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11.7. 푸른꿈고등학교
과도한 장밋빛, AIDT
코로나19를 계기로 학교교육에 정보통신기술들이 물밀듯 들어왔다. 노트북이나 전자 패드, 스마트 칠판 등 하드웨어의 변화뿐만 아니라 화상 회의시스템, 웹기반 학교 소식 관리 시스템, SNS 기반 의사소통 시스템, 온라인 학습관리 시스템, 변화한 4세대 나이스 등 모든 교육환경이 급격히 변화했다. 변화할 수밖에 없던 시간이었고, 변화를 통한 긍정적인 면도 분명 많다. 회의를 위해서 이동해야 하는 비용과 시간은 엄청나게 줄었고 또한 회의 기록 역시 디지털 환경이 월등 편리한 면도 있다. 또한 수업 시간을 넘어서 학생들과의 수업 피드백이 가능해진 것 역시 분명한 장점이다.
덕유산 골짜기의 시골에 있는 푸른꿈고등학교도 이러한 디지털 전환의 혜택이 가득하다. 학교는 무선으로 세상 어디와도 연결될 수 있다. 외국의 교사나 학생들과도 화상회의 플랫폼인 줌(zoom)을 통해 시차만 고려하면 원하는 시간에 언제든 소통할 수 있게 되었다. 30-40년 전 그렇게도 외쳤던 유비쿼터스(Ubiquitous) 환경이 2020년을 지나면서 대한민국 모든 학교에 현실이 된 것이다.
이러한 변화는 학교만이 아님은 누구나 느낄 수 있다. 도시 대부분의 식당은 이미 앉은 자리에서 주문하는 테이블 오더가 일반적이고, 카페를 넘어 거의 모든 매장은 키오스크를 설치하여 운영하고 있다. 디지털 기반 사회로의 변화를 역행할 수는 없을 것이다. 마음속으로는 19세기 초반에 있던 러다이트 운동(Luddite Movement: 1811-1817년에 일어난 기계 파괴 운동)을 해야 하는 것을 상상하고 있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해보지만 21세기 이미 엄청난 디지털 문명사회에서는 불가능한 운동이다.
80년대 중반에 컴퓨터공학을 전공하고, 40년 가까이 모든 전자기기 사용에 불편함이 전혀 없고, 스마트폰으로 은행 업무, 교통수단 예매, 음식점 예약, 신분 증명, 영화 구독, 오디오 매거진 구독, 소셜 네트워크 활동, 자동차와 연동 등 거의 모든 것이 디지털화된 삶을 살아가고 있지만, 요즘 알 수 없는 불편함이 마음 가운데 있다.
표현하기 힘든 그 불편함은 바로 ‘AI디지털교과서(AIDT)’ 때문이다. 과도하게 장밋빛이기 때문이다.
11월 첫 주 전북교육청은 전북지역 교장들을 모아 다시 한번 AIDT가 얼마나 중요하고 학교교육에 핵심인지를 강조하였다. 이를 듣는 내내 불편하였다. 발표하는 장학사는 AI와 디지털의 구분도 제대로 못하고 있어 보였다. 교육청은 AIDT가 학생들의 기초학력을 도달시키는데 최고의 마술봉처럼 생각하고 있었다. 그들의 말은 내 귀에는 ‘아부라카다부라’ 였다.
여기서 아주 간략하게 AI 역사를 살펴보자. AIDT를 이야기 하시는 분들은 이미 이 정도는 알고 있겠지만, 왠지 모를 노파심이니, 이해해 주기 바란다.
AI 역사
AI의 태동은 1950년, 영국의 수학자 앨런 튜링이 ‘기계는 생각할 수 있다’고 주장하며 이를 테스트하기 위한 방법으로 ‘튜링 테스트(The Turing Test)’를 고안하면서였으니 시간상으로 70년도 넘었다. 혹 더 쉽게 알고 싶으신 분은 2014년 작 ‘이미테이션’이라는 영화를 보시면 좋겠다.
1956년에는 AI의 개념을 세상에 알린 다트머스 회의(Dartmouth Conference)가 열렸고, 이 회의에서 기계가 인간처럼 학습하고 발전할 수 있는지에 대한 토론이 이루어졌고, 이때 처음으로 ‘인공지능’이라는 용어를 사용했다. 또한 이 시기에 인공신경망(Artificial Neural Network) 모델에 관한 연구도 활발히 진행되어, 1957년 프랑크 로젠블랏(Frank Rosenblatt)은 ‘퍼셉트론(Perceptron)’ 모델을 통해 컴퓨터가 패턴을 인식하고 학습할 수 있다는 개념을 보여줬다. 이러한 초기 연구의 성과는 세간의 기대를 높였으나, 컴퓨팅 성능, 논리 체계, 데이터 부족 등의 한계로 AI 연구는 곧 침체기에 들어섰다.
