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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성옥 Oct 21. 2023

루미큐브 대항전

엄마아빠를 이겨야만 하는 아이들

우리집 놀이중 하나인 루미큐브 보드게임이다. 최대 4명이 할수 있는 놀이이다. 우리집은 11명, 모두 참여하기위해서는 치열한 대항전이 사전에 있어야 한다. 처음에는 2인 1조로 나눠서 했지만 같은 조로 뽑힌 구성원이 맘이 들지 않는 사태가 종종 발생하는 바람에 규칙을 바꿨다. 두팀으로 나누되 팀원도 제비뽑기를 한다. 빨간색 숫자를 뽑으면 첫 번째 팀이 되고 파란색 숫자를 뽑으면 두 번째 팀이 된다. 첫 번째 팀에서 최종 우승자는 두 번째 팀 우승자와 대결을 할 수 있다.    

처음 이 게임을 시작할 때 엄마와 아빠는 당황 그 자체였다. 게임의 규칙이 너무 어렵고 복잡하게 느껴졌다. 같은 색깔의 숫자는 계단식으로 3개 이상씩 놔야 하고 다른 색깔의 숫자는 같은 숫자로 나열해야 하고 3개 이상 숫자가 모이면 빼내서 다른 곳에 사용할 수 있고 등 여러 복잡한 규칙에 늙은 엄마 아빠는 적잖이 당황했다. 게임 도중 몇 번을 물어봐야 했다. 정신을 똑바로 차리지 않으면 길을 잃고 마는 게임이다.

저녁을 먹고 나면 아이들은 기다렸다는 듯 루미큐브 게임을 하자고 소리친다. 초보자인 엄마 아빠를 골탕 먹이고 승리하는 맛이 희열인게다. 매일 잔소리 듣고 을로 살던 아이들은 단연코 게임에서는 갑이다. 엄마 아빠가 당황하고 복잡한 계산에 헤매는 모습이 얼마나 통쾌할까. 게임을 제일 먼저 끝낸 사람은 큰 소리로 루미큐브를 외친다. 그러면 같이 하던 아이들은 한숨을 쉰다. 초등학교 2학년 막내 녀석도 얼마나 계산이 빠른지 금세 계산 마치고 루미큐브를 외칠 때가 있다.

시간이 지날수록 엄마는 게임을 습득하게 되고 이제는 아이들과 동등하게 게임을 시작해도 이길수 있는 경지까지 올랐다. 하지만 우리 아버님. 복잡한 일을 싫어하고 단순 그 자체로 살던 분이시니 이 복잡한 숫자놀이에 머리가 어질어질하다. 아무리 머리를 짜내고 집중을 해도 널려진 숫자가 보이지 않는다. 옆에서 아이들은 연신 “아빠, 이거요 가능하잖아요. 왜 못보고 헤매세요. 아니, 왜 그렇게 하시냐구요? 답답하네.” 하면서 아빠 골려먹기에 혈안이다.

시간을 붙잡아 놓고 헤매는 아빠에게 엄정한 심판자 엄마는 모래시계를 들이댄다. 모래시계의 모래가 다 내려가면 하던 숫자를 내려놓고 큐브 두 개를 더 가져가야 하는 벌이 내려진다. 시간이 주어지면 사람은 더 긴장하게 되고 보이던 것도 안보이고 머리가 하얗게 된다. “잠깐만, 아니 잠깐만 기다려봐.”를 연신 외치며 숫자를 맞추지만 아이들은 봐주질 않는다. “아빠, 빨리 내려놓으시고 큐브 두 개 가져가셔야 해요. 규칙을 지키셔야죠.”

게임 속에는 아이들의 성향이 들어 있다. 언제나 덜렁이에 주위가 산만한 막내, 남의 일에 간섭하는 것을 좋아하고 남의 문제를 잘 집어내는 녀석은 루미큐브 1등을 곧잘 해낸다. 자신의 성향에 이 게임이 딱 맞아 떨어진 것이다.

생각이 복잡한 사춘기 딸. 이리 계산하고 저리 계산하면서 집요하게 파고드는 성격이 게임에 그대로 녹아난다. 어렵게 어렵게 숫자를 맞추며 알찬 일등을 거머쥘 때가 있다. 때때로 그 복잡함 속에서 헤매다 꼴찌를 할때는 얼굴이 상기된 채 말이 없다.

촐싹쟁이 초등 5학년 딸, 성격이 급하고 저돌적이다. 역시 게임에도 그 성격이 그대로 나타난다. 남이 끝나지도 않았는데 먼저 치고 들어온다. 욕심이 많아 가지고 있는 큐브를 내놓아야 하는데도 붙잡고 있다 꼴지를 면치 못한다. 

유일한 청일점 상남자 아들. 독불장군이다. 유아독존. 세상에 나밖에 없다 생각하며 사는 아이. 게임도 마찬가지다. 남이 무얼하든 상관없다. 그저 자기가 할 것만 생각하고 그것이 무너졌을 때 화를 내고 실망한다. 같이 하는 게임을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 빠질 때가 많다.

각양각색의 아이들이 모여서 한 게임에 집중하다보면 자정을 넘길때도 있다. 함께 한다는 것 때문에 아이들은 즐겁다. 서로가 서로를 너무 잘 알아서 재미있다. 

때때로 함께 사는 것을 피곤해 한다. 우리집은 왜 이렇게 가족이 많은거냐며 투덜대기도 한다. 하지만 밤새 게임을 하고 놀수 있는 가족이 있으니 얼마나 행복한가. 

휴일이 되고 명절이 와도 쓸쓸하지 않다. 기본 열명을 넘나드는 가족인데 쓸쓸이고 외롬이고가 뭔가, 날마다 눈만 뜨면 같이 할 일이 있는데. 그래서 행복한 가족. 그것을 우리 아이들은 눈치채고 있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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