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들의 외식, 식당 풍경이 충격적이었다

30년 만에 같은 메뉴를 고른 날

by 이점록
IE003574578_STD.jpg ▲인공지능을 활용, 부부가 외식을 즐기고 있다 ⓒ 이점록


30년 만의 일치, 그리고 두 개의 풍경


서울 강남의 한 백화점.

모처럼 아내와 나들이를 갔다. 우리는 점심을 먹기 위해 중식당으로 향했다. 두 자릿수 대기 번호를 받아 들었다. 우리는 말 대신 휴대폰 화면을 넘기고, 시선 대신 침묵을 공유했다. 기다림이 길어서가 아니라, 이미 익숙해져 있었기 때문이다. 같은 공간에 있었지만, 마음은 각자의 화면 속에 머물러 있었다.


드디어 자리에 앉아 메뉴판을 펼쳤다.

평소라면 반사적으로 이렇게 주문했을 것이다.

"당신은 짜장, 나는 짬뽕."

그런데 이날은 달랐다. 약속이라도 한 듯, 우리 둘 다 얼큰한 짬뽕을 골랐다. 결혼 30년 만에 처음으로 이뤄진 '메뉴 통일'이었다. 별것 아닌 선택인데, 묘하게 마음이 움직였다.


주문한 음식을 기다리며 자연스레 주변을 둘러보게 됐다.

왼쪽 테이블에는 삼대가 함께한 가족이 앉아 있었다. 아이는 쉴 새 없이 재잘거렸고, 할머니와 엄마는 아이의 말 한마디마다 입을 크게 벌려 웃었다. 그 테이블 위에는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온기가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르고 있었다. 웃음이 공기를 데우는 풍경이었다.


반면, 오른쪽 테이블은 사뭇 달랐다.

일흔을 훌쩍 넘긴 듯한 노부부가 마주 앉아 있었다. 식사가 시작되고 끝날 때까지, 두 사람 사이엔 거의 말이 없었다. 종업원에게 건네는 짧은 대답이 대화의 전부였다. 시선은 상대의 얼굴 대신 그릇 속 면발에 고정돼 있었다. 함께 앉아 있으면서도, 각자의 섬에 고립된 듯한 고요. 그 적막이 식당의 소음보다 더 크게 느껴졌다.


문득 이런 생각이 스쳤다. 그렇다면, 이 공간의 누군가는 지금 우리 부부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괜한 상상이 마음 한켠을 건드렸다.


나이 듦보다 무서운 것, 말의 실종


마음 한구석이 덜컥 내려앉았다.

'10년 뒤, 우리도 저 풍경 속에 서 있지는 않을까.'

우리 세대는 "식사할 때는 말하지 말라"는 가르침 속에서 자랐다. 과묵함은 미덕이었고, 침묵은 점잖음의 상징이었다. 하지만 방금 마주한 침묵은 성숙함과는 거리가 멀어 보였다. 그것은 편안함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더 이상 나눌 이야기가 남지 않은 관계의 건조함에 가까웠다.


두려운 것은 육체의 노화가 아니었다. 하루를 온전히 함께 보내고도 서로에게 건넬 문장이 사라진다는 사실이었다. 요즘 식당 풍경을 떠올리면, 이것은 노부부만의 이야기도 아니다. 젊은 커플들조차 각자의 스마트폰 속 세상에 고개를 묻은 채 "맛있네", "다 먹었어?" 같은 최소한의 확인만 나눈다. 대화는 증발하고, 침묵만이 습관처럼 남는다. 이 침묵이 켜켜이 쌓이다 보면, 언젠가는 왜 말을 해야 하는지조차 잊게 되지는 않을까.


침묵과 대화 사이의 온기


그때, 김이 모락모락 나는 짬뽕 두 그릇이 우리 앞에 놓였다.

빨간 국물 너머로 아내의 얼굴이 보였다. 나는 젓가락을 들기 전, 침묵의 관성에 작은 균열을 내기로 했다.

"배고프지? 맛있게 먹자."

정말 사소한 말 한마디였지만, 식탁의 공기가 달라졌다.

아내가 웃으며 말했다.

"메뉴 통일된 거 보니까, 오늘 운수 좋은 날인가 봐."


그 말에 우리 사이에도 작은 웃음꽃이 피어올랐다.

우리는 짬뽕 국물을 들이키며 오늘의 일정, 다음에 올 때는 아이들과 함께 오자는 이야기 같은 시시콜콜한 말을 주고받았다. 말들이 오가자, 식탁 위의 온도도 조금씩 올라갔다. 침묵이 쌓여 '녹'이 되려던 틈새로 따뜻한 대화가 스며드는 순간이었다.


말이 사라진 관계는 시들어가는 화초와 같다.

10년 뒤에도, 20년 뒤에도 우리가 이렇게 마주 앉아 짬뽕을 먹고 있다면, 그릇 달그락거리는 소리보다 서로의 안부를 묻는 목소리가 더 크게 울려 퍼지길 바란다.


침묵은 늘 금이 아니다.

때로는 관계를 서서히 갉아먹는 녹이 되기도 한다.

그날 우리가 나눈 짬뽕 한 그릇은 단순한 식사가 아니라, 서로의 세상을 다시 단단히 이어 붙인 작은 대화의 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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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2막 #나들이 #부부의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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