍼스널 컬러 별로 사진을 볼 수 있는 MVP를 구현했다.


당시 처음 론칭했던 MVP 플로우


그리고 해당 기능을 볼 수 있는 실험군과 볼 수 없는 대조군을 나누어 어떤 그룹이 지정된 기간 동안 화해에서 색조 제품을 더 많이 조회하는지 A/B Testing*을 진행했다. 이후 과제에서도 사용자들이 어떤 기능을 이용하는지 지표를 통해 검증 후 정식으로 론칭했다. 이렇듯 메이크업 밴드는 유독 지표를 중요하게 보면서 정량적인 데이터를 매일매일 확인하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었다.

*A/B Testing : 두 가지 콘텐츠를 비교해 사용자가 더 높은 관심을 보이는 선택지를 확인하는 방법


지표에 따라 과제 순서가 바뀌거나 새로운 과제가 추가되기도 하다 보니 사용성은 우선순위에서 뒤로 밀리는 상황이 자주 발생했다. 이런 과정을 거치며 프로덕트 디자이너로서 두 가지를 다짐했다.

1. 밴드 구성원으로서 밴드 목표 달성을 가장 높은 우선순위로 두고 진행한다.
2. 프로덕트 디자이너로서 최소한의 사용성이 위협받으면 액션을 제안하고 실행한다.


디자이너의 욕심은 잠시 내려놓고 목표로 보고 있는 지표 상승에 더욱 집중해야 하는 시기가 있었다. 그럴 때면 개발자들과 플로우 차트를 보며 어떤 스펙은 뺄 수 있지만 어떤 스펙은 놓쳐선 안 되는지 토론하고, PO와 함께 PRD*를 보면서 어느 시기가 되면 사용성을 챙길 수 있을지 얘기를 나누기도 했었다.

*PRD - Product Requirement Document, 제품 요구 사항 문서

바쁜 시기에는 정말 QA 전날까지도 이렇게 스펙 변경을 논의할 때도 있었다


6개월간 다양한 실험과 검증을 거쳐 2022년 12월, 간편 발색 보기가 정식 기능으로 결정됐다. 기능을 고정으로 배포하기 전, 실험 단계일 때도 디자이너가 사용성에 대해 목소리를 내야 하는 순간이 찾아왔다.


당시 많은 실험들을 해야 했기 때문에 PO가 어느 정도 로드맵을 짠 후, 각 기능에 대한 기획서를 가지고 와서 디자이너인 나와 논의하는 단계가 팀의 일하는 방식의 첫 단계가 됐었다. 기획서를 봤을 때 사용자가 대거 이탈할 지점이 예상되거나, 시안을 만들면서 사용자가 기능을 의도대로 잘 사용할지 의심이 때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냈다.


“이게 최선일까요?” “아무리 최소 스펙을 가져간다고 하지만 이대로 나가면 사용자가 잘 사용할 수 있을까요?” “저희가 보려는 지표에도 영향이 있지 않을까요?”라는 질문을 계속해서 던졌다. 아무리 바빠도 최전방에서 사용자를 계속 생각해야 하는 프로덕트 디자이너가 목소리를 내지 못하면 결국 팀이 보는 지표에도 영향을 줄 수 있기에 주저하지 않았다.




검증과 사용성이란 두 마리 토끼를 잡으려면


내가 내는 의견에 대한 근거를 쌓기 위해 고객을 직접 만나 시안에 대해 검증을 진행했다. 메이크업 제품에 관심을 가지는 지인이나 함께 일하는 디자이너에게 프로토타입을 공유하고 의견을 들었다. 하지만 화해 사용자를 직접 만나 새로운 기능을 어떻게 사용하는지 듣고 어떻게 하면 더 많은 사람들이 간편 발색 보기 기능을 경험할 수 있을지 확인해보고 싶었다.


캐주얼 UT가 어떤 절차인지 한눈에 보고 싶다면 이 도표를 참고하면 된다


디자인하던 기능의 초안을 UX리서처에게 공유했을 때 다른 서비스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플로우가 아닐 것 같다는 의견을 주었고, 본격적으로 개발을 진행하기 전 사용자를 만나보기로 결정했다. 때마침 UX리서치 파트에서 프로덕트 디자이너가 모더레이터가 되어 유저를 직접 만나 사용성을 검증할 수 있는 캐주얼 UT 프로세스를 막 론칭했었다. 베타 기간이었지만 새로운 프로세스를 이용하기에 시기가 적절하다고 판단했고, 테스트를 진행하며 내가 디자인한 시안이 사용자에게 익숙하지 않은 UX라는 점을 확인했다.


