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즈덤하우스 위클리 픽션, 위픽 #2

≪오로라≫ 외 2종

by 젊은최양

그간 위픽 시리즈를 11종이나 더 읽어서 총 14종이 책장에 꽂혀 있다. 차근차근 짧은 소개 또는 감상을 남겨놓으려고 한다. 지난 2024년 9월에는 한국문화예술위원회에서 주관하는 문학주간 행사에 참여해 위픽 시리즈의 편집자님을 직접 뵙기도 했고, 출판사 측에서 직접 쓴 쪽지와 함께 시즌 2 초기 신간들을 잔뜩 보내주셔서 기쁜 순간을 보내기도 했다.




≪오로라≫

감춘 후에야 계속 잘 숨기거나 들킬 수 있는 건데, 들키고 나서야 비로소 ‘감출 수 없단 걸’ 깨달았다는 표현이 무언가 애절하게 느껴졌다.

혼자서 폭발하는 감정을 찾아가고, 깨닫고, 잠재우기 위해 발버둥 치는 이야기. 유진처럼 자신을 찾기 위해 초여름에, 여름이 극에 다다라 볕이 뜨거울 시점에 두 번의 홀로서기 제주 여행을 떠났던 기억이 떠올랐다. 높은 기준에 자신을 맞출 수 없어 항상 부끄럽고 그래서 자신감도 없는 편이었다. 하나를 모르면 전체에 부끄러움을 느꼈다. 더 잘해야 목소리를 키울 수 있을 것만 같았고 지금도 그 생각은 어느 정도 내 속에서 유효하게 작용하고 있다. 제주 여행에서 단단한 채로 그을려져 새로운 길에 발걸음을 향할 용기를 얻었다. 다행이지. 지금은 더없이 만족스럽다.



지난밤 갉아낸, 조각낸, 떼어낸 최유진의 조각들. 긁어낸 공간만큼 텅 비어간다. 빈자리는 탈출구가 될 것인가. 그저 구멍으로 남을 것인가. (p. 61)




≪두더지 인간≫

하지만, 가끔은 여전히 오로라처럼 연기하듯 살고 있다고 느끼기도 한다. 사회생활 9년 차, 어느 순간, 인정받기 위한 요소 중 뻔뻔하게 할 말은 할 줄 아는 당돌함이 포함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모두에게 필수는 아니겠지만. 그때의 그 민망함을 감춘, 뺀질거리며 잘난 체를 하는 그런, 연극을 하는 느낌이 들곤 한다. 이 또한 엔딩이 있을까.


그러나 보이지 않더라도 그곳에 초록색이나 노란색이 있는 것이 중요하다. 큰따옴표처럼 문양을 도드라지게 만들어주는 검은색이 있는 것이 중요하다. (p. 69)



그러니까 진정한 뱀은 나였던 것 같다. 항상 허물을 벗고 싶어 했으니까. 허물을 벗을 때쯤이면 내 갈망의 굵기는 더할 수 없이 커졌고 이전의 허물로는 나를 가둘 수가 없었다. (p. 95)




≪다다른 날들≫

다소 교훈적으로 감상이 이어지는 것 같으나 이 또한 어쩌겠는가. 읽은 순서로 3권의 도서를 가져온 것인데, 그때는 분명 연결지점을 찾지 못했던 것 같은데, 결국 모두 '삶'을 말하고 있지 않은가.

가벼운 우울감이 지속되는 사람을 보면 자기연민에 빠져 있는 경우가 많다. 비록 화목하지 못하더라도 가정이라는 울타리가, 어른답지 못하더라도 부모 중 하나만이라도, 어른 한 사람만이라도 간절히 바라는 사람도 있다. 더 나아가서는 최소한의 심신의 안녕만이라도 바라는 사람도 있다. 자기연민은 실제적인 우울에 직면한 것과는 완전히 다르다. 실제적인 우울에 직면해보았다면, 그런 사람을 곁에 두어본 적이 잠시라도 있다면 알 것이다. 물론, 나도 문득문득 나의 부분부분이 불쌍해 울컥 눈물이 나기도 한다. 하지만 누구라도 일반적인 선에서 자기연민에서 벗어나겠지. 그래야 삶을 지내겠지. 그 정도면 모두가 잘 살아내고 있다고 생각한다. 다음 어느 적당한 순간에는 동생과의 에피소드를 풀고 싶다.



소파술이 끝나고 회복실에 누워 천천히 마취에서 깨어날 때쯤 보호자 의자에 앉아 울고 있는 선우를 보고도 애써 모른 척했던 것도. 식음을 전폐한 채 죽어가던 아버지의 모습을 지켜보며 사뭇 느꼈던 감정도 그와 비슷했다. (p. 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