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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일 Jun 17. 2021

"저 밴드에서 키보드 쳐요"

어릴 때 체르니를 쳐 본 당신이라면, 한 번 도전해 볼만한 취미

자기소개를 어려워하는 타입은 아니라 조금만 친해지 마구 TMI(Too much information)를 뿌리는 편인데, 처음 만난 사람들에게 스스로를 소개하기 위해 꺼내는 말 중 가장 좋아하는  "저 밴드에서 키보드 쳐요"라는 말이다. 벌써 7년 차, 사내 밴드에서 키보드를 치고 있다.  


공연 사진 모음



시작은 사실 회사 동기에게 이끌려 '어쩌다 보니' 하게 되었는데, 지금은 밴드 없는 회사생활을 상상하기 힘들 정도로 삶 속에 녹아들었다. 주말마다 밴드부원들과 만나 좋아하는 곡의 합을 맞추고, 열심히 연습한 곡의 완성도를 높여 공연도 하고. 다음에는 어떤 노래를 해 볼까 부원들과 서로 플레이리스트를 공유하기도 한다. 밴드 활동을 시작한 후로, 새로 좋은 노래를 발견하면 '이 노래 한번 합주하자고 제안해볼까'라는 생각을 한다. 음악을 '듣는 사람'에서 직접 '공연도 하는 사람'으로의 전환. 확실히 삶이 더 풍부해졌다.


이 글에서는 취미생활로서 밴드 활동이 갖는 특장점과, 피아노만 쳐 본 당신이 키보디스트로서 본격 '데뷔' 할 때 알아야 할 가장 기본적인 것들, 그리고 실제로 밴드에서 활동하는 방법에 대해 이야기해보려고 한다.


직장인 밴드 활동이 좋은 취미인 이유


1. 참을 수 없는 합주의 즐거움


평소 즐겨 듣던 노래를 직접 연주해 본다는 것. 내가 좋아하는 바로 그 곡을 완곡했을 때의 뿌듯함을 어디에 비길 수 있을까.


특히 밴드 음악의 묘미는, 혼자 연습할 때와는 달리 드럼, 베이스 기타, 일렉기타, 키보드, 보컬 등 각 세션이 모두 합을 완벽히 이뤄냈을 때의 쾌감일 것이다. 집에서 원곡을 들으면서 혼자 연습할 때는 과연 내가  곡을 듣는 것과 비슷하게나마 연주할 수 있을까 의문이 들지만, 키보드에 드럼, 베이스, 기타 각 세션들이 하나씩 얹어지면서 원곡과 비슷한 소리를 내기 시작하면 그게 참 기똥차고 신기하다.


"이게 될까...?"에서, "어라, 이게 되네!"로 바뀌는 과정.

https://youtu.be/sduYNx92_go

영화 '비긴 어게인'의 A step you can't take back


과장 살짝 섞어, 위의 영상을 보며 느끼는 전율을 직접 체험할 수 있다고나 할까. 통기타 하나로 시작한 가벼운 곡에 드럼, 콘트라베이스, 피아노, 스트링이 하나씩 쌓이며 곡이 완성되는 과정을 보는 느낌. 합주를 매주 거듭하며 곡이 완성되어갈 때마다 그런 느낌을 받곤 한다.


게다가 합주실에서 합주할 때면, 혼자서 연주할 때와는 비길 데 없는 폭발적인 사운드를 만들어낼 수 있기 때문에 더욱 설렌다. 드럼과 일렉기타의 짱짱한 소리에다가 보컬, 베이스, 키보드까지 함께 어우러지면 마치 가슴을 뻥 뚫리게 만드는 청량음료를 원샷한 기분이 든다.


그렇게 합을 맞추면서 밴드 부원들과 더없이 돈독해지는 건 소중한 . 음악으로 친해진 사람들이라 그런지 만나서도 음악과 취향 이야기를 많이 하고, 매주 합주하면서  합을 맞춰서 그런지 마음의 템포도 시간이 갈수록 닮아간다.


부원들과 함께 찍은 사진들


2. 멘털 관리와 스트레스에 좋다


취미생활로 악기와 외국어, 운동 각각 한 가지씩을 배워두는 일은 삶을 풍성하게 만드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는 말이 있다. 과연 취미로서 악기 연주는 매우 건강한 스트레스 해소법일 뿐만 아니라 마음의 자산이 된다.


