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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entestore 젠테스토어 May 23. 2024

향기를 입는 N가지 방법

Stories: Fashion and Fragrances

Stories: Fashion and Fragrances

향기를 입는 N가지 방법




패션 브랜드에서 향수를 출시하는 이유는 단 하나. 자신들이 추구하는 가치관과 무드를 다양한 감각을 통해 고객에게 전달하고, 이를 통해 브랜드 이미지에 대한 공감각적 접근을 유도하여 보다 풍성한 경험을 선사하기 위함이다. 보고 입고 신는 것 말고, 이젠 좀 더 색다른 방식으로 패션을 즐겨보고 싶다면? 지금부터 소개할 이 향기들에 주목하자.




인기가 많은 데엔 이유가 있어



브랜드의 선호도만큼이나 높은 인기를 자랑하는 CHANEL과 Dior, GUCCI. 특히 마릴린 먼로의 덕을 톡톡히 본 CHANEL의 NO.5는 유려한 역사를 자랑하는 세기의 향수다. 비록 나는 어렸을 적 엄마 화장대에 있던 이 향수를 얼굴에 정면 분사하고 그대로 꼬꾸라졌던 충격적인 기억이 있긴 하지만... 어른이가 되어 다시 경험한 NO.5의 향은 관능, 그 자체.

NO.5와 마릴린 먼로


그러나 향수 정보 사이트 중 가장 높은 순위에 랭크되어 있는 프래그런티카의 리뷰를 보면 호불호가 꽤나 심하다. 불호 쪽 리뷰엔 고양이 화장실, 아기 기저귀라는 키워드가 반복적으로 등장하는데 뿌린 직후의 너무 톡 쏘는 느낌 때문일 듯. 하지만 극호의 내 입장에선 그 고비만 살짝 넘기면 중독적인 잔향이 하루종일 곁에 머무는 게 참 좋다. 함께 머무는 시간이 길수록 좋아지는 향이라고나 할까. 마치 오랜 역사 속에서도 한결같은 무드를 고수하는 CHANEL처럼.


당대 탑스타라면 반드시 거쳐갔었던 NO.5 캠페인 ⓒchanel.com, ⓒvogue.co.uk


고백한다. 사실 나도 남미새다. 남자 ‘향수’에 미친 OO. 정확히 말하면 남자 향수에서 유독 짙게 풍기는 아쿠아 향에 푹 빠진 거다. 한때 이 향이 폭풍적으로 유행한 탓에 비슷한 노트로 구성된 타 브랜드의 향수도 많지만, 그래도 CHANEL의 BLEU가 내 마음 속 탑이다. 시트러스와 우디향이 절묘하게 섞인, 거기에 뒤따라 스며오는 파우더리 한 잔향이 마치 깊은 산속 호숫가에 사는 신비로운 소년의 모습을 떠오르게 만드는데, CHANEL 역시 이 느낌을 살리려 했는지 최근 캠페인의 모델로 티모시 샬라메(Timothee Chalamet)를 선택했다. 박수. 훌륭하다. 이견이 없다.


ⓒimdb.com


반면 Dior의 Miss Dior 시리즈는 요새 가장 뜨거운 트렌드인 걸 코어와 환상의 궁합을 자랑한다. 핑크빛의 액상과 리본 디테일의 용기가 올해 SANDY LIANG과 SHUSHU/TONG의 컬렉션을 생각나게 만드니까. 향은 또 어떤가. 과일의 달큼한 향과 우디향 덕분에 마치 꽃밭 한가운데에서 디저트 파티를 즐기는 기분이다. 나는 이 향을 맡으면 소피아 코폴라(Sofia Coppola)의 영화 마리 앙투아네트(2007)가 연상되는데, 한 나라의 왕비랍시고 화려한 드레스로 차려입었지만, 행동은 천방지축 말괄량이인 천진한 주인공의 캐릭터가 이 향기와 꼭 닮아있기 때문이다.


조향사 프란시스 커졍(Francis Kurkdjian)이 리뉴얼에 참여한 2024 Miss Dior ⓒnatalieportman.com
영화 마리 앙투아네트(2006) ⓒimdb.com
SANDY LIANG 2024 SS, Shushu/Tong 2024 SS ⓒvogue.com


관능적이나 화려함보단, 맑고 청순한 향기가 취향이라면 GUCCI의 BLOOM이 제격이다. 화이트 플라워가 가득 핀 거대한 정원 속을 여유롭게 거니는 느낌을 만끽할 수 있을 테니까. 가끔 유치할 정도로 단순한 향이라는 리뷰도 보이지만, 내겐 마치 꽃집 앞을 지나칠 때 은은하게 풍겨오는 생명의 향기로 다가온다. 또한 무엇보다 5월 신부에게 적극 추천하고 싶은 향이다. 과하지도 소박하지도 않은 절제된 향. 그 풋풋한 내음이 시작이라는 순간과 너무나도 잘 어울린다.


