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레마 Nov 11. 2024

명철: 제대로 구분할 줄만 알아도

간혹 사안이나 인과를 명확히 분별하는 환상을 가질 때가 있다. 세상에는 정답이 주어진 일보다 딱 떨어지지 않는 일이 훨씬 많다. 답이 정해진 수학이, 몸에 고스란히 결과가 남는 운동이 차라리 쉽다고들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삶을 오래 산 것은 아니지만, 살다 보니 세상 모든 일에 정답이 없더라는 이야기에는 나날이 공감하게 된다. 내가 나인 이상 제3자로 바라보고 판단할 수 없기에, 당장 정답같은 일들이 지나고 보면 늘 알쏭달쏭하다. 심혈을 기울여 선택하고 그 선택을 정답으로 만들어가는 것이 최선이라는 이야기가 괜한 말은 아니다.


다만 오늘은 반대로, 뚜렷이 구분되는 것을 혼동하지 않는 명철함에 대해 돌이켜보려 한다. 이를테면 사랑과 돈은 명백히 다른데, 사랑하니까 돈을 신경쓰면 안 된다거나 돈이 많으니 손쉽게 사랑할 수 있다는 등의 문장을 쓸 수 없다는 생각이다.


가난이 문으로 들어오면 사랑이 창문으로 도망간다는 말을 통해 돈을 앞세울 수도 있고, 서로 마음만 맞으면 원룸에서 부대끼며 살아도 행복하다는 말로 사랑을 앞세울 수도 있다. 두 문장은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에 초점을 두기 위한 수사이지 무엇이 우선임을 드러내는 진리나 정답이 아니다.


우리는 종종 사랑에 눈이 멀어 돈의 영역을 무시하거나 돈에 눈이 멀어 사랑의 영역을 무시한다. 사랑의 일을 돈만으로 할 수 없고 돈의 일을 사랑만으로 해낼 수 없다. 그러니 우리는 명철하게 각자의 속성을 파악하고 삶 속에서 다가오는 모든 것들을 제대로 구분할 필요가 있다. 


각자의 것들에게는 각자의 자리가 있다. 그것을 제대로 구분할 줄만 알아도 마음이 조금은 더 편해지지 않을까.

작가의 이전글 습관: 인지와 인식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