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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정규 Aug 28. 2021

3 (VW의 어둠)전후 폭스바겐 부활의 주인공-아이반

전후 폭스바겐 부활의 주인공 - 아이반 허스트


(VW의 어둠 3탄, Ch3의 앞부분 내용 정리)


- 전쟁이 끝난 후 폭스바겐 공장은 자재 부족, 인력 부족의 곤란을 겪는다. 하지만 폭스바겐은 타사보다 전쟁의 피해가 적었고, 공장 내에 화력발전소가 있어서 정전의 위험도 적었다.


- 또 하나 폭스바겐의 행운은 영국에서 파견한 아이반 허스트(Ivan Hirst)라는 영국 감독책임자(major)이다.

- 아이반 허스트는 영국에서 Hirst Bros & Co라는 시계를 만드는 기업의 가문 출신으로, 영국에서 대학 재학 시(나치가 정권을 잡기 전) 독일에 교환학생을 하면서 독일어를 서투르지만 말할 수 있었고, 독일 사람의 근로의식을 높이 평가한 사람이었다.


- 2차 세계 전쟁 중에는 후방에서 탱크와 자동차를 수리하는 역할을 수행하면서 그는 위기관리 능력과 기술적인 지식을 갖추었다.


- 그는 1945년 8월 폭스바겐의 Wolfsburg공장에 와서 총책임자(chief executive)를 한다. 그때 나이 29살.

- 그의 탁월한 부품과 원자재 조달 능력에 힘입어 VW은 종전 이후부터 1946년 10월까지 10,000대의 민간인용 차량을 생산해냈다. 나치 체제로는 도저히 달성할 수 없는 숫자였다


- 국민차의 보급은 히틀러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영국 점령군의 이루어지기 시작했다.


- 아이반 허스트(Ivan Hirst)는 서비스와 판매 조직을 만들고 1947년 10월 처음으로 수출까지 했다.


- 허스트는 나치에 의해 명령을 받으면서 일하는 수동적인 작업자를 능동적으로 일하도록 했고, 자동차의 품질도 향상시켰다. (He pushed to improve the quality of the vehicles and to teach workers to take initiative rather than passively wait for orders, as they had been conditioned to do under the Nazis)


- 그는 또 12명의 작업자로 구성된 작업자 협의회(worker council)를 만들었으며, 나치 주도의 기업을 고객을 위한 국제적인 자동차 기업으로 변신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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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생각) 히틀러가 국민차를 만들었다고 단정적으로 이야기하는 것은 잘못된 듯하다. 히틀러는 전쟁을 준비하기 위해 아우토반을 만들었고, 국민차라는 명목으로 포르셰를 불러 설계를 하게 한 것. 실제로 국민차 보급에는 전혀 관심 없이 전쟁 수행.

실질적으로 국민차는 허스트라는 영국군이 파견한 총감독관에 의해 VW의 공장을 변신시키면서 실현되었다. 그리고 비틀을 처음으로 수출까지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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