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덜란드, 스웨덴, 독일의 낙태 이야기
봄알람 출판사에서 낸 ‘유럽낙태여행Journey for Life' 책을 읽었습니다.
항상 다른 나라는 왜 낙태 합법화가 가능했을까 참 궁금했습니다(1). 합법화가 가능한 ‘순간threshold’이 궁금했습니다. 특히 카톨릭/개신교 국가는 심지어 종교세도 내는데 말이죠. 유럽낙태여행 책 덕에 리서치 해볼 가이드라인을 얻었습니다. (사회구조론 적에서 보면 너무나 당연하겠지만)정치 기관, 의료 기관, 대중이 합의가 이뤄질 때 합법화가 가능했습니다. 이에 대해 제가 대충이나마 리서치 한 내용을 공유합니다. 네덜란드, 스웨덴, 독일의 이야기입니다. 네덜란드는 의사들의 낙태에 관한 관점, 스웨덴은 기존 정치 제도 내의 움직임의 효과가 흥미로워 요약했고 독일은 합법이 아니지만 처벌받지 않는 국가의 모순점이 눈에 띄어 공유합니다.
그 외에 책을 읽고 낙태가 합법화된 국가라고 해서 안심할 수 없다는 사실에 충격받았습니다. 법적으로 낙태는 보장되어도 실질적인 낙태에 대한 접근성이 떨어지거나, 사회적 낙인은 여전하거나, 심지어 우파 정당의 득세로 다시 낙태를 불법화하려는 세력이 강해지는 현실을 보았습니다. 낙태는 또한 의료권 분쟁이라는 사실에 무릎을 탁 쳤습니다. 한국과 같이 수도권 중심주의가 심한 나라에서 낙태가 합법화 되었을 때 지방 여성들에게도 낙태 시술에 대한 접근성이 똑같이 보장될까요? 이럴 때에 정말 낙태가 합법이라 말할 수 있을까요. 정치 기관, 의료 기관, 대중 모두 끝없이 낙태에 대해 이야기해야하는 이유입니다.
1960년대까지 네덜란드에서 피임은 결혼의 목적과 반대되는 것으로 간주되었다. ‘가족계획'은 여성의 전통적인 아내, 어머니 역할을 여성에게서 분리시켜 여성이 성적으로 타락하게 할 것이라 여겨졌다. 가장 중요한 문제는 당시 피임 방법의 피임 효과가 불확실했다는 것. 피임이 실패할 경우 피임을 처방한 의사도 함께 책임을 져야하는 것으로 간주되었고, 이 때문에 가족 계획(피임)이 낙태로 이어진다고 믿어졌다.
1960년대 중반 피임약이 덕분에 피임의 안정성이 올라가자 의사들이 피임과 낙태를 분리해서 바라보기 시작했다(1971년 피임약이 보험으로 커버되어 무료가 되었다). 당시 낙태는 의학적 이유(medical grounds)에서만 가능했는데, 곧 의학적 이유가 정확하게 무엇인지에 대한 논란이 일었다. 낙태는 여성의 삶을 구하기 위해서 - 일 때만 합법이었는데, 여성이 싱글이라던가 아이가 많다는 것도 그 이유가 될 수 있다는 것이었다.
1967년 소위 ‘낙태 팀(abortion team)’이 암스테르담 대학에 만들어졌고 다른 종합병원들도 이를 따라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접근성이 낮고 비싸고 무엇보다, 낙태의 의학적 근거가 합당하다는 판단을 내릴 때까지 과정이 복잡하다는 이유에서 논란을 맞이했다. 네덜란드 의사 협회는 네덜란드 법 상황상, 수술을 선택하는 여성이 가장 낙태의 필요성을 잘 파악하고 있다고 못을 박았고 ‘낙태 팀'은 해체되었다.
1969년, 비영리 기구 Stimezo Nederland가 낙태 시술 제공을 목적으로 등장했고 1971년 낙태 클리닉을 세운다. 앉아서 법에 대해 토론하기 보다 길거리에 나서고 매스 미디어에 등장하길 추구한 페미니스트 그룹 Dolle Minas는 1970년 슬로건 “Bass in eigen buik(Boss of my own belly)”을 배에 그리고 나와 주목을 받았고, 1974년엔 Dolle Minas 의 멤버들이 오직 낙태 이슈에만 집중하기 위해 세운 단체 Wij Vrouwen Eisen(We Women Demand)가 등장해 시위를 이어나갔으며, 낙태 합법에 대한 공격을 막아왔다(낙태 클리닉을 점거해 물리적으로 반대세력을 막아내기도 했다!). 결국 1984년 국회에서 낙태법은 통과되었다.
