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리즈 시절

내 기억 속 가장 예쁘고 행복해 보이는 엄마는 내가 여섯살 무렵의 엄마다.


내가 6살이었을 때 엄마는 30대 초반이었다. 지세포라는 거제도의 작은 해안 마을에 살고 있었는데 엄마는 그 동네에서 최고로 예뻤다. 엄마 혼자 햇빛이 따라다니는 것 같았다. 얼굴이 예쁜 엄마는 몸도 날씬해서 동네 사람들은 늘 왜 그렇게 말랐냐고 타박을 했다. 그래서 엄마가 약하다고 생각했었던 것 같다. 엄마는 멀미를 자주 했기 때문에 버스를 탈 때마다 늘 엄마가 걱정되었다. 버스를 타기만 하면 누군가 내리는 사람이 없는지 두리번거리다 자리가 나면 잽싸게 엄마를 앉혔다. 지나고 보면 그 때 엄마는 멀미를 했을 뿐 건강했는데 나는 유독 엄마를 보호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부산으로 이사를 하고 내가 중학교에 들어갈 무렵부터 엄마가 건강이 안좋아지기 시작했다. 딱히 병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매일 어딘가 아프다고 했지만 병원에 갈 만큼의 증상은 아니었다. 지금 생각햅보면 스트레스가 원인이었다. 아빠와의 싸움이 잦았고 엄마는 화를 자주 냈다. 몸도 말랐고 얼굴도 부쩍 더 나이들어 보였다.


중학교에 들어가자 노는 게 너무 재밌어져서 1,2학년 열심히 놀면서 성적이 많이 떨어졌지만 엄마는 별로 신경쓰지 않는 것 같았다. 그러다 3학년 올라가기 전 겨울 방학, 아빠가 대화를 요청했다. 교사의 박봉으로 세 아이를 대학에 동시에 보내는 게 쉽지 않으니, 나중에 대학은 등록금이 저렴한 국립대학을 가는 게 좋겠다고 하셨다. 그리고 이왕이면 서울로 가는 게 좋지 않겠냐는 얘기도 하셨는데, 대화를 끝내고 서울에 있는 국립대학을 찾아보니 서울대학밖에 없는 것 같았다. 그래서 다시 공부를 하기 시작했다.


공부를 하니 성적이 올랐다. 등수가 찍힌 성적표를 엄마에게 보여주니 엄마가 웃는다. 웃는 엄마가 좋아서 더 열심히 공부를 하기 시작했다. 학교에서 집까지는 걸어서 25분 정도 걸렸는데 성적표가 나오는 날에는 빨리 엄마에게 보여주고 싶어서 집까지 달음박질을 쳐서 왔다. 그리고 엄마의 좋아하는 얼굴을 보면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었다.


아빠가 말한 대학에 붙었다. 그리고 대학교에 들어가기 위해 서울에 온 이후 엄마를 자주 보지 못했다. 어쩌다 집에 내려가도 그렇게 오래 머물지 않았기 때문에 엄마와 보내는 시간이 점점 더 줄었다. 2학년이 되었을 때 정부의 과외금지 조처가 풀려서, 아르바이트를 해서 엄마에게 용돈을 보내기 시작했다. 이제는 성적으로 엄마를 기쁘게 할 일은 없으니 돈으로라도 해야지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엄마의 스트레스는 좀 줄어드는 것 같았다. 할아버지 할머니가 돌아가신 후의 일이다. 그래도 엄마는 그렇게 행복해 보이지는 않았다. 이미 돌아가신 할머니의 이야기를 자주 했다. 엄마를 얼마나 고생시켰는지에 대한 '시어머니' 일화들이다. 최대한 듣는 척하며 듣지 않으려고 애썼다.


내가 40대 초반이 되었을 때 아빠가 정년퇴직을 했고, 두분은 부산을 떠나 남해로 이사를 갔다. 두분에게 천 오백 평 정도의 땅을 사드렸는데 거기에 집을 지었다. 도시에 살던 사람에게 시골의 삶은 육체적으로 피곤하다. 두분은 20대에 농촌에서 젊은 시절을 살아보았기에 망정이지. 괜히 남해로 가시게 했나 걱정이 되곤 했다.


그런데 남해에서 지내면서 엄마는 점점 변해갔다. 늘 웃고 유쾌하고 너그러워졌다. 변해가는 엄마를 보면서 저렇게 나이가 들 수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나도 저만큼 멋지게 늙어갈 수 있을까...


남해는 그 동네가 신기한 것인지 아빠 엄마가 신기한 것인지 신기한 일들이 많았다. 아침에 문을 열고 나가보면 쌀자루나 채소가 가득 담긴 바구니가 놓여 있었다. 남해 바다에서 딴 굴들, 단맛이 나는 남해의 시금치, 온갖 채소와 과일들을 동네분들이 나누어 주었다. 엄마 아빠는 첫해 밭농사를 좀 해보다가 그만 두셨다. 어쩌다 가서 고추를 따다 보면, 그냥 쿠팡에서 주문해서 몰래 갖다 놓고 싶어졌다. 똑같은 동작으로 쭈그려서 일하는 게 관절에 좋을 리 없다. 자식들의 잔소리 때문인지 곧 농사는 포기하고 밭을 동네 다른 분에게 그냥 사용하라고 주셨다. 밭농사를 안해도 동네에서 나눠주는 농산물만으로도 너무 충분하고 넘쳤다.


남해에 간 지 10년 쯤 됐을 때인 것 같다. 엄마 나이 78세 쯤 되었을 때다. 식탁에 앉은 엄마가 문득 생각난 듯 얘기했다.


"엄마의 리즈시절은 70-75세였어. 돈걱정도 자식들 걱정도 다 없어지고 가장 행복하고 마음편한 때였단다. 75세가 넘으니 몸이 여기 저기 고장이 나는 게 느껴지네."


귀가 쫑긋했다. 엄마 인생의 리즈시절이 70-75세라고? 그때가 지금부터 5년 쯤 전이고 나는 50대 초반이었는데 엄마 말을 듣자마자 눈이 환해지는 기분이었다. 내 리즈시절은 이미 지난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라 아직 한참 더 기다려야 하는구나! 세상을 낙관적으로 봐야 할 너무나 분명한 증거가 눈앞에 있었다.


Gemini_Generated_Image_hph3ouhph3ouhph3.png 나노바나나2로 그린 타샤 튜더풍 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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