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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서고생 Apr 02. 2020

Table death

동물병원 인턴 성장일기

1

  동물병원에서 인턴생활을 시작한지 이제 한달이 지나간다. 수의사는 의사와 다르게 1년차, 2년차 라는 단어를 사용하며 지역 1차, 2차 동물병원에서 일한다. 단어만 다르지 생활은 인턴, 레저던트와 차이 나지 않는 것 같다. 전문의 타이틀을 받고 나오는 의사와 달리 버텨도 아무것도 떨어지지 않는 것만 빼면 말이다. 나는 이런 제도에 대해 회의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였다. 지식과 테크닉적인 측면때문에 인턴이라는 기간을 만들어 놓고 우릴 부려먹는다고 생각했다. 학문적인 완성도는 대학생활 6년 동안 쌓아놓았고 현장에서 사용하는 여러 혈액검사, 마취 기계들도 처음에만 사용하기 어려울 뿐이지 3개월이면 눈감고도 조절한다고 생각했다. 여러모로 사회는 불합리하다는 생각에 젖어가며 한달을 보냈다.


2

  내가 다니는 동물병원은 꽤 투자를 많이 하는 편이다. 학문적으로 새로운 방법도 시도하고 더 정확한 진단을 위해서 CT도 들여왔다. 특히 수술 할 때 사용하는 기계들은 사람병원에서 사용할 정도의 고가의 장비들로 안전한 마취를 가능하게 해준다. 요즘은 모두 호흡마취로 수술을 진행한다. 그래서 마취 중 호흡을 얼마나 잘 조절해주고 얼마나 민감하게 상태변화를 인식하느냐에 따라 동물의 생명을 가른다. 비싼 기계를 쓰는 이유다. 거기에 수술을 진행하는 수의사 이외에 수의사가 한명 더 붙어 마취 모니터링을 한다. 이중 안전장치다. 하지만 사실 기계를 워낙 좋은 걸 사용하기 때문에 마취를 보는 수의사는 딱히 할일이 없다. 선임 수의사와 함께 마취를 보러 들어가면 학교에서 배운 ECG파형과 EtCO2 체크와 같은건 다 기계가 해주기 때문에 난 여기서 무엇을 하고 있는가에 대한 고민을 하다 수술이 끝나면 수고하셨습니다를 외치고 열심히 붕대감고 나오는 날의 반복이였다.


3

  오늘은 폐엽 절제술이 예약되어 있는 날이였다. 간단히 폐엽 절제술은 어떻게 하는가에 대해 공부만 하고 수술을 들어갔다. 호흡마취를 하고 환자 상태를 안정시키는 중 혈압이 조금 낮다는 것만 빼면 모든것이 안정적이였다. 혈압 낮은 것도 강심제 CRI를 달고 들어가니 금방 돌아왔다. 저녁은 뭐먹지 라는 생각을 하며 선임수의사와 함께 마취를 보러 들어갔다. 혈압도 안정적이고 심박도 괜찮고 마취심도도 조절이 잘되는 빈틈 하나 없는 과정이였다. 그러다 일이 터졌다. 갑자기 이산화탄소 수치가 요동을 쳤다. 폐에서 기체교환이 제대로 안일어난다는 뜻이다. 산소 수치도 급격하게 떨어진다. 5분내에 원인을 찾아 해결해야 한다. 지체하면 뇌와 심장에 문제가 샌긴다. 삽관한 튜브의 문제인가? 문제가 없다. 산소 이상인가? 문제가 없다. 폐 절제는 아직 시작도 안했다. 내가 아는 범위 내에서 모두 정상이다. 하지만 심박이 떨리고 혈압이 떨어지면서 환자는 죽어가고 있었다. 머리가 하얘졌다.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4

 Death on table : 수술대 위에서 환자가 사망하는 결과를 말하는 단어

결국 환자는 죽었다. 나는 아무것도 못했다. 오만함의 결과였다. 비싼 수술 기계를 너무 믿었고 마취에 관련된 지식이 모두 머리속에 들어있다는 나를 너무 믿었다. 응급상황에서 기계는 소리만 지를 뿐이였고 책에 있는 내용과 현실은 너무 달랐다. 심정지가 오기전 여러 시그널이 보이고 그때 적절한 처리를 해야 한다고 머리로 알고 있었으나 현실은 폭삭 주저앉는 초가집과 같이 시그널과 심정지는 동시에 왔다. 수술실에서 기억나는 건 아무것도 못하고 있는 나와 다르게 분주히 뛰어다니며 약물을 주사하고 호흡개선을 해주고 있던 선임수의사였다. 그 덕에 산소포화도가 돌아오나 싶다가 결국 심정지가 왔다.


5

  고수들은 느낌이 있다고 한다. 비유가 맞을지는 모르겠지만 전문 도박꾼이나 사업가들을 보면 모든 정보를 취합하고 판단한 뒤 마지막엔 느낌에 따라 배팅을 하고 투자를 한다고 한다. 선임수의사형은 오늘 마취보는데 느낌이 안좋았다고 한다. 그래서 미리 응급상황 준비를 해놓았었고 대응을 할 수 있었다고 했다. 느낌이라는 모호한 말로 밖에 표현할 수 없는 그것을 나는 축적된 경험에서 오는 무의식 속의 경보라고 생각한다. 나 같은 책만 믿고 나대는 뉴비들보다 그들이 더 많은 돈을 받는 이유인가 보다. 인턴은 멋모르는 사회초년생을 싸게 굴려먹으려고 하는 제도가 아니라 그 쎄한 느낌을 선배가 후배에게 계승하는 준비기간이였다. 


- 네이버웹툰 대학일기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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