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ories: Lounging Around
Stories: Lounging Around
네 쇼룸이 우리 집이었으면 좋겠어
집을 보면 그 사람을 알 수 있다는 말이 있다. 아마 모두가 이에 동의할 것이다. 누군가의 집에 초대되었던 경험을 떠올려보라. 사소한 취향부터 생활 습관, 심지어 성격까지 알아챌 수 있는 힌트들로 가득한 곳. 집이란 바로 그런 곳이다.
패션 브랜드의 집, 쇼룸 역시 마찬가지다. 각각의 개성을 반영한 인테리어는 물론 곳곳에 놓인 가구와 소품들까지. 이제 쇼룸은 단순한 제품 전시를 뛰어넘어 브랜드의 철학과 미학이 오롯이 스며든 공간으로 자리 잡았다. 어디 그뿐인가. 쇼룸은 방문자에게도 특별한 경험을 제공하는 장소다. 시각적 즐거움은 기본에 음악과 향기로 우리의 오감을 만족시키고도 남는다. 게다가 손민수하고 싶은 아이템은 왜 이리 많은 것인지... 세 달 전 무심코 들린 아오야마의 한 편집샵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침실의 커튼까지 바꾼 게 바로 나다.
이렇게 쇼룸은 패션과 건축, 예술이 집대성된 문화의 장으로 거듭난다. 이미 수많은 패션 브랜드들은 이런 물리적 공간을 통해 자신만의 세계관을 성실히 구축하고 있는 중. 그렇다. 그들은 언제나 우리를 환대할 준비가 되어있다.
미니멀리즘의 선두주자. THE ROW의 쇼룸은 웬만한 갤러리 못지않다. 런던에 위치한 플래그쉽 스토어만 봐도 그렇다. 정문에서부터 미국의 설치미술가 제임스 터렐(James Turrell)의 작품이 마중을 나온다. 빛과 공간을 재료로 극한의 몰입감을 선사하는 것이 그의 작품의 특징. 허나 이게 끝이 아니다. 미국의 조각가 존 체임벌린(John Chamberlain)의 금속 조각과 프랑스 디자이너 미셸 뷔페(Michel Buffet)의 라운지체어까지 그야말로 럭셔리의 정점이다.
근데 여기, 실제로 갤러리를 개조한 공간이다. 200평 규모의 2층짜리 건물을 건축가 애나벨 셀도로프(Annabelle Selldorf)와 협업하여 설계했다고. 고풍스러운 외관은 그대로 살리고 높은 층고를 가득 채우는 넓은 창으로 채광을 극대화시켜, 인위적인 빛에 왜곡된 모습이 아닌 자연광을 받은 제품의 참모습을 마주할 수 있게끔 하였다.
소문난 미니멀리스트답게 인테리어도 군더더기 하나 없다. 블랙과 네이비, 아이보리 등 뉴트럴톤을 위주로 가구와 소품을 구성한 것이 관전 포인트. 이러한 컬러 사용은 평소 THE ROW의 아이템에서도 종종 찾아볼 수 있었기에 반갑다. 또한 내부의 무늬 없이 매끈한 하얀 벽은 자칫하면 차가워 보일 수 있는데, 이를 중화시키기 위해 바닥과 계단은 화사한 컬러의 오크 목재를 사용하여 따뜻한 느낌을 부여했다.
우리가 간절히 바라는 온기가 느껴지는 집. THE ROW의 쇼룸은 포근함과 세련됨이 공존하는 매혹적인 공간이다. 절제된 컬러, 화이트와 원목의 조화. 기본기에 충실하면서도 본연의 고급스러움을 숨길 수 없는 장소. 당신이 설령 미니멀리스트가 아니라 할지라도 이런 무드라면 그저 홀릴 수밖에 없을 듯.
주택도 부티크도 아닌 모호한 장소. 하지만 그 모호함이 LEMAIRE 쇼룸이 지닌 매력이다. 얼마 전 한남동에 혜성처럼 등장했을 때도 그랬다. 오래된 주택을 개조해 그런지 외관만 보면 그냥 익숙한 집 그 자체. 실내에 들어서서 크로와상 백이 걸린 걸 눈으로 보고 나서야 아, 여기가 LEMAIRE 매장이었지...라고 인지하게 되는 것이다.
이처럼 LEMAIRE의 스토어엔 친근함이 서려있다. 그리고 그 친근함을 강화시키는 하나의 비법은 바로 여러 나라의 전통을 반영한 인테리어다. 중국 청두의 매장은 바닥 타일과 문 손잡이, 블라인드를 대나무로 만들었고, 일본 도쿄의 매장은 화옥(和屋)의 느낌을 그대로 살렸다.
그중에서도 가장 주목해야 할 곳은 LEMAIRE의 본진인 파리의 부티크. 다른 곳과는 달리 주요 상점거리 한복판에 위치해 있지만 내부는 그들의 정적인 에너지로 가득하다. 흰색의 벽과 밝은 원목의 바닥, 핸드메이드 모로코 타일 러그까지 획일적인 공산품의 기척은 어느 곳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것이 특징. 이에 황금콤파스 상(1954년부터 이어지고 있는 이탈리아 최고의 디자인 상)을 네 차례나 받은 이탈리아의 디자이너 엔초 마리(Enzo Mari)의 가구들까지 합세해 유니크한 무드를 구성한다. 마지막으로 계단은 시멘트의 질감을 그대로 살려 정제되지 않은 느낌을 일관되게 유지한다.
