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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르셀로나의 노란 리본

카탈루냐의 바르셀로나

by 정담아

바르셀로나에서 가장 많이 한 일은 무작정 걷기였다. 잘 알지 못하는 건물 사이를 기웃거리다가 쓱 들어가서 진열된 물건들을 어색하게 둘러보다 나오기를 반복했다. 그러면서 그 도시의 건축들이 조금은 듬직하고 약간은 통통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상하좌우 길이가 비슷한 구조물에서 비롯된 인상이라는 것을 알게 될 쯤, 내 도시의 건물은 대체로 위로 높이 솟느라 바쁘단 사실도 깨닫게 되었다. 떠나고 나서야 내게 익숙했던 것들에 대해 조금씩 알아가는 느낌, 그래서 그곳에서 낯선 풍경과 나누는 인사는 이곳의 익숙한 것들과 마주하는 안녕이기도 했다.


생경한 장면들 사이를 서걱서걱 걸을 때마다 노란 리본이 자주 눈에 띄었다. 내 도시에서도 익숙한 그 노란 리본. 주로 가방에 달려 있거나 차 뒤편에 붙어 있는 리본은 익숙했지만, 건물 전면에 크게 그려지거나 바람에 나부끼는 자태는 조금 생경했다. 그들의 건물에 표시된 노란 리본의 의미가 궁금했다. 나의 노란 리본과 어떤 점이 다른지, 어떤 이의 무사귀환을 바라고 있는 건지, 무슨 이야기를 품고 있는 건지. 제일 먼저 내게 정보를 알려준 것은 인터넷이었다. 그 중심에는 카탈루냐가 있었다.


카탈루냐는 스페인에 속하는 주(州)로서 경제적으로 높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행정구역이다. 바르셀로나를 중심으로 하는 카탈루냐 지역 사람들은 오래전부터 분리 독립을 주장한다고 했다. 경제적 역할이 클 뿐 아니라 언어, 역사, 문화적 배경이 다른 탓이다. 2017년 분리 독립에 대한 주민 투표가 실시되었고, 압도적인 찬성 여론에 따라 선포된 카탈루냐 공화국, 이를 인정하지 않는 중앙정부 간 분쟁이 가열되었다. 이 과정에서 분리 독립에 찬성하는 정치 지도자들이 구속되었고, 이들의 석방을 요구하는 의미로 시민들이 노란 리본을 매달기 시작했다. 여기까지의 정보를 훑고 나니 노란 리본이 더 선명하게 다가왔다.


오랜 기억을 더듬어 보니 학창시절 분쟁 지역을 배우면서 스쳐 지났던 낯선 이름 중에 카탈루냐가 있었던 것도 같았다. 좀 더 기억을 뒤적이다 미얀마에서 만났던 스페인 친구가 이 문제에 대해서 이야기했던 것도 떠올랐다. 하지만 언급했다는 사실만 기억날 뿐 그 안의 내용들은 흐릿했다. 프랑스와 스페인을 국적으로 가진 네 명의 유럽인이 자신들이 속한 대륙에 대한 열정적으로 피운 이야기꽃에서 저만치 비켜 있던 나는 그저 대충 알아듣는 척, 그림처럼 앉아 있었으니까. 흘려듣던 이야기의 그 현장에 두 발을 딛고 서 있으니 더 이상 그림으로 남을 수 없었다. 감정이 날아들었다. 잠시 머물렀던 캐나다 퀘벡의 모습이 겹쳐졌다. 국기보다 지역기를 앞세우는 도시 몬트리올, 본인을 ‘canadian’ 아닌 ‘Quebecer’라 소개하던 그곳의 친구들이 생각났다. 중앙집권적 성향이 강한 나라에서 나고 자란 내겐 생경했던, 그래서 흥미로웠던 그들의 눈동자가 떠올랐다.


감정을 따라 정리되지 않은 여러 생각들이 엉키기 시작했다. 처음 이 도시에서 매력을 느낀 다양한 풍경들, 그 다양함의 뿌리를 다음 날 분쟁의 씨앗으로 만나다니. 각기 다른 개체의 자유와 하나의 사회를 위한 통합. 너무 추상적이고 원론적인 대립이다 싶다가도 우리 생 곳곳에서 마주하는 두 가지, 자유와 통합. 개인이든 지역이든, 전체를 이루는 부분의 정체성을 존중해야 하지만 또 전체의 질서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생존의 문제가 모두 개별 이슈화 되어버리고 말겠지. 그 사이의 적당한 지점을 마련해야 하는 게 바로 정치이지 않을까. 하지만 이미 각개전투를 벌이는 우리에게 필요할 때만 통합을 외치며 개인의 희생 감수를 외치는 중앙의 논리에 신물 난다. 그럼에도 여전히 우리는 조금 더 나은 내일을 바라며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투표를 한다. 그곳의 그들도 다르지 않았다.


내가 만났던, 아주 짧은 시간이었지만 친구라 부르고 싶었던 카탈루냐 출신 두 명에게 물었다. 분리 독립 투표를 했느냐고. 둘 다 ‘yes’라고 답했지만, 선택은 달랐다. 다만, 각자 자신의 선택에 대한 분명한 이유와 소신이 있었다. 장기기억 속 희미한 수업 내용을 다시 소환해보자면 ‘정체성을 표면에 내세우지만 결국 경제적 논리’ 때문에 분리 독립 문제가 발생하는 것이라고 배웠다. 하지만 카탈루냐 사람의 목소리를 통해 만난 현실은 교과서에 나왔던 명확한 문장보다 훨씬 더 미묘하고 복잡했다. 그럴 법도 했다. 단지 경제적 문제 때문에 서울이 대한민국에서 분리 독립하겠다고 하진 않을 테니까. 왜 교과서 문장을 볼 땐 그 생각을 하지 못했을까. 늘 문장은 현실을 단순하게 만드는 버릇이 있고, 날 것을 들여다보는 여행은 씁쓸한 뒷맛을 남기는 습성이 있다. 그리고 오랜 기다림은 좀처럼 익숙해지지 않는 법이다.


엉킨 마음의 끝에 노란 리본이 걸렸다. 누군가를 기다리는 이의 마음이 안녕하길, 모든 노란 리본에 달린 간절함의 끝이 해피엔딩이길 바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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