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and LAB: SAINT LAURENT
Brand LAB: SAINT LAURENT
패션은 가끔 세상을 바꾼다
※본 콘텐츠는 흑백 이미지 위주로 구성됐다.
“내성적인 사람들을 조심해야해. 그들이 세상을 움직이거든.”
영화 <이브 생 로랑>에 나오는 대사다. 1936년에 태어난 이브 생 로랑(Yves Saint Laurent)은 어린 시절부터 종이 인형을 만들어 옷을 입히고 놀며 여자 형제들과 함께 자랐다. 이후 이 소년은 20세기 최고의 디자이너라는 평을 듣는다.
1953년, 이브 생 로랑은 국제 울 사무국이 주관하는 ‘젊은 패션 디자이너 공모전’에 3개의 스케치를 제출하며 3등을 차지했다. 이 시기에 이브 생 로랑은 파리에 머무르는데, 프랑스 <보그>의 편집장이었던 미셸 드 브루노프 (Michel De Brunhoff)를 만나게 된다. 미셸 드 브루노프는 젊은 신진 디자이너들을 발굴하고 지원해주는 것으로 유명했다. 그런 그에게 어디선가 풍겨오는 천재의 냄새. 그는 알아차린 것이다. 역사에 남을 디자이너의 재능을. 이후 그는 이브 생 로랑의 훌륭한 조력자가 되어준다.
1953년, 이브 생 로랑은 국제 울 사무국이 주관하는 ‘젊은 패션 디자이너 공모전’에 3개의 스케치를 제출하며 3등을 차지했다. 이 시기에 이브 생 로랑은 파리에 머무르는데, 프랑스 <보그>의 편집장이었던 미셸 드 브루노프 (Michel De Brunhoff)를 만나게 된다. 미셸 드 브루노프는 젊은 신진 디자이너들을 발굴하고 지원해주는 것으로 유명했다. 그런 그에게 어디선가 풍겨오는 천재의 냄새. 그는 알아차린 것이다. 역사에 남을 디자이너의 재능을. 이후 그는 이브 생 로랑의 훌륭한 조력자가 되어준다.
크리스찬 디올과의 만남 뒤 이브 생 로랑은 Dior에서 정식 패션 커리어를 시작하게 된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크리스찬 디올이 갑작스럽게 사망하게 되는데, 후계자는 바로 이브 생 로랑. 그는 크리스찬 디올의 사망 이후 Dior 하우스의 수석 디자이너 자리를 맡는다. 그때 그는 Dior에서 일한지 1년, 나이는 21살에 불과했다.
크리스찬 디올은 이미 이브 생 로랑과 함께 일하면서부터 이브 생 로랑을 후계자로 정해두었다고 알려져 있다. 이브 생 로랑이 얼마나 마음에 들었길래 21살의 조수를 후계자로 정해두었을까? 역시는 역시, 천재는 천재를 알아보는 것.
이브 생 로랑과 피에르 베르제
이브 생 로랑은 Dior에서 ‘뉴룩’의 소프트 버전인 ‘트라페즈 드레스’로 센세이셔널한 데뷔를 했다. ‘뉴룩’은 둥근 어깨, 잘록한 허리, 다시 허리에서부터 둥글게 퍼지는 실루엣이 특징인 반면, ‘트라페즈 드레스는’ 어깨가 좁고 허리를 조이지 않고 그대로 사다리꼴 형태로 떨어지는 실루엣이 특징이다. ‘트라페즈 드레스’의 대성공으로 Dior에서의 생활을 오래 지속할 것 같았지만, 인기는 오래가지 않았다.
‘비트닉 패션’을 선보인 1958년 가을 컬렉션에서는 사파리 재킷, 타이트한 바지 등 파격적인 스타일 탓에 부유층 고객들과 평단의 혹평을 받았다. 컬렉션의 실패 이후 이브 생 로랑은 알제리 전쟁에 참여하는 프랑스 군에 등 떠밀려 입대했다. 입대를 권유한 이는 바로 Dior 하우스의 오너인 마르셀 부삭(Marcel Boussac). 이브 생 로랑은 입대 이후 동료 병사들과의 스트레스로 인해 군병원에 입원하고, 동시에 Dior로부터 해고되었다는 통보를 받은 뒤 약물중독과 알코올중독 증세를 앓았다.
이 시기가 아마 이브 생 로랑의 인생에 있어서 가장 큰 변곡점이었을 것이다. 그런 폭풍우 속에서도 한 줄기 빛이 있었으니, 바로 지인들과의 모임에서 만난 피에르 베르제(Pierre Berge)다. 천재가 시련을 겪은 몇 안되는 순간이었음은 물론, 인생을 함께할 소중한 파트너이자 연인을 만난 순간이기도 했으니까. 이브 생 로랑은 사업 수완이 좋은 피에르 베르제와 함께하며 마침내, 자신의 브랜드 SAINT LAURENT을 공동 창립한다.
SAINT LAURENT은 컬렉션 초기부터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고 혁신을 이어가며 현재의 자리에 오게 되었다. SAINT LAURENT이 세상을 바꾼 순간들을 함께 알아보자.
SAINT LAURENT 쿠튀르 런웨이에 최초의 흑인 모델이 등장했다. 인종차별이 심했던 1970년대, 이브 생 로랑은 편견 없이 있는 그대로의 아름다움을 보는 눈으로 쇼를 구성했다. 당시 이브 생 로랑은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모델에게 하트 목걸이를 걸어 무대 위에 올렸는데, 그 하트 목걸이의 주인공은 흑인 모델 모우니아(Mounia)였다. 거기서 멈추지 않고 이브 생 로랑은 모우니아가 자신의 뮤즈라고 공공연하게 말했다.
