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ories: My Hot Rodent Boyfriend
tories: My Hot Rodent Boyfriend
두부상, 아랍상 말고 설치류 상의 시대가 열렸다
내가 왕이 될 상인가. 불쌍한 과거의 관상가들은 오직 왕과 역적의 상을 알아내는 데 온 힘을 쏟았겠지만, 현재의 우리는 다르다. 자기주장 뚜렷한 눈코입의 아랍상, 새하얗고 몽글몽글한 러블리 두부상, 여기서 한 단계 진화한 딴딴한 부침 두부상, 밋밋한 카리스마의 두부 모서리상까지 온갖 상들의 천국을 누리는 중이니까. 이처럼 다양성의 반란은 뻔한 미의 제국을 함락시키기 시작했다.
비단 국내뿐만이 아니다. SNS에서 핫한 키워드인 Rodent Boyfriend. 직역하면 설치류 상 남자 친구라 할 수 있겠으나… 뭔가 갸우뚱하다. 하지만 걱정 마라. 위키 하우에 이미 어엿한 조건이 명시되어 있다. 일단 전형적인 남성미와는 반대의 특성을 구현하는 외형의 남자. 단순한 외모를 뛰어넘어 분위기로 승부 보는 남자. 대신 다정한 성격과 기발한 재치로 여심을 사로잡는 남자. 꼭 쥐를 닮을 필요는 없지만, 이런 틀에 얽매이지 않는 매력의 스타들을 다 모아놓고 보니 묘하게 라따뚜이 느낌이 물씬 나더라는 말씀. 이건 운명이다.
누구보다 빠르게 남들과는 다르게 트렌드를 전달하라는 임무를 명 받은 젠테의 두 에디터, 여기서 가만있을 순 없다. 이 Rodent Boyfriend에 대한 허심탄회한 토론을 통해 그동안 겉모습에 가려져 있던 보석 같은 그들의 마력을 탐구해 보기로 한다.
김나영 에디터 (이하 에디터 영)
솔직하게 말한다. 나는 소위 말하는 ‘얼빠’다. 그런데… 얼빠면 안 되나? 상대에 대한 인상을 가장 먼저 결정짓는 게 외모란 건 누구나 동의할 거다. 물론 외모가 예쁘고, 잘생겼다고 다 좋아하는 건 아니다. 내 눈에 매력적으로 다가와야 한다는 말이 더 적확할 거다. 그래서 고민해 봤다. 지금까지 끌렸던 사람들에게 어떤 공통점이 있었는지. 일단 외모가 내 취향이어야 한다는 것은 분명하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내면을 알아가고 싶은 외면을 가졌는가’에서 모든 것이 시작한다. 그런데 그게 우리가 흔히 말하는 ‘조각’ 같은 얼굴은 아니었다.
찬찬히 생각해 보니 외모와 어우러지는 애티튜드가 존재할 때, 그러니까 그와 그녀에게서 카리스마가 느껴졌을 때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카리스마를 가진 이와 함께 있을 때 느껴지는 무언의 권력적인 느낌이 있다. 나 또한 꽤 센 자아를 가진 사람이지만, 가끔 (아주 가끔이지만) 그 자아의 목줄을 넘기고 기꺼이 휘둘리고 싶은 마음이 들게 하는 이들이 있다. 그런 이들의 특징이라면, 보통 자기만의 확고한 세계를 가진 사람에게서 느껴지는 강인함과 유약함이 공존한다는 거다. 누군가를 알아가는 어느 순간에, 마냥 강해 보이던 그의 약한 뒷모습마저도 기꺼이 사랑할 수 있겠다는 충동이, 내 의지와 무관하게, 스멀스멀 피어오를 때 생각한다. 아차, 또 시작됐구나.
