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광토끼의 『Stay Gold』를 듣고
우리가 소녀(혹은 소년)이었을 때를 돌이켜보자. 그 때의 우리에겐 ‘나’라는 존재가 곧 세계의 전부였다. 내가 보고 듣고 느끼는 것만이 내가 말할 수 있는 전부였으며, 그렇기에 모든 공간과 모든 사건과 모든 사람은 오직 ‘나’를 설명하기 위한 것이 되곤 했다. 내가 있는 공간과 내가 없는 공간, 나를 둘러싼 사건과 나와 무관한 사건, 나 자신과 내가 아닌 모든 사람들, 이렇게 이분법적으로 나뉘어져야만 하는 것이 바로 이 세계였다. 하지만 우리는 더 이상 ‘나’를 모든 것의 중심에 놓지 않는다. 어느새 우리는 어른이 되고 말았다.
그러나 야광토끼의 음악은 여전히 소녀의 것이다. 그녀의 음악에 등장하는 화자는 한결 같이 자기 자신을 노래한다. 그녀가 “둥근 달도, 붉게 타는 화성도, 그 크다는 목성도, 멀지 않은 도쿄도, 화려하다는 런던도, 높은 빌딩의 뉴욕도 아닌” 서울 하늘을 좋아하는 이유는 그저 내가 너와 만난 곳이 서울 하늘 아래이기 때문이다.(<서울하늘>) 또한 다짜고짜 “내 이름을 불러주고 사랑한다고 말해줘.”라고 말하며 자신이 원하는 것이 오직 ‘너’뿐임을 숨기지 않는다.(<All I Want Is You>) 심지어 “나도 내가 왜 이러는지 모르겠지만 이유도 없이 너여야” 한다고 수없이 되뇌기까지 한다.(<너여야>) 이렇듯 그녀는 끊임없이 ‘나’에 대해서만 노래한다, 마치 ‘나’를 제외한 그 무엇도 나보다 중요하진 않다는 듯이. 특히 거의 매번 ‘나’의 사랑을 노래하는데, 그 사랑에서 수반되는 ‘나’의 감정들을 정말 솔직하게 토로하는 지점이 정말 매력적이다. 간혹 ‘너’를 노래하는 순간들도 있지만, 그 순간들에는 있는 그대로의 ‘너’가 아닌 ‘내가 사랑하고 내가 원하는 너’만을 노래한다. 세상 모든 것을 ‘나’라는 프리즘을 통해 이야기하는 순수한 소녀처럼 말이다.
물론 『Stay Gold』의 사운드적인 측면만을 놓고서 말하자면 소녀스럽지 않게 느껴질 수도 있겠다. 개인적으로 이런 스테레오타입을 좋아하진 않는데, 보편적으로 사람들은 소녀다운 음악은 달달한 분위기와 통통 튀는 리듬 그리고 부드러운 가사 등으로 구성된다고 믿는 것 같다. 1집 『Seoulight』는 비교적 이런 스테레오타입에 부합했다. 신스 팝(그것도 팝에 더 방점을 찍는)에 기반을 두어 통통 튀는 사운드를 주로 들려주었기 때문이다. ‘나’를 솔직하게 노래하는 태도와 매우(혹은 너무 정직하게) 일치하는 사운드였다. 그러나 이번 앨범은 퓨처 베이스 기반으로 다소 무거운 곡들이 많아졌다. 리듬도 많이 차분해지고 분위기는 전보다는 어둡지만 더 다채로워졌다. 가야금을 넣어 이전보다 실험적으로 들리는 부분도 존재한다. 그래서 『Stay Gold』의 사운드는 다소 역설적이다. 음악이 품고 있는 서사는 여전히 ‘나’를 있는 그대로 내보이려고 하지만, 사운드에서는 이전보다 ‘나’를 숨기려고 하고 꾸미려고 한다. 이건 마치 성장 서사를 보는 듯하다. 5년이라는 시간 동안, 자기 서사에 늘 충실했던 어린 소녀는 자기 서사를 매혹적으로 꾸밀 줄 아는 숙녀로 성장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야광토끼가 내세우는 화자는 영락없이 여전히 돌려 말할 줄 모르는 소녀이다. ‘나’의 감정, ‘나’의 사랑, ‘나’의 욕망, ‘나’의 바람, ‘나’의 속마음…, 우리가 쉽게 입 밖으로 내뱉지 못하는 것들을 ‘나’는 너무나도 쉽게 내뱉는다. 그러니까 이건 소녀(혹은 소년)다움에서 비롯되는 충실한 자기 서사의 산물이다. 야광토끼의 음악이 매력적인 이유는 바로 이 지점에서 기인하는 것이 아닐까. 말하고 싶은 것을 말하지 못하고 말해야만 하는 것조차도 말할 수 없는 어른이 되어버린 우리 중에서, 여전히 ‘나’만을 충실히 노래하는 야광토끼라는 멋진 소녀를 당해낼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