사회생활이 어렵던 초년생 시절, 직장인 밴드 활동은 회사에서 지친 내가 숨 쉴 수 있는 공간이었다. 드럼처럼 물리적으로 두드리거나, 달리기처럼 온몸을 이용해 에너지를 소모하며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것도 물론 건강한 방법이겠지만 키보드를 이용해 좋아하는 음악을 연주하는 것도 심신 안정과 정신 건강에 참 좋았다. 실제로 손가락과 두뇌를 많이 사용해야 하는 피아노나 키보드 연주는 치매 예방에도 도움이 되는 좋은 취미활동이다. 뿐만 아니라 하나의 곡을 초견으로 시작해 완곡해내면서 자아효능감과 성취감을 만끽할 수도 있다.


3. 반복되는 일상을 탈피해, 주인공이 되어볼 수 있다


직장인 밴드 활동의 마지막 장점은, 바로 '주인공'이 되어볼 수 있다는 것. 최근 몇 년간은 코로나로 인해 잠시 중단되었지만  원래는 해마다 최소 3번 이상은 사내 행사/정기공연/연합공연 등을 통해 공연을 할 기회가 있었다.

https://youtu.be/iKAalArSbAE

코로나 이전, 정기공연 영상


 사실 대학생 때에야 각종 공연동아리 활동을 통해 주변 친구들에게 나의 색다른 모습을 보여줄 일이 많지만 직장인이 되고 나서부터는 매일 일상이 반복될 뿐 특별한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 이에 권태와 번아웃을 느끼는 직장인들이 많을 것이다. 하지만 직장인 밴드에서 활동하면 일 년에 최소 한 번쯤은 내가 주인공이던 시절로 돌아가, 주변 사람들 모두에게 무대 위 내 모습을 뽐낼 수 있다. 물론 프로페셔널한 뮤지션이 아니고 실력도 각양각색이지만 뭐 어떤가. 그간 밴드부원들과 열심히 합주해온 결과물을 내가 아끼는 사람들을 초대해 그들 앞에서 공연했을 때의 뿌듯함은, 지루한 일상을 나름대로 행복하게 견디게 해 주는 원동력이다.



나는 피아노만 쳐 봤는데... 피아노와 키보드의 차이점은?


지금까지 왜 밴드 활동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 알아봤으니, 이제 본격적으로 밴드 활동에 진입하기 위해 알아야 할 것들을 소개해 보겠다. 우선 K-어머니들은 이상하게도 자녀들에게 피아노 교습을 시키는 것에 집착하는 경향이 있다. 그래선지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어릴 때 최소한 체르니 100까지는 쳤고, 피아노 악보 보는 방법도 알고 있는 경우가 많다. 밴드 활동을 하려면 보컬 아니면 악기 중 하나의 파트는 골라야 하는데, 어릴 때 피아노를 쳐 봤다는 이유로 아무래도 많은 이들에게 있어서 '키보드'에 대한 접근성이 가장 높은 편이다.


하지만 당신이 피아노를 칠 줄 안다고 해서, 바로 밴드에서 키보드를 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피아노와 키보드는 다음과 같은 점에서 다르기 때문이다.


1. 피아노는 솔플, 키보드는 팀플


가장 중요한 차이가 바로 이 부분일 것이다. 피아노를 칠 때는 혼자만 잘하면 된다. 피아노 자체가 반주 파트와 멜로디 파트의 사운드를 동시에 낼 수 있는 악기이므로 혼자서도 곡의 완성도를 충분히 높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주로 클래식/뉴에이지 등의 장르 독주를 할 때 피아노를 많이 치게 된다.


하지만 밴드 음악에서 키보드(신시사이저)는, 베이스 기타, 드럼, 일렉기타 등 타 악기들과 마찬가지로 독주가 불가능하다. 밴드 음악의 묘미는 악기별로 각 레이어를 쌓아가면서 하나의 곡을 조화롭게 완성시켜 나가는 것이며, 여기서 키보드의 역할은 곡마다 다르다. 기본적으로 피아노 독주자와는 달리 밴드에서의 키보디스트의 역할은 '한 곡을 혼자서 다 완성시키는 것'이 아니라, '곡의 빈 부분을 채워 넣어 풍성하게 만드는 것'이라고 보면 된다.