주단단 에디터 (이하 에디터 주)
세상에 계획대로 되는 건 하나도 없다. 관계는 특히 그렇다. 결코 짧지 않았던 네 번의 연애와 다수의 썸을 겪으며 배운 건 오직 이것뿐이다. 아, 또 있다. 사랑은 항상 불시에 찾아온다는 것. 이 신기한 감각은 마치 사고처럼 예측과 오차 범위를 가뿐히 벗어난다. 따라서 사랑 고민에 골똘히 빠져있는 건 대부분 시간 낭비다. 근데 반전은 이러한 생각들이 아주 특이한 취향을 낳았다는 것이다. 영영 분석할 수 없는 감정에 몰입하느니 차라리 조금의 힌트라도 주는 인간에게 몰두하는 게 낫다는 결심. 뒤이어 나의 감정은 쉽게 파악할 수 없는 이들에게로 꽂혔다. 뭔가 사연 있어 보이는 사람들 말이다. 이 조건은 뻔한 외형적 특징으로는 절대 규정할 수 없기에 더 흥미롭다. 해맑게 웃는 얼굴 뒤에 불현듯 드리워진 그늘이나, 담담한 표정 뒤에서 새어 나오는 목소리의 떨림이나, 멀끔한 차림에 숨겨진 희미한 얼룩 같은 것들. 그런 것이 내겐 모두 꽂히는 포인트가 된다. 그들을 발견할 때마다 난, 마치 해독 불가한 암호를 마주한 연륜 있는 수학자처럼, 동공이 커지고 심장박동이 빨라진다. 남들은 도통 속을 모르겠다며 투덜댈지 몰라도 내겐 아직 포장을 뜯지 않은 선물 상자다.
결국 지금의 내겐 사랑 대신, 눈에 보이는 온갖 정보들을 수집해 상대를 해독하는 비범한 능력만이 남았다. 어차피 결과에 대한 책임은 나의 몫일 테지만 매달 한두 번은 주변에서 주기적인 연애 상담을 요청하는 걸 보면, 게다가 단골도 꽤 있는 걸 보면, 아주 쓸모없는 힘은 아닌 듯싶다.
티모시 샬라메 Timothée Chalamet
1995년생, 미국 뉴욕 출생. 아버지는 프랑스인이고, 어머니는 미국인. 2008년 광고로 연기에 발을 들이게 되는데 TV 데뷔는 2009년 로앤오더에서 범죄 피해자 역이었다. 대중적으로 얼굴을 알린 건 2017년 콜 미 바이 유어 네임. 그 이후로 승승장구하며 내로라하는 거장 감독들의 영화에 주연 배우로 출연하고 있다. 가히 지금 제일 잘나가는 젊은 남성 배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
에디터 영
티모시 샬라메, 이동진 평론가의 말에 따르면 ‘티모시 샤르르 샤랄라 샬라메’다. 같은 95년생 동갑인데 잘나가는 스타들을 보면 흥미로운 감정이 인다. 전혀 질투는 아니고 태어나서 나와 비슷한 세월을 살아온 한 인물이 과연 어디까지 나아갈 수 있는지를 보는 맛이 있어서다. 전 세계 패션을 이끄는 디자이너들의 뮤즈가 되고, 소녀들의 동경의 대상이 되고, 핫한 이성과 데이트하는 삶. “고놈 참 인생 재밌게 산다.” 하면서 보게 된다.
그런데 그런 그라고 해서 마냥 도파민이 넘치는 삶을 살까? 인간은 입체적이라고들 하듯, 그에게도 어떤 종류의 그늘이 있을 거라고 감히 짐작해 본다. 그 그늘이 궁금해질 때서야 비로소 한 인간을 진정 알고 싶어졌다고 할 수 있을 테니까. 곧 개봉할 영화 A Complete Unknown에서 밥 딜런으로 변신한 그를 파파라치 사진으로 미리 엿볼 수 있었다. 밥 딜런의 시그니처 룩. 그러니까 스웨이드 재킷, 브라운 셔츠, 루즈한 핏의 데님 그리고 빈티지 풍 카우보이 부츠 차림이었다. 옷차림뿐만은 아니다. 밥 딜런을 연기하기 위해서는 사랑의 덧없음을 노래하는 이의 슬픔을 알아야 했을 거다. 누군가에게는 스포트라이트만 가득한 순간으로만 기억되는 그가 가진 그늘은 어떤 것일지 궁금하다. 하기야 티모시 샬라메에게 가장 처음 흥미가 동했던 때는 그때였다. 영화 콜 미 바이 유어 네임 엔딩에서 붉어진 눈시울로 한참을 눈물짓던 순간.
