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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회진 May 08. 2019

펜싱 이야기 #4. 펜싱 클럽 입문기

당신이 펜싱 클럽에 등록을 하면 겪게 되는 일.

  펜싱을 처음 시작하면 걷기 연습부터 시작한다. 펜싱에선 좌우로 움직이는 스텝이 없다. 앞으로 한 걸음, 뒤로 한 걸음을 왕복하며 자신에게 딱 맞는 보폭을 찾는다. 조금 익숙해지면 두 번씩, 세 번씩 연이은 스텝을 연습한다. 그런데 펜싱에선 언제든 바로 공격이나 수비를 할 수 있도록 항상 무릎을 굽혀 자세를 낮추걷다 보니 조금만 해도 진땀이 난다. 기마 자세나 오토바이 자세만큼 내려가지는 않지만 그 절반 정도는 무릎을 굽힌 채 허벅지의 힘으로 계속 버티고 있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어지간한 사람들은 시작한 지 10분이 채 지나기도 전해 울상을 짓게 된다.


 하체가 제법 단련된 사람들도 비록 근육통은 없더라도 힘들어 하긴 마찬가지이다. 다리를 벌려 일정한 보폭을 유지한 채 무릎을 굽 움직이다 보니 엉덩이는 자꾸 뒤로 빠지고 고개는 앞으로 쏠린다. 다리에만 온 신경을 쓰다 보면 둘 곳 없는 양 손이 오징어처럼 말려 올라간다. 또 쓸데없이 어깨에 힘이 잔뜩 들어가 목에 통증을 느끼기도 한다. 옆에서 보면 참 별 거 아닌 동작인데도 직접 자세를 취해보면 정말 어색하기 그지없다.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이 웃겨 빵 터지는 사람도 종종 있다.


 대부분의 성인 회원들처럼 나 역시 오리였다. 오리 중에서도 최상급 오리였다. 펜싱을 시작하기 전 제법 웨이트를 한 상태라 하체 운동에 대한 거부감이 전혀 없었음에도 뒤뚱거림은 좀처럼 나아지지 않았다. 앞뒤로 두세 번 이어서 움직이다 보면 보폭이 너무 좁아지거나 넓어졌다. 자세를 고치느라 허둥거리다 보면 스텝은 주머니 속 이어폰처럼 끝없이 꼬이고 동작은 녹이 슨 리어카처럼 삐걱거리기 일쑤였다. 피스트 위에 편안하게 서서 앞뒤로 자유롭게 움직이는 데에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던 것으로 기억한다. (희한하게도 아이들은 금세 따라 한다. 타인의 시선에 대한 부담이 없어서 그런 것으로 추정된다.)


 스텝이 조금 편해지면 펜싱의 꽃인 '팡뜨(Fente)'라는 공격 동작을 연습하게 된다. 클럽에 따라 팡뜨, 팡데부, 팡, 런지 등 다양하게 부르는데, 앙가드(En Garde) 자세에서 뒷발로 땅을 발로 차 몸을 앞으로 던진 뒤 팔을 쭉 뻗어 상대를 찌르는 동작이다. 이 동작은 펜싱의 기본 공격 동작이며 가장 중요한 동작이다.


앙가드 (En Garde) 자세                                팡트 (Fente) 자세


 팡트는 처음부터 끝까지 펜서들을 괴롭히는 동작이다. 매일 연습해도 어딘가 엉성하고 부족하게 느껴진다. 팡트만 잘해도 어지간한 상대는 그냥 이긴다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다. 준비 동작 없이 단번에 찔러내는 팡트를 보면 탄성이 절로 나온다.


 클럽의 커리큘럼에 따라 좀 다르겠지만 보통 첫 달은 기본자세와 스텝, 앙가드와 팡트, 그리고 기본 방어 기술을 익히는데 쓴다. 맨 손으로 하는 게 익숙해지면 검을 들고 연습을 한다. 하체 위에 상체를 얹어 놓듯 힘을 빼고 자연스럽게 움직여야 하는데, 500g 정도밖에 되지 않는 검 하나 들었다고 또다시 로봇처럼 삐걱거린다.


 첫 한두 달은 통증과의 싸움이다. 처음 2주는 앙가드 자세로 인해 생긴 허벅지 근육통 때문에 고생을 좀 하게 된다. 그게 지나가면 고관절 주위 근육이 비명을 지르는데 이것은 팡트 연습을 많이 해서 생기는 통증이라고 해서 '팡트병'이라고 부른다. 짧게는 2주, 길게는 1개월 안에 나타난다. 평소에는 쓰지 않는 근육들을 사용하면서 생기는 자연스러운 통증이며 운동 전후 스트레칭과 휴식으로 금방 회복된다. 두 달 정도 지나면 검을 쥐는 손의 검지 두 번째 마디에 통증이 시작되고 대개는 세 달이 넘기 전에 딱딱한 굳은살이 자리를 잡는다.


 여기까지 왔다면 이륙을 위한 지루한 준비 과정은 끝난다. 이제 정신을 집중하고 피스트 위에 올라설 차례이다. 한 여름밤 맥주처럼 짜릿한 역전승이나 몇 번이고 이불을 걷어찰 끔찍한 역전패도 모두 피스트 위에 있다. 두툼한 장갑을 끼고 무거운 마스크를 둘러 쓰자. 시작선에 서서 앙가드 자세를 취하자. 숨을 고르며 심판의 신호를 기다리자. 심판의 신호가 떨어지기 무섭게 상대에게 달려들어보자. 진짜 재미는 이제부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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