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동안 마스크를 쓰고, 여행을 갈 수 없는 현실이 일상이 되어버렸다. 그래서인지 마스크 없이 여행을 다녔던 시간들이 그리워지곤 한다. 그때의 우리는 아마도 '해외여행'이라는 어마어마한 축복을 그리 감사히 여기지 못했을 수도 있겠다.
최근 크리스마스부터 4일을 쉬면서 심심해진 나는 1년 전 갔던 기타큐슈로 랜선 여행을 떠나보려 한다.
여행하기 좋은 여건과 지금은 잃어버린 나의 구찌 지갑
지금 생각해 보면 저 때는 정말 여행하기 좋은 여건이었다. 해외여행은 상상도 할 수 없고 국내여행도 자제해야 하는 이 시국에서, 1년 전 자유로웠던 세상은 환상이 되어버렸다.
1년 전에 떠난 기타큐슈는 회사 동기와 함께 갔던 여행인데, 퇴사를 할 정도로 힘들었던 시기에 간 여행이라 그런지 힐링이 절실했던 여행이었다. 북적북적한 오사카와 달리 비교적 작은 도시인 기타큐슈는 나에게 그런 힐링을 선사하기에 충분했다.
처음 공항에 도착해서 내가 가장 먼저 한 일은 복숭아 물을 사는 일이었다. (검색해보니 '이로하스'라고 한다.) 한동안 한국에서도 비슷한 카피제품이 나왔던 것 같은데, 먹어보니 이로하스를 따라잡을 수는 없었던 것 같다. 그렇게 행복하게 복숭아 물을 챙겨 버스를 타고 기타큐슈 역으로 향했다.
맥도날드와 롯데리아를 한눈에 볼 수 있다. 마치 우리나라인 것 처럼
기타큐슈 역에 내리게 되면 이 육교와 전광판을 만나게 되는데, 사실상 여기가 기타큐슈에서 가장 번화가인 것 같다. 커다란 광고 전광판과 맥도날드만으로 바로 알아차릴 수 있었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기타큐슈 포토존으로 No.3안에는 드는 것 같으니, 낮에도 가고 밤에도 가서 두 장은 건질 수 있었으면 좋겠다.
우리의 기타큐슈 일정은 2박 3일이었고, 그것도 마지막 날 아침에 출발 예정인 짧은 일정이었다. 그래서 힐링여행인데도 불구하고 일정이 나름 빽빽했던 것 같다. 하지만 답답했던 일상을 떠나서 새로운 기분을 만끽하기에는 충분한 시간이었다. 먼저 우리는 기타큐슈에서 유명한 고쿠라 성을 보러 가기로 했다.
고쿠라 성을 향해 걸어가다가 만난 시장과 고쿠라 성
고쿠라 성을 가기 위해서는 시장을 지나쳐야 했는데, 조금 낯선 풍경때문인지 설레임때문인지 우리나라 시장과 별반 다를 게 없는데 길거리는 벅찬 감동으로 가득 차 버리곤 했다.
어쩌면 이러한 이유 때문에 우리가 해외여행을 간절히 원하는 걸지도 모르겠다. 사소한 모든 것들이 우리에게는 크게 다가오기 때문이다. 마치 아기들이 새로운 것을 봤을 때의 기쁨이 어른인 우리에게도 잠시나마 생겨나는듯하다. 늘 그랬듯 나쁘지 않은 설렘이다.
고쿠라 성은 사진에서 보는 것과 같은데, 아주 크고 웅장하다. 사실 관광지나 건축물에는 큰 흥미를 가지지 못하는 성격탓에 몇장의 인스타그램용 사진만 찍고 내려왔다.
신선한 초밥. 위생은 잘 모르겠다.
고쿠라성을 내려와서는 간몬터널을 지나 가라토시장으로 갈 예정이었으나, 우리의 여행 테마는 힐링이었기 때문에 걷는것을 포기하고 보트를 탔다.
사실 일본 여행을 가게 된다면, 많은 사람들은 초밥부터 라멘, 규카츠, 규동, 수많은 편의점 음식 등 일본의 식문화를 느끼기 위해서 많이 간다. 나와 함께 간 친구 또한 음식에 상당한 집착과 열의를 보였기 때문에 가라토시장에서 먼저 초밥을 먹기로 했다. 나 또한 먹는 것에는 돈 쓰는 걸 아끼지 않는 편이기 때문에 참으로 좋은 여행 메이트였다.