에디터 주
미소년 타입엔 영 관심이 없었다. 왠지 살뜰히 챙겨줘야만 될 거 같은 묘한 의무감이 들어서다. 일상의 모든 것들이 나보다 미숙할 거 같다는 느낌. 이건 누군가에겐 매력이 될 수 있겠으나 내겐 절대 아니다. 하지만 티모시는 뭔가 다르다. 영화 콜 미 바이 유어 네임 속 그를 보며 느꼈다. 그는 엘리오 그 자체였다. 첫사랑 재질에 열광하는 우리들에게, 엘리오는 첫사랑에 빠진 우리 모두의 재질로 다가왔다. 내가 그를 좋아하는 이유는 우리들의 유약한 청춘을 떠올리게 만들어서다. 그리고 마치 그 시절의 나를 응원하는 마음으로, 그를 응원하게 된다.
게다가 그의 패션은 마치 성장 서사처럼 나날이 보는 맛이 늘어간다. 유럽발 미소년의 폴로셔츠 & 쇼츠 룩은 물론, 한창 릴리 로즈 뎁과 사귈 때 찍힌 파파라치 속 스웻 팬츠 룩도 맘에 쏙 들었다. 근데 또 공식 석상에선 놀랍도록 능숙하게 풀 수트 차림을 소화한다. 한 스타일에 얽매이지 않는 여러 시도들이 마치 드라마틱한 사건들이 연속적으로 터지는 한 소년의 일생처럼 다채롭고 풍부해서 좋다. 특히 영화 본즈 앤 올 레드 카펫에서 보여준 Haider Ackermann의 레드 점프수트 룩은 사춘기의 질풍노도 룩이라 명명해도 되지 않을까.
폴 메스칼 Paul Mescal
1996년생으로 아일랜드 출생. 드라마 노멀 피플에서 깊이 있는 연기력을 선보이며 눈도장을 찍었다. 그 후로 영화 애프터 썬, 글래디에이터 2 등에 주연 배우로 등장하며 티모시와 맞먹는 새로운 핫한 남성 배우의 반열에 올랐다.
에디터 영
사랑해 마지않는 폴 메스칼. OTT 범람의 시대에 믿고 극장표를 예매하게 만드는 몇 안 되는 배우다. 원래 눈길도 주지 않았던 영화 글래디에이터도 그가 출연한다는 이유만으로 1편을 보고 영화관으로 향했다. 이렇게 그가 믿고 보는 배우가 된 건 몇 년 전 처음 본 드라마 노멀 피플를 본 직후다. 극 중 교복을 입은 아일랜드 고등학생으로 등장한 그를 처음 본 순간 직감했다. 12화를 다 보는데 날밤을 새우게 되리란 걸. 감독 리들리 스콧은 노멀 피플을 보고 오디션도 보지 않고 글래디에이터 2에 폴을 출연시키기로 결심했다고 하기도 했으니 말 다했다. 그가 궁금하다면 백문이 불여일견, 직접 보기를 추천한다.
흔히 좋은 배우는 눈으로 말한다고 한다. 폴 메스칼은 그런 배우다. 주로 고통받는 배역을 맡아왔던 그는 누구나 겪는 생의 고통을 마치 온전히 자기의 것처럼 전달한다. 폴이 슬픈 눈을 하고 있을 때 나는 평생 생각해 보지 못했던 타인의 고통을 내 것처럼 느낀다. 그래서 궁금하다. 그는 평소 어떤 책을 읽고, 어떤 음악을 듣고, 어떤 대화를 사람들과 나눌까? 나이 먹을수록 느끼는 건 누군가를 알아가고 싶은 감정이 쉽게 들지 않는다는 거다. 모처럼 궁금해진 그, 언젠가 인터뷰할 날이 오기를.
