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선: 각자의 꼴을 향한 투쟁

by 레마

최근 '꼴'이라는 단어를 많이 생각한다. 나는 된소리가 들어간 글자나 단어가 문장의 맛을 해친다 여겨, 좋아하거나 즐겨 쓰지 않는 편이다. 다만 정확히 그러한 단어가 아니고서야 살릴 수 없는 말맛들이 있는데 '꼴'이 그러한 글자 중 하나다.


허영만 화백이 동명의 만화를 그린 것으로 기억한다. 관상에 대한 내용이었던 것 같은데, 큰 의미에서 그 '꼴'과 닮아 있다. 먼저 사람의 기본값이 '최선'이라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사람은 누구나 나아지기 위해 매 순간 각자의 최선을 다하고 있다. 그냥 관념적으로 그런 게 아니라, 실제로 안간힘을 쓴 결과가 그렇다.


최선에 어떠한 기준이 부여되는 순간 가치판단이 시작되고 누군가가 최선을 다했는지 다하지 않았는지 평가되기 시작할 뿐이다. 그러한 과정을 거쳐 하나의 '꼴'이 생기고 사람은 모두 자기만의 꼴로 험난한 세상을 헤쳐나간다. 흔히 '꼰대'라는 지칭과 'MZ'라는 지칭을 두고 '꼴'을 생각한다.


꼰대도 MZ도 각자의 꼴을 향한, 또는 각자의 꼴로 자기만의 투쟁을 계속하는 중이다. 결국 그 꼴에는 옳고 그름보다는 그저 그렇게 되어버린 일들이 있을 뿐이다. 시대에 따라 가치판단은 달라진다. '그 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다', '그 때는 틀리나 지금은 맞다' 서로 다른 표현이지만 가리키는 방향은 하나다.


시대가 부여하는 보편적인 삶의 궤적이 있을 수는 있겠으나 그 삶의 궤적 속에서도 인간은 무수히 많은 해석을 내놓는다. '세대론'이 보편적으로 공유하는 특징이 있겠지만 '세대론'은 개인을 담아낼 수 없다. 그러니 우리에게 주어진 것은 어떻게 저 구세대(또는 신세대)의 잘못된 생각을 바로잡을 것인가가 아니다.


저 사람에게 주어진 꼴을 어떤 궤적으로 이해해야 할까?가 조금 더 바른 질문이지 않을까 한다. 물론 나 역시 자기중심적이고 편협한 면이 큰 사람이라 이렇게 관념적으로만 되뇌어볼 뿐이다. 무언가가 내게 치고 들어온다면 곧바로 이렇게 생각하기는 쉽지 않을듯 하다.


그래서 나의 꼴은 어떻게 만들어지고 있는 중일까? 모두가 각자의 꼴을 향한 투쟁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 나의 꼴을 잘 만들어가고, 너무 큰 꼴갑이 되지 않도록 끊임없이 생각하고 돌이켜볼 일이다. 순순히 받아들이는 연습을 더 보태기로 했다. 반 정도는 내가 자초한 게 아니지만 반 정도는 내가 자초했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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