스웨덴도 1864년까지는 강력한 낙태 금지법을 가지고 있었지만 사회 운동으로 점차 변화가 생겨났다. 스웨덴에서 낙태 합법화 운동은 기관 밖에서 낙태 합법화 운동으로 시작되기보다 여러 이슈 중 하나로 대두되었고, 기존 제도 내에서 시작되었다. 특히 주요 정당 내 청소년, 학생, 여성들로부터 시작되었기 때문에 기존 제도 내에서 정치적 힘을 이용했다. 1965년 정부는 낙태법 개혁 위한 위원회를 열었는데 이 때 대중의 관심도 높아졌지만 큰 시위로 이어지거나 하진 않았다.
1938년 처음 낙태법이 완화된 이후로(건강 문제 같은 특수한 상황에서만 허용되게 완화되었다) 낙태에 대한 논의가 계속 이루어진 결과 낙태가 경솔하게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여성이 사회적 혹은 경제적으로 궁지에 몰렸을 때 할 수 밖에 없는 선택이라는 사회적 합의가 어느 정도 만들어진 상태였다.
1971년 법이 제안 되었을 때 대중적 지지를 받고 쉽게 통과되었다. 이런 배경 때문에 스웨덴에서는 다른 나라와 달리 낙태합법화는 국가의 낙태에 대한 통제를 없애는 게 아니라, 국가의 개입을 확장하는 방향으로 나아갔다. 덕분에 스웨덴 시민권을 가진 여성에게 낙태는 이상 보험으로 어느 정도 커버가 되고, 또 낙태에 대한 접근성도 보장되었다. 현재 스웨덴에서는 18주까지 낙태가 가능하다.
독일에선 낙태가 합법이 아니다(이 사실을 알고 몹시 놀랐는데…. 내 친구 가족 중 낙태클리닉에서 일하는 사람이 있어서 이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적 있기 때문이다. 생각해보니 한 번 친구들과 얘기할 때 한 명이 ‘독일은 낙태 합법 아니야.’ 라고 해서 모두가 놀라고 모두가 그의 말의 진실성을 의심한 적 있다. 독일인들조차 잘 모르는 낙태법의 실재!).
동독에서는 낙태가 전면 합법이었고, 서독에서는 특수한 상황에서만 낙태를 허락하고 있었다. 1992년 Bonn Bundestag에서 독일 역사상 가장 긴 16시간이란 토론이 이뤄진 결과 12주 내에 낙태가 허용되었지만 3일만에 폐기 되었다(기존 법과 충돌한다는 이유로). 1995년 태아는 보호되어야하지만, 12주내에 낙태를 할 때엔 처벌 하지 않는다는 - 낙태는 불법이지만 처벌은 하지 않겠다는- 법이 만들어졌다. 법에 따라 여성들은 낙태를 선택할 경우 상담을 거쳐가야한다. 방문하는 클리닉에 따라 이 상담은 정말 서류상 과정이 될 수도 있고 혹은 진짜 상담이 될 수 있다.
독일에서도 여전히 카톨릭 혹은 개신교의 영향이 강한 편이다. 물론 주별로 다르다. 바바리아 같은 경우 굉장히 보수적인 편이다. 그래서 낙태 문제에 관해서도 여전히 논란이 만연한 것 같다(2). 낙태가 불법일지라도 낙태시술을 받을 수 있다면 뭐가 문제야 싶겠지만 낙태가 합법이 아닌 이상 보험으로 커버되지도 않고, 또 국가가 낙태 시술의 접근성을 높일 필요도 없다는 점, 사회 낙인 등이 문제가 된다. 최근 낙태를 제공한다는 광고를 낸 의사가 처벌받기도 했다. 이건 무슨 모순일까.