에디터 주
내게 폴 매스칼은 슬픈 눈의 사나이다. 표정은 한껏 웃고 있는데 어딘가 애처롭고 처연하다. 그래서 생각했다. 저 사람 분명 아픔이 있어. 그리고 노멀 피플과 애프터 썬에서 보여준 그의 연기 속에서 확신했다. 맺어지지 못한 연인이나 이루지 못한 꿈이 가슴 한 켠에 또아리를 틀고 있을 거라고. 그렇다. 이 사람이 바로 내가 찾던 사연 있는 얼굴의 대표주자다. 즉, 과거가 궁금해지는 사람.
오랜만에 호기심이 동하는 사람을 발견한 기쁨에 나는 폭풍 검색을 시작했다. 그러다 그의 다소 민망하면서도 신선한 일상룩을 발견했다. 짧은 복서 팬츠. 처음 봤을 땐 화들짝 놀랐는데 보다 보니 그걸 선호하게 된 그의 무의식(?)이 궁금해졌다. 헌데 의외로 그의 데뷔 전 삶에서 그 실마리를 찾아볼 수 있었다. 연기에 입문하기 전, 폴 매스칼은 꽤나 촉망받는 축구계의 인재였다고. 뭐 이후는 모두가 예상하듯 부상 이슈로 인해 얼떨결에 배우 데뷔! 라는 클리셰. 왠지 그의 복서 팬츠룩은 반평생을 매진해 온 운동에 대한 미련과 존중에서 출발한 것이 아니었을까. 봐봐, 내 말이 맞잖아. 근데 참 신기하다. 구불거리는 머리칼에 파란 눈동자. 요목조목 따져보면 왕자님이 따로 없는데, 왜 다 모아두면... 뭔가 구수한 느낌이 들까. 마치 투 뿔 한우 차돌박이를 고명으로 잔뜩 얹은 청국장 같다. 이런 맥락 없는 수수함이라니. 게다가 이것조차 매력이 되다니. 틀림없는 축복이다.
칼럼 터너 Callum Turner
두아 리파(Dua Lipa)의 약혼자, 아니 영국의 배우. 2010년에 모델로 데뷔해 2011년부터 본격적인 연기 활동을 시작했다. 국내에서는 영화 해리 포터 시리즈의 스핀오프, 일명 ‘신동사’ 시리즈로 알려졌다.
에디터 영
최근 두아 리파와 약혼 소식을 알린 칼럼 터너. 그 소식이 알려지기 전부터 이 커플의 사진은 이상적인 비주얼의 합이라며 눈길이 닿는 족족 게걸스럽게 사진첩에 저장하곤 했다. 마치 그 조화로움이 내 것이 될 것처럼. 무엇보다도 마음에 든 건 그가 보여준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면서도 세련된 ‘남친 룩’이었다. 그래서 누군가 애인이 어떤 스타일로 옷을 입어줬으면 좋겠냐고 묻는다면… 말없이 칼럼 터너의 데이트 룩을 보여주고 싶다. 뭘 입어도 잘 어울릴 피지컬에 호불호 없는 아이템을 즐겨 입으니 말 다 했지. 가죽 재킷, 데님 진, 셔츠같이 클래식한 아이템에 보디가드처럼 두아 리파 곁에 있는 차분히 있는 그의 애티튜드. 귀하다 귀해.
가끔 이상형을 물으면 ‘자아 없는 남자’라고 말하는 이들이 있다. 무슨 말인지는 알겠지만, 그들은 실제로 자아 없는 남자를 만나면 매력 없다고 팔짝 뛸 거란 사실을 안다. 실로 그들이 원하는 건 칼럼 터너 같은 타입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무난한 차림에 언제나 곁에 있어 주는 그 누군가. 하지만 이런 남자… (슬프게도) 찾아보면 없다. 어찌 됐건 부디 두아 리파의 사랑스러운 그로 오래도록 남아주기를 바란다.