약 30년의 침체기 이후 1980년대에는 사람이 입력한 규칙을 기반으로 자동 판정을 내리는 ‘전문가 시스템(Expert System)’이 등장했다. 전문가 시스템은 의학, 법률, 유통 등 실용적인 분야에서 진단, 분류, 분석 등의 기능을 수행하며 AI에 관한 관심을 다시 불러일으켰다. 그러나 이 시스템은 사람이 설정한 규칙에만 의존하여 동작하며, 복잡한 현실 세계를 이해하는 능력을 갖추지 못했다는 한계가 있었다. 전문가 시스템 AI는 1990년대 인터넷 시대에 들어서 스스로 규칙을 찾아 학습하게 된다. 바로 ‘머신러닝(Machine Learning, 기계학습)’ 알고리즘을 활용하면서부터다. 웹에서 수집한 대량의 데이터를 활용할 수 있게 되면서, AI는 스스로 규칙을 학습하고 나아가 사람이 찾지 못하는 규칙까지 찾아낼 수 있게 되었다.
AI 연구는 머신러닝을 기반으로 다시 성과를 내기 시작했다. 2006년 제프리 힌튼은 ‘A fast learning algorithm for deep belief nets’라는 논문을 통해 다층 퍼셉트론의 성능을 높인 ‘심층 신뢰 신경망(Deep Belief Network, DBN)’을 제시했다. 이것이 AI 기술을 대표하는 알고리즘인 ‘딥러닝(Deep Learnning)’의 기초 개념이었다. AI 연구의 대세가 된 딥러닝은 2010년대부터 급속도로 성장하게 되는데, 이러한 성장에는 두 가지 배경이 있다. 첫째, GPU(Graphics Processing Unit, 그래픽처리장치)를 비롯한 컴퓨터 시스템의 발전이고 두 번째는 데이터(Data)의 증가다. 1990년대 이후, 인터넷이 보급되고 검색엔진이 발전하며, 가공할 수 있는 데이터의 범위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특히 2000년대 이후에는 스마트폰과 사물인터넷(Internet of Things, IoT)이 발전하며 빅데이터(Big Data)는 인공지능이 학습할 데이터가 차고 넘치게 된 것이다.
2022년 11월 30일 ChatGPT가 등장했고, 거의 2년이 된 지금은 GTP-4o 까지 변화하였으며, 마이크로소프트는 AI Copliot+ PCs를 애플은 Apple Intelligence를 내놓았고 더욱이 이들은 스마트폰과 PC에서 동작하는 소형 인공지능이기도 하다.
이제는 AI는 사용하는 도구가 아닌 사람과 함께하는 도구로 그 사회적 지위가 변하고 있다. 작아지고 빨라지고 저렴해진 AI들은 이제 기계와 합체하여 휴머노이드 시대를 열게 될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예견하고 있고, 전문가가 아니더라도 휴게소에 있는 로봇 카페를 보면서 시민들도 예상할 수 있는 미래가 되었다.
그래서 우리(교육자를 포함한 모든 기성세대)는 미래세대를 가르치는 학교가 이러한 거대한 AI로의 변화 앞에서 학교교육을 어떻게 할지 누구보다도 치열하고 깊게 고민하며 학교 현장에 가져와야 한다.
그런데, 지금의 교육부나 교육청은 고민의 차원이 너무도 낮다. 우리나라 교육행정에서 사용하는 데이터는 거의 대부분 hwp이거나 pdf포맷이다. 이 포맷의 파일들은 컴퓨터가 자동 처리하지 못한다. 즉 기계가 읽을 수가 없다. 다시 말해 AI에 사용할 수 없다. 정부는 그 포맷을 바꾼다고 하지만 2025년 이후라고 한다.
인공지능을 학습시킬 데이터도 없으면서 AIDT를 밀어붙이는 이유가 뭘까. 11월 30일에 처음으로 AIDT가 선보인다니 기대보다는 우려가 앞선다.
하지 말아야 할 일
상식적이지 않은 일이다. AIDT를 밀어붙이면서 정부는 고교 무상교육 예산은 52억 6,700만 원으로 편성했다. 2024년도 9438억 9800만원에 비해 99.4% 삭감했다. 자본주의 시스템에서 비용과 예산은 그 분야에 대한 가치투자이다. 미래 교육을 말하면서 중등교육의 가치를 허무는 일은 결코 정부가 해서는 안 되는 일이다.
더욱이 ‘인공지능 수학’과 같은 책은 만들면 안 되는 교과서이다. 컴퓨터를 이해하는데 수학은 필수과목이다. 그러나 인공지능만을 위한 수학은 존재하지 않는다. 고등학교 인공지능 수학 교과서는 ①인공지능과 빅데이터 ②텍스트 데이터 처리 ③이미지 데이터 처리 ④예측과 최적화 ⑤인공지능과 수학탐구, 총 5개의 분야로 만들어져 있으나 컴퓨터 전공자가 누가 보더라도 교과서의 체계를 가지지 못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차라리 공통 수학 과정에 일부 단원이나 각 단원에서 관련된 AI 분야를 설명하는 정도로 만들어도 될 수준의 내용이다.
