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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회진 May 01. 2019

펜싱 이야기 #3. 펜싱은 실전에 약하다? -2편

그토록 팔랑거리는 검이라도 맞으면 피멍이 들긴 합니다만.

 펜싱은 실전에 약하다. 실전에서의 효용성만을 놓고 따져본다면 검도에 비할 바가 못된다. 전혀 쓸모가 없다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펜싱은 엄청나게 많은 규정을 가지고 있다. 즉, 하면 안 되는 행동들이 너무 많다는 것이다. 플러레의 경우, 몸통을 제외한 다른 곳을 찔러도 안되고 (찔러도 되지만 무효) 공격이 실패한 직후 자세가 무너진 상태에서 다시 찔러도 안되고 (찔러도 되지만 무효 판정이 나올 가능성이 아주 높기 때문에 코치들은 이러한 동작을 하지 못하도록 훈련시킨다.) 검을 휘둘러 상대를 베거나 때려도 안된다. 피스트는 폭이 좁고 거리가 긴 직사각형의 형태를 띠고 있어 앞뒤로만 움직일 수 있으며 공격을 하거나 피하기 위해 피스트를 고의로 벗어나선 안된다. 등을 보여도 안되고 고개를 숙여도 안되고 고개를 돌려 점수판을 봐도 안되고 시합 중에 반대 손이 몸의 앞 쪽으로 나와서도 안된다. 사브르의 경우에는 오른손잡이는 반드시 오른쪽 발만 앞으로 나와 있어야 하며, 왼발이 나오는 것조차 허용이 되지 않는다. 펜싱은 왜 이렇게 하면 안 되는 동작들이 많은 걸까? 이유는 간단하다. 역설적이게도 펜싱은 너무도 위험한 스포츠이기 때문이다.


 연습을 할 때에는 기본 장비 이외에 플라스틱 가슴보호대를 착용한다. 이 보호대는 매끈하고 완만한 각을 가지고 있어 애매하게 날아오는 검은 그대로 미끄러뜨리기 때문에 시합에선 착용이 금지되어있다. (여성은 두꺼운 천으로 된 보호대 안에 착용은 가능하다.) 플라스틱 보호대가 없이 시합을 뛰고 나면 샤워도 하기 힘들 정도로 많은 상처가 생긴다. 목과 어깨, 가슴에 피멍은 기본이고 정강이에는 여러 곳이 찢어져 피가 비친다. 혹여나 체중을 실은 상대의 공격이 쇄골에 적중이라도 한다면 단말마의 비명과 함께 그대로 드러누워버리게 될 것이다. 그토록 팔랑거리는 검이라 할지도 정통으로 맞게 되면 일순간 아찔한 공포를 느끼게 된다.


 실제로 1982년 이탈리아에서 플러레 시합 도중 부러진 검이 마스크를 관통하면서 선수가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하였고, 2002년 우크라이나에서는 부러진 검이 선수의 가슴을 관통해 선수가 현장에서 사망하는 불행한 사고가 있었다. 방검복, 방검 마스크에 메탈 재킷까지 여러 겹 껴입었더라도 검이 제대로 휘어지지 않으면 그대로 관통해버리는 게 바로 펜싱이다.


 펜싱에서 공격의 가장 중요한 포인트는 바로 거리 조절이다. 상대 선수와 주거니 받거니 요란하게 칼싸움을 하는 게 아니라, 스텝을 잘게 쪼개 움직이면서 내가 가장 자신 있는 거리에 상대가 멈추도록 유도를 한 다음 단숨에 거리를 좁혀 찌르고 들어가는 게 공격의 핵심이다. 만일 내가 공격을 시작하기 위해 자세를 낮추며 준비 동작을 취한다면 상대는 그 의도를 알아차리고 공격이 시작되는 순간을 기다리게 될 것이다. 공격이 시작되면 상대는 순식간에 간격을 벌려 가볍게 공격을 막아낸 뒤 자세가 무너진 채 거리를 잃은 나를 향해 재빠르게 반격을 해 올 것이다. 그러므로 공격 전에 이미 자세를 충분히 낮추고 사냥감을 노리는 재규어처럼 살금살금 접근을 해야 한다. 준비 동작 없이 단번에 상대에게 뛰어들어 낮고 깊고 빠른 공격을 해야만 겨우 공격에 성공할 수 있다. 그 검에는 공격자의 힘과 체중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검이 상대의 재킷에 닿으면 출렁거리며 거의 반원에 가까울 만큼 크게 휘게 된다. 만일 그 검이 휘어지지 않는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나도 운동을 시작한 초창기에는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우산이나 막대 등이 있다면 보통 사람들보다는 더 유리하지 않을까? 끝이 뾰족한 우산으로 힘과 체중을 실어 상대를 찌르고 들어간다면 충분히 강력하지 않을까? 호신용 무술로 써먹을 수 있을 만큼 충분히 위협적이지 않을까?


 아니, 결코 그렇지 않을 것이다. 상대를 공격하기 위해 우산을 드는 순간 잡혀 버릴 것이다. 내가 우산으로 공격한다고 해서 상대가 뒤로 빠지며 우산으로 막거나 반격할 거라 기대하면 안 된다. 혹 운이 좋아 공격이 성공한다면 상대에게 제법 큰 타격을 가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공격이 어설프게 끝난다면 자세가 흔들린 나는 반격의 여지도 없이 죽도록 얻어맞게 될 것이다. 멋지게 단 한 방에 제압하길 기대하며 몸을 날리기보다 차라리 '에라 모르겠다.' 하며 마구잡이로 우산을 휘두르는 게 훨씬 더 위협적일 것이다.


 우리는 먼 거리에 있는 누군가를 고슴도치로 만들기 위해 국궁을 배우는 것이 아니다. 버스비를 아끼기 위해 매일 새벽 10km ~ 20km씩 달리며 마라톤 풀코스를 준비하는 것이 아니다. 아마추어에게 스포츠는 그 존재 자체가 이미 목적이다.


 펜싱은 호신용, 실전용 무술로 개발된 검술이 아니다. 펜싱은 스포츠다.


 아니, 펜싱은 그냥 펜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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