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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정은 Dec 14. 2019

제3 문화 어른

정체성에 관한 영원한 딜레마

제3 문화 아이: Third Culture Kid는 성장기의 상당 부분을 부모들의 문화 밖에서 보내는 사람이다. 어떤 문화에도 온전한 주권을 가지지 못하지만, 부모의 문화와 그 외의 문화 모두와 관계를 형성한다. 각 문화의 여러 요소가 삶의 체험에 동화되어 있지만, 소속감은 비슷한 배경을 가진 다른 이들과 맺는 관계 중에서 느낀다. (출처: 위키피디아)




나는 제3 문화 아이로 자랐다. 그 누구도 의도했던 것은 아니었다.



초등학생이었던 나는 커리어를 위해 미국에 가야 했던 아빠의 피부양자였을 뿐이었고, 당시에 우리 부모님은 그 몇 년간 미국에 살았던 게 자식들의 인생에 이렇게 막대한 영향을 끼치리라고는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중학교 때 다시 미국으로 유학을 가기로 한 나의 결정도, 당시에는 이렇게 나의 인생 전반에 큰 변화와 혼란을 줄 것이라고는 상상하지 못하였다. 그렇게 나는 인생의 크고 작은 결정들로 인하여 어쩌다 보니 제3 문화 아이로 자라게 되었다.


제3 문화 아이란 서류상의 국적과는 크게 상관이 없다. 예를 들어 성장기를 한국에서 보내고 성인이 되어 미국으로 이민을 간 사람은 Korean American, 즉 재미교포라는 구체적인 정체성을 갖게 되지만 제3 문화 아이라고 할 수 없다. 그들은 아주 확실하게 물리적 심적 고향이 한국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모든 조기 유학생들이 제3 문화 아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특히 어렸던 시절을 외국에서 몇 년 이상 보낸 사람이 다시 청소년기에 해외 유학을 가게 되면, 제3 문화 아이로 자라게 될 확률이 높다. 10년에 가까운 시간 동안, 기숙사가 문 닫는 1년에 두세 번은 한국에 꼭 들어가기에 한국 문화의 유행의 끈은 놓지 않으면서, 동시에 1년의 과반 기를 다른 문화권에서 보내기에 그 문화에서도 성장을 하게 된다. 좋게 설명을 하자면 양쪽 문화 모두 어느 정도 이해하지만, 나쁘게 설명을 하자면 이도 저도 아닌 독특한 제3의 문화에서 성장을 하게 되는 것이다.


미국에 살 때, 항상 나는 뼛속까지 한국인이라고 생각이 들었었다. 서류상 미국인이 아닌 나의 신분과 그들의 문화에 완전히 속할 수 없는 나의 뿌리가 나의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을 부각했다. 그래서 한국이 너무 가고 싶어 어렵게 얻은 취업비자와 멀쩡히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한국으로 이사를 했지만, 머지않아 나는 그리도 한국적인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한국에서의 나는 너무나도 한국적이지 않은 사람이었다. 미국인이나 교포라고 할 수는 없지만 10년이 넘는 세월 동안 나는 굉장히 미국인스러운 한국인이 되어있었다. 한국 사회에 들어간 제3 문화 아이인 나는 오히려 미국스러운 정체성이 더 부각되었다.


서류상의 나는 완전히 한국인인데도.


이도 저도 아닌, 제3의 정체성


그대로 계속 미국이나 한국에 살았었다면, 아마도 평생을 기름이 물에 둥둥 떠다니듯 사는 기분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신기하게도, 남편과 런던으로 이사 갔을 때, 오히려 미국도 한국도 아닌 제3의 나라인 영국에서 온전히 나 자신을 받아들일 수 있었다. 나와는 비교도 안될 정도로 여러 나라를 옮겨 다니며 성장한 사람들이 많았고, 나의 성장 과정이 별난 게 아니라는 점이 내 마음을 편안하게 했다. 모두가 달랐기에 모두가 평범했다.


"너는 어디서 왔어?"

"나는 한국인인데, 학창 시절을 포함해서 미국에 오래 살았어."

"나는 터키인인데, 프랑스에서 학교를 나오고 대학원 시절부터는 런던에 살고 있어."

"나는 그리스인인데, 나도 보딩스쿨부터 미국에서 나왔어."

"나는 프랑스인인데, 영국에 몇 년 전에 이사 왔어."


그들에게 국적이란, 여권이라는 종이조각 또는 비자 문제 등의 형식적인 것 외에는 큰 의미가 없어 보였다. 무지개 안의 한 색깔처럼, 출신은 각자의 개성일 뿐이라는 새로운 인식이 나에게 위안을 줬다.




그렇게 정체성이 애매모호한 내가 어른이 되어, 미국도 한국도 아닌 다른 나라 두 군데서 아이들을 키우고 있다. 나의 아이들은 한국인 부모 아래, 일본이라는 나라에서 영어를 쓰는 학교에 다니고 있다. 아이들의 학교에는 우리 아이들 못지않게 옮겨 다니며 여러 문화에 노출되어 자라고 있는 다양한 국적의 아이들이 있다. 이들은 과연 나중에 소속감을 어디서 느끼게 될까? 인터넷과 여러 매체의 발달로 문화의 경계가 허물어지고 있기는 하지만, 지금까지의 일반적인 상식으로는 누구에게나 소속감을 느끼게 하는 어떤 한 문화가 있는 법이었다. 그러나 제3 문화 아이들에게는 이 소속감을 느끼게 하는 문화가 하나가 아니라 여럿일 수도 있고, 그 어느 곳도 아닐 수도 있다.


나와 같이 제3 문화 아이로 성장한 수많은 어른들은 단 하나로 정의 내리기 어려운 정체성으로 인하여 완벽히 사회에 융화되지 못한 채, 글로벌 시대의 초기를 살아가고 있다. 하지만 점점 더 늘어나고 있는 제3 문화 어른들에 의해 앞으로는 문화적 gap들이 많이 메워질 것이다. 그리고 새로운 시대에는 이 어중간한 정체성이 내가 런던에서 경험했던 것처럼 조금 더 자연스러운 것이 될지도 모르겠다.



벨기에의 유명한 소설가 Georges Simenon(조르주 시므농)이 남긴 말이 있다:

 “I am at home everywhere, and nowhere. I am never a stranger and I never quite belong.”

모든 곳이 나의 집처럼 편하기도 하지만,  어느 곳도 집이 아니다. 나는 언제나 이방인은 아니지만,  어디에도 제대로 소속되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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