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의 무게가 권위가 아닌, 주변을 보듬는 온기가 되기를
이 글은 오마이뉴스에 실린 제 글입니다. 브런치 독자분들과도 나누고 싶어 옮겨옵니다.
어느덧 한 해의 끝자락, '세밑'과 마주하고 있다. 살아온 날을 숫자로 세는 것이 '나이'라면, 그 세월을 돌아보며 자신의 삶을 가늠하는 몸짓은 '나잇값'이라 부른다. 퇴직 4년 차를 앞둔 지금, 나는 스스로에게 묻는다. 나는 과연 나잇값을 톡톡히 하며 살고 있는가.
탈무드에는 "어떤 사람은 젊고도 늙었고, 어떤 사람은 늙어도 젊다"는 역설적인 문장이 있다. 이 말은 나잇값에 대한 우리의 고정관념을 뒤흔든다. 살다 보면 발걸음을 멈추게 하는 질문이 있다. "이 나이에 그게 뭐 하시는 거예요?" 핀잔 섞인 그 말에 말문이 막히는 건 반박할 말이 없어서가 아니다. 도대체 나잇값이란 무엇이며, 그 가격표는 누가 매기는 것인지 새삼 궁금해지기 때문이다.
얼마 전, 친구들과 소문난 맛집을 찾았다. 입구부터 북새통을 이루는 가게 안은 발 디딜 틈조차 없었다. 쉴 새 없이 밀려드는 주문에 주방은 흡사 전쟁터 같았고, 홀을 누비는 아르바이트생의 눈동자는 초조함에 점차 빨라지고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옆 테이블에서 팽팽하게 당겨진 활시위 같은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저기요, 주문한 지가 언젠데 도대체 언제 나와요?"
가시 돋친 항의에 직원의 어깨가 움찔 떨렸다. 이윽고 우리 테이블에도 음식이 도착했지만, 기대했던 메뉴가 아닌 엉뚱한 접시가 놓였다. 직원은 사색이 되어 연신 고개를 숙이며 어쩔 줄 몰라 했다. 당황해 떨리는 그 손을 보며, 나는 들었던 젓가락을 가만히 내려놓고 웃음을 지어 보였다.
"괜찮아요. 마침 이것도 먹고 싶었던 참인데 그냥 먹을게요. 천천히 하셔도 됩니다."
그제야 직원의 굳어있던 얼굴에 안도의 빛이 감돌았다. 식사를 마치고 식당을 나서는 길, 그 직원이 굳이 따라 나와 내 손을 붙잡듯 인사를 건넸다.
"손님 덕분에 버틸 힘이 났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그 짧은 인사는 그날 맛본 어떤 진미보다도 달콤했고, 나이 듦이 줄 수 있는 가장 근사한 보상처럼 느껴졌다.
'나잇값'에 대한 새로운 정의
나이가 든다는 것은 엔진의 출력은 줄어들지언정 내비게이션의 정밀도는 극대화되는 과정이다. 젊은 날의 뇌가 즉각적인 반응 속도에 열광했다면, 인생 2막의 뇌는 수많은 경험의 숲을 지나오며 얻은 '통찰'이라는 고부가가치 자산을 보유하게 된다. 결국 인생의 강점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으로 전이되는 셈이다.
이제 나는 인생 2막의 나잇값을 새로 정의한다. 그것은 화를 줄이는 일, 비교를 멈추는 일, 남의 시선보다 내 컨디션을 먼저 살피는 일이다. 무엇보다 나 자신을 정중하게 대접하는 태도다. 젊음이 앞만 보고 달리는 수직의 시간이었다면, 이제는 옆과 뒤를 살피는 수평의 시간을 살아야 한다.
도전에 늦은 나이는 없다. "이 나이에 뭘 배우겠어"라는 포기 대신, "이 나이기에 비로소 이 깊이를 이해할 수 있다"는 설렘으로 삶을 채워가는 것. 그것이야말로 육체의 쇠락을 이겨내는 가장 품위 있는 반항이자, 우리가 생의 마지막 페이지에 적어 넣어야 할 진정한 '정가(定價)'다.
한 해의 끝에서 우리 모두는 같은 질문 앞에 선다. '나는 어떤 사람이었는가. 조금 더 너그러워졌는가, 아니면 더 예민해졌는가.' 결국 나잇값은 숫자가 아니라 방향의 문제다. 내가 어디를 향해 늙어가고 있는지, 그 방향이 세상을 조금이라도 더 살 만한 곳으로 만들고 있는지 살피는 일이다. 올해를 마무리하며 마음속에 문장 하나를 적어 본다.
"나이만큼 무거워지는 사람이 아니라, 나이만큼 주변을 편하게 하는 사람이 되자."
그것이 지금 이 나이에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공적인 나잇값이자, 다가올 새해를 맞이하는 가장 정중한 예법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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