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이태원 클라쓰'의 박새로이가 외친 대사가 떠오른다. '지금 한 번, 지금만 한 번, 마지막으로 한 번, 또 또 한 번'이다. 사회 곳곳의 구태가 그런 식으로 쌓여간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단한 정의를 외치거나 바라는 게 아니다. 그저 각자의 자리에서 해야 할 바를 자각하고 그 책임을 다하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다.
실상은 어떤가. 좋은 게 좋은 것이고 융통성이 있어야 하고 다 먹고 살자고 하는 일이어서 그렇게 심각하게 굴 일이 없다. 정말 그런가? 좋은 게 좋은 것이어서, 융통성이 있어야 해서, 다 먹고 살자고 누군가가 되게끔 만들어 놓은 일이기에 결국 그것을 믿지 못하는 일이 생긴다. 조직문화 때문인 것도 같다.
한국 사회에서 연공서열의 형태가 심히 잘못되었다는 생각이 가시지 않는다. 오랜 기간을 일했다는 게 오랜 기간 책임을 다했다는 것과 동의어는 아니다. 그저 시간의 누적만으로 구태의 병폐까지 존경해야 하는 이 풍토에 가끔 넌덜머리가 난다. '너도 나이 먹으면 똑같이 대접받기를 원할 거잖아?'라고 물을 수 있겠다.
꿀이 단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먹어도 될 꿀인지 분별하는 사람이 있을 뿐이다. 아, 물론 내가 분별하겠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정작 나조차도 그 때 가서 더욱 큰 보상심리가 생길 수도 있고, 세대의 끼인 모양 자체가 꿀과 거리가 멀어 내 경력이 쌓일 즈음에는 그런 서열이 철폐될지도 모르겠다.
맥주 한 잔 곁들이며 쓰기에는 부적절한 문장이지만, 의식적으로 노력하지 않으면 사람은 순식간에 낡아빠진다. 나는 오래된 것을 두고 낡았다기보다는 고풍스럽다고 이야기하고픈 사람이다. 세상이 내 욕심에 순순히 협조해줄 이유는 없겠으나, 조금 더 좋은 세상을 위해서는 각자 느끼는 구태의 유혹을 이겨내야 하지 않겠나.
부디 내가 너무 손쉽게 낡아가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