여름의 가라토 시장은 상상하기 싫은 인파였다. 하지만 사진에서도 볼 수 있듯이 초밥 위에 각종 회들이 푸짐하게 올려져 있었고, '내가 일본에 왔구나.'라는 생각을 다시 한번 실감할 수 있게 만든 음식들이었다. 북적거리는 인파를 뚫고 초밥을 구매하고 난다면 바다가 보이는 곳에 나와서 초밥을 먹을 수 있다.
행복의 다른 말은 초밥이다.
사진에서도 느껴지겠지만 이 때의 나는 정말 행복했던 것 같다. 시모노세키 항구에서 먹는 초밥은 부산의 수변공원이랑 비슷하다고 생각하면 될 것 같다. 수변공원에서 나는 냄새까지 비슷하다. 한 가지 다른 점이 있다면 수변공원은 주로 저녁에 많은 사람들이 몰리지만 여기는 가족이나 커플이 많은 것 같았다. 이 초밥을 먹으면서 친구와 나는 연신 감탄사를 내뱉었던 것 같다. (와.. 우와..이야.. 등 대충 이런말들만 반복했다.)
사실 행복은 멀리 있는 게 아니었다. 바로 초밥이었다.
그리고 우리는 또 다른 행복을 찾기 위해 모지코로 떠났다.
감성으로 가득 찬 모지코 역 (이 글의 대표 이미지다.)
모지코 역은 간판부터 '나 감성으로 가득 차 있는 곳이야'라고 말하는 것만 같다. 사실 기타큐슈의 하이라이트가 모지코 역인데, 인스타에 모지코만 검색해도 여기는 상당히 유명한 포토존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마치 오사카의 글리코상과 견줄만한 포토스팟이라고 생각한다.
나 또한 정말 많은 사진을 찍었는데, 여름의 나는 못생겨져 있었기 때문에 크게 만족하는 사진이 없다. 이 부분이 조금 아쉽긴 하지만 간판 사진이라도 찍어두길 정말 잘 한 것 같다.
모지코 레트로에서의 힐링
모지코 레트로는 일본에서도 관광지로 만들어 놓은 곳이었다. 아기자기한 공방들이 있었고, 토토로도 있었다. 마치 우리나라에서 경주나 전주에 가면 만날 수 있는 느낌들을 모지코 레트로에서 뿜어내고 있었던 것 같다. 그렇다고 사람이 많은 것도아니어서 레트로의 감성과 일본 특유의 고즈넉함을 느끼기에 충분한 장소였다. 모지코에서 힐링했던 추억은 사실 여러 여행 중에서도 가장 진하게 남아있는 듯하다.
사실 한때는 최대한 많은 관광지를 방문하고, 기계적으로 사진을 찍어대면서 '나중에 이건 추억이 될 거야'라는 어리석은 생각을 하며 여행을 갔던 적이 있다. 그런데 대부분 추억으로 남기보다는 사진으로만 남겨져있었다.
하지만 여행에서의 기억 자체가 그렇게 행복하지 않다면, 그 사진들 또한 내가 자주 들여다보지 않을 것이다. 그러면 결국 사진만을 위한 여행이 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여행을 가게 된다면 사진보다는 아무래도 눈에 담고 그 벅차오름을 간직하는 것이 중요할 것 같다.
모지코에서의 추억은 아직까지도 친구와 나의 만남에서 자주 회자되곤 한다. 우리 둘 다 그때 당시에 격무에 시달리면서 힘든 하루하루를 살고 있었는데, 모지코가 준 힐링은 우리에겐 최고의 선물이었다. 친구와 함께 행복했던 순간을 공유하는 것은 소소한 일상에서 우리가 잠시나마 웃을 수 있는 힘이 되는 것 같다.
이렇게 모지코에서의 행복했던 첫날이 끝나고, 다음날은 기타큐슈의 일상을 경험하기로 했다.
둘째 날은 일본에서의 일상을 경험했다.
