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_평가와 관찰을 구분하면 싸움이 대화로 바뀝니다
수요일 저녁, 상담실에 들어온 은지씨의 첫 마디였습니다.
"남편이 저한테 관심이 없어요. 맨날 핸드폰만 보고, 제 말은 듣지도 않아요. 이러니 대화가 되겠어요?"
옆에 앉은 남편 민수씨가 억울하다는 표정으로 말했습니다.
"관심이 없다니요! 나는 아내 말 다 듣고 있어요. 근데 아내가 너무 예민한 거 아닌가요?"
둘 다 진심이었습니다. 은지씨는 정말 무시당한다고 느꼈고, 민수씨는 정말 관심을 가지고 있다고 믿었어요. 같은 상황을 경험했는데 왜 이렇게 다르게 느낄까요?
그 답은 '관찰'과 '평가'의 차이에 있습니다.
우리는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보지 않습니다. 자신만의 렌즈로 걸러서 봐요. 그 렌즈에는 과거 경험, 신념, 기대, 두려움이 묻어있죠.
"남편이 관심이 없다"는 은지씨의 해석입니다. 평가예요. 그렇다면 은지씨가 실제로 본 것, 즉 관찰은 무엇이었을까요?
저는 천천히 물었습니다.
"은지씨, 남편분이 관심이 없다고 느꼈을 때, 구체적으로 무슨 일이 있었나요?"
"저번 주 목요일이었어요. 제가 회사에서 있었던 일을 얘기하는데, 남편이 핸드폰을 보더라고요. 5분 정도 얘기했는데 계속 핸드폰만 봤어요. 제가 '내 말 듣고 있어?'라고 물으니까 그제야 고개를 들더니 '어, 듣고 있어'라고 했어요. 근데 제가 무슨 얘기 했냐고 물어보니까 대답을 못하더라고요."
이제 상황이 선명해졌습니다.
평가: "남편은 나한테 관심이 없어"
관찰: "지난 목요일 저녁 8시쯤, 내가 5분간 회사 얘기를 했을 때 남편은 핸드폰을 보고 있었다. '내 말 듣고 있어?'라고 물었을 때 '듣고 있어'라고 답했지만, 내가 무슨 얘기를 했는지 물었을 때는 대답하지 못했다."
민수씨에게 "당신은 나한테 관심이 없어"라고 말하면 어떻게 될까요?
민수씨는 방어합니다. "관심 없는 게 아니야! 나는 관심 있어!" 은지씨는 더 답답해집니다. "보면 알잖아! 관심 없는 게 맞다고!"
싸움이 시작됩니다. 누가 맞는지, 누가 틀렸는지를 가리는 싸움이요.
하지만 관찰로 말하면 다릅니다.
"여보, 어제 내가 회사 얘기할 때 당신이 핸드폰 보고 있었잖아. 그리고 내가 무슨 얘기 했냐고 물었을 때 대답 못했어. 그때 나는 정말 속상했어."
이렇게 말하면 민수씨는 방어할 이유가 없어요. 사실이니까요. 실제로 핸드폰을 봤고, 실제로 대답을 못했으니까요.
"아... 그때? 미안해. 회사에서 급한 메시지가 와서 확인하느라... 근데 네 얘기도 듣고 있었어. 다만 집중은 못했나 봐."
대화가 달라집니다. 관심이 있다/없다를 싸우는 게 아니라, 실제로 일어난 일과 그때의 감정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게 되죠.
일상에서 우리는 끊임없이 평가합니다. 그것도 아주 자연스럽게요.
게으르다 "우리 아들은 게으르다." → 관찰: "아들이 이번 주에 세 번 아침 8시 알람을 끄고 다시 잠들었다."
무책임하다 "동료가 무책임해." → 관찰: "동료가 지난달 프로젝트 마감일을 이틀 넘겼고, 이번 주 회의에 10분 늦게 왔다."
사랑하지 않는다 "엄마는 나를 사랑하지 않아." → 관찰: "엄마가 내 생일을 잊어버렸고, 최근 두 달간 내게 전화를 한 번도 하지 않았다."
이기적이다 "남자친구가 이기적이야." → 관찰: "지난 세 번의 주말 데이트에서 남자친구가 가고 싶은 곳만 골랐고, 내 의견을 물어보지 않았다."
항상 화가 나 있다 "우리 상사는 항상 화가 나 있어." → 관찰: "이번 주에 상사가 세 번 목소리를 높였고, 회의 중에 두 번 책상을 쳤다."
보이시나요? 평가는 추상적이고 논쟁을 부릅니다. 관찰은 구체적이고 대화를 가능하게 해요.
상담실에서 가장 자주 듣는 표현들이 있습니다.
"당신은 항상 그래."
"넌 절대 내 말을 안 들어."
"우리 엄마는 한 번도 내 편을 들어준 적이 없어."
"남편은 맨날 늦게 와."
이 단어들은 평가의 신호등입니다. 빨간불이죠.
왜일까요? 현실에서 '항상'이나 '절대'는 거의 없거든요.
과장된 표현은 상대를 방어하게 만들고, 진짜 문제를 가립니다.
제가 은지씨에게 물었습니다. "남편분이 맨날 핸드폰만 본다고 하셨는데, 지난 한 달 동안 몇 번 정도였을까요?"
은지씨가 잠시 생각하더니 말했습니다. "음... 사실 매일은 아니었어요. 지난주에 세 번? 그 전주에는 한 번 정도?"
"한 달에 네 번이네요. 그럼 나머지 26일은요?" "그때는... 괜찮았어요. 대화도 잘 했고."
"맨날"이 사라지자 대화가 달라졌습니다.
