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탈색은 일종의 상징과도 같다.
물론 나도 빨간 머리도 해본 적 있고, 보라색 머리도, 오렌지색 머리도 해본 적 있다. 따지고 보면 탈색만 빼고 다 해봤다.
하지만 이런 색 저런 색 머리 하는 거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은 알 거다. 탈색을 하지 않으면 위의 색들은 치고 빠지는 양념장 같은 것임을.
나는 머리가 빨리 자라는 편이라 머리에다가 이것저것 하는 것에 도전 정신이 있는 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탈색 머리를 하지 않았던 데에는 몇몇 이유가 있다.
첫 번째는 머리카락의 손상도. 탈색을 하면 빗자루가 되어버리는 그 상황을 견디기 어려울 거 같았다.
두 번째는 교사라는 나의 마음 울타리.
나는 복장을 단정히 해야 한다는 자기 검열이 꽤 강한 편이다. 뭐 그렇다고 해서 내가 평소에 복장을 퍼펙트한 단정함으로 무장한 것은 아니지만, 마음으로는 그런 옥죄임이 있다.
선생님은 이런 옷을 입어야 한다. 선생님은 이런 머리를 해서는 안된다. 하는 검열 말이다.
실제로 이에 대해서 검열이 존재하는가 존재하지 않는가는 중요하지 않다.
지극히 개인적으로 그런 마음이 내게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의 생각 알고리즘은 대체로 이러한 편이다.
탈색하고 화려한 머리를 해 보고 싶다. -> 아니 근데 선생님이 이런 머리를 해도 돼? -> 에휴 어차피 탈색하면 머리 감당 안된다는 데 뭐~.
마지막 자기 합리화까지 하고 나면 기분 전환으로 갈색 머리를 하는 것이다.
그러고선 스스로 한 조각 마음의 상처를 얻는다. 역시, 난 그런 머리를 하면 안 되나 봐. 못하나 봐. 하고 말이다.
그러니까 내 머리 스펙트럼은 굉장히 넓으면서도 세상 좁기 그지없다.
그러던 와중, 나에게 구원과도 같은 머리가 유행했다.
발레아쥬. 머리의 섹션 군데군데에만 탈색을 넣어서 염색의 포인트를 살리는 머리스타일이다.
탈색은 탈색인데, 탈색의 현실적인 고충은 반으로 줄이고. 화려하지 않은 듯 화려한 포인트가 되는 머리 스타일.
바로 이거다 싶었다.
마음 약한 탈색 초보자에게는 아주 적절한 첫 도전 스타일 아닌가.
그럼에도 정작 미용실에 가는 발걸음은 떨어지지 않았다.
괜찮을까? 학교에서 이런저런 물음이 내게 오지는 않을까? 사람들이 괜찮다고 해줄까? 가 주된 고민이었다.
전형적인 남 시선으로 나의 선택을 미루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결론은,
나는 세미 탈색을 했고, 아주아주 만족하고 있다.
내 평소 스타일에도 딱이었고, 딱 원하던 효과를 내고 있어서 말이다.
첫머리에 나에게 탈색은 일탈의 상징성과 같다고 했는데, 사실 머리 하나를 바꾸었다고 해서 내 인생이 바뀌지는 않는다.
아유, 참 일탈을 했다니! 하고 생각이 되지도 않고 말이다.
물론 아는 사람은 알고 있겠지만 발레아쥬 머리는 탈색한 것 취급을 할 수 있는 머리가 아니다.
그러니 나의 도전은 반쪽짜리 이기도 하다.
하지만 나는 경험치 반쯤 적립했다고 생각한다.
내가 내 주위의 시선 때문에 고민하던 것을 하나 했다는 것,
그리고 돌이킬 수 없이 저질렀을 때 내가 느낄 여러 가지 감정을 느낀 경험을 말이다.
나이키의 대표 캐치 프라이즈가 'Just do it'인데,
예전에는 이 짧은 문구 중에서도 do라는 단어에 꽂혔다면,
요즘에는 just라는 단어에 꽂힌다. 이 문구 속에서 Do it과 수많은 단어가 짝을 지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just 만큼 do it의 도전 정신을 표현하는 말이 있을까.
그래서 다시금 Just do it을 마음속에 새겨본다.
이거 저거 생각하지 말고 일단 저지르자. 그러고, 그 수습은 나중의 나에게 맡기자.
Just do it, no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