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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정 Nov 21. 2021

내 안에 몬스터(1)

폭식

 지금 당장 내 모습이 너무 싫은데. 빨리 바뀌어서 내 통통한 겉모습을 얕보는 저 사람들의 코를 잘근잘근 눌러주고 싶단 말이야. 어느 세월에 먹고 싶은 만큼 다 먹어가며 살을 빼냐고? 그냥 빨리 빼고 나서 폭식 안 하면 안 돼?

 내 식욕을 무시한 체중 감량에 필연적으로 따라왔던 부작용에 대해 이야기하려고 한다.


 당연히 버틸만하다고 생각했다. 배고파도 순간만 참으면 안 먹고 넘어갈 수 있었다. 그렇게 참고 다음 끼니에 적당히 배고픔을 해소할 수 있었기 때문에 괜찮았다.


 먹고 싶은 음식을 반만 먹었다고 했는데, 처음 시도할 때는 어렵지 않았다. 한 달쯤 넘어갔을 때 반을 먹어도 먹은 것 같지 않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원래 먹던 대로 먹어도 이전과 다르게 포만감이 없었다. 그래서 다음 식사를 기다리는 시간이 점점 힘들어졌다.


 그러다 한 번, 점심을 먹고 오후 시간 편의점에서 6000원짜리 커다란 초코칩 쿠키를 한 봉지 샀다. 아무 생각 없이 맛있어 보여서 샀고, 아무 생각 없이 비닐을 뜯어 앉은자리에서 서브웨이 쿠키만큼 커다란 쿠키 8개를 다 먹었다. 안 되는데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손은 계속 움직였다. 지금 서브웨이 쿠키 8개를 한 번에 먹으라면 억지로 밀어 넣어도 못 먹는다. 근데 그때는 뭔가에 홀린 것마냥 넋을 놓고 커다란 쿠키 한 봉지를 먹어치웠다. 쿠키 한 봉지의 양은 한 끼로 먹던 양보다 훨씬 많았다. 철저히 정해둔 대로 먹던 내게 허용할 수 없는 일탈이었다.


 이때부터 지독한 폭식이 시작되었다. 을 먹을 때면 어마어마하게 음식을 먹어치웠고, 친구들과 여행을 가서도 배가 미어터지게 먹곤 했다. 모든 일상의 이벤트에 폭식이 함께했다. 그래도 일상으로 돌아오면 다시 차근차근 해온 대로 반식을 하며 감량을 이었다.


 위의 과정을 반복하며 결론적으로는 다이어트 이전보다 더 살이 쪘다. 여러 번 터진 폭식으로 63kg에 도달하게 된 것이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어 수영장을 등록해 6시에 기상해 아침 1시간씩 수영을 했다. 아침 7시 반, 저녁 6시에는 강변을 1시간 반씩 걸었다. 튀어 오르는 몸무게를 힘으로 짓눌러가며 버티는 기분이었다. 몸무게는 꾸역꾸역 55kg을 유지했고, 억지로 눌러 참는 식욕과 기력 없이 기계적으로 반복하는 과한 운동으로 삶의 질은 바닥을 쳤다.


  다시는 요요를 겪지 말아야지, 다짐하고 다짐해도 이 지긋지긋한 다이어트는 방법이 같은 한 항상 같은 결과를 낳았다. 무조건 폭식이 따라왔다는 말이다. 폭식을 하지 않으려고 다짐하면서 밤을 꼬박 새우는 날이 많아졌다. 필요한 에너지를 얻는 과업을 끝내지 못했으니 잠들지 말라고 몸이 벌을 내리는 것 같았다. 배고픔에 시달리는 그 긴 시간이 너무 괴로다.


 새벽마다 편의점으로 뛰쳐나가던 시기도 있었다. 잠들지 못하고 다음 날 피곤해서 아무것도 못하는 비정상적인 생활을 끊으려고 그랬다. 빵 하나만 사 먹고 잠들어야지 하고 나가면, 편의점에서 손에 쥐어지는 것들은 빵 하나에 과자 7 봉지, 아이스크림 6개였다. 편의점 제일 큰 봉투에 가득 담아 집에 오면 20분 동안 사온 간식들을 모두 먹어치웠다. 그러고 나면 해선 안될 행동을 했다는 자책감에 괴롭긴 했지만 잠들지 못하는 괴로움은 해소할 수 있었다. 잠이 안 올 때마다 이런 식으로 해결했다. 새벽마다 남들 기준에서 감당할 수 없는 양의 간식을 쓸어가는 것이 부끄러워서 주변의 편의점 여러 군데를 돌아가며 들렀다.


 칼같이 식단을 지키고 8kg 감량에 성공한 의지 충만하던 내가 왜 이렇게 한심한 사람이 되었을까. 훗날 유튜브나 인스타그램, 블로그 등에서 폭식증과 관련한 콘텐츠들이 쏟아지면서 폭식을 겪는 사람이 나뿐만이 아님을 알게 되었다. 이때부터 폭식이 단순히 내 의지의 문제는 아니라는 사실을 희미하게 인지하기 시작했다. 


 다이어트 자체가 필연적으로 폭식이라는 부작용을 낳는다. 본능은 의지로 꺾을 수 없다. 억누를수록 제어할 수 없는 괴물로 자라난다. 그래도 마른 몸이 간절한 사람들은 폭식이 있든지 말든지 당장 한 치 앞만 보고 달린다. 나도 그랬다. 근데 정말 알아야 한다. 현명하게 다이어트를 하려면 멀리 볼 줄 알아야 다. 무작정 참아내기보다 방법을 달리할 줄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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