그러한 점에서, 피아노를 치는 것에만 익숙한 사람이 처음 키보드를 치게 되었을 때는 연주가 상당히 제한적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피아노를 칠 때처럼 독주하듯이 멜로디 파트와 반주 파트를 동시에 치게 되면, 타 악기의 음역대를 침범하기 때문에 곡 전체의 조화를 깨뜨리게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만큼, 키보디스트의 역량에 따라 하나의 곡에서 신시사이저가 할 수 있는 역할은 무궁무진하다고 볼 수 있다. 단순히 멜로디와 반주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곡에 어울리는 사운드를 적절히 선택해 국물도 내고, 건더기도 업그레이드시키고, 양념도 칠 수 있다는 뜻이다. 따라서 건반을 다룰 수 있는 것과 악보를 보고 따라서 칠 수 있는 능력 이상으로, 곡 전체를 더 풍성하게 만들기 위해 키보드가 어떤 사운드를 내주어야 할지 고민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2. 피아노는 딱 한 가지 소리, 키보드는 다양한 톤


또 하나의 차이점은 피아노의 경우 우리가 익히 아는 피아노 사운드 딱 한 가지 만을 낼 수 있지만, 디지털 키보드(신시사이저)의 경우 다양한 톤을 활용하여 소리를 낼 수 있다는 것이다. 기본적인 그랜드 피아노 사운드부터 영롱하고 맑은 느낌을 내는 Epiano, 빈티지한 느낌의 곡에 활용되는 오르간, 넓게 퍼지는 소리로 곡의 빈 부분을 채워주는 현악(스트링), 쨍한 느낌을 주는 관악(브라스), 양념처럼 채워 넣기 좋은 전자음(신스) 등.


게다가 같은 소리로 곡 처음부터 끝까지 같은 사운드로 치는 피아노와는 달리, 키보드의 경우 중간중간 톤을 바꿔서 치면서 다른 분위기를 연출할 수 있다. 곡별로 어떤 톤을 선택해 어떤 방법으로 쳐서, 곡의 완성도를 높이고 더 풍성하게 만들지 결정하는 것. 그것이 바로 키보디스트의 가장 큰 역할이며 이 부분을 잘 해내야 역량 있는 키보디스트라고 할 수 있겠다.



그래서, 뭘 준비해야 하는데? 키보디스트 활동 전에 준비해야 할 것


우선, 앞에서 말한 피아노와 키보드의 두 가지 차이점을 확실히 인지한 상태에서 밴드 곡들을 들어보면 좋다. 이 곡에서 키보드 사운드는 어떤 것이고, 어떤 톤과 주법을 이용해 연주하고 있는지 들어보면서 감을 잡는 것이다. 키보드 소리가 잘 들리는 곡들을 위에서 언급한 톤 별로 추천하자면, 아래와 같다.


- 그랜드 피아노 톤 : Queen의 Love of my life

- Epiano 톤 : Nell의 기억을 걷는 시간

- 오르간 톤 : Deep Purple의 Highway star

- 스트링 톤 : 이적의 걱정 말아요 그대

- 브라스 톤 : 무한궤도의 그대에게

- 신스 톤 : 빅뱅의 Fantastic Baby


처음에는 복합적으로 들려오는 사운드 중에서 어느 레이어가 베이스고, 어느 레이어가 기타고 또 키보드인지 깨끗하게 분리되어 들리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MR을 찾아 들어보는 것을 추천한다. 자주 듣다 보면 노래 들을 때 '아 이 노래에서 키보드는 오르간 사운드와, 피아노 사운드 2가지를 사용했구나'와 같이, 각 악기와 톤의 변별이 가능해진다.


다음으로는 개인연습실, 합주실 등을 방문해 신시사이저를 한번 다뤄볼 것을 권한다. 피아노만 쳐본 당신이기에 아직 신시사이저를 덥석 구매하기는 어렵겠지만 본격적 밴드 활동에 앞서 어떻게 장비를 사용하는지는 알아두어야 하기 때문이다.