다음날에일어나서는 제일 먼저 온천에 갔다. 아무리 힐링여행이었다고는 하지만 부지런히 걸어 다녔기 때문에 확실한 힐링이 필요했다. 온천에서의 사진은 없는데, 역시 얼굴은 차갑고 몸은 따뜻한 노천탕이 제일 좋았던 것 같다.
온천에 다녀와서는 시장에 가서 점심을 먹었는데, 보통 덮밥과 달리 한 가게에서 밥과 그릇을 받은 뒤에, 다른 가게들을 돌아다니면서 반찬을 추가했다. 6-7개 정도의 가게를 지나고 나니 완벽한 덮밥이 만들어졌다. 재료끼리 어울릴까 의문이 들기도 했지만 정말 맛있게 먹었다.
그 뒤로도 쇼핑을 하고 카페에 가서 커피도 마시면서 일본 사람이라고 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일본의 일상을 만끽했다. 그리고 저녁에는 남은 돈을 탕진하기 위해 세 개의 술집을 방문했다.
처음에 갔던 펍은 보라색 조명이라 그런지 뭔가 무서운 느낌이었다. '일본인데 보라색의 이쁜 조명이라니, 술 한 잔에 50만 원 하는 거 아니야?' 하는 걱정을 안고 들어갔는데, 생각과 달리 적당한 금액을 내면 술을 무제한으로 먹을 수 있었다. 물론 술을 잘 마시지 못하는 나에게는 큰 메리트가 아니었지만, 50만 원은 아니었으니까 나는 다음 술집인 오뎅바를 갈 수 있었다.
두 번째 술집인 어묵 바는 정말 맛있었다. 한 가지 특이한 점이 있었는데, 술잔에 술을 넘치게 따라서 술잔을 담는 그릇에까지 술을 담아줬다. 마침 옆에 한국 분이 앉아계셔서 이건 서비스 차원에서 주는 것이니 그냥 감사히 마시면 된다고 알려주었다. 기타큐슈는 한국 사람이 거의 없어서, 계속 얘기해보고 싶었는데, 쿨하게 떠나셨다.
그리고 나서 마지막으로 간 술집은 한국 술집인 bar.k다. 참이슬이 만 원이고, 신라면이 6000원인 곳이었지만 한국을 좋아해 주는 일본인들이 찾는 곳이니 한 번쯤 가고 싶었다. 사실 가게를 찾기 어려워서 포기하려는 순간에 기적적으로 찾아내서 선물 받은 기분이었다.
우리는 참이슬에 냉면과 족발을 시켜서 먹었는데, 가격을 생각하지 않는다면 자주 오고 싶은 맛이었다. TV에서는 한국 가수들의 뮤직비디오 영상과 노래가 나와서 돌아가기 전, 한국 문화에 다시 적응해가는 기분이었다. 사장님이 내 인스타그램을 팔로우 했는데, 아직까지도 꾸준히 좋아요를 눌러주시고 계신다. 좋은 사장님이다.
내가 좋아하는 사진 두 장이다.
이렇게 나의 짧디짧은 기타큐슈 여행은 끝이 났다. 지금 글을 쓰는 시점은 여행에 다녀온 지 1년 6개월이 지난시점이다. 정말 많이 지났는데도, 이렇게 생생하게 글을 쓸 수 있다는 건 그때의 여행이, 그때의 내가 정말 좋았나 보다. 사실 오사카의 도톤보리에 가면 1/3은 한국 사람이라 할 정도로 관광객이 많은 곳이다. 하지만 기타큐슈의 경우에는 오뎅바에서 말고는 한국 사람을 만난 적이 없다. 그래서 일본 본연의 감성을 제대로 느낄 수 있었던 것 같다.
일본은 직장 생활을 하면서도 마음만 먹으면 갈 수 있는 가까운 나라였다. 하지만 코로나가 심해지면서 가깝지만 한층 더 먼 나라가 되어버려 아쉽기만 하다. 지금은 모두가 힘든 시기를 겪고 있지만, 언젠가는 다시 괜찮아질 거라는 걸 알고 있다. 나중에 여행 가기 좋은 여건이 된다면 다시 한번 고즈넉한 일본을 느끼러 떠나야겠다. 그날의 행복과 설렘을 가지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