꿈의 정원에 사는 4명의 여인의 이야기를 다룬 BLOOM 캠페인 ⓒgucci.com





우리 와이프 선물 좀 골라주세요


우당탕탕 와이프 선물 고르기 대작전의 단골손님인 Hermès의 Twilly. 네이버 지식인에 올라온 수줍은 남편의 질문 하나가 이 Twilly 대란의 시초다. 아내가 매우 만족했다는 후기까지 달려있는 걸 보면 확실히 물건은 물건인 듯. 생강향 탑노트가 주는 알싸함과 시트러스 계열의 상큼함, 베이스노트는 묵직한 바닐라로 깔려있어 평소 바닐라 향을 좋아한다면 무조건 극호일 것. 브랜드가 가진 럭셔리한 이미지 플러스, Hermès의 인기 아이템인 스카프의 미니어처를 입구에 매달아 장식성을 부각한 것 역시 좋은 선택이었다.


ⓒbeautyscene.net


그렇다면 여친 선물계의 떠오르는 샛별은 어떤 제품일까. 바로 SAINT LAURENT의 Libre다. 은은한 라벤더 향과 바닐라, 머스크 콤보가 성숙하면서도 섹시한 느낌으로 다가온다는 리뷰가 지배적. 한 향수 관련 카페엔 지나가던 여성분을 붙들고 대체 어떤 향수를 뿌리신 거냐 물어봤다는 썰이 있을 정도니, SAINT LAURENT의 만만치 않은 존재감이 향으로 제대로 표현된 셈.


두아 리파(Dua Lipa)가 참여한 Libre의 캠페인 ⓒfashiongonerogue.com




나른한 일요일 아침의 향기


니치 향수의 전성시대인 요즘 향수계. 니치 향수란 조향사의 창의성과 전문성이 가득 담겨 보다 개성을 추구하는 향수를 의미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과 견주었을 때 전혀 꿇리지 않는다 평가받는 패션 브랜드의 향수들이 바로 여기 있다.

우선 TOM FORD다. 어쩌면 국내에선 의류보다 더 높은 선호도를 가졌을 수도 있다. 그만큼 향수 추천 코너에 단골로 언급되는 브랜드니까. “즐거운 자극과 기쁨을 얻을 수 있는 나만의 향수 옷장을 만들어 보라”는 디자이너 톰 포드의 말이 무색할 정도로, 종류가 정말 많다. 그중 프라이빗 컬렉션 라인은 니치 향수 못지않게 독창적인 향으로 향수 애호가들의 열광적인 러브콜을 받는 중. 나의 최애 향수인 White Suede 역시 이 라인인데, 원초적이고 거칠면서도 어딘가 모르게 온기가 느껴지는 정말 독특한 향이다. 싸울 땐 시원하게 싸우고 또 좋을 땐 뜨겁게 불타오르는 중독적인 관계 같달까.


섹슈얼한 무드에 초점을 맞춘 TOM FORD ⓒpinterest


2019년부터 다시 꾸준히 출시되고 있는 CELINE의 오뜨 퍼퓨머리 라인도 요즘 대세다. 에디 슬리먼의 시크한 디자인에 예술과 문화를 사랑하는 그의 신념이 만나 향수로 태어난 것. 특히 블랙핑크(BLACKPINK)의 리사가 캠페인의 모델로 깜짝 등장해 국내팬들의 구매욕을 무한정 상승시키는 데 한 몫 했다. 확고한 스타일과 개성을 충분히 느낄 수 있는 종교적인 의식 같은 향수를 만들고 싶었다는 에디의 말처럼, 향수 이름 역시 예사롭지 않다. Black Tie, Nightclubbing, Parade, 악명 높은 프랑스의 시인 랭보(Rimbaud)까지. 대체 어떤 향기가 날지 궁금하게 만드는 유혹적인 작명이다.


ⓒanothermag.com, ⓒceline.com


향수 이름하면 MAISON MARGIELA도 빼놓을 수 없다. 그중에서도 내 시선을 사로잡은 건 Jazz Club과 By the Fireplace, Lazy Sunday Morning, 이 세 가지. 보기만 해도 호기심이 발동하지 않는가? 하지만 역시 MAISON MARGIELA. 그 어려운 향을 엄청난 현실고증 능력으로 구현해 낸다. 대단하다. 한밤의 재즈 클럽을 가득 채운 알싸한 담배향과 알코올향, 벽난로 안에서 달달한 나무가 타고 있는 듯한 향, 휴일에 미뤄둔 세탁을 마치고 난 뒤 곳곳에서 풍기는 산뜻한 빨래향까지. 세상에 이걸 향기로 저장하여 매일같이 뿌리고 다닐 수 있다니! 평소 기발한 상상력을 재현해 내는 데 도가 튼 MAISON MARGIELA의 내공이 여실히 느껴진다. 자, 이제 남은 건 Whispers in the Library 뿐이다. 도서관에서의 속삭임은 대체 어떤 향기일까?