에디터 주
검은색을 좋아하는 것과 패션에서 검은색을 선호하는 것은 엄연히 다르다. 칼럼 터너는 셀럽임에도 불구하고 신기할 정도로 블랙 룩만 고집한다. 왜일까. 여기서 심리학적 지식을 조금 빌려보자면, 블랙이 가진 강렬한 이미지와는 달리 블랙 룩을 즐겨입는 사람은 외로움이 많고 타인의 시선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과도하게 신경 쓰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칼럼도 그런 듯하다. 그렇게 관심을 많이 받는 직업인데도 뭔가 눈에 띄길 꺼리는 수줍음이 표정과 행동에 서려 있다. 근데 그게 바로 칼럼의 귀여움 포인트다. 런웨이 경험이 있을 정도로 수려한 피지컬을 보유하고 있는데도! 그걸 온 천하에 자랑하듯 떠벌리지 않는다. 자기가 잘 생긴지 모르는 남자. 이것이야말로 만천하 여인들의 이상형이 아닌가.
하지만 뭔가 아쉽다. 가끔 너드남 같기도 하고, 어쩔 땐 야성적인 에너지가 느껴지기도 하고, 차갑고 냉장한 무드가 풍기기도 하는 게 굉장히 입체적인 이미지를 가졌는데 항상 패션이 무난하다. 이런 면에선 약혼녀인 두아 리파가 부럽다. 패션에 딱히 엄청난 신념이나 철학을 갖고 있지 않은 무 취향의 남자 친구를 자기 입맛대로 꾸며주는 재미를 누릴 수 있을 테니까. 아, 그것처럼 신나는 게 없는데.
조쉬 오코너 Josh O'Connor
영국의 배우. 브리스톨 올드 빅 씨어터 스쿨에서 연기를 배웠다. 2017년 영화 신의 나라가 전 세계적으로 호평을 받으며 떠오르는 배우의 반열에 올랐다. 그 후로도 넷플릭스 더 크라운, 영화 챌린저스, 키메라 등에 출연했다.
에디터 영
작년 초쯤이었나. 할리우드의 핫한 ‘쥐상’ 남자 배우(hot rodent) 리스트가 자주 보였다. 그 특징이라면 살짝 처진 눈에 큰 키에 슬림한 체형, 그리고 한 스푼의 병약미.. 그 대표 격이 바로 조쉬 오코너였다. 게다가 유명한 미남 배우 컬렉터인 조나단 앤더슨의 픽인 그다. 조나단은 네 차례나 LOEWE의 모델로 조쉬 오코너를 고용하면서 “옆집에서 볼 수 있을 것 같은 남자”라고 했다 한다. 아니, 옆집에서요? 말도 안 된다.
조쉬 오코너 또한 눈빛으로 말하는 배우다. 그가 웃거나 울거나 할 때 그 감정이 내게 콕콕 박힐 때가 있다. 언젠가 귀국하는 비행기에서 본 그의 영화 키메라. 한쪽 사운드만 들리는 허접한 퀄리티의 헤드폰를 귀에 끼고선 몰려오는 잠을 참으면서도 끝내 그 영화의 끝을 봤다. 그렇게 집착적으로 본 이유라면 단순히 조쉬 오코너가 가진 순수한 이미지에 끌려서였다. 아무리 낡고 닳은 역할을 수행해도 본체가 가진 순수가 가려지지 않는 인물들이 있다. 그가 영화에서 마르고 닳도록 입고 나오는 낡은 베이지 톤의 슈트마저도 그 인상을 완성해 줘서 좋았다. 지금도 잊지 못한다. 화면 속 빛이 그의 얼굴을 비췄을 때 느껴진 투명하고 선연한 감각.
에디터 주
누군가 내게 이상형을 물으면 한때 ‘섹시한 목수’라고 대답했었다. 그러면 친구들이 꺄- 소리를 지르며 나를 막 때렸다. 아니, 그런 거 아닌데. 그냥 둘이 산속에 손수 지은 집에서 단둘이 알콩달콩 살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던 뿐인데. 뭔가 억울했다. 나름의 계기도 있다. 예전에 한옥 짓는 남자한테 반한 적이 있는데… 다 그 사람 때문이다. 도면을 보며 인부들을 통솔하는 리더십과, 집채만 한 나무를 매만지며 결을 읽어내는 섬세한 모습이 함께 공존하는 게 인상 깊었고 그렇게 그는 내 첫 짝사랑으로 등극했다.
