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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의 풍경이 되는

다양성, 바르셀로나의 날씨

by 정담아

여행은 좋지만 여행 준비는 싫다. 당장 눈앞에 닥친 일도 마음대로 안 되는 판에 아직 멀기만 한 미래를 계획하는 것도 귀찮고, 그 상황에 필요할 짐을 챙기는 것도 성가시다. 피할 수 있으면 최대한 피하고 보지만 피할 수 없는 게 있다. 바로 옷. 생존을 위해 필요하니까. 편의성을 주로 내세우되 약간의 품위를 더할 수 있는 옷이 필요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날씨 체크가 필수였다.


스페인 바르셀로나의 1월은 한국의 늦가을 날씨와 비슷하다고들 했기에, 늦가을 기준으로 짐을 챙겼다. 물론 바르셀로나를 시작으로 남부를 찍고 다시 마드리드로 갈 계획이었기에 최대한 다양한 옷을 준비했다, 고 생각했다. 그런데 웬걸. 바르셀로나의 날씨는 내 짐의 스펙트럼을 넘나들었다. 일단 해의 고도에 따라 기온의 차이가 크게 느껴졌다. 햇볕의 양이 상대적으로 적은 이른 아침과 저녁엔 제법 쌀쌀했다. 친구는 스페인에서 멋 좀 내보겠다고 가디건으로 겉옷을 마무리했다가 하루 만에 결국 패딩에 몸을 집어넣고 말았다. 나 역시 옷 속에 몸을 넣었지만 조금 다른 전략을 취했다. 겹겹이 껴입기. 히트텍을 시작으로 셔츠, 니트, 얇은 패딩, 넉넉한 핏의 코트까지 수많은 옷으로 몸을 덮고 그 위에 목도리까지 칭칭 감았다. 잔뜩 몸을 웅크리고 돌아다니다 햇살이 넉넉하게 내리쬘 때쯤 목에서 머플러를 풀고 겉옷을 벗었다.


내가 만난 바르셀로나의 1월은 한국의 늦가을이 아니었다. 막 찬 기운의 날카로움이 시작되는 초겨울 바람으로 아침을 열고 서늘한 기운이 내려앉은 늦가을을 지나 포근한 공기가 살갗을 간질이는 초봄으로 훌쩍 넘어왔다. 종종 나른한 봄이 내려앉았기도 했다. 하루에도 몇 개의 계절을 퐁당퐁당 건넌 덕에 추울만하면 온기가 찾아왔고, 나른해질 때쯤 단단하게 조이는 한기가 슬쩍 날아들었다. 하지만 이 도시의 진짜 매력은 날씨의 다양한 스펙트럼이 아니었다. 변화무쌍한 날씨만큼이나 범위가 넓은 사람들의 패션, 그 안에 숨은 자유로움, 바로 그것이었다.


내가 사는 도시의 옷차림은 비슷비슷하다. 많은 이들이 패션에 관심이 높지만 특정 시기에 전 국민이 입는 옷들이 있다. 한때는 도시의 대다수가 검정 롱 패딩을 입고 거리를 활보하거나 검정 패딩 조끼를 입고 실내에 앉아 있었으니까. 그런데 스페인 바르셀로나는 달랐다. 거리에서 봄, 가을, 겨울을 지나는 사람들을 모두 만날 수 있었다. 그냥 봄, 가을, 겨울뿐 아니라 그 사이를 지나는 초봄, 늦봄, 초가을, 늦가을, 초겨울, 늦겨울까지도.


가장 놀라운 광경을 마주한 건 해변이었다. 민소매 차림에 운동을 하는 사람들까진 쿨하게 지나쳤지만 수영복 차림의 노인 앞에선 눈이 휘둥그레졌다. 내가 사는 곳에선 좀처럼 보기 힘든 풍경이었기에. 젊은 나조차 우리나라 해변에서 수영복을 입은 일이 없는데 노인이, 겨울에, 온천도 아닌 해변에서 수영복이라니. 그 자유로움이 멋있었다. 그래서 자꾸만 눈길이 갔다. 그 이후에도 나의 촌스러움은 계속되었다. 나도 모르게 조금 튀는 차림의 사람을 보면 고개가 돌아갔다. 나만 그랬다. 아니, 친구와 나만 그랬다. 자꾸 돌아가던 고개가 숙여졌다. 조금 부끄러워졌다. 그동안 나는, 내가 다름을 인정하고 다양성을 존중하는 사람인 줄 알았는데, 숨어있던 단일민족, 순수혈통의 자랑스러운 한국인 DNA가 여기에서 튀어나오는구나, 싶었다.


평생 함께한 내 속도 모르고 살았던 주제에 이방인 시선으로 내밀한 곳까지 알 수 있을까만은 겉보기엔 꽤 마음에 들었다. 나와 다른 모습이, 우리와 다른 취향이 그저 하나의 풍경이 될 수 있는 이 도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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