또 하나 해서는 안 되는 일이 AI 자격증이다. 어떤 IT 기업 어느 곳도 인공지능 자격증을 요구하지 않는다. 취업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아니 그런 자격증을 이력서에 기재하는 순간 IT 기업에서는 서류에서 대상자를 탈락시킬 것이다. 그러나 직업계열 특성화고등학교에서는 그 하나도 쓸데 없는 자격증을 학생들에게 취득하도록 아이들의 시간을 허비할 것이 분명하다. 정부, 교육청, 학교는 이런 시대착오적 행정을 이제는 멈춰야 한다.
관련 학과를 만드는 것도, 그런 학과를 만든 대학에 진학도 마찬가지다. 절대 하지 말아야 한다. 제프리 힌턴, 요슈아 벤지오, 얀 르쿤 중 누구도 인공지능학과를 나오지 않았다. 인공지능 자격증이나 인공지능학과에 갈 것이 아니라 그 시간에 수학의 기본을 다지고 고등학교에서 가르치고자 하는 보편적인 학문(물리, 화학, 생물, 지리, 국어, 외국어, 사회, 윤리, 음악, 미술, 체육 등)을 익혀야 한다.
해야 할 일
학교 교육의 방향은 우리나라 교육기본법에 분명하게 나와 있다. 인공지능 시대에 살아갈 학생들에게는 자신의 삶을 주체적으로 살아갈 수 있는 역량과 민주시민으로서 필요한 역량을 키워줘야 한다. 과목으로는 기초과학을 학생들이 좀 더 재미있게 배울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인공지능이 2024년 노벨상을 점령했다. 인공신경망의 기초를 확립한 공로로 존 홉필드와 제프리 힌턴이 노벨물리학상을 받았다. 단백질 구조 계산법을 고안한 공로로 데이비드 베이커, 데미스 허사비스, 존 점퍼에겐 노벨화학상이 수여되었다. 데미스 허사비스는 인공지능 알파고를 만들어 세상을 특히 한국을 놀라게 했던 구글의 과학자(구글 딥마인드 최고 경영자)다. 원천 기술이 탄탄한 기초과학에서 나온다는 것은 교육자라면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 아닌가. 그렇다면 인공지능의 시대를 본격적으로 살아갈 오늘의 청소년들에게는 인공지능 사용법이나 수박 겉핥기식의 과목을 가르칠게 아니고, 과학과 인간을 이해하고 철학을 사유할 힘을 키워야 하는 것이다.
교육부는 AIDT야말로 교육격차를 줄일 수 있다고 장담하고 있다. 특히 학습에 어려움을 겪는 학생들을 위한 개별 맞춤 학습 지원이 가능하다고 한다. 정말 그럴까? 말은 참 멋지지만, 이런 기술결정론에 사로잡힌 자들은 학교에서 교사-학생 간에 어떠한 것들이 학생을 성장하게 하는지 모른다. 사람과 사람 관계 속에서 교육효과에 대한 전문가들의 의견을 무시하는 교육정책가, 행정가와 공학자들은 AIDT가 교사와 학생을 개별화된 도구에 가두게 되어 이에 따라 교육의 필수 요소인 인간 상호작용의 기회를 줄였을 때 어떤 문제가 나타날지 생각조차 하지 않을 것이다. 오랜 역사 동안 사람 중심의 교육 공간인 학교에서 생각지도 못한 형태의 차별과 배제가 기술 장벽으로 발생하면, 기술결정론자들은 그건 ‘당신들의 문제’라고 하며 발을 뺄 것이다.
학교 교육은 사람과 사람이 만나고 그사이에 따듯한 서로의 보살핌(돌봄)이 있어야 한다. 교육은 특히 학교 교육은 기성세대와 다음 세대의 사람이 만나는 삶의 모습이다.
새로운 기술이나 AI 기술을 반대하는 것이 아니다. 코로나19 동안 학교는 새로운 기술에 대해 어떤 기관보다도 능동적으로 받아들이고 이를 사용했다. 학교는 필요하다면 새로운 기술에 대해 개방적 태도로 적극 수용할 것이다. 그렇다고 밀어붙이기식 주입까지 학교가 수용할 수는 없는 것 아닌가.
교육 정책을 만드는 분들께 간곡히 부탁드린다. AIDT가 교육을 혁신하는 것이 아니다. 교육의 혁신은 사람에게서 나오는 것임을 외면하지 마시라. 미래를 위한 교육의 본질은 기술 중심 말고 사람 중심의 학교 교육이 필요하다.
출처 : 교육언론[창](https://www.educh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