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아웃된 이들을 위한 힐링의 장소
뒤늦게 시작한 서울대법대대학원 공부는 사실 너무나 힘들었다. 물론 내가 좋아서 나이 50에 법을 공부하기 시작했고 특히나 서울대법대를 졸업한 외대부고 제자의 강추와 응원에 힘입어 시작하면서 보람도 느꼈고 행복함을 느꼈지만 막상 논문이라는 관문은 그렇게 호락호락 쉽지 않았다. 나 스스로도 영어교육학 박사로서 대학원생들을 지도한 경험이 있기에 막상 법학공부를 시작하는 과정에서는 그렇게 많은 어려움이 없었다고 고백하지만 논문심사의 과정에서는 한치의 실수도 용납하지 않았기에 결국 서울대법대라는 미련을 버리고 논문심사를 하는 도중 도피처를 찾게 되었다.
인생을 살면서 이렇게 고달프고 힘겨운 적이 있을까? 그러면서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시절을 떠올려보니 주문진 겨울바다에서 새우튀김을 먹고 싱싱한 회를 먹으며 겨울바다를 거닐었던 기억이 났다. 그래서, 6월 초 과감하게 가족들이랑 심지어 우리집 고양이 비바찡과 귀여운 강아지 빌리펑C, 와이프와 장모님과 함께 무작정 주문진 바다를 향했다. 6월의 무더위가 서울에서는 느껴졌지만 막상 주문진에 도착하니 코끝에 일렁이는 바람과 햇살이 그저 정겹고 시원하게만 느껴졌고 내 마음도 한결 가벼움을 느꼈다. 당장 바닷가로 달려갔고 그곳이 바로 현재 내가 올해 코로나가 심해지면서 머물렀던 우리집이 있는 소돌해변 근처이다. 세상에 그렇게 맑고 깨끗한 바닷물은 처음이었다. 바닷속 바위틈에 성게랑 전복, 소라 등등 이름모를 물고기들이 신나게 헤엄치고 있었고 바위에 무딪히는 파도는 내 마음속 스트레스를 한방에 날리기에 충분했다.
다소 차갑게 느껴진 그 바닷물에 전혀 수영준비가 되지 않은 복장이었지만 긴 바지를 둥둥 걷어 올린채 구두도 모래사장에 벗어던진채 물로 첨벙 뛰어들었다. 옷이 젖는것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이렇게 순수한 동심의 세계로 돌아간채 굳이 하지 않아도 되는 법학공부를 왜 해서 생고생하는지 모르겠다는 장모님의 걱정어린 잔소리를 뒤로 하며 하염없이 소돌해변 맑은 물에 내 몸을 맡겼다. 차가움에 몸이 살짝 부르르 떨리기도 했지만, 내 머릿속을 감싸던 온갖 번민과 잡념은 순식간에 사라져버렸다.
이 하루만의 즐거움과 세상모를 기쁨 덕분에 난 마치 달과 6펜스에 나오는 주인공인마냥 내가 그토록 찾던 이상향이 바로 이곳 주문진(남양양ic 근처)임을 깨닫고 부랴부랴 수소문하여 불과 이틀만에 이곳에 집을 구하게 되었다. 급매물로 나온 시골내음 물씬 풍기는 전원주택을 산다고 했을 때, 와이프와 장모님은 정말 제정신이 아니라며 한사코 말렸지만 이미 내마음은 동해바다에 첨벙 빠져있었기 때문에 나의 고집을 그 누구도 꺽을수는 없었다. 그렇게 하여 나의 강릉시 주문진읍에서의 삶은 시작되게 되었다. 시골집을 구입했기에 손보는 것이 장난이 아니었다. 이불도 없이 웅크리고 자면서 정말 신문지를 이불삼아 와이프랑 하나하나 일궈나가는 시골집살이는 오히려 육체적 피로와 고통이 뒤따랐기에 정신적인 잡념은 쉽게 잊어버릴 수 있었다.
대문이 없어서 불쑥불쑥 집안까지 들어와 다정한 이웃인냥 다가오는 시골분들께 솔직히 처음에는 적응이 되지 않았다. 시골에서는 사생활이 전혀 없다. 마당은 어느새 동네분들 마당이 되어버렸고... 아마도 서울에서 내려온 낯선 이방인에 대한 반가움과 호기심이 같이 겸비했으리라 생각이 든다. 무튼 반가우면서도 이분들과 어떻게 시골생활을 잘 할 수 있을지 나에게는 어쩌면 또 다른 고민이 생기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러한 고민쯤은 뭐 깜찍하고 귀여운 고심이라고 할 수 있었고 우선은 정말 꿈에도 그리던 그 어딘가 바로 이곳 주문진에서 나의 바닷가 낭만적인 생활을 할 수 있음에 감사드리며 이렇게 가까이에 바다를 볼 수 있음에 하루하루 신기한 마음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