1) '유럽낙태여행' 책을 따라 이 글은 임신 중단 혹은 임신 중지 대신 '낙태'라는 단어를 선택했다. 책을 인용하자면 이렇다. "좀 더 널리 쓰이는 낙태라는 단어로 여성의 재생산권을 이야기하는 이 책 속 활동가들의 목소리가 낙태라는 언어에 덧씌워진 부정적 의미를 덜어내고 이것을 여성의 기본권으로 논하는 데 작은 보탬이 되기를 바란다."
2) 독일 낙태 합법화 운동 쪽의 주장에서 눈에 띈 건 나치 정권의 흔적을 송두리 채 뽑기 위해서라도 낙태 합법화가 필요하다는 주장이었다. 나치 정권 아래에서 아리아인 여성의 낙태는 금지 되었지만 비아리아인 여성의 낙태는 보장되고 오히려 권장되었다. 현재 유럽에서 가장 강력한 낙태 금지법을 가지고 있는 폴란드도 1956년부터는 낙태가 여성의 생활 여건(living condition)이 좋지 않을 경우에 합법이어서 주변 국가의 여성들이 낙태를 하러 방문하기도 했다. 국가는 국민 개인의 행복이 아니라 국익을 위해 이리저리 낙태법을 바꾼다. 그게 여성의 불행을 가져올지라도.
3) 많은 논문을 인용한 게 아니라 한 두 개의 글을 참고했기 때문에 기존 논문 인용 방식보다 나열하고 그에 대한 설명을 첨부한다.
네덜란드
- Ketting, E., & Schnabel, P. (1980). Induced Abortion in the Netherlands: A Decade of Experience, 1970-80. Studies in Family Planning, 11(12), 385. doi:10.2307/1965845
네덜란드 낙태에 대한 의료적 관점의 변화, 그리고 인구학적 통계가 담긴 논문.
- Ellis‐Kahana (2011). The Perfect Storm: How Pro-Abortion Activists in the Netherlands Incite Social Change From International Waters. Independent Study Project (ISP) Collection. 1154.
Women on Wave의 활동가의 개인 연구. 네덜란드 낙태법의 역사와 프로초이스 활동가들의 인터뷰를 담았다.
- History in a nutshell. (n.d.). Retrieved from https://www.bloemenhove.nl/en/about_us/history
1971년 만들어진 낙태 시술소 사이트. 간단한 역사를 볼 수 있다.
스웨덴
- Linders, A. (2004). Victory and Beyond: A Historical Comparative Analysis of the Outcomes of the Abortion Movements in Sweden and the United States. Sociological Forum, 19(3), 371-404. doi:10.1023/b:sofo.0000042554.66359.1d
낙태가 비슷한 시기에 합법화된 미국과 스웨덴을 비교해보는 논문. 낙태 합법화의 원동과 그에 따른 결과물이 어떻게 차이가 나는지 비교했다.
- C. E. (2018, May 24). How Sweden got some of the most liberal abortion laws in the world. The Local Sweden. Retrieved from https://www.thelocal.se/20180524/the-history-of-legal-abortion-in-sweden-liberal-laws
스웨덴 낙태 운동과 현재 논란에 대해 정리한 기사.
독일
- M. F. (1992, June 26). GERMANY GIVES WOMEN THE RIGHT TO ABORTION. The Washington Post. Retrieved from https://www.washingtonpost.com/archive/politics/1992/06/26/germany-gives-women-the-right-to-abortion/502a6e29-3bcb-44d4-b561-8d2260341e2d/?noredirect=on&utm_term=.dbe5c7b551ef
1992년 독일에서 낙태가 합법화 되었을 때 워싱턴 포스트 기사.
- D. S. (2018, February 5). Germany’s ambiguous abortion laws rankle with all sides. The Irish Times. Retrieved from https://www.irishtimes.com/news/world/europe/germany-s-ambiguous-abortion-laws-rankle-with-all-sides-1.3379731d
독일 낙태법에 대한 타임라인과 현재의 논쟁.
그외
- Acosta, Luis, Yatsunska-Poff, Olena, Zeldin, Wendy, . . . Graciela. (2015, January 01). Retrieved from https://www.loc.gov/law/help/abortion-legislation/europe.php
유럽 낙태법 현황을 한 번에 볼 수 있는 사이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