YAMAHA S90ES 이미지


위 사진에서 볼 수 있듯이, 신시사이저의 기본적인 구조는 하단의 건반부와 상단의 조작부로 나뉘어 있다. 건반부는 기존 피아노와 유사하게 생겨서 익숙하지만, 사운드 톤의 카테고리를 선택할 수 있는 조작부는 신시사이저 브랜드별로 다르다. 따라서 기본적으로 카테고리를 어떻게 변경하는지, 옥타브 변경과 트랜스 포즈(키보드 연주 시 키를 바꿔주는 장치)는 어떻게 하는지 정도를 익혀두면 좋다. 참고로 대부분의 합주실이 보유하고 있는 신시사이저인 Yamaha의 S90ES는 가장 클래식한 신시사이저 중 하나로, 인터넷에서 'Yamaha S90ES Manual'을 검색해 PDF 파일을 다운로드하여 기본적인 조작법을 읽어두면 편리하다.


YAMAHA S90ES 모델 MANUAL 일부


스페이스 클라우드나 아워 플레이스와 같은 공간 대여 전문 사이트에 들어가 '개인 키보드 연습실/합주실'로 검색한 뒤, 인당 대여비가 저렴하고 접근성이 좋은 곳을 찾아 한번 방문 해서 신시사이저를 다뤄보자. 쳐 보고 싶은 곡의 밴드용 건반 악보를 '악보바다', '악보 나라', '인터뮤즈'등의 사이트를 통해 다운로드한 뒤, 출력해 가서 톤을 변경해 가면서 연습해보는 것도 방법이다. 



어떤 밴드에서 활동하지?


피아노와 키보드의 차이점에 대해서도 대충 알게 되었고, 신시사이저를 어떻게 다루는 지도 감이 잡혔으면 이제 어느 정도 준비를 마쳤다고 볼 수 있다. 그 후에는 본격적으로 내가 활동할 밴드를 찾아볼 수 있겠다. 우선 필자와 마찬가지로 근무하고 있는 회사에 사내 밴드가 있다면 가장 수월한 가입이 가능하다. 보통은 연 1회 정도 새로운 멤버를 모집하므로, 해당 밴드 부원에게 연락해 다음 모집 일정을 문의하면 된다.

만약 사내 밴드가 없거나, 현재 모집 중이 아니라면 소모임 어플, 네이버/다음 카페 그리고 음악인들이 가장 많이 활용하는 커뮤니티 사이트인 '뮬'을 통해 밴드를 찾고 지원할 수 있다.

https://www.mule.co.kr/

각 사이트에서 공고나 가입요건을 확인해 보면, 파트와 레벨을 명시한 공고도 있고, 그런 세부사항 없이 공고만 올린 경우도 있을 것이다. 먼저 공고나 모임 가입요건들을 상세히 살펴본 뒤, 내가 지원하는 밴드의 분위기, 연령대, 합주 일정 및 정기공연 주기 등을 확인하면 좋다.


개인적인 팁을 주자면 최소 1년에 1회 이상은 공연을 하는 곳에 들어가야 지루함 없이 꾸준한 활동이 가능하다. 공연 없이 합주만 하면 동기부여가 힘들고 연습도 해이해진다. 또한 합주는 보통 주중 퇴근시간/주말 오전, 오후 등 고정된 시간대로 정해두어야 지속적 활동을 할 수 있으므로, 내가 여유 있게 시간 낼 수 있는 요일에 해당 밴드도 합주를 진행하고 있는지 먼저 확인해야 한다.


공고가 따로 없어서 밴드 운영자에게 직접 문의를 해야 하는 경우라면, 피아노는 N년 쳤으나 신시사이저는 다뤄본 적 없으며, 키보디스트의 기본적 역할과 신시사이저 다루는 법 정도는 알고 있다고 언급하면서 지원을 하면 되겠다.


어린 시절 피아노는 꽤 열심히 쳤는데, 그 실력을 썩히는 것이 아까운 당신. 직장 다니며 무언가 생산적이면서도 재미있는 취미생활을 하고 싶지만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겠는 당신. 음악 듣기를 좋아하는데 이제 직접 연주도 해보고 싶어진 당신에게 추천한다. 직장인 밴드 활동으로 인해 더욱 풍성해질 나날들을 먼저 겪어본 사람으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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