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한 비법을 찾는 당신에게 전하는 생존 전략
당연함에 던지는 질문
"살기 위해 먹는가, 먹기 위해 사는가." 해묵은 이 질문 뒤에는 '먹어야 산다'는 절대 명제가 철옹성처럼 버티고 있다. 하지만 은퇴 후, 나는 이 당연한 법칙 앞에서 뜻밖의 벽에 부딪혔다. 은퇴 후 가장 먼저 달라진 것은 시간표도, 통장도 아닌 내 몸의 바이오 리듬이었다.
성실하게 아침을 챙길수록 하루는 무거워졌고, 보양식을 먹어도 피곤은 가시지 않았다. 그때 처음 의심했다. '하루 세 끼'라는 규칙은 정말 내 몸을 위한 처방이었을까. 나는 내 몸의 허기보다, 오래된 생활 관습에 더 충실했던 것이다.
'하루 세 끼'는 전통이 아니라 시스템이었다
문득 어린 시절의 인사가 떠오른다.
"어르신 진지 드셨습니까?"
먹고사는 것이 곧 안부이던 시절. 그 인사는 예의이자 연대였고 생존의 확인이었다.
하지만 풍요의 시대인 지금, 우리는 왜 여전히 '하루 세 끼'라는 규격에 집착할까.
돌이켜보면 하루 세 끼는 유구한 전통이 아니다. 그것은 산업사회가 설계한 정교한 '생활 리듬'이다. 공장의 사이렌, 학교의 종소리, 사무실 점심시간에 맞춰 인류의 위장도 표준화된 것이다. 노동의 효율을 위해 정착된 출퇴근 문화의 부산물인 셈이다.
문제는 활동량이 급격히 줄어든 은퇴 후에도 이 관성을 고집한다는 데 있다. 나이가 들면 기초대사량은 줄고 소화력은 떨어진다. 같은 양을 먹어도 남는 에너지는 활력이 아니라 지방과 피로로 돌아온다. '세 끼 사수'라는 믿음이 오히려 건강을 해치는 역설이 시작되는 지점이다.
'평균'이라는 외투를 벗다
나는 작은 실험을 시작했다. 식사를 줄이는 것이 아니라, 나만의 '리듬'을 찾는 일이었다. 아침은 달걀이나 과일로 속을 깨우는 '반 끼', 점심은 가장 든든하게 즐기는 '한 끼', 저녁은 위장에 부담을 덜어주는 '반 끼'로 재구성했다.
여기에는 매끼 국과 반찬을 걱정하는 아내의 뒷모습에서 미안함을 읽기도 했다. 몸의 변화뿐 아니라, 부부의 생활 리듬도 함께 가볍게 만들고 싶었다. 변화는 신속했다. 오후의 식곤증이 사라졌고, 저녁 산책길의 발걸음은 깃털처럼 가벼워졌다. 이제 내 식사의 기준은 벽걸이시계가 아니라 내 몸의 신호가 되었다.
덜어낼수록 선명해지는 인생 2막
바야흐로 초개인화 시대다. 알고리즘이 내 취향을 분석해 뉴스나 음악을 추천해 주는데, 왜 식사만큼은 '국민 평균'이라는 낡은 외투를 입고 있어야 할까. "몇 시니까 먹는다"가 아니라 "내 몸이 원하니까 먹는다"는 이 단순한 전환이 은퇴 후 삶의 질을 결정한다.
나이가 들수록 식사는 채우는 노동이 아니라 조절하는 '예술'에 가까워져야 한다. 양은 줄이되 영양의 밀도는 높이고, 밥공기는 비워도 근육은 지키는 지혜가 필요하다. 덜 먹는 것은 결핍이 아니라, 소화기관에 휴식을 주는 가장 세련된 자기관리다.
은퇴 후의 건강은 단순히 병이 없는 상태가 아니다. 내가 원하는 일을 내 힘으로 계속할 수 있는 '기능적 자유'다. 결국 잘 먹고 잘 사는 법의 핵심은 '더함'이 아니라 '덜어냄'에 있다. 과도한 열량과 낡은 고정관념을 덜어낼 때, 인생 2막의 존재 밀도는 비로소 높아진다.
오늘도 내 몸이 묻는다. "배가 고파서 드십니까, 아니면 시간이 돼서 드십니까?"
이 질문에 정직하게 답할 때, 은퇴는 삶의 마침표가 아니라 내 몸과 삶을 다시 설계하는 가장 빛나는 전성기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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