같은 제품의 다른 호수, 비슷한 색감의 제품의 발색샷을 미리 볼 수 있는 기능을 디자인하고 있었다


다른 과제를 시작한 후에 캐주얼 UT를 진행했기 때문에 내 리소스를 추가로 사용해야 했다. 그래서 PO를 설득하고 이미 완성된 시안을 보던 개발팀에게 상황을 공유해야 했지만, 결국 처음 만든 시안에서 오히려 덜어낼 수 있는 지점을 찾아 경험을 단순화하고 개발 공수도 줄일 수 있었다. 해당 과제를 진행하며 지표를 우선적으로 보되, 그 지표를 움직이는 사용자를 미리 만나 기능에 대해 검증하는 과정이 필요하다는 걸 알게 됐다. 또 빠르게 달려 나가는 팀 안에서도 때로는 과제를 완료하는 속도보다 사용성을 더 고민하는 시간도 필요하다고 느끼게 됐다.


이 과제를 진행할 때 생각보다 시안을 빨리 넘길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안도하다가 마음 깊숙한 곳에서 이 디자인이 정말 최선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용자를 만나봐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동시에 팀원들을 설득하는데 드는 비용이 고민됐다. 내 시간을 투자하는 한이 있더라도 사용자를 최우선으로 생각해야 하고, 이 중요도를 팀 내에서 각인시키는 것 또한 내 업무임을 깨달았다.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는 프로덕트 디자이너들이 있다면 자신 있게 생각한 대로 실천하고 팀에 전파하라는 메시지를 꼭 전달하고 싶다.




황무지도 결국 싹을 틔우는 땅이었음을


어느새 시간이 흘러 간편 발색 기능을 필두로 우리 팀에서는 여러 실험을 통해 다양한 기능을 론칭하는 데 성공했다. 그리고 사용자 인터뷰를 하며 만난 사용자 중 일부는 관심 있는 메이크업 제품을 구매하기 전 발색 정보를 확인하기 위해 화해를 방문한다 응답했다. 지금은 화해에서 퇴사했지만 이 응답을 들었을 때를 잊을 수 없다. 힘든 만큼 보람도 느꼈고, 초과근무를 했던 모든 과정이 보답받는 것 같았다. 짜릿했다.


간편 발색 보기 기능의 변천사


신규 사업에 초점을 맞춘 팀에서, 특히 비즈니스의 초기 단계를 다루는 프로덕트 디자이너는 많은 욕심을 버려야 하고 타협을 밥 먹듯이 하게 된다. 프로덕트 디자이너로서 잘하고 있는지 의심이 들 때도 있었지만 최소한의 스펙으로 지표가 움직이는 경험을 했고, 그 지표는 단계별로 기능과 사용자 경험을 단단하게 쌓아 올리는 과정의 일부임을 잊지 않았다.


현재 황무지에서 내가 혹은 내 팀이 심은 씨앗이 언제 싹을 틔우나 기다리고 있는 디자이너가 이 글을 보고 있다면 이렇게 말을 전하고 싶다. 의심하지 말고 끊임없이 목소리를 내면 어느새 작아 보였던 내 의견이 자양분이 되어 기능이 싹을 틔우는 데에 도움을 준다고 말이다.


새로운 사업은 불확실성으로 가득하고 그 가운데서 디자이너는 위축될 수밖에 없지만 그럴 때마다 프로덕트 디자이너가 가장 잘할 수 있는 걸 선택해야 한다. 작은 싹을 틔운 밴드의 프로덕트 디자이너도 꽃을 피우기 위해, 더 큰 오아시스를 발견하기 위해 오늘도 빠르게 디자인을 만들고, 의견을 내고, 사용성에 대해 계속 팀원들에게 강조하면서 달려 나가고 있기 때문이다.

작가의 이전글 새로운 회사에 발 디딘 디자이너가 바라본 온보딩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