장인 정신과 편안함으로 무장한 LEMAIRE의 쇼룸. 회색빛 도시 풍경에 지친 하루를 해소하기 위한 피난처가 있다면 아마도 이런 모습이 아닐까.
로스앤젤레스에 위치한 BODE의 쇼룸엔 무언가 특별한 것이 있다. 바로 도도새의 화석. 이제 멸종되어 버린 가여운 이 새와 BODE의 사이엔 어떠한 연결고리가 있는 것일까?
이는 BODE의 브랜드 철학을 들여다보면 쉽게 답이 나온다. 그들은 업사이클링에 진심이며, 재사용 섬유를 사용하는 데에 거리낌이 없으니. 덕분에 지속 가능성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브랜드이기도 하다. 이 도도새 화석은 자연 친화적인 BODE의 아이덴티티를 드러내는 상징물인 셈.
그래서인지 그들의 공간은 어릴 적 소풍으로 가보았던 자연사 박물관을 떠올리게 한다. 빈티지한 무드의 배경에, 어두운 체리빛의 원목으로 통일감을 획득하고, 섹션별로 희귀 동물들의 이름표를 배치하는 재치까지. 과연 엔틱한 느낌의 BODE의 아이템들과 잘 어울리는 인테리어다.
지속 가능성은 소품들의 선택에서도 이어진다. 침대보의 원단을 재사용해 소파를 제작한다거나, 디렉터인 에밀리 애덤스 보디(Emily Adams Bode)가 직접 수집한 골동품들 위주로 공간을 꾸몄다. 미국의 유명 가구 디자인 스튜디오인 Green River Project의 실력도 힘을 보탰다. 자연에서 볼 수 있는 친숙한 색을 활용해 여러 가지 가구를 제작하는 것이 이들의 장기. 특정 공간이 한 브랜드의 철학을 이토록 명확히 대변한다는 게 가능하다니. 놀라울 따름이다.
Sacai
작년 일본 여행에서 가장 잘한 일 중에 하나는 Sacai의 아오야마 스토어에 다녀온 것이다. 2023년에 새롭게 리뉴얼을 했다는 소식을 듣고 기대에 부풀어 있었는데, 이게 웬일. 기대보다 훨씬 멋진 실물에 감탄을 금치 못했다.
우선 내부에 들어서면 막연한 미로 같은 느낌에 사로잡힌다. 흑백의 명암으로 기묘한 공간감을 연출한 에셔의 그림이 절로 떠오른다. 이 흥미로운 공간을 설계한 유스케 세키(Yusuke Seki)는 언론에 얼굴을 보이지 않는 베일 속의 건축가로, 파괴와 재생을 주제로 한 작업을 진행한다.
Sacai 스토어도 그렇다. 기존의 벽에 새로운 재료를 더하는 대신 감싸고 있던 자재들을 모두 제거해 콘크리트를 그대로 드러내고, 멀쩡한 바닥을 파서 구멍을 만들었다. 원래의 계단엔 시멘트를 얇게 쌓아 올려 새로운 높이를 더했다. 말 그대로 파괴와 재생이 한 공간 안에서 이루어진 것이다.
어수선해 보일 염려가 있는 배경을 중화시키기 위해, 그가 선택한 것은 새하얀 석고로 성형한 제품 진열대와 강렬한 컬러감의 페르시안 카펫. 덕분에 아이템의 독특한 디자인이 효과적으로 부각되고 카펫에 새겨진 화려한 무늬가 단단한 경계를 형성한다.
다소 난해해 보이지만, Sacai는 원래 그런 브랜드가 아니었던가. 남들과 똑같은 옷을 입는 게 죽을 만큼 싫은 사람들이 선택하는 게 바로 Sacai니까. 만약 당신이 어디에서도 본 적 없는 독특한 인테리어를 꿈꾸고 있다면, 사람들의 주목을 끌만한 희귀한 조형미를 찾고 있다면, 이들의 아이디어를 참고하라.
이것이 로우 아키텍처(Raw Architecture)다. 나타날 때마다 새로운 실루엣과 넘치는 위트로 우리를 감탄하게 하는 BALENCIAGA. 이번 런던 스토어의 설계에서는 로우 아키텍처라는 신개념을 도입해 패션계와 건축계 양쪽의 관심을 모두 끌었다. 얼핏 보면 노출 콘크리트 공법과 다를 게 없어 보이지만, 자세히 보면 디테일이 다르다. 마치 오래된 건물의 주차장 무드랄까? 시간의 흔적이 고스란히 서린 낡은 콘크리트 벽과 뼈대를 드러낸 설비들, 폐기물 더미 위에 그대로 유리 바닥을 얹은 모습이 아직 마무리되지 않은 건설 현장 같다.
그렇다. 그들이 노리는 건 바로 이 불안정한 느낌이다. 잊지 말아라. 이들은 BALENCIAGA다. 로우 아키텍처는 미완성이 목표다. 항상 괴상한 아이템으로 우리를 혼란에 빠뜨렸던 그들이 이번엔 건축에까지 손을 뻗은 것이다. 역시. 단 한 번도 우릴 실망시킨 적이 없었던 그들답다.
Published by jentestore 젠테스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