하트 목걸이를 걸고 있는 모델 모우니아.
1970년대에는 인종차별뿐만 아니라 여성에 대한 차별도 심했다. 당시 공적인 자리에서 여성이 치마를 입지 않는 것은 무례한 일로 여겨졌는데, 이브 생 로랑이 남성들의 전유물이던 슈트를 여성용으로 선보였다. 여성인권에 대한 목소리가 흘러나오던 시대적 배경에 힘입어 이브 생 로랑의 여성용 슈트는 큰 인기를 얻으며 이브 생 로랑을 세계적인 디자이너 반열에 올려놓았다.
SAINT LAURENT이 설립된 1962년부터 오늘날까지. 많은 시간이 흘러도 여전히 사랑받는 아이템들이 있다.
르 스모킹 블레이저는 SAINT LAURENT의 대표 아이템이다. ‘Le Smoking’이라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 담배를 피우면서 담뱃재가 떨어지는 것과 담배 냄새가 배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하단 라펠을 새틴 소재로 제작했다. 놀라운 점은 성차별이 만연하던 당시에도 여성을 위한 르 스모킹 블레이저를 출시했다는 사실이다. 옷 한 장으로 여성들에게 자유를 선사한 것이다. 상단 라펠의 클래식한 무드와 하단 라펠의 고급스러운 소재감의 대비가 매력적이다. 이토록 아름다운 흡연이라니. 비흡연자도 흡연실로 이끌 것만 같다.
이브 생 로랑은 시간이 날 때마다 연인 피에르 베르제와 모로코의 도시 마라케시를 방문했다. 마라케시를 어찌나 사랑했는지 피에르 베르제와 함께 이곳 저곳의 집들을 사들일 정도였다. 현재 마라케시에는 SAINT LAURENT 박물관이 있다. 이브 생 로랑의 마라케시에 대한 애정은 컬렉션에서도 드러났다.
Dior에서의 실패 이후에도 포기하지 않고 다시 한번 사파리 재킷과 화려한 패턴의 스카프 등 마라케시를 연상케하는 디자인을 선보였다. 그때 선보인 룩은 이후 사하린느 룩으로 불리며 새로운 장르가 되어 현재까지도 이어지는 SAINT LAURENT 고유의 유산이 되었다.
그리고 마침내, SAINT LAURENT에서 아직까지도 회자되는 업적을 남긴 에디 슬리먼(Hedi Slimane)에 대해 이야기할 차례다. 에디 슬리먼이 SAINT LAURENT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부임한 2013년부터 2016년까지는 긴 시간은 아니었지만 SAINT LAURENT을 완전히 바꿔놓기에는 충분한 시간이었다.
우선 에디 슬리먼은 SAINT LAURENT의 로고부터 바꿨다. 기존 로고의 ‘Yves’를 제거하고 오트 쿠튀르(고급 맞춤복) 대신 기성복 성격을 강조해 지금 우리가 아는 SAINT LAURENT의 로고를 만들었다. 또한 에디 슬리먼 특유의 록, 펑크와 같은 서브컬처 요소를 기존 SAINT LAURENT의 이미지와 결합해 탄탄한 마니아층을 형성하기도 했다.
에디 슬리먼의 락시크 무드가 잔뜩 스며든 SAINT LAURENT의 아이템은 인기가 식지 않는 불멸의 파급력을 불러일으켰다. 당시 멋쟁이라면 SAINT LAURENT 아이템은 없어선 안될 필수템. 칼 라거펠트가 에디 슬리먼의 스키니진을 입기 위해 다이어트를 했다는 사실은 이미 너무나 유명한 일화다.
얼마 전, SAINT LAURENT으로부터 놀랄만한 소식이 들려왔다. 바로 영화제작사를 설립했다는 것. 모든 의상과 제작요소엔 SAINT LAURENT의 현재 크리에티브 디렉터인 안토니 바카렐로(Anthony Vaccarello)가 참여한다. 그러면서 동시에 SAINT LAURENT PRODUCTION의 첫 작품에 대한 정보를 공개했다. 31분 분량의 단편영화로, 제목은 로 5월 말 개최되는 칸 영화제에서 공개한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두 번째 작품에 대한 정보도 공개했다. 누벨바그를 대표하는 감독 장 뤽 고다르(Jean-Luc Godard)의 미완성 프로젝트를 선보일 예정이다. <“I greatly admired Jean-Luc Godard, one of cinema’s most influential masterminds>(존재하지 않을 영화의 예고편)라는 아주 긴 제목을 가진 이 작품은 마찬가지로 칸 영화제에서 공개한다. 이브 생 로랑이 패션계의 틀을 허물었던 것처럼 장 뤽 고다르는 고전적인 영화의 틀을 부수고 영화란 무엇인지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해 ‘영화 혁명가’라는 별명을 얻은 인물이다. 어딘가 닮은 듯 다른 결합. 장 뤽 고다르와 SAINT LAURENT. 상업적이기보다는 오히려 전위적인 예술로써 새로움을 탐구한다. SAINT LAURENT이 삶과 예술을 대하는 태도를 알 수 있는 프로젝트다.
패션 하우스 최초로 영화제작사를 설립한 SAINT LAURENT. 어떤 사람들은 SAINT LAURENT의 거듭된 도전에 의문을 가질 수도 있다. 그러나 한 가지 확실한 것. 이브 생 로랑이 브랜드를 창립한 순간부터 여태까지 단 한번도 멈추지 않은 새로움이 지금의 SAINT LAURENT을 있게 했다는 것. 그리고 앞으로도 SAINT LAURENT은 멈출 생각이 없다는 것.
Published by jentestore 젠테스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