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2막, 다시 주인공이 되는 3가지 방법

by 이점록

어느덧 퇴직 4년 차가 되었다.


퇴직 후 첫 월요일, 알람 소리 없는 아침은 달콤할 줄만 알았다. 하지만 그 달콤함은 며칠을 가지 못했다. 울리지 않는 핸드폰, 갈 곳 없는 구두, 그리고 무엇보다 나를 당혹스럽게 한 건 '나를 설명할 언어의 상실'이었다.


명함이 사라지자 전화도 줄었다. 이렇게 사람을 작게 만드는 줄 그때 알았다. 인생 2막은 자유의 시작이 아니라, 정체성의 공백에서 출발했다. 많은 사람들이 인생 2막을 "무엇을 새로 할까"로 시작한다. 여행, 취미, 투자, 봉사 등 물론 다 필요하다. 하지만 그보다 앞서 던져야 할 질문이 있다.


"나는 여전히 내 삶의 주인공인가?"


젊은 시절 우리는 역할에 충실했다. 한 가정의 가장으로, 사회의 구성원으로. 그 덕분에 무대는 늘 있었지만, 대본은 늘 남이 썼다. 인생 2막은 그 대본이 사라진 뒤에 시작된다. 그래서 불안하다. 그러나 동시에 처음으로 내 이름을 건 이야기를 쓸 수 있는 시기이기도 하다.


내가 깨달은 '주인공이 되는 확실한 방법'은 그리 거창하지 않다.


첫째, 나를 설명할 '새로운 언어'를 찾는 것이다


"오늘 뭐 했어?"라는 질문에 "그냥 있었어"라고 대답하는 순간, 삶의 주도권은 미끄러진다. 나는 이 공허한 슬럼프를 이겨내기 위해 '브런치 작가'와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라는 새 명함을 스스로에게 선물했다. 모니터 앞에 앉아 문장을 다듬는 시간, 나는 더 이상 은퇴자가 아니라 '기록하는 사람'이 되었다. 중요한 것은 그 시간을 '내가 선택했다'는 감각이다.


둘째, 속도는 늦추되, 방향은 분명히 하는 것이다


인생 2막은 누군가를 앞지르기 위한 경주가 아니다. 남과 비교하는 순간, 우리는 무대의 중심에서 스스로 걸어 내려와 타인의 삶을 기웃거리는 조연이 되고 만다. 속도의 차이는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내가 어디를 향해 걷고 있는가이다.


대신 단 하나의 질문이면 충분하다. “나는 어떤 사람으로 늙고 싶은가.” 이 물음이 방향을 정해준다. 방향이 분명하다면 걸음이 느려도 괜찮다. 속도는 숫자에 불과하지만, 방향은 삶의 품격을 결정한다. 그렇게 느린 걸음조차 한 사람의 깊이를 만들어가는 서사가 된다.


셋째, 경험과 지혜를 나누는 것이다


나는 지역 발전을 위해 마을의 문제를 발굴하고, 해결의 실마리를 나누고 있다. 현장에서 듣고 본 것들을 한 줄의 기록으로 옮긴다. 그 기록이 다시 대화가 되어 사람들 사이를 오간다. 내가 쓴 기사가 누군가의 하루를 멈춰 세우고, 내가 건넨 경험 한 조각이 지역 사회의 작은 변화를 흔들 때, 나는 비로소 다시 무대 위에 선다. 화려한 조명도 쏟아지는 박수 소리는 없지만, 발을 딛고 선 삶의 현장이 곧 나의 무대임을 깨닫는다.


은퇴는 세상과의 단절이 아니었다. 기록하고 만나고, 다시 움직이며 세상과 더 깊이 연결되는 또 하나의 통로였다. 직함은 내려놓았으나 역할은 사라지지 않았다. 이름표는 바뀌었으나 존재는 더 선명해졌다.


인생 2막의 주인공은 대단한 성공을 거둔 사람이 아니다. 타인의 시선에 내 삶의 '출연료'를 지불하지 않기로 결심한 사람, 오늘이라는 시간을 온전히 스스로 선택한 사람, 느리더라도 자기만의 방향으로 뚜벅뚜벅 걷는 사람이다.


그리고 그 모든 하루를 기록으로 남기는 사람. 어쩌면 주인공으로 산다는 건 완성된 결말이 아니라, 끊임없이 배우며 나다운 방향을 찾아가는 '상태' 그 자체인지도 모른다. 무대는 멀리 있지 않다. 지금 이 자리, 내가 선택한 오늘이라는 시간 위에 이미 나의 막은 올랐다.


#인생2막 #주인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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