도서관에서의 속삭임은 대체 어떤 향기일까? ⓒmaisonmargiela-fragrances.eu



마지막 주인공은 우리의 가슴을 뛰게 만든 따끈따끈한 최신작! 바로 저번 달에 출시된 니치 향수계의 일인자 프레데릭 말(Frederic Malle)과 Acne Studios의 협업이다. 발 빠른 향수 애호가들의 후기를 들어보면 평소 프레데릭 말의 작품에선 느낄 수 없었던 청춘의 청량함이 물씬 풍겨서 놀랐다고. 중후함과 묵직함이 그동안의 프레데릭 말의 무기였다면, 이번엔 Acne Studios의 젊은 감각을 확실히 취해 상큼 발랄한 봄을 느낄 수 있는 향을 탄생시켰다고 한다.


Acne Studios의 디렉터 조니 요한슨(좌)과 조향사 프레데릭 말 ⓒvoguescandinavia.com



남들과 달라도 너무 다르고 싶다면


끝으로 향기 수집가들을 위한 생생 정보통. 조금은 생소하지만 마니아들의 열렬한 지지를 받고 있는 향수들을 소개해 볼까 한다. 와닿는 리뷰 역시 함께 담아두었으니 미지의 향기에 대한 상상의 나래를 마음껏 펼쳐볼 것!





COMME des GARCONS, Wonderwood


ⓒvogue

⦁ 코 끝이 맵고 시큰해져 온다.

⦁ COMME des GARCONS의 향수 중 내가 견딜 수 있는 유일한 제품.
⦁ 부드러운 향. 누군가 당신에게 가까이 다가오면 칭찬받을만한 향.
⦁ 아로마틱 하고 후추향이 가미된 샌달우드 향. 머스키 하며 금속성의 거침이 느껴진다.
⦁ 다들 도망쳐! 이게 바로 진짜 고추 폭탄(Spicebomb)이야!





Courrèges, L'Eau de Liesse


ⓒCourrèges

⦁ 고소한 너트향으로 시작해 아이리스 향이 크리미함을 증폭시키고, 자스민 향이 가볍고 감미롭게 이 향들을 감싼다.

⦁ 처음 뿌릴 때 크레용 같은 냄새가 나지만... 빨리 사라져서 다행이다.
⦁ 세련된 프랑스 소녀.
⦁ 시각적 요소가 훌륭하다. 하지만 향은 후반부에선 세탁가루 냄새가?
⦁ 우아하며 강력하다.





Viktor & Rolf, Spicebomb Extreme


ⓒViktor & Rolf

⦁ 가을, 겨울에 가장 잘 어울리는 향.
⦁ 강한 흙냄새와 다양한 향신료, 마지막으로 바닐라가 핵심이다.
⦁ 마피아 보스, 갱스터의 냄새.
⦁ 정말 향신료 폭탄입니다. 재채기가 쉴 새 없이 나오네요.
⦁ 따뜻하고 로맨틱하며 친근한 예술 작품.





Louis Vuitton, Ombre Nomade


ⓒLouis Vuitton

⦁ 우드, 라즈베리, 레더 향의 콤보가 훌륭하다.
⦁ 사업가, 아랍 왕자, 부유한 할아버지가 생각나는 슈퍼 다크 남성 향수.
⦁ 미친 향기. 시끄럽고 고급스러우면서 매혹적이고 풍부한 향기.
⦁ 2023년 12월 10일에 이 향수를 손에 테스트를 한 뒤 하루종일 그 손을 코트 주머니에 넣고 다녔는데요, 오늘이 2024년 3월 12일인데 코트 주머니에서 아직도 향기가 나요.




Mugler, Pure Havane
(역사 속으로 사라진 전설의 향수, 현재 중고가가 엄청나게 치솟는 중)


ⓒLouis Vuitton

⦁ 이것이야 말로 상남자의 향.
⦁ 코코아, 담배, 꿀, 바닐라의 독특하고 완벽한 조화.
⦁ 냄새를 맡자마자 즉각적으로 사랑에 빠졌다.
⦁ 다른 어떤 향수도 이렇게 나를 감동시키지 못했다.
⦁ 정말 독특하고 흥미로운 향. 심장이 캐러멜이 된 기분.
(리뷰 출처: fragrantica.com)



우리는 가끔 향기로 누군가를 추억한다. 그리고 모두가 이를 본능적으로 알기에, 향수를 고르는 데에 그렇게 심혈을 기울이는 걸 수도 있다. 하지만 어떤 향수가 좋을까라는 질문 이전에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를 파악하는 것이 우선이다. 나의 성격과 취향에 맞는, 결국 나라는 사람을 대변할 수 있을 나만의 향을 찾기 위해서 말이다. 향수를 고른다는 건 어쩌면 타인에게 기억되고 싶은 내 모습을 선택하는 일이 아닐까.





Published by jentestore 젠테스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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