근데 그 비슷한 무드가 조쉬 오코너에게 있다. Carhartt 워크 재킷을 입은 그를 목격했을 때 단번에 알아챘다. 일상에선 투박하기 그지없지만 연기라는 본업에선 섬세함이 폭발하니까. 이 묘한 반전미 때문에 디자이너들이 그에게 안달이 난 것 같은데, 그건 영화판에서도 마찬가지다. 내가 정말 애정하는 루카 구아다니노 감독이 올해 개봉한 챌린저스에서 조쉬 오코너를 짠하고 데려왔기 때문이다. 그전엔 솔직히 그가 누군지도 몰랐는데… 마치 콜바넴에서 티모시를 처음 봤을 때 그 신선함과 놀라움이 고스란히 재현되었다. 그리고 깨달았다. 저 사람, 반드시 기억해 둬야 한다!
아담 드라이버 Adam Driver
요즘 한창 주가를 올리고 있는 83년생 미국 배우. 신비로운 매력의 소유자인 전갈자리다. 배우로 데뷔하기 전엔 해병대에서 복무한 특이한 이력이 있다. 수상 경력 역시 화려하다. 출세작인 결혼 이야기로 시카고 비평가 협회, LA 비평가 협회상의 남우주연상 모두를 따낸 실력자. 최근엔 마이클 만 감독의 페라리에 캐스팅되어 기업 페라리의 창업주 엔초 페라리로 열연할 예정.
에디터 영
단 한 번도 아담 드라이버가 잘생겨’보일’거라 생각한 적 없었다. 미드 를 보기 전까지는. 이 드라마 속 그의 스타일을 논하기에 조금 부끄러운 것이 그는 주로 상의 탈의를 하고 등장했었다. 단언컨대 그래서 좋았던 건 아니다. 젊고, 방황하면서도 의외로 댕댕이 같은 모습을 잔뜩 보여준 건 그의 필모 중 가 유일하지 않을까? 그래서 좋았다. 사실 억세고 고집 세 보이는 인상의 이들에게 끌리는 편은 아니다. 무슨 말을 해도 꺾이지 않을 것 같은 지점이 묘하게 거슬리게 하는 구석이 있어서다. 아담 드라이버는 내게 그런 ‘느낌’을 준다. 다만 <Girls>에 등장한 그만은 논외로 두겠다.
에디터 주
주변인들 중 절반은 영화 덕후다. 좋아하는 배우나 감독의 필모를 N번 정주행하는 건 물론이며, 그들을 사랑하는 명확한 이유에 대해 하루 종일 떠들 수 있을 만큼 내공이 깊은 사람들이다. 물론 내가 제일 하수다. 그런 그들이 입을 모아 찬양하는 배우가 있었다. 아담 드라이버. 난 당시만 해도 그가 나오는 작품을 단 한 편도 보지 않았기에 뭐라 리액션을 해야 할지 몰랐다. 근데 이름이… 한 번 들으면 잊을 수가 없는 이름 아닌가.
모르면 그들의 이야기에 낄 수 없다. 그때부터 그의 행적을 뒤쫓기 시작했다. 그러다 어떤 블로그에서 재미난 글을 봤다. 아담 드라이버, 더 늙기 전에 로코 찍어라! 나는 갸우뚱할 수밖에 없었다. 솔직히 로코를 간절히 바랄 만큼의 마스크가 아닌데. 근데 이 알량한 생각은 영화 패터슨를 보며 180도 바뀌게 된다. 그래, 이거야말로 진짜 현실 러브 스토리가 아닌가. 담백하면서도 절실하고, 뭔가 응축된 에너지가 온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게 화면 밖에서까지 느껴졌다. 게다가 한 번 보면 도무지 잊히질 않는 마스크. 약간 안개 낀 새벽에 마주한 에이드리언 브로디 같기도 한 것이, 잘생김 연기의 대가 베네딕트 컴버배치 같기도 한 것이 왜 이렇게 다들 아담, 아담 하는지 알 것 같다. 큰 행사에서 수트까지 차려입으면 퇴폐미까지 물씬 난다. 블랙 수트에 블랙 타이. 뻔하디 뻔한 차림인데 미남 게이지가 수직 상승하는 건 수트의 힘일까, 그의 힘일까. 나는 후자에 손목을 건다. 패완얼이라는 말이 조각 미남에게만 적용되는 게 아니란 걸 알려주는 멋진 본보기.
