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 시우레

휘파람 소년

by 정현철

베네수엘라 동화 "엘 시우레 (El Silbón)" 전설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해 보겠습니다. 공포 요소는 유지하되, 현대 사회의 문제와 정서에 맞춰 도시 배경, 가정 내 갈등, 양심과 후회, 그리고 사회적 고립의 주제를 녹여 새로운 이야기로 풀어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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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휘파람 소년》 — 현대판 엘 시우레


배경:

카라카스 외곽의 슬럼가. 고층 아파트들이 밀집된 지역, 밤이면 휘파람 소리와 함께 CCTV도 잡지 못하는 형체가 스쳐 지나간다는 소문이 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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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거리:

17살 소년 리오는 폭력적인 계부와 무기력한 어머니 사이에서 자랐다. 음악을 사랑했지만, 집에서는 이어폰조차 낄 수 없었고, 툭하면 계부에게 맞았다. 어느 날, 폭행이 도를 넘자 리오는 우발적으로 계부를 밀쳐 떨어뜨려 죽게 만든다.


당황한 리오는 시체를 숨기기 위해 검은 비닐봉지에 담아 밤거리를 돌아다닌다. 그 모습이 CCTV에 찍히지만, 어찌 된 일인지 그의 얼굴은 흐릿하게만 나타난다. 마치 존재하지 않는 사람처럼.


며칠 후부터 도시 곳곳에서 휘파람 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 음악가들이 아니면 흥얼거릴 수 없는 구조의 멜로디. 하지만 그 소리를 들은 사람들은 이상하게도 모두 죄책감에 시달리거나 극단적 선택을 시도한다.


이윽고 사람들은 ‘휘파람 소년’이라 부르며 도시 괴담으로 떠돌기 시작한다. 그 소리를 들으면 마음속 깊은 죄책감이 끌려 나와, 자신과 마주하게 된다는 것. 리오는 자신의 존재를 지운 대가로, 세상에 숨겨진 죄들을 끌어올리는 존재가 되어버렸다.


어느 날, 버려진 지하철역에서 소년은 한 소녀를 만난다. 그녀는 자살을 시도하려다 리오의 휘파람을 듣고 멈춘 유일한 사람이었다. 그녀는 그에게 말한다.


“당신은 벌을 받는 게 아니야. 그냥, 사라지지 않으려고 휘파람을 불고 있는 거잖아.”


소년은 처음으로 멈춰 선다. 그리고 처음으로, 자기 손에 들린 비닐봉지를 내려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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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해석 포인트:


죄와 벌: 원작처럼 '가족을 죽인 자식'이지만, 우발적 사고와 폭력의 대물림이라는 현대적 맥락 추가.


휘파람: 단순한 공포의 상징에서 ‘죄의 소리’로 변주됨.


도시 전설화: 현대인들이 만들어낸 디지털 괴담 속 존재.


구원 가능성: 원작과 달리, 소년이 ‘진심을 알아주는 타인’을 통해 구원의 실마리를 얻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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