민수씨도 방어적이던 태도가 누그러졌어요. 자신이 '맨날' 그런 사람이 아니라는 게 인정됐으니까요. 오히려 "그 네 번이 언제였는지 기억해. 회사에서 정말 힘든 주였어. 미안해."라고 말할 수 있었죠.
관찰을 잘하는 방법은 '카메라가 찍은 것만' 말하는 겁니다.
카메라는 해석하지 않아요. 누군가 의자를 차면 '화가 났다'고 판단하지 않아요. 그냥 '의자를 찼다'고 기록하죠.
상황 1: 청소년 딸과의 대화 평가: "너는 나한테 말대꾸해." 관찰: "내가 9시까지 들어오라고 했을 때, 너는 '왜요? 친구들은 다 10시까지 놀아요'라고 말했어."
상황 2: 배우자와의 대화 평가: "당신은 집안일을 안 도와줘." 관찰: "이번 주에 내가 설거지를 여섯 번 했고, 빨래를 세 번 돌렸어. 당신은 월요일에 설거지를 한 번 했어."
상황 3: 직장 동료와의 대화 평가: "너는 비협조적이야." 관찰: "지난 프로젝트 회의에서 내가 세 가지 아이디어를 제안했을 때, 너는 '그건 안 될 것 같은데'라고 세 번 말했어. 그리고 대안을 제시하지 않았어."
상황 4: 친구와의 대화 평가: "너는 나한테 관심이 없어." 관찰: "내가 지난주 목요일 밤에 힘든 일이 있어서 전화했을 때, 너는 '나 지금 바빠. 나중에 얘기하자'고 했어. 그 후로 일주일이 지났는데 연락이 없었어."
솔직히 말하면, 관찰은 쉽지 않습니다.
첫째, 우리는 평가하도록 훈련받았어요. "착하다", "게으르다", "똑똑하다" 같은 평가 언어를 평생 사용해왔죠.
둘째, 감정이 격할 때는 더 어렵습니다. 상처받았을 때, 화가 났을 때, 평가가 먼저 튀어나와요.
셋째, 관찰은 느리고 번거롭습니다. "너는 이기적이야"가 훨씬 빠르고 강력하게 느껴지죠.
하지만 이렇게 생각해보세요.
"너는 이기적이야"는 3초면 끝나지만, 그 후 3시간 동안 싸웁니다.
"지난 세 번의 데이트에서 네가 가고 싶은 곳만 골랐고, 내 의견을 물어보지 않았어"는 10초가 걸리지만, 진짜 대화를 시작할 수 있게 해줍니다.
은지씨는 3주 후 상담실에 왔을 때 이렇게 말했습니다.
"선생님, 관찰로 말하려고 노력하는데 자꾸 실수해요. '당신은 무관심해'라는 말이 튀어나와요."
"그럴 때는 어떻게 하시나요?"
"다시 말해요. '아, 미안. 내가 지금 평가했네. 다시 말할게. 어제 저녁에 내가 얘기했을 때 당신이 TV를 계속 봤어. 그때 나는 외로웠어.' 이렇게요."
"완벽하네요."
"완벽하진 않아요. 하지만... 예전보다는 싸움이 줄었어요. 남편도 '아, 그때? 미안해'라고 더 쉽게 말하더라고요."
관찰과 평가를 구분하는 것. 이것이 비폭력대화의 첫 걸음입니다. 완벽하게 할 필요는 없어요. 다만, 의식하고 연습하는 것. 그것만으로도 우리의 대화는 조금씩 달라집니다.
다음 문장들에서 평가를 찾아보세요. 그리고 관찰로 바꿔보세요.
예시 1: "우리 아이는 말을 안 들어." 평가: __________ 관찰로 바꾸면: __________
예시 2: "상사가 꼰대야." 평가: __________ 관찰로 바꾸면: __________
예시 3: "남자친구가 차갑고 무뚝뚝해." 평가: __________ 관찰로 바꾸면: __________
이번 주 동안 내가 자주 사용하는 평가 단어를 기록해보세요.
내가 자주 쓰는 평가 단어들 (예: 항상, 절대, 게으른, 이기적인, 무관심한 등)
이 단어들을 사용할 때, 나는 주로 누구에게 말하나요?
배우자/연인: □
자녀: □
부모: □
동료: □
친구: □
나 자신: □
최근 누군가와의 대화에서 불편했던 순간을 떠올려보세요.
상황: _______________________
내가 했던 평가적 말:
카메라가 찍었을 장면 (관찰):
누가: __________
언제: __________
무엇을: __________
어떻게: __________
관찰로 다시 말하면:
앞으로 일주일 동안, 하루에 한 번씩 평가 대신 관찰로 말해보세요.
월요일 기록
상황: __________
평가로 말하고 싶었던 것: __________
관찰로 말한 것: __________
결과: __________
화요일 기록
상황: __________
평가로 말하고 싶었던 것: __________
관찰로 말한 것: __________
결과: __________
(이하 수요일~일요일 동일)
관찰로 말하는 것이 가장 어려운 관계는 누구와의 관계인가요?
왜 그 관계에서 평가가 더 많이 나올까요?
관찰로 말했을 때 가장 놀라웠던 변화는 무엇인가요?
예고
관찰을 배웠으니, 이제 두 번째 단계입니다. 바로 '감정'. "나는 기분이 나빠"와 "나는 속상하고, 외롭고, 지쳐있어"는 완전히 다른 말입니다. 감정을 정확히 표현하는 법, 그리고 감정과 가짜 감정을 구분하는 법을 다음 시간에 배워봅시다.
알림
이 글에 나오는 모든 사례는 특정 인물이 아닙니다. 우리 옆에 있을 수 있는 이야기들을 종합하며 만들어낸 가상의 사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