스다 마사키 Suda Masaki
본명 스고 타이쇼. 오사카 출신으로 시내에 나가기만 하면 스카우트되는 게 일이었다고. 역시 될성부른 나무는 떡잎부터 다르다. 학교 교사가 꿈이었는데 결국엔 배우가 되었고, 한 때 문제아 역할을 전담하며 매력만점 나쁜 남자 스타일로 인기를 끌었다. 하지만 필모는 화려하다. 특촬물인 가면라이더부터 해파리 공주 실사판에선 여장 남자, 아, 황야에선 15kg을 증량하여 복서 역할까지 해냈다. 현재까지도 활발한 활동을 이어가는 덴 다 이유가 있다.
에디터 영
한때 지독하게 사랑했던 그. 사람 마음이 참 간사하게도 그가 고마츠 나나와 결혼 후, 유부남이 되는 순간 사랑이 식어버렸다.
그래도 말할 거리는 많다. 한국, 일본, 중국, 이 가깝고도 먼 동북아시아의 각기 다른 미남 상을 아시는가? 보통 나는 일본의 미남 상에 끌리는 편이다. 쌍꺼풀 진한 눈에, 날카로운 코, 그리고 어디선가 풍기는 섹시한 카리스마. 가까워져서 그 근원을 모조리 알고 싶은 욕망을 일으키는 그들에게 말이다. 한 배우에게 꽂히면 미친 듯이 필모를 파는 편인데, 스다 마사키도 그랬다. 외모만으로 보면 이상형 그 자체였으니까. 화이트 셔츠에 느슨하게 멘 넥타이. 특히나 교복을 입었을 때 더욱 끌렸었다. 그렇다. 나는 그가 속된 말로 양키, 양아치 같은 역할을 할 때 아주 큰 흥미를 느꼈고, 여전히 느낀다 (이 글을 쓰면서 깨달았다). 귀여니 소설에 나올법한 여주가 되고 싶은 미친 욕망이 여전히 내게 있는 까닭일까?
에디터 주
흔히 거부할 수 없는 매력이라는 표현을 많이 쓰는데, 나는 그게 어떤 위태로운 분위기와 맞닿아 있다고 느낀다. 딱히 인생에 거창한 목표도 없고, 그래서 잃을 것도 없고, 겁도 없고, 때문에 위험한 일에 쉽게 빠져버리는 그런 캐릭터. 그래서 끊임없이 끈질기게 마음이 쓰이는 캐릭터. 그가 만약 사랑이라면… 그래, 이 죽일 놈의 사랑이 되는 거다. 이런 사람이 컨트롤이 될 리가 있겠는가. 이리저리 휘둘리다 제풀에 지쳐 이별을 고하고, 맘고생에 끙끙 앓다 그렇게 영영 잊히지 않는 사람으로 기억되는 것이지.
스다 마사키. 그의 독보적인 이미지는 바로 이 위태로움에서 나온다. 불현듯 안부가 궁금해지는 사람. 오랜만에 동창들의 모임에 절대 올 리 없지만, 그 자리에 모인 모든 이들이 혹시 그가 나타날까 기대에 부풀어 있는 사람. 내게 스다는 딱 이런 이미지다. 근데 만약 나타난다면 왠지 빈티지한 스웨터에 루즈한 핏의 진을 입고 있을 것 같다. 남들한테 잘 보이려 한껏 치장할 것 같진 않으니까. 그러나 현실은 2017년 일본 패셔니스타 남성 부분 1위. 아, 이 사람 갖고 싶은데 정말 갖기 어려울 것 같다.
숨 가쁘게 달려온 두 에디터의 열띤 토론은 여기까지다. 근데 가장 중요한 하나가 빠졌다. 앞서 소개한 총 6명의 남성들 중 각자의 최애는 누구일까? 쑥스럽지만 마지막으로 밝혀둔다. 김나영 에디터의 최애는 폴 메스칼, 주단단 에디터의 최애는 칼럼 터너!